발매일 2020.03.20
개발사 id Software
디렉터 Hugo Martin
실기 PC


id Chronicles (1) 링크    id Chronicles (3) 링크    id Chronicles (5) 링크
id Chronicles (2) 링크    id Chronicles (4) 링크    id Chronicles (6) 링크

0. The Corrections

  Doom Eternal(둠 이터널, 이하 DE)은 액션 게임사史의 최전선에 있는 가장 진보한 경기이다. 3D 액션 게임으로서 경기적 완성도를 보더라도 비견될 게임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게임계의 진보를 앞당길 담론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찾을 수 있다. Dark Souls(다크 소울 1) 이후로 DE만큼 유의미하고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게이머와 개발자들, 심지어 컨슈머, 리뷰어들 모두를 일깨운 경기는 없었다. 그러므로, Doom II(둠 2)나 Quake(퀘이크 1)와 마찬가지로 비디오 게임이 존속되는 한 DE는 영원히 거론될 것이고 또 플레이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것은 DE란 작품이 AAA 게임임을 고려해보면 더욱 놀라운 성과이다. ‘AAA 게임’은 형식이 아니다. 그 이유는 ‘인디 게임’이 형식이 아닌 이유와 같다. 인디 게임이 단순히 ‘독립 자본 게임’을 지칭하는 용어이듯, AAA 게임은 거대 자본의 투자를 받은 작품군을 묶어 분류하는 상업적인 용어일 뿐 게임의 구조적 특징들을 통해 정의되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형식의 게임이건 대자본의 투자만 받는다면 그것은 AAA 게임이다. 그럼에도 AAA 게임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특성’ 내지는 ‘경향’은 명백히 존재하는데, 이는 한 작품에의 대자본의 투입이 어느 정도는 당연하게 귀결하게 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모든 AAA 게임에 통용되지는 않을 뿐이다. 그렇기에 어떤 특정한 형식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명백히 그릇된 것이고, 그저 각각의 형식이 서로 다른 가치를 지향할 뿐이라 보는 것이 옳겠으나, AAA 게임이란 것은 애당초 형식이 아니므로 여기에 근본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음을 먼저 지적할 필요가 있다.

  비독립적인 대자본의 투입은 필연적으로 최대한 다양한 층의 ‘구매(플레이가 아니다)’를 유도해내는 방향으로 작품을 기획하도록 요청받는다. 즉 게임 디자인적으로 여러 방면에서 타협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이 꺼려하는 스트레스 요소, 즉 ‘리스크’는 완전히 사라지거나 최소화하게 된다. 단 3번만 연달아 죽더라도 게임의 난이도를 과대평가하고 자신의 죽음을 전혀 복기하지 않으며 게임에 대한 불평불만을 전개하는 의견들을 보면 이들이 난이도의 높고 낮음을 떠나 얼마나 스트레스 그 자체를 혐오하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게임과는 무관한 화려한 컷신들과 경기적으로 무의미한 스토리 요소들(물론 게임 플레이를 통하여 전달되는 스토리나 스토리텔링은 충분히 의미 있다. Celeste, Ultima IV, Doom II, The Last of Us(더 라스트 오브 어스 1) 등이 그 예시이다)로 채워 넣기 급급하다. 그러나 앞서의 비평에서 지적한 바 있듯 스트레스, 리스크 또는 ‘경기에서의 난관’이란 것은 게임 그 자체나 다름없으며, AAA 게임들의 이러한 기획 경향은 자연스럽게 게임을 게임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또 경기의 완성도를 크게 떨어뜨린다.

  

대자본 투자의 병폐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Red Dead Redemption 2


  즉 대자본이 투입될수록 게임이 우수할 확률은 큰 폭으로 떨어지며, 많은 사람들에게 팔리기 적합한 상품에 가까워질 뿐이다. 다만 게임 비평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는 AAA 게임이란 작품군에 어떤 본질적인 한계를 부여하며 그러한 작품의 컨슈머들도 개발자들만큼이나 그 한계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가령 게임을 전체적으로 크게 퇴보시키고 있는(혹은 딱히 퇴보할 것도 없이 이미 멸망해버린 한국 게임계가 창작과 비평 그 어느 방면에서도 전혀 성장할 수 없게 억누르고 있는) ‘가챠 게임’들을 보더라도 그렇다. 게임은 본질적으로 개발자와 플레이어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므로, 가챠 게임을 제작하는 개발자뿐만 아니라 그것을 소비하는 자들에게도 개발자들만큼의 책임과 잘못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수한 AAA 게임이란 것은 본질적으로 매우 드물 수밖에 없다. The Last of Us Part 2(이하 TLoU2)가 아무리 총체적으로 결함 많고 수준이 떨어지는 경기일지라도, 대부분의 AAA 게임들은 대부분 그와 동일하거나 오히려 뒤떨어지는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사실 TLoU 2조차 무적 회피기만 없었더라면 최소한 수작 정도로는 평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임 플레이와 스토리 양쪽 모두 준수한 TLoU 1과 같은 수작 수준의 AAA 작품도 가뭄에 콩 나듯이 발매되는 실정이며, TPS란 형식의 최고봉인 Resident Evil 6(바이오하자드 6)나 실시간 창발적 게임 플레이의 최고봉인 Phantom Pain(메탈 기어 솔리드: 팬텀 페인)과 같이 해당 형식의 정점에 선 작품의 등장은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다.

  DE의 위대함은 바로 그 AAA 게임에 본질적인 한계를 부여하는 ‘리스크의 최소화’란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소비자들에게 스스로의 생각을 재고할 여지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이처럼 최소화한 리스크로 인해 망가진 ‘도구와 난관 간의 정합성’과 ‘도구의 활용을 전혀 이끌어내지 못하는 비윤리적 난관의 디자인’이란 AAA 게임의 숙명적 한계점을 게임 디자인을 통해 완벽하고 세련되게(또는 ‘AAA 게임스럽게’) 돌파해냈다는 것이다. Dark Souls가 우수한 게임 디자인을 통해 스트레스란 지양되어야 마땅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게임의 본질이란 것을 일깨워 주었듯이 말이다.

Dark Souls의 유산


  흥미롭게도 Dark Souls나 DE는 모두 결코 어려운 게임이 아니다. 심지어 두 작품 모두 각각 전작(Demon's Souls와 Doom 2016)에 비하면 난이도가 크게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성과를 이루어냈다는 사실에 주목해보기로 하자. 이는 비디오 게임의 리스크와 리워드의 균형, 도구와 난관 간의 정합성, 그리고 윤리성이 어떤 중요성을 갖는지를 논증하게 될 것이다.

  FPS계로 한정지어도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 앞서 비평한 Doom 2016은 Half-Life의 등장과 함께 침체되기 시작한 FPS란 형식을 한 단계 발전시킨 작품이다. FPS의 두 계보였던 ‘전술 중심의 FPS(Doom, Half-Life 1 & 2, Quake II, Duke Nukem 3D, Blood 등)’와 ‘무빙(또는 액션) 중심의 FPS(Doom II, Quake, Serious Sam 등)’를 성공적으로 융합했다(Doom 2016 비평 참조).

  사실, DE의 기반은 Doom 2016에서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Doom 2016의 비평에서 지적한 바 있듯, 해당 작품의 게임 디자인엔 너무나 많은 결함이 있었다. 여러 디자인적 시도들이 있었고, 그 중에 성공적이었던 것은 사실상 없었다. 거의 모든 방면에서 리스크와 리워드가 불균형적이었고 모순점이 많았다.

  그럼에도 가장 기초적인 공격 지향적 게임 플레이와 액션을 통한 자원 수급, 수직적인 아레나 디자인, 그리고 전술성 & 액션성 모두를 중시한 게임 디자인 ‘철학’과 그것을 구조화한 골격만큼은 기존의 FPS에선 찾아볼 수 없었던 우수한 것이었으며, 오로지 그 이유만으로 Doom 2016은 수많은 결함을 안고도 수작이 될 수 있었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그 모든 잘못된 디자인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수정’하기만 하더라도 걸작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애초에 디렉팅의 지향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고, 또 단순히 자기가 무슨 게임을 만드는지도 모르는 채 백화점식으로 아무 요소나 일단 집어넣고 본 것이 아니라, 그 철학에 맞게 또 통일성 있게 여러 혁신적인 시도들을 하다가 실패한 것이니 말이다.

Doom(2016)의 실패는 고귀했다

  다시 말해 Doom 2016은 처음부터 가능성을 품고 있던 경기였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면, Doom 2016은 말 그대로 DE의 어머니이다. Doom II가 Doom의 무기와 이동 체계를 그대로 가져와 난관 디자인에만 큰 변화를 주어 2.5D 액션 게임의 정점으로 발돋움한 작품이라면, DE는 Doom 2016이 내포하고 있던 모든 문제점들을 수정하였고, 모든 실패했던 시도들을 ‘성공시킨’ 작품이다. 이만큼이나 자신들의 실패가 무엇이었는가를 정확히 꿰뚫은 개발사는 거의 없다시피 하였으며, 이는 게임계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행사하게 되었고 앞으로도 행사할 것이다.

  Quake 이후로 정체된 싱글 플레이어 FPS를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바로 id Software가 다시 나서서 발전시켰다는 것은 스토리가 좋다는 평을 듣는 대부분의 게임들보다 ‘서사적으로 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id Software의 개발사史가 곧 FPS의 발전사나 다름없다. 게임 비평가로서 이러한 작품을 비평하지 않는다는 것은 직무 유기나 다름없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휴고 마틴은 DE 한 작품만으로도 미카미 신지나 이타가키 토모노부, 존 로메로, 코지마 히데오와 동급의 액션 게임 디렉터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이제 논증적인 비평으로 넘어가도록 하자.




1. Dualize System

  FPS라는 비디오 게임의 형식을 이루는 두 주축은 바로 지형지물과 액션의 긴밀한 상호작용, 그리고 조준과 이동의 이원화 구조이다(이드 소프트웨어 연대기 1, 2 참조). 게임의 발전이란 곧 이러한 형식의 발전이므로, FPS로 제작된 게임이 형식의 발전을 이끌어내고자 한다면 바로 이 두 지점에서 진보를 이루어내야 한다.

  Doom 2016은 수직적인 아레나 디자인과 전술/액션이 훌륭히 융합된 대체 사격Secondary fire 디자인, 그리고 Quake의 철학을 그대로 계승한 공격적이고 폭 넓은 적 디자인을 통해 무려 20년 동안이나 정체되어 있던 싱글 플레이 FPS를 마침내 한 발자국 전진시키는 데 성공했다(Doom 2016 비평 참조). 그러나 해당 비평에서 지적했듯, 적들이 플레이어의 이동을 전혀 따라잡지 못하고 플레이어가 활용 가능한 도구들이 적의 패턴에 비해 지나치게 강력했던 등 리스크와 리워드가 불균형하였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DE가 선택할 수 있었던 방안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플레이어에게 허용된 도구들을 너프하는 방안이었고, 다른 하나는 적들을 플레이어만큼이나 강력하게 버프하는 방안이었다. DE는 후자를 택했으며, 심지어 플레이어에게 더 많은 도구들을 제공하고 기존 도구들을 버프하기까지 했다. 이동과 조준, 그 양쪽 모두를 말이다.

1-1. Movement

  사실 Doom 2016의 이동기인 관성과 점프, 그리고 무기 반동은 모두 Quake에서 이미 정립이 된 바 있는 체계이다. 액션과 지형지물 간의 상호작용이란 측면에서나 관성의 활용이란 측면에서나 Quake와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다소 과격하게 보자면 Doom 2016은 대체 사격 디자인을 제외한다면 Quake의 열화판이나 다름없다. 그나마 가우스 캐논의 반동 정도가 새롭다 할 수 있겠다.

Quake에도 반동을 이용한 이동과 무기 콤보, 점프 등은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DE는 대시와 미트 훅, 벽 타기, 몽키 바의 추가와 노포(가우스 캐논) 반동의 계승을 통해 저 두 측면 모두에서 Quake는 물론이고 이전의 그 어떤 FPS 에서도 보인 바 없는 수준의 깊이를 구현해내었다. 아레나마다 적절한 위치에 배치된 몽키 바와 벽 타기는 Z축의 활용도를 높여주었으며, 무엇보다도 미트 훅은 이동키와 점프키를 적절히 조합해주기만 하면 땅에 발붙일 필요가 없게 하였다. 특히 미트 훅은 반드시 적을 ‘축’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에서 FPS에서의 적과 이동 간의 상호작용을 새로이 개척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적과의 거리에 끊임없이 변화를 준다


  또한 노포 반동은 플레이어와 적간의 거리를 벌림으로써 무기 콤보에도 영향을 끼치는데, 이는 DE가 Quake와 마찬가지로 거리에 따라 무기들의 효율이 나뉘는 까닭이다. 즉 거리에 변화를 준다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무기의 폭에도 변화를 주는 것이며, 이러한 디자인은 이동과 조준의 이원화 구조 하에서도 그 두 요소를 제한적으로나마 묶어서 끊임없이 서로 상호작용하게 한다. 이런 디자인의 목표는 다름 아닌 플레이어로 하여금 전술적인 선택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이 모든 이동 기술들이 일관된 관성의 영향 하에 있다는 점을 좀 더 분석하도록 하자. 가령 Devil May Cry 4가 3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혁명적이고 위대한 액션 게임인 이유는 물론 실시간으로 교체가 가능한 스타일 시스템이나(DMC 3의 스타일 시스템과 4의 스타일 시스템은 사실상 이름만 같은 완전히 다른 시스템이다. DMC 3처럼 미션 시작 전이나 미션 중간의 특정 포인트에서, 또는 시간을 멈춰둔 상태에서 ‘플레이 스타일’을 변경할 수 있었던 게임은 이전에도 수도 없이 존재했다. 심지어 8비트 게임인 Megaman조차 그러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DMC 3의 스타일 시스템은 액션 게임의 성격보다는 어드벤처/RPG에서의 ‘도구[RPG에선 파티원]’에 훨씬 가까운 성격을 띤다. 그 스타일들을 ‘실시간’으로 교체하며 스타일 특수 기술들을 ‘실시간’으로 꺼내서 쓸 수 있도록 한 것은 어드벤처로부터의 탈피이자 액션 게임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면서도 액션성 자체를 진일보시킨 대단한 혁신이다. 물론 DMC 3에서 이를 구현할 수 없었던 것은 기술적 한계에 의해서였다고 하니, 적어도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적의 경직치 시스템의 개편 등도 있겠으나, 그 모든 액션에 ‘관성’이란 변수가 일관적으로 개입하도록 하였다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는 공중에서 조합 가능한 ‘콤보’의 가짓수를 말 그대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키며, 그에 따라 액션의 자유도와 깊이도 비교불가하게 더해진다. 또한 관성에 따라 각각의 기술들의 용법과 효과도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Doom의 비평에서도 지적한 바 있듯, 관성이라는 변수의 추가는 기술 사용 목적의 다채로운 분화를 이루어내기에(Doom 비평 참조) 액션 게임의 상호작용으로서 관성이란 그 자체로 혁명이나 진배없다.

  DE의 미트 훅도 위의 예시들과 마찬가지로 관성의 영향 하에 있으며, 그에 따라 도구의 활용도가 무궁무진해졌다. 이만큼이나 플레이어가 Z축을 자유로이 활공할 수 있었던 게임은 없었고, 아예 플랫포머인 Super Mario 64(슈퍼 마리오 64) 정도는 되어야 DE의 이동기가 가진 깊이와 자유도에 견줄 수 있을 정도이다.


DE만큼이나 공중에서의 자유로운 조작을 제공하는 3D 액션 경기는 없다

1-2. Aim

  조준 디자인에서도 큰 발전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장비 시스템의 변화가 가장 돋보인다. Doom 2016의 장비는 사격과 동시에 사용할 수 없었으며, Resident Evil 4를 위시로 한 현대 TPS와 같이 순차적으로 사용해야 했다. 그러나 DE에선 장비 사용이 조준이나 이동을 ‘방해하지 않는다’. 즉, 일종의 삼원화 구조로까지 나아갔다고 볼 수 있으며, 이 또한 키보드와 마우스로 플레이되는 FPS만이 제대로 선보일 수 있는 게임 디자인이다. 물론 조준이나 이동만큼이나 장비의 이용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기에 부분적 삼원화 구조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또한 플레임 벨치와 수류탄도 모두 조준을 요구하며, 특히 플레임 벨치의 경우 사용 도중에 카메라를 좌우로 크게 돌려줌으로써 적용 범위를 넓힐 수 있다. 조준이 카메라의 이동에 묶여 있는 FPS의 형식적 특징을 적절히 활용하여 도구에 깊이와 리스크를 부여했다는 점에 주목하도록 하자.

조준과 연동하여 도구에 깊이를 부여한다


  또한 Doom 2016과 마찬가지로 좌클릭과 우클릭으로 기본 사격과 대체 사격을 구분 지으며, 이는 사실상 서로 완전히 다른 무기 두 개를 단순히 검지에 힘을 주는가 아니면 중지에 힘을 주는가 하는 차이만으로 바로바로 바꿔서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나 다름없다. 거기다 거리 별로 무기의 효능이 명확히 구분되고 무기 교체를 통해 장전과 같은 딜레이를 생략할 수 있는 Quake의 특성도 그대로 계승했다. 차이가 있다면, DE는 교체를 통해 장전 딜레이를 생략할 수 있는 대신 무기 교체 자체가 작은 딜레이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면, Quake는 교체는 곧바로 이루어지되 장전 딜레이를 생략할 수 없다. 요컨대 Quake는 제약을 우회할 수 없고, DE는 제약 자체를 플레이어가 얼마든지 임의로 우회하거나 조정할 수 있다. 충분한 실력만 뒷받침된다면 얼마든지 딜레이 프레임을 생략할 수 있기에, 무기 교체 콤보의 활용도가 대폭적으로 높아졌다.

  Quake의 비평에서도 언급하였듯, 이와 같이 무기 교체 콤보를 적극 채택한 게임에선 콤보의 가짓수가 사실상 무기의 가짓수나 다름없다. 다시 말해, 슈퍼 샷건 - 노포 - 슈퍼 샷건 또는 슈퍼 샷건 - 노포 반동 - 로켓 런처 - 슈퍼 샷건 미트 훅 등과 같은 ‘콤보’ 하나하나가 사실상 독자적인 무기이다. 이는 DMC 4의 스타일 시스템을 포함한 무기 콤보와 구조적으로 상당히 유사하나, DMC가 DE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은 없다. 앞서 말했듯, DE의 이러한 구조적 특징은 분명 Quake에서 그대로 계승한 것이기 때문이다(참고로 Quake는 DMC 시리즈의 영광스러운 첫 작품이 발매되기 한참 이전이자 3D 게임의 태동기 내지는 실버 에이지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1996년에 발매되었다. 동시대 게임들로는 Super Mario 64, Tomb Raider[툼 레이더], Civilization II[문명 2] 등이 있다). 최소한 둘의 ‘지향점’은 동일하다.

DMC4만큼이나 창발적으로 활용 가능한 것은 아니나, DE의 무기 콤보는 조준과 맞물려 DMC4와는 또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다


1-3. Consequences


  이로 인해 DE는 플레이 방식의 자유도가 DMC4나 TPP를 제한 그 어떤 게임보다 더 높다. 어떤 이들은 Doom 2016과 달리 DE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특정한 방식으로만 전투를 수행하도록 강요하기에, DE의 플레이 방식의 다양성이 Doom 2016보다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이는 근거가 전무하거나 최소한 빈약한 주장이다. 총 세 가지 지점에서 이런 주장이 어째서 그릇된 것인지 알아보자.

  첫째, 모든 게임은 특정한 방식의 게임 플레이를 ‘강요’한다. 그러지 않는 게임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게임’이라는 것 자체가 정해진 승리 조건을 특정한 방식으로 달성하도록 요구하는 경기이다. 즉 승리와 패배 또는 ‘경쟁’이 게임의 본질이고 게임이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다시 말해 게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게임은 플레이어가 특정 방식으로 플레이하도록 요구할 수밖에 없다. 또 게임의 근간인 규칙부터가 플레이어와 적들에게 ‘어떻게 플레이해서는 안 된다’는 방식으로 제약을 두는 것이다. 마리오는 플랫폼에서 떨어지면 죽는다. 목숨이 모두 소모되면 게임 오버이며 해당 월드의 첫 레벨부터 다시 플레이해야 한다. 레온은 애슐리가 적에게 납치되어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버리거나 체력이 다했을 시 패배한다. 단테는 적에게 피격당하지 않고 사실상 매 전투를 SSS 랭크로 유지해야만 전체 미션 S 랭크를 달성할 수 있다. 축구선수는 골키퍼를 제외하면 손으로 공을 잡을 수 없다. 이는 페널티 박스 바깥의 골키퍼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등등.

  요컨대 일관된 규칙과 경쟁이 있는 한 게임은 언제나 특정한 방식의 게임 플레이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Doom 2016도 똑같이 그렇다. 당신은 Doom 2016에서 아무런 전투도 수행하지 않고 엔딩을 볼 수 있는가? 아니, 한 미션 혹은 ‘한 아레나 전투’라도 돌파할 수 있는가? Doom 2016은 액션 게임이므로 이는 합당한 지적이 아니라고? Doom과 Doom II도 액션 게임이지만 몇몇 레벨들은 적들을 전혀 죽이지 않아도 클리어할 수 있다. 이는 액션이 비단 ‘전투’만을 뜻하지 않고 단순히 ‘실시간’의 형식을 갖춘 모든 게임을 통칭하기 때문이다. 유튜브에 ‘Doom Pacifist Run’을 검색해보길 바란다(개인적으론 Zero Master를 추천한다. 현존하는 최고의 ‘Doom 시리즈’ 경기자이다). 그렇다면 Doom 2016이 Doom&Doom II에 비해 ‘부자유스럽고 강요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가?

  이처럼 모든 게임은 플레이어의 자유를 어떠한 방식으로건 억압하기에, 게임에 대한 논의는 게임이 어떻게 플레이어의 자유를 ‘억압’하는가 또는 하지 않는가 하는 지점에서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그래서 그렇게 ‘억압된 플레이’가 얼마나 깊이 있고 능동적이며 가치 있는가 또는 수동적이고 가치가 없는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두 번째와 세 번째를 함께 다루도록 한다. 둘째, Doom 2016이 제시한다는 그 모든 다양한 플레이 방식들은 대부분 아무런 게임적인 의미나 가치가 없으며, 마지막으로 셋째, 심지어 그것들을 다 다양성으로 인정을 한다 하더라도, DE가 Doom 2016보다 더 다양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한다. 다만 그 자유에 책임이 따를 뿐이다.

  Doom II 비평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아무렇게나 해도 깰 수 있는 것도 물론 자유롭고 비선형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게임이 아니다. 완구일 뿐이다. 아무렇게나 해도 타파되는 게임을 정말로 ‘게임’이라 볼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책과 드라마와 영화와 만화도 마찬가지로 게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상호작용이 없으므로 게임이 아닌가? 넷플릭스의 여러 드라마들은 시청자들과 긴밀히(혹은 적어도 워킹 시뮬레이터라 불리는 유사 게임들과 같은 수준으로는) 상호작용한다. 심지어 현대 예술이 아닌 미술조차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식으로 상호작용성을 구현해놓고 있다. 또 네이버 웹툰의 첩보의 별이란 웹툰은 최다 추천을 받은 댓글이 그대로 다음 화의 전개가 되기도 했다. 이것들도 모두 상호작용성을 지닌다. 그렇다면 이것들도 모두 게임인가?


  게임을 정의하기 위해선 상호작용성 그 이상의 조건이 필요하며, 그것이 바로 경쟁이다. 게임은 그 시초부터 경기였고, 여전히 경기이며, 앞으로도 경기일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서 벗어나는 순간 그것은 게임이 아니며, 사실 게임이라는 이름을 달고 탄생하는 무수한 유사 게임Gamelike들조차 최소한의 경쟁은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게임의 정의나 구조는 아케이드와 아타리 시대부터 현재까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데 자꾸만 게임이 ‘변화’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올바른가? 그것은 급진적인 주장임을 넘어 아예 객관적으로 그릇되었다고 볼 것이다.

  이는 앞선 비평들에서 수없이 증명한 바 있는 지극히 합리적인 정론이다. 물론 나는 일개 비평가이므로, 이 ‘합리’를 깨부수고도 가치 있는 게임을 창작할 능력이 있는 개발자가 등장한다면 당연히 그 새로운 진리를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현재까지 그러한 자의 등장은 이루어진 바 없으며, 앞으로도 요원해 보인다.

  게임의 본질이 경쟁이므로, 플레이어의 모든 선택들엔 합당한 리스크와 리워드가 부여되어야 한다. 아니, 부여될 수밖에 없다. 당신이 축구에서 골망을 흔들건 흔들지 않건 그리고 실점을 하건 말건 언제나 승리한다면, 그리고 적들도 마찬가지로 그러하다면 그것은 경쟁이라 할 수 있는가? 결국 리스크와 리워드가 부여되지 않는다면 각각의 선택들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며, 애초에 선택이라고 볼 수조차 없다. 즉 모든 선택들엔 ‘책임’이 따라야만 선택이라 할 수 있다. Doom 2016은 그 책임이 따르지 않는 선택들이 매우 많았고, 책임이 지나치게 커 무의미한 선택 또한 매우 많았다. 리스크와 리워드가 완전히 불균형하다. 이는 Doom 2016 비평에서도 지적한 바 있으므로 굳이 따로 더 설명하지는 않겠다.

  이러한 ‘책임’을 ‘제약’이라 할 수 있겠으나, 사실 플레이어는 제약들을 통해 더 ‘창의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특정 제약을 뛰어넘기 위해 주어진 도구들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창의성이란 사실상 제약에서 비롯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스피드런이나 멀티 플레이어 게임들을 한번 확인해 보라. 그 모든 기상천외한 플레이들을 개발자들이 전부 상정할 수 있었으리라 보는가? 또한 ‘가장 빠르게 깰 것’이라는 제약이 없었다면 그러한 플레이들이 연구가 될 수 있었으리라 보는가? 이는 비단 ‘게임 내의 플레이어’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게임 발전의 역사 자체가 기술적 한계 속에서 어떻게 게임 디자인적 발전을 이끌어낼 것인가 하는 고민과 수많은 시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여담이지만, AAA 게임의 진정한 가치는 사실 그러한 기술적 한계선 자체를 ‘전진’시키는 데에 있다. 이는 대자본의 투입 없이는 이루어지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한 게임 디자인들은 긴 시간이 흘러 기술적 제약이 사라진 뒤에도 우수한 게임 디자인으로 여전히 빛나고 있다. 아니, 게임을 떠나서 인류가 관여한 그야말로 모든 분야가 바로 그와 같은 과정을 거쳐 현대에까지 발전해온 것 아니던가?

  물론 단순히 제약적이기만 하면 창의적일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서 손과 발을 잘라내더라도 뇌와 입이나마 있다면 창작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겠으나, 뇌가 없다면 어찌 되겠는가? 일단 그러한 제약들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에게 제공된 도구들에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야 한다. 즉 ‘깊이’가 있어야 한다. DE는 바로 그러한 ‘깊이 있는’ 경기이며, 이는 앞서 DE의 구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상세히 설명한 바 있다.

  DE는 또한 고전에선 금지되었던 부분의 제약을 없애고, 대신 다른 리스크를 부여하여 깊이 있는 게임 플레이로 재구현하기까지 하였다. 노포 반동과 미트 훅은 적과의 거리를 재조정하는 데 매우 유용한 도구들이다. 그렇기에 무기 콤보의 중간 중간에 해당 도구들을 섞어주며 적과의 거리를 비교적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적들의 근거리 공격이 가진 위력과 속도를 대폭 증가함으로써 거리 조절의 실패에 따른 ‘리스크’를 크게 높였다. 적과의 거리에 따라 다른 무기를 활용해야 하는 Quake의 공격 체계의 특징을 훌륭히 계승하고 거기서 거리 조절의 경직성을 풀어주면서도 거리를 조절하는 것 자체를 일종의 자원 관리처럼 바꾼 것이다.

거리 또한 하나의 자원으로 삼고 세분화하여 능동적으로 활용토록 하였다


  앞서의 무기 콤보 변화와 같이, 이는 액션 고전들의 여러 구조적 특징들을 정신적으로 계승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현대화’인데, The Evil Within(디 이블 위딘 1) 또한 Resident Evil 4(바이오하자드 4)를 현대적으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이동의 경직성을 없애는 대신 스태미나 제약을 추가함으로써 자원 관리의 층위를 하나 더 마련하였다. Quake에서 DE로의 변화가 이와 매우 유사하다. 조작의 자유를 제시하는 대신 실패에 대한 리스크를 더 높게 책정하고 매니지먼트의 요소로 만들어 능동성을 부여하는 것. 고전들은 조작이 경직되어 있는 만큼 그에 알맞은 레벨 디자인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기에 거기서 단순히 조작의 경직성만을 없애버리면 레벨 디자인(즉 난관)이 거의 완전히 무의미해지는 문제점이 새로이 탄생케 되며 Doom 2016이 바로 그러한 경기였다. DE는 그러한 실수를 다시 범하지 않았다.

  도구와 난관의 합인 게임의 특성 상, 난관은 언제나 플레이어에게 제공된 도구에 맞게 설계되어야만 하는데, 대부분의 AAA 게임들은 항상 난관을 완벽히 무력화하는 도구를 제공하거나 도구의 활용을 전혀 이끌어내지 못하는 난관을 제시함으로써 자멸한다. 이와 같은 지리멸렬한 디자인은 또 편의성의 존중이라는 당치도 않은 찬사를 받는다. 편의성은 물론 중요하나, 게임에 해만 끼치는 편의성 내지는 편의성만을 위한 편의성은 지극히 지양되어야 하며, 추가된 편의성에 맞게 난관 디자인에 변화를 가하는 것 또한 구조적으로 요구된다. 이러한 요구를 무시할 경우, 게임은 붕괴한다.

디테일만을 위한 디테일, 불편함만을 위한 불편함, 현실성만을 위한 현실성이 게임 디자인에서 배제되어야 하듯, 편의성만을 위한 편의성 또한 배제되어야 마땅하다

1-3. AAA Game

  이처럼 DE는 자원 제약을 클래식 Doom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로 부각시켰다. 그러면서도 Doom 2016처럼 자원 수급 수단을 액션으로 옮기고자 하기도 하였는데, 그러한 자원 제약 시스템을 수용한 방식이 상당히 AAA 게임스러운 세련됨을 갖추고 있다.

  사실 자원 제약뿐만 아니라 게임이 전체적으로 Doom 2016보다도 ‘유저 친화적’으로 변하였다. 가령 DE에선 일정 체력 이상일 경우엔 적의 어떠한 공격에도 일격사하지 않으며, 낙사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시스템적인 안배들로 인해 Doom 2016보다도 쉬운 게임이 되었다. 특히 글로리 킬의 보상을 크게 증가시켰고(확정적으로 20의 체력을 드롭하며, 일정 체력 수치 이하일 경우 추가로 더 많은 체력을 제공한다) 자원 수급 수단이 글로리 킬(체력)이나 미트 훅/플레임 벨치(아머)와 같은 액션, 즉 사실상 무제한이라는 점도 DE의 난이도를 크게 떨어뜨리는 데 기여하였으며, 심지어 울트라 나이트메어에서마저 Cultist Base만 넘긴다면 이후로는 죽을 일이 전혀 없다.

  Doom 2016은 조작은 매우 간단하나 이동 기술은 점프와 무기 반동에 한정되어 있었고 체력 수급 수단과 아머 수급 수단도 리스크가 지나치게 높은 반면 리워드는 없다시피 한 글로리 킬뿐이었기에 적에게 피격 당하는 것이 무척 어렵긴 했으나 피격 당했을 경우의 패널티가 지나치게 높았다. 또 시야 바깥에서 피해량 75짜리 화염구를 쏘는 임프의 행동에 대처할 방도가 전혀 없었기에, Doom 2016에서 플레이어가 가장 자주 맞이하는 죽음이란 맵 구석 어딘가에 숨어 있던 임프가 갑자기 날린 화염구에 맞아 불타 죽는 것이었다. 플레이어가 설사 모든 도구들을 전폭적으로 활용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죽음의 위협은 거의 경감되지 않은 채 시야의 저편에서 암약한다. 다시 말해, ‘허들’이 매우 낮으나 그만큼 ‘천장’도 낮다.

  반면 DE는 꽤 복잡한 조작 체계를 가지고 있으나 그만큼 Doom 2016에 비하여 플레이어가 훨씬 강력해지고 더 많은 자유가 플레이어에게 허용되었다. 비록 손은 Doom 2016보다 바쁠지라도, 일단 자신에게 주어진 도구를 모두 활용하기만 한다면 적어도 본편에서 죽을 일은 없어진다. 즉 ‘허들’이 Doom 2016보다는 높으나 천장 또한 높거나 사실상 없어서 일단 그 허들을 넘어서기만 하면 액션 게임 고전들에 비해 상당히 쉬워진다. (그렇다고 허들을 넘는 것이 크게 어렵지도 않은데, 이는 DE 특유의 직관성 덕분이다. 추후 설명하겠다.)

  가령 글로리 킬 수행 직후에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완벽히 무방비했던 Doom 2016과 달리 DE는 새로이 추가된 대시 덕에 그 무방비한 상태에서 곧바로 빠져나오는 게 가능해졌다. 아머 수급 수단이 글로리 킬에 한정되어 있던 Doom 2016과 달리 플레임 벨치가 따로 추가되어 글로리 킬 이외의 방법으로 아머를 보충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슈퍼 샷건의 대체 사격으로 추가된 미트 훅 덕분에 Z축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게 되었다. 이동에 있어 축 하나가 추가된다는 것은 적들의 예측샷 적중도를 자연스럽게 경감시키는 효과를 낳기에 난도가 낮아지는 또 다른 원인이 된다.

적의 예측샷이 좌나 우뿐만 아니라, 높이마저 고려사항으로 삼는다면, 당연히 적중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과거 비평들을 읽어본 독자라면, 지금 내가 마치 DE를 ‘너무 쉽다’고 비판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비판이 아니다. 오히려 호평에 가깝다.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리스크와 리워드의 균형이지 난이도 그 자체의 높고 낮음이 아니다. DE에서 이 모든 도구들이 추가됨으로써 난도를 낮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비판 요소가 될 수 없는 것은, 그 모든 도구들이 ‘거저’ 주어지지 않는 덕이다. 플레이어는 대시를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른다면 여전히 글로리 킬 직후에 적들의 공격에 완벽히 무방비하다는 이유로 체력의 손해라는 리스크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고, 플레임 벨치의 존재를 까먹는다면 아머를 회복할 방도는 아레나의 탐색뿐일 것이다. 또 미트 훅을 사용하는 와중에 방향키와 점프키를 적절히 눌러줌으로써 Z축을 마음껏 활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그것을 활용치 않는다면 여전히 적들의 예측샷 적중률은 높게 유지될 것이고, 플레이어는 자신을 지상에서 에워싸는 수많은 적들에게 고통 받으며 훨씬 ‘어렵게’ 플레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플레이어의 선택들이 가지는 위력은 막강하나, 제대로 된 선택을 내리는 데 실패하거나 도구를 활용하지 못 할 경우의 리스크가 명백히 존재하기 때문에, 경기의 긴장감 또한 유지된다. 요컨대 ‘리스크와 리워드의 균형’이 완벽하기 때문에, 난이도의 높고 낮음은 별 의미가 없어진다.



  추가적인 도구들이 상당히 세련되고 ‘AAA 게임’스럽게 정리 정돈되어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가령 DE보다도 다양한 도구들을 제시하는 Devil May Cry 4와 비교해보면 차이가 확연하다. DMC 4의 도구들을 보면 히트박스 차이나 사전 딜레이와 후 딜레이 차이, 관성의 차이와 경직도 차이 등으로 매우 세세하게 구분되어 있다. 이는 비단 공격 수단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닌데, 일반적인 플레이어는 점프 회피와 구르기 회피, 그리고 트릭스터 회피 간의 차이를 전혀 모르는 경우도 비일비재할 것이다. 로얄 가드에 모션 캔슬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플레이어가 몇이나 될까? 그래서 DMC 4에 충분히 숙달되지 않은 플레이어가 보기엔 솔직히 이 모든 도구들의 구분이 별 의미 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물론 실제론 전부 의미 있다). 즉 각 도구들을 구분 짓는 요소들이 게임을 충분히 터득한 상태에서만 제대로 보일 정도로 (겉보기엔) 미묘하다.

  Ninja Gaiden 2도 그렇다. NG 2 비평에서도 다룬 바 있으나, 이 게임은 격투 게임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에 모든 도구들이 히트박스와 사전 딜레이, 그리고 무적 프레임의 차이와 같이 ‘미세한 몇 프레임의 차이’로 구분되어 있는 경향이 강하며, 따라서 이를 제대로 익히지 못한 플레이어는 그 모든 기술들을 다 활용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 할 것이다. 또 폭탄 수리검의 부착 시간에 따라 다른 무적기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도, 무적기들과 원거리 공격들이 시야 저편으로부터의 변수에 대처할 수 있는 도구란 것도, 무적기를 활용하는 와중엔 우측 조이스틱을 이용하여 화면을 돌려주어 주변 동태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도 제대로 깨치지 못 할 것이며, 따라서 폭탄 수리검과 시야 바깥의 변수 자체가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I-frame만 정확히 활용한다면 폭탄 수리검에도 대처할 수 있다


  반면 DE를 보면, 각각의 도구가 어떤 용도인가가 너무나도 명확해서 심지어 플레이하지 않고 유튜브로만 보더라도 누구든 쉽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이다. 자원 수급 수단부터가 그렇다. 탄약이 필요하다면 전기톱을 써라. 체력이 필요하다면 글로리 킬을 써라. 아머가 필요하다면 플레임 벨치를 써라. 대시는 플레이어가 임의로 정한 방향으로 이만큼 이동시켜준다. 미트 훅을 쓰면 날 수 있다 등등과 같이 도구와 그것의 ‘효과’가 일대일로 대응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와 같은 ‘직관성’은 ‘컨슈머 친화적인’ AAA 게임들(굳이 컨슈머 친화적이라는 단서를 붙인 이유는, 어쨌거나 DMC와 NG도 몇 백만 장씩 팔아치운 매우 대중적인 AAA 게임이기 때문이다. 사실 50만장만 팔아도 상당히 대중적인 게임이라 볼 수 있다)이 공통적으로 함유한 특성인데, 컨슈머들의 취향이 바로 그런 탓이다. 컨슈머들은 쉬는 시간에 대충 만지다가 치워버릴 수 있는 직관적이고 간단한 게임을 원하지 무슨 DMC 4나 NG 2처럼 기술들 간의 미세한 차이를 모두 파악해야 그나마 제대로 플레이할 수 있는 복잡한 게임들을 바라지 않는다.

  이들의 취향을 비판하는 게 아니다. 사실, ‘직관성’과 ‘간단함’은 게임이 품을 수 있는 여러 가치 중 하나이다. Galaga나 Space Invader와 같은 고전 아케이드 게임들은 모두 매우 간단하고 직관적인 입력과 단순한 적의 이동 패턴이나 스테이지 구분, 추가 점수 시스템 등의 간단한 규칙을 가지고도 깊이 있는 경기를 구현해내었으며, 현대에도 Vlambeer와 같이 이러한 아케이드 게임들의 특성을 제대로 계승한 작품들을 내놓는 개발사들이 존재한다. 예컨대 Vlambeer의 데뷔작인 Super Crate Box(슈퍼 크레이트 박스)는 이동과 점프, 그리고 사격이라는 간단한 조작 체계와, 박스를 중심으로 한 단순하고 직관적인 규칙만으로도 불멸의 걸작이 되었다. 다양한 무기의 활용과 플랫포밍, 그리고 도전적인 전투를 단 두 개의 규칙(상자를 얻으면 점수가 추가되며, 또한 무기가 교체된다)만으로 모두 이끌어낸 것이다.

불멸할 걸작, Super Crate Box



  아마 이쪽 방면에서 가장 유명한 개발사는 닌텐도일 텐데, 패미컴 게임인 Super Mario의 점프만 보더라도 관성과 체공 중의 좌우 이동 조작, 점프 높이와 점프 버튼의 입력 시간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 등 그야말로 ‘직관성’ 그 자체나 다름없는 기술이다. 당시 패미컴 게임들 중 그만큼이나 직관적인 점프와 관성을 함께 선보인 작품은 없었으며, 이는 이후 대부분의 닌텐도 게임들이 공유하는 아이덴티티나 다름없어졌다. 존 카맥과 존 로메로가 Super Mario와 같은 경기를 PC에서도 구현하고자 하는 목표를 세운 것은 꽤나 야심찼던 것이다.

  이러한 경기들엔 모두 게이머가 아닌 캐주얼 플레이어나 컨슈머들도 쉽게 도전할 수 있으며, 그러면서도 경기적 완성도는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이 이들의 장점이다. DE의 도구들도 모두 ‘직관성’이라는 미덕을 갖추고 있다. 그러면서도 마찬가지로 직관적인 자원 제약을 통해 각각의 선택들에 모두 ‘리스크’를 부여함으로써 경기적 완성도를 해하지 않는다. 여전히 DMC 4나 NG 2처럼 소수의 우수한 게이머들만이 완성할 수 있는 게임들의 위대함을 간과해선 안 되겠으나, 모두가 플레이할 수 있으면서도 경기적 완성도는 그대로 유지하는 ‘대중적인’ 게임들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대중성과 예술성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대중성과 게임성 또한 반비례하지도 비례하지도 않는 무無의 관계에 놓여 있으니 말이다.

  대부분의 AAA 게임들에게 직관성이란 2시간 정도면 풀이법이 완전히 탄로나고 도구의 깊이도 딱히 없는 얄팍한 구조를 뜻한다. 그저 직관적이기만 할 뿐 그 이상의 난관이나 도구의 깊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DE는 각각의 도구가 모두 직관적이면서도 다방면으로 활용될 가능성, 또는 ‘깊이’를 여전히 가지고 있으며, 덕분에 닌텐도나 Vlambeer에서나 볼 수 있었던 직관성의 미덕을 수용하되 경기적 완성도는 그대로 유지한 매우 드문 AAA 게임이 되었다.

  앞서 언급한 플레임 벨치와 카메라의 이동, 미트 훅과 방향키/점프키의 조합 등 미묘한 입력 차이만으로도 평범한 방식으로 도구를 활용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수준으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는 점으로 인해 천장 자체도 상당히 높다. 이 또한 Super Mario 64와 같은 작품들도 마찬가지로 가진 특성이기도 하다. 2021년 3월을 기준으로 450,000,000 달러의 판매 수익(대략 800만장)을 낸 것도 바로 그러한 직관성 덕분일 것이다. 판매량과 게임성에는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으나, 이만큼이나 많은 플레이어들이 우수한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분명 AAA 게임만이 이룩할 수 있는 성과이다.

  물론 DE의 조작 체계는 분명 복잡한 것이 사실이다. 이는 패드보다 더 많은 버튼을 할당할 수 있는 키보드 게임에서 시작한 FPS의 특징이다. 이 키보드로 플레이한다는 점으로 인해 PC 게임을 대표하는 형식들(Adventure, RPG)은 언제나 매우 풍부한 상호작용을 제시할 수 있었고, 각 형식의 고전들은 실제로 키보드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활용했다. 세상과 플레이어의 상호작용에 할당되어야 하는 버튼의 개수는 언제나 상상이상이었고, 매뉴얼들은 모두 조작법을 빼곡히 적어놓고 있었다. Doom과 Quake도 무기 하나 당 버튼을 하나씩 할당했으며, 이는 동 시기나 심지어 현세대의 패드로도 절대 구현할 수 없다. Metal Gear Solid나 DMC만 보더라도 도구 하나에 버튼 하나를 할당하는 사치를 부릴 수 없어 일종의 우회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던가.

  DE는 무기 버튼을 넘어 장비 교체, 장비 사용, 대시, 우 클릭 등 훨씬 다양한 상호작용 버튼을 누르도록 요구한다. 여태껏 그 어떤 액션 게임도 DE만큼이나 다양한 버튼을 재빠르게 눌러주며 플레이하도록 요구한 바 없었다. 이는 DMC와 비교하더라도 그렇다. 왼손 하나만으로 이 모든 버튼들을 자유로이 누르기는 벅찬 것도 사실이며, 나조차도 마우스의 좌우 버튼과 휠에 할당함으로써 재분배해야 했을 정도이다. 턴제에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이 점은 액션 게임에선, 사실 어떤 관점에서는 단점으로 볼 수도 있고, 어떤 관점에서는 키보드의 가능성을 전폭적으로 활용한 우수한 디자인으로 볼 수도 있다. 사실 둘 다인 것에 가깝다. 다만 DE의 경우, 최소한 그러한 각각의 상호작용들 자체는 앞서 지적한 바대로 직관성을 유지하기에 큰 단점은 되지 않는다.

키보드의 특징을 전격적으로 활용한 풍부한 상호작용은 DRPG에서 시작한 FPS가 컴퓨터 RPG로부터 물려받은 훌륭한 유산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Doom 시리즈의 최신작이 지나치게 복잡하므로, 보다 간단한 Doom을 바란다고 말하는 의견들이 있다. 물론 그런 Doom을 바랄 수야 있다. 상술했듯 게임이 반드시 복잡해야할 이유는 전혀 없으며, 실제로 여명기의 비디오 게임은 간단한 조작과 깊이 있는 난관 디자인을 통해 빼어난 경기를 제시했었고 아직도 제시하고 있다. 언제든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서 무거운 경기적 책임을 안고 플레이할 수 있게 설계된 경박단소한 작품들이었다. 헌데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다음과 같은 이상한 주장을 동반한다. ‘아무 생각 없이 때려 부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 둠 다운 것이다’.

  이는 사실과 전혀 동떨어진 주장이다. ‘둠 다운 것’은 단 한 번도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것’이었던 적이 없다. 클래식 Doom을 해보았다면 누구도 그와 같은 주장을 펼칠 수 없을 것일 텐데, 내가 모르는 사이에 클래식 Doom이 지구상에서 모두 사라지진 않았을 것 아닌가. 나는 플레이해본 바 없는 자들이 무엇을 근거로 ‘둠 다운 것’을 재규정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심지어 주요 웹진 리뷰어라는 자들도 마치 약속이라도 한 양 립 앤 티어~를 구호로 외쳐대며 마치 Doom이 아무 생각 없이 찢고 죽이는 게임인 것처럼 설파하고 있다. 이들의 ‘객관적으로 그릇된’ 주장들은 또 확대해석 및 기정사실화 및 확산되어 더 깊은 오해를 야기한다. 일종의 가짜 뉴스라 볼 수 있지 않겠는가.

  Doom 시리즈를 통틀어 Doom이 아무 생각 없이 때려 부수는 게임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Doom 3조차 나이트메어 난이도에선 무려 ‘지적 활동’을 요구하였으며, Doom이나 Doom II나 대부분의 동시대 액션 게임들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깊이있는 레벨과 액션을 갖추었다. 1인칭 시점에서 3D 레벨을 그 정도의 속도로 돌파하는 게임이 없었고 경직률과 적 부활 속도, 무기 디자인, 적 디자인, 비선형적인 액션과 지형지물의 상호작용 기타 등등의 모든 부분에서 그 정도의 깊이를 가진 게임이 없었다. 아니, 굳이 동시대로 제한을 두지 않더라도 그렇다. 현재까지도 Doom과 특히 Doom II의 깊이와 액션성을 뛰어넘는 작품은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며(보다 자세한 것은 Doom과 Doom II 비평 참조) 여전히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두 게임을 플레이하고 스피드런하는 이유도 바로 그 깊이에서 비롯한다.

이 레벨을 정말로 '아무 생각 없이' 돌파할 수 있겠는가?

  ‘둠 다운 것’이 이처럼 완전히 그릇되게 정의된 것은 게임보다는 둠 코믹, 즉 만들어진 ‘밈’에 그 원인이 있다. 만화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둠 가이가 미약한 악마들을 ‘아무 생각 없이’ 찢어발긴다. 또 ‘밈’에 따르면 Doom II의 슈퍼 샷건은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무기라 이 하나만으로도 모든 적을 평정할 수 있다. 그러나 직접 Doom과 Doom II의 나이트메어, 아니 하다 못해 울트라 바이올런스나 그 이하의 난이도로라도 플레이해보면 전자와 후자 모두 전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Doom이나 Doom II나 언제나 여러 무기를 상황에 맞추어 끊임없이 바꾸어 써주어야 했던 게임이고(여담이지만, 게임사상 가장 강력한 샷건은 Residnet Evil 4의 샷건일 것이다. 전방 180도에 준하는 범위를 포괄적으로 타격한다. 사실상 샷건은 위치를 지정해주는 역할에 불과하고 폭격기가 순식간에 날아와 해당 지점을 폭격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화력을 자랑하며, 그러면서도 경기로서 제대로 기능한다. 게이머라면 특히 액션 게이머라면 반드시 플레이해보아야 하는 여러 게임들 중 하나이다) 길 찾기와 퍼즐 풀이가 매우 중요했던 게임이다. 심지어 최저 난이도로 낮추더라도 이 둘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게임’은 게임이 아닌 것들뿐이다. 경기에는 규칙이 있고 경쟁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경기에 임하고 심지어 승리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거기엔 유의미한 규칙이 없는 것이고 규칙이 없다면 그것은 게임이 아니다. 물론 아무리 심각한 쓰레기 유사 게임이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규칙과 경쟁 요소만큼은 제공하기에, 말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에 가깝다. Red Dead Redemption 2나 Detroit Become Human 정도조차 최소한의 ‘게임’은 존재하지 않던가. 아울러 이는 도박과 게임의 차이이기도 하다. 도박과 게임의 차이가 스토리라는 주장을 펼치는 한국인 게임 개발자를 인터넷에서 본 바 있는데, 한국 게임계의 수준이 현재와 같은 데에는 그와 같은 자들도 적잖이 기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2. Challenge

  우수한 게임이 되고자 한다면 단순히 도구의 깊이나 직관성 그 이상의 것이 요구된다. 도구와 난관의 합인 게임의 본질적인 특성상, 난관이 그러한 도구의 가능성을 충분히 이끌어내도록 요구해야 한다. 자원 제약 시스템이 아무리 잘 갖추어져 있다 한들 상대하게 되는 난관이 총기 사격을 전혀 요구하지 않는다면 자원 제약 시스템도 무기 콤보 시스템도 의미가 있다 할 수 없다. 이는 DE가 갖춘 다른 모든 도구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게임의 가치는 도구의 깊이가 아닌 난관의 깊이에서 비롯하는 경향이 강하다. 도구가 얼마나 복잡하거나 간단하고, 얼마나 참신하거나 참신하지 않든 간, 그것의 깊이를 이끌어내고 각각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난관이다. Doom 2016은 도구는 풍부하였으나 난관 디자인에 많은 결함이 있었다. 이는 자연히 도구를 다양하게 활용할 의미의 부재로 이어졌고, 리스크와 리워드 균형의 붕괴를 야기했다. 이러한 상태에서 굳이 도구를 다양하게 활용하거나 무기 콤보를 열심히 써가며 플레이한다 하더라도, 이미 리스크와 리워드의 균형이 붕괴했기에 갑자기 우수한 게임으로 변모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DE를 무기 콤보를 전혀 활용하지 않으며 플레이한다 하더라도 갑자기 수준 낮은 경기가 되지는 않는다. 여전히 잘 설계된 적 디자인과 아레나 디자인이 게임의 리스크와 리워드의 균형을 유지시키는 탓이다. 결국 게임은, 특히 싱글 플레이어 게임은, 곧 난관인 것이나 다름없다.


2-1. Enemies and Arenas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액션 게임에서의 제 1의 난관은 적이다. 액션 게임의 ‘적’은 크게 두 부류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한 가지의 단순한 역할과 소수의 패턴을 보유한 적이며, 다른 하나는 여러 가지 패턴을 복합적으로 구사하는 적이다. 굳이 시대적으로 구분하자면 전자는 고전적이라 볼 수 있고 후자는 현대적이라 볼 수 있는데, 물론 기술적 한계로 인해서 후자와 같은 적을 과거에는 구현할 수 없었던 탓이다. 그래서 아무리 심각한 하자가 있는 쓰레기 게임이라 할지라도 고전적인 적 디자인을 채택한 경우(Half Life 2, Call of Duty 4, Dynasty Warriors 등) 그 적들을 여러 마리 함께 내보내는 최소한의 성의라도 보일 수밖에 없는데, 단 하나의 패턴만을 가만히 멈춰선 채 끊임없이 반복하는 이들은 홀로는 적이 아니라 사실상 과녁 또는 허수아비나 다를 바 없으며, 이는 게임을 게임이 아니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대부분의 액션 고전Classic들은 여러 적들에게 다양한 동선을 부여하여 플레이어를 사방에서 압박함으로써 제대로 된 난관을 형성한다. Ninja Gaiden(닌자 용검전)과 Ninja Gaiden 2(닌자 용검전 2), Castlevania, Megaman 등의 패미컴 게임들이 그 예시이다.

  현대의 컨슈머들은 고전들의 이러한 디자인을 마치 어떤 적폐와도 같은 것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 단지 기술적 한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채택해야만 했던 디자인이며 이제는 시대의 유물로 사라져야 마땅하다는 양 말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인간의 창의력이라는 것은 대개 한계에서 비롯한다. 한계를 우회하거나 돌파해내는 과정 자체가 자연스럽게 창의력을 요구하며, 그것이 곧 진보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어떤 우수한 게임 디자인이 단순히 기술적 한계를 우회하고자 탄생했다 할지라도, 그것을 평가절하할 이유는 하등 없다. 기술적 한계가 있었건 없었건, 그 자체로 이미 훌륭한 게임 디자인이므로.

  또한 이러한 레벨 디자인은 앞서 언급한 ‘경직된 조작’에 어울리는 난관을 제시하기 위해 채택된 만큼, 그러한 경직성이 사라진 지금에 와선 오히려 (상대적으로는) 더욱 도전적이게 변해야만 (절대적인) 도전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이러한 기술적 한계가 완전히 사라진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다대일 난관이 일대일 난관보다도 반드시 더 우수할 수밖에 없는 여러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제 아무리 복잡하고 다양한 패턴을 구사하는 적이라 할지라도, 결단코 홀로는 플레이어의 제대로 된 상대가 될 수 없다. 이는 Nioh와 NG2, Sekiro의 비평에서도 상세히 설명한 바 있으니 굳이 또 다시 더 깊게 분석하지는 않겠다. 그렇기에 Nioh나 NG2와 같은 경기들은 다양한 패턴들을 구사하는 적들을 여러 마리 조합하는 방식으로 난관을 형성한다.

  DE도 후자에 속한다. 다만 Nioh나 NG2와는 다소 다른 적들을 보유하고 있다. Doom 2016 비평에서도 지적한 바 있듯 적 디자인의 기본적인 뼈대 또는 철학 자체는 상당히 유사하나, 세세하게 살펴보면 차이점이 있다.

  Nioh와 NG2의 적들은 ‘만능’이다. 근거리와 원거리 공격 태세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플레이어와의 거리에 따라 다른 패턴들을 다양하게 구사한다. 또 공격 중에 플레이어의 위치가 변한다면 그에 맞추어 공격 패턴도 변화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홀로는 플레이어의 제대로 된 상대가 되지 못 하는데, 다양한 패턴을 구사한다 할지라도 결국 그러한 패턴들은 한 번에 하나씩만 구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여럿이 함께 행동할 시엔 그와 같은 다양한 패턴들이 ‘한꺼번에’ 구사되거나 적어도 잠재적인 위협으로서 존재하며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게 되는데, Nioh와 NG2는 그와 같은 이유에서 언제나 다대일 난관을 기본 전제로 삼는다. 두 게임 모두 다대일 보스전마저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이와 같은 게임이 으레 갖추어야 하는 당연한 구조이다.

오다 노부나가와 설녀가 동시에 난관으로서 제시되는 이 다대일 보스전은 Nioh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다


  DE는 적들이 전혀 만능이 아니다. 대신 적들의 역할이 ‘전문화’되어 있다. 가령 NG2의 적들이 맥가이버 칼과 유사하다면 DE의 적들은, 휴고 마틴도 한번 언급한 바 있듯, 체스 피스Piece에 가깝다. 하나하나가 플레이어의 특정 ‘플레이’나 ‘도구’를 방해하는 데 ‘특화된’ 패턴과 AI를 보유하고 있다. 가령 Carcass는 플레이어의 이동과 로켓 런처 발사를 방해하는 에너지 막을 소환하고, Prowler는 플레이어가 지형을 악용하는 플레이를 방해하기 위해 플레이어 뒤로 텔레포트를 구사한다. Demon(또는 모두에게 Pinky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적)은 전면의 방어력이 높아 반드시 후방에서 공격하도록 하여 플레이어가 보다 활발히 이동하도록 강요한다. Mancubus와 Cacodemon은 높은 체력과 강력하고 반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근접 공격, 그리고 위협적인 원거리 공격으로 플레이어의 이동 반경을 축소시키며 Arch-vile은 빠르게 처리하지 않을 시 버프 받은 적들을 소환한다.

  이처럼 어떤 적은 플레이어의 이동을 제한하고 어떤 적은 플레이어가 자유로이 이동 가능한 공간을 축소시키며 어떤 적은 플레이어의 공격 우선순위에 제약을 주고 어떤 적은 플레이어의 특정한 플레이를 방해한다. 이는 적 하나하나가 플레이어의 특정 요소를 ‘전문적으로’ 방해하거나 플레이어의 특정 요소에 대적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DE가 3D 액션 게임 역사상 최고의 적 디자인을 가졌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도 역할 분담이 전문적이면서도 정확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플레이어가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플레이를 적극적으로 방해한다.

그중에서도 Carcass는 조준과 이동 양쪽 모두를 적절히 방해하는 매우 훌륭한 적이다

  이러한 디자인은 플레이어와의 거리와 상대적 위치 관계에 따라 만능형 적들의 역할이 수시로 변화하는 유동적인 NG2의 적들과는 대조적이다. 두 방식의 디자인이 궁극적으로는 지향점이 같다 할지라도,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NG2의 아레나 전투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같은 종류의 적들만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종류가 대부분이다. NG2뿐만이 아니라 NG나 NGB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같은 적이더라도 상황과 플레이어와의 거리 관계에 따라 매번 역할이 유동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굳이 다양한 적들을 조합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난관을 선보일 수 있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변수 요인이 매우 커진다. 플레이어는 어떤 전체적인 계획을 세워 플레이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수시로 변화하는 상황에 맞추어 거의 매 초마다 새로운 계획을 짜거나 최소한 적에게 반응하며 플레이해야 한다. 반면 DE는 어쨌건 적들의 역할 자체는 시작부터 끝까지 종류 별로 똑같이 정해져 있기에, 어떤 적을 우선적으로 처리할지 하는 계획을 정해놓고 플레이하게 된다. 적들을 하나하나 순차적으로 처리하며 ‘난관’의 특정 역할이나 능력을 차례대로 봉인해나가는 식이다.

  그렇기에 제 아무리 DLC나 마스터 레벨에서 본편에 비하면 말 그대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양의 적들을 한꺼번에 내보낸다 할지라도, 적들의 기본적인 역할 자체는 항상 똑같이 유지가 되기 때문에, NG2에선 얼마나 잘하든 간 최고 난이도에선(마스터 닌자) 수도 없이 죽어가며 플레이할 수밖에 없는 것과 달리, DE는 어떠한 플레이어이건 게임이 제시하는 도구들만 최소한으로나마 응용할 줄 안다면 단 한 번도 죽지 않고 돌파해내는 것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변수량의 상한선이 정해져 있다.

  이는 그 자체로 초보 플레이어를 ‘배려’하는 시스템적 안배이다. 그러면서도 플레이어를 배려하겠답시고 난관 자체를 없애버리는 다른 대부분의 AAA 게임들과는 달리 경기적 완성도도 유지한다. 가령, TLoU 2의 긴급 회피는 말 그대로 모든 근접 전투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이 또한 시스템적 안배라 할 수 있고 또 초보 플레이어를 향한 배려라 할 수 있지만, 리스크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이므로 경기로서의 완성도를 크게 희생한다. TLoU 2의 총격전은 의외로 상당히 수준 높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게임이 평가 절하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긴급 회피라는 시스템적 안배에 있다.


  반면 DE의 이러한 안배는, 리스크를 제거하는 것이 아닌, 리스크의 ‘상한선’을 두는 것이므로 큰 의미가 있다. 또 적들의 역할이 세분화가 잘 되어 있고 ‘경직적인’ 덕분에, 플레이어의 여러 플레이와 도구 활용을 일관적으로 제대로 방해한다. NG2의 적들이 간혹 위치에 따라 다소 중복적이거나 대처하기 쉬운 패턴들을 다 함께 구사하여 플레이어의 특정 기술(가령 잡기라든가 광역기라든가)에 지나치게 취약해지는 경우가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물론 그러한 기회를 포착하고 곧바로 적합한 기술을 활용하여 반격케 하는 것도 NG2의 장점이자 격투 게임으로부터 계승한 형식이며, 이는 단순히 NG2와 DE가 어떠한 지점에서 다른가를 지적하는 것뿐이지 무엇이 다른 것에 비해 열등함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DE 적들이 가진 또 다른 특징인 약점 시스템은 장비 시스템/무기 콤보와 함께 봐야 제대로 된 이해가 가능하다. 사실, DE의 초반부(대략 Super Gore Nest 직전까지)는 약점 시스템의 활용을 어느 정도는 강제한다 할 수 있다. 탄약 제약이나 무기의 화력 제한으로 인해 초반부는 적의 약점을 활용치 않고는 통과하기가 상당히 어려우며, 이는 울트라 나이트메어라면 특히 더 그렇다. 그러나 그 시점을 지난 이후로는(즉 노포를 제공받는 Super Gore Nest부터는) 약점은 플레이어가 선택 가능한 여러 수단 중 하나 정도로 전락하는데, 이는 무기 콤보와 장비 시스템의 화력과 유틸성이 약점 시스템을 이용함으로써 얻는 이득을 상회하는 탓이다.

  이러한 점에서 무기 콤보와 장비 시스템은 XCOM(엑스컴 리부트)의 수류탄과 매우 유사한 기능을 한다. 다소 생뚱맞은 비교라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일단 들어보았으면 한다. 모든 공격이 확률로써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XCOM에서 거의 유일하게 수류탄만큼은 게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확정적으로’ 피해를 가하고 엄폐물을 훼손한다(X-COM[클래식 엑스컴]의 수류탄도 어느 정도는 그러한 역할이었다). 그렇기에 수류탄은 예외, 또는 와일드카드와 같은 것이며, 일반 총기 사격과 달리 수량도 한정되어 있다. 이는 전략에 깊이를 더한다. 단순히 확률이라는 변수와의 싸움 외에도 플레이어가 전략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를 한 층 더 추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기 콤보와 장비 시스템 또한 일종의 예외나 와일드카드로 기능한다. 둘을 활용한다면 적의 약점 시스템과 회피 패턴 등을 무시하는 것이 가능하다. 차이가 있다면, 턴제 게임인 XCOM과 달리 액션 게임인 DE는, 이러한 예외를 이용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또는 소모해야만 하는 자원을 어떤 한정된 수량과 같은 것이 아닌, 바로 ‘시간’과 ‘조작 실력’으로 설정해두었다는 것이다. 얼음 수류탄과 파쇄 수류탄은 모두 사용 후 일정 시간이 흘러야만 재사용이 가능해지며, 무기 콤보는 재빠른 무기 변경과 사격의 연속적인 입력에 익숙하지 않은 플레이어는 활용하기 어렵다. 주목해야 할 것은 장비 시스템이다. League of Legend를 플레이해본 사람이라면 물론 알겠지만, 이는 전형적인 쿨다운 시스템인데, 사실 액션 게임에서의 쿨다운 시스템은 최대한 지양되어야 하는 디자인이다(LoL이나 Dota 2는 전략 게임이고 쿨다운 역시 일종의 전략 자원처럼 기능하기에 두 게임에서의 쿨다운 시스템은 충분히 제 기능을 다 한다). 이는 Halo식 체력 회복 시스템이 매우 저열한 디자인인 이유와 같다. 수동적이고, 의미도 책임도 없는 선택을 강요한다.

  그럼에도 반드시 쿨다운 시스템을 액션 게임에 탑재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DE의 방식을 따를 필요가 있다. DE에서 선택 가능한 업그레이드들 중에는 장비로/장비의 영향을 받은 적을 처치할 시 처치한 적 수에 비례하여 쿨다운을 낮추어주는 것이 있다. 이는 분명 장비를 보다 효율적이고 공격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적극 장려하는 디자인이며, 따라서 쿨다운 시스템의 단점을 상당 부분 상쇄한다.

  이 점은 DE의 또 다른 장점으로 연결된다. 플레이어에게 적과의 거리를 재조정하는 도구들이 다량 추가된 것에 맞게, 적들의 회전 속도가 경기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적의 앞과 뒤를 수시로 오가며(물론 공중에서 말이다) 적 하나의 패턴을 완전히 무력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다대일 난관을 일관적으로 제시하기에, 다른 적들의 위치도 끊임없이 상기해야만 한다. 적들의 위치에 따라 장비의 효율이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적들의 위치를 조정하는 식으로 플레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해졌다. 이는 Resident Evil 4에서 시작된 현대 TPS 게임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형식적 특징을 거의 그대로 가져와 FPS에 맞게 변형한 것이다.


적들을 뭉치게 하여 장비의 효율을 최대한으로 증폭시키는 것은 현대 TPS 액션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이다


  전체적인 아레나 디자인에도 괄목할 만한 발전이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아레나 디자인이란 아레나라는 ‘공간’의 디자인이 아닌, 아레나 ‘전투’ 디자인을 뜻한다. 공간 디자인은 앞서 언급한 몽키 바와 벽 타기 등의 추가로 Doom 2016보다도 풍부해졌고 여전히 수직성을 유지하고 있기에 우수한 것도, 발전이 있었던 것도 맞으나 딱히 주목할 만한 점은 없다.

  아레나 전투 디자인은 다르다. DE의 아레나 전투는 기본적으로 소형 적(전기톱 연료 1개 소모하는 부류)들이 아닌 중형 적(전기톱 연료 3개 소모)들을 모두 처리해야만 진행이 가능하다. 중반부를 넘어가는 지점에서부턴 중형 적들만 모두 처치하면 소형 적들이 자동으로 사망하며 곧바로 아레나 전투가 종료된다.

  중요한 것은, 소형 적들이 끊임없이 부활하여 그 수가 일정 수치 이하로는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DE의 탄약 최대치가 크게 낮아짐으로써 전기톱을 활용할 일이 보다 빈번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Doom 2016에서 소형 적들이 중형 적들과 아무런 역할 차이가 없었던 것과 달리, DE의 소형 적들은 움직이고, 공격하며, 위협적인 일종의 ‘아이템’ 정도의 역할을 맡는다. 즉 게임의 진행이라는 거시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중형 적들을 처치해야 하는 것이고, 그러한 게임의 진행에 도움이 되는 ‘자원’을 획득키 위해선 소형 적들을 처치함으로써 미시적인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것이다. 거시적인 목표는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것이지만, 미시적인 목표는 플레이어의 상황 판단 능력/액션 수행 능력이나 자원 상태 등에 따라 생략하는 것도 가능하다. 사실 가능한 것을 넘어 그것이 장려되는 것에 가깝다. 플레이어가 잘하면 잘할수록 소형 적들과의 전투 또한 최소화할 수 있으니.

소형 적들은 걸어 다니고 다소 공격적인 아이템이다


  이는 Quake의 영향이 지대하여 아레나 FPS를 표방하고 있는 DE가 함유하고 있는 단 둘뿐인 클래식 Doom의 구조이다(다른 하나는, 후술하겠지만, 보스를 일반 적으로 활용하는 구조이다). 클래식 Doom의 경우 적들이 끊임없이 부활하고 또 게임 진행에 있어 적들을 처치할 필요가 전혀 없는 레벨들이 대다수이기에(Doom II의 Dead Simple과 같은 예외는 물론 있다) 정확히 필요한 만큼만 적을 처치하고 나머지는 무시하는 방식의 플레이가 요구된다. 이는 플레이어의 능동성을 보다 존중하면서도 전술적 선택지의 폭을 넓혀주는 디자인인데, 레벨의 구조나 변수 등을 고려하여 얼마만큼의 적을 처치하고 얼마만큼의 적을 무시할 것인가 하는 ‘계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DE에서 소형 적들이 가지는 역할이 이들과 같다. 그런데 궁극적으로 가지게 되는 역할은 같은데, 그 역할을 부여하는 게임 디자인은 서로 완전히 다르다. 클래식 Doom은 기본적으로 ‘던전 탐색’ 게임이기에 적들이 던전을 구성하는 수많은 난관 중 일부로서 기능한다. 즉, 클래식 Doom에서 적들을 죽이는 이유는 적들이 플레이어의 ‘던전 진행’을 말 그대로 육탄 방어하기 때문이다. 그 외의 상황에선 적을 죽이는 행위가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 하며, 그렇기에 해당 게임들에서 적들이 그러한 역할을 가지는 이유는 클래식 Doom이 던전 탐색 게임이기 때문이다.

  반면 DE는 ‘아레나 전투’ 게임이기에 아레나 내의 모든 중형 적들을 처치해야만 진행할 수 있으며, 그에 맞게 자원 수급 수단 역시 ‘적과의 전투’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즉 DE에서 소형 적들을 죽이는 이유는 자원 수급을 위해서이며, 그들에게 그러한 역할이 부여된 이유는 DE가 아레나 전투 게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같은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이는 상당히 우아한 방식으로 고전의 위대한 구조를 계승한 것이다. 단순히 클래식 Doom의 적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와 짜깁기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가지게 되는 역할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구현한 것이니 말이다. 이는 사실 어느 관점에서는 ‘휴고 마틴식 게임 디자인’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DE라는 게임의 구조에서 빈번하게 드러나는 개성적인 게임 디자인이다. id Software가 과거 개발하였던 그 모든 고전들의 장점들을 그대로 가져오는 게 아니라, 그것들이 추구하던 궁극적인 ‘가치’를 구현하고자 자신만의 방식대로 재조립한 것이 DE의 가장 큰 특징이다. 앞서 언급한 무기 콤보라든가, 역할 분담이 명확한 적 디자인이라든가, 수직성을 중시한 아레나 디자인이라든가, 무빙 중심의 액션이라든가 하는 것은 모두 클래식 Doom이나 Quake에 그대로 존재했던 가치들이며, 휴고 마틴은 다만 이를 현대적으로 발전시키고 탈바꿈시켰을 따름이다.

  물론 단순히 고전의 구조를 계승했다는 이유만으로 호평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디자인이 게임에 부여하는 가치 자체가 너무나도 위대하기에 호평하는 것이다. 결국 소형 적들이 끊임없이 부활한다는 것은, 플레이어가 아레나 전투라는 하나의 연속적인 시간 축 상의 어느 지점에 있건, 항상 다대일 전투가 강요됨을 뜻한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를 향한 압박이나 경기의 긴장감이 항상 일정 수치 이상으로는 유지된다. 절대 다수의 게임들의 다대일 전투는 시간이 진행됨에 따라(= 적의 수가 감소함에 따라) 경기의 긴장감이 급격히 떨어지며, DE 또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그 절대 다수의 경기들과 달리, DE는 그 긴장감이 떨어지는 ‘하한선’이 존재한다. 즉, 적들의 경직된 역할 분담이 경기의 ‘혼돈성’에 어떤 ‘상한선’을 정해놓는다면, 이러한 디자인은 반대로 하한선을 설정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DE가 가진, 다른 대부분의 AAA 게임들과 명확히 구분되는 가치이자 장점이다. 플레이어에 대한 배려를 신경 쓰면서도 리스크와 리워드의 균형은 언제나 일정 수치 이상으로는 유지한다. AAA 게임의 단점은 모두 버리고 장점만을 취했다 할 수 있다.


  보스전 또한 성과가 있었다. 사실 FPS란 형식을 공유하는 게임들은 단 하나도 빠짐없이 한 번도 ‘우수한 보스전’을 가져본 적이 없다. 심지어 클래식 Doom이나 Quake마저 보스전은 상당히 수준 떨어졌다. Quake의 첫 에피소드 보스와 최종보스를 상대해본 바가 있다면 누구든 이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단 하나의 패턴을 단조롭게 반복하는 것 정도가 그 당시에 구현할 수 있는 가장 복잡한 적이었고(3D 게임 한정으로 하는 말이다. Alien Soldier와 같은 경기들은 매우 빼어난 보스전을 이미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보스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이다. 그래서 Doom II의 Icon of Sin이나 Quake의 첫 에피소드 보스와 최종보스는 일종의 ‘퍼즐 보스’ 형식을 띄었다(보스는 굳이 분류하자면 ‘액션 보스’와 ‘퍼즐 보스’로 나눌 수 있는데, 액션 보스는 반사신경과 위치 선정 등 ‘실시간 입력’이라는 구조를 백방 활용한 난관을 제시하기에 파훼법을 안다 하더라도 액션 수행 능력이 요구되고, 퍼즐 보스는 마치 퍼즐처럼 하나의 파훼법을 요구하기에 액션 수행 능력의 요구치가 낮거나 없는 대신 퍼즐 풀이 능력 또는 직관력을 시험한다) 보스를 타파할 단 하나의 해법이 존재하고, 그 해법을 3번 반복하도록 요구하는 것. 이것이 그들이 공유하는 형식이었다.

실소를 금할 길이 없는 보스전

  이들은 정상참작이 가능하다. 기본적인 게임 디자인 자체가 정상적인 보스전을 수용할 만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도 않고, 애초에 보스전이 중요한 경기들도 아니다. 언제나 던전이 가장 높은 우선순위에 있던 경기들이고 보스전이란 던전을 이루는 여러 난관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이후로 등장한 무수한 FPS 경기들이 단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수준 낮은 보스전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은 어찌 바라봐야할 것인가? 그리고 그 원인은 또 무엇인가?

  그 원인은 이렇다. FPS 시장이 멀티 플레이어 위주로 형성이 되는 바람에, 싱글 플레이어 FPS 자체가 발전이 정체되어 있었고, 따라서 Quake의 보스전 수준에서 단 일 보의 전진도 이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멀티 플레이어의 경기는 ‘동일한 인간인’ 플레이어와 상대방이 ‘동일한 환경’과 ‘동일한 규칙’ 아래에서 겨룬다. 즉 이들의 승패를 가리는 것은 맵 구조에 대한 숙달 정도와 단편적인 정보들을 취합하여(가령 아이템 리스폰 타이밍이라든가) 적의 위치를 예상하는 능력, 그리고 조준과 이동 실력이다.

  그런데 싱글 플레이어의 경기는 멀티 플레이어 경기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을 띤다. 플레이어와 상대방이 애초에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인간과 프로그램의 경기이므로), 동일한 규칙과 동일한 환경을 고수했다간 (프로그램의 입장에서) 절대적으로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경기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멀티 플레이어 경기와 싱글 플레이어 경기는 같은 경기임에도 추구하는 바가 본질적으로 다르다.

  멀티 플레이어 경기가 1대1의(또는 동일한 숫자의 팀원을 보유한 여러 팀 간의) 대결이라면(물론 그렇지 않은 경기도 존재하나, 대부분은 그렇다), 싱글 플레이어 경기는 하나의 총체적인 난관 또는 문제를 풀이해나가는 과정이다. 사실, 그렇기에 싱글 플레이어 게임에선 ‘공정함’과 ‘공평함’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요소일 수 있다. 불리한 형세를 극복하도록 구조적인 차원에서 강요받는 것이 멀티 플레이어 경기에선 ‘불합리함’일지 몰라도, 싱글 플레이어 경기에선 그 무엇보다도 강렬한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반대로 구조적으로 프로그램에게 ‘불공평’한 경기라 할지라도, 리스크와 리워드의 분배가 적절하고 플레이어의 능동성을 충분히 존중한다면 그것 또한 우수한 경기이다. 이 둘은 싱글 플레이어 경기에선 모두 의미 있다. 공정함이 미덕인 경기가 분명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NG2) 적어도 싱글 플레이어 게임은 반드시 공정할 필요는 없으며,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실 리스크와 리워드의 적절한 분배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콘솔 액션 게임 명가인 Capcom(2010년대 초반까지만 한정), Team Ninja, ‘미카미 신지’, ‘코지마 히데오’ 등은 다대일 전투나 스코어링 시스템(DMC), 자원 제약과 이동 제약(Resident Evil, Vanquish, God Hand), 환경 제약 등 프로그램을 보조할 갖가지 규칙들을 갖추어두었고, 이를 통해서 어느 정도 공정하거나 최소한 리스크와 리워드가 불균형하지 않은 경기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는 보스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으며, 특히 Ninja Gaiden Black과 Ninja Gaiden II, Nioh와 같은 경우 다대일 보스전마저 제공함으로써 싱글 플레이어 경기에서의 공정한 보스전이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NG2와 Nioh 비평 참조).

  이렇듯 콘솔 액션 게임은 기본적으로 멀티 플레이어가 아닌 싱글 플레이어, 즉 인간과 프로그램 간의 경쟁을 기본 전제로 세워두었기에 보스전의 발전이 있을 수 있었다. 반면 FPS는 오랜 세월 동안 항상 인간과 인간 간의 경쟁이 기본 전제였고 이는 싱글 플레이어 게임과는 완전히 다른 작법을 요구하기에 보스전의 발전이 없을 수밖에 없었을 뿐더러 보스전 자체가 그다지 요구되지 않았다. 보스전에서마저 매우 단순한 조준과 이동을 통한 상대법만을 요구했다. 이는 인간과 인간의 경쟁에선 매우 마초적인 경기를 유발할지 몰라도, (현재까진) 인간을 절대 완벽히 모방할 수 없고 모방할 필요도 없는 프로그램과 인간의 경쟁에선 단순한 행동만을 수없이 반복하는 해법만을 강요하게 된다.

  또 하나의 이유는 1인칭 시점 자체가 본질적으로 내포한 ‘특징’이다. 3인칭 시점에선 플레이어의 공격 사거리와 회피, 히트박스 등을 모두 명확히 시각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나, 1인칭 시점에선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1인칭 시점으로 우수한 액션을 갖춘 게임과(Kingdom Come: Deliverance) 3인칭 시점으로 우수한 액션을 구현한 게임(앞서 언급한 그 모든 콘솔 액션 게임들)은 그 액션의 구조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어쩌면 바로 그런 이유로 밀리 액션 게임은 1인칭이 아닌 대부분 3인칭으로 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전까지의 FPS는 그러한 1인칭 시점 게임이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와 특징을 ‘존중’하는 보스 디자인을 선보이는 데 실패했거나 존중하고자 하는 시도조차 안 했다.


  Doom 2016은 그런 의미에서 기존의 FPS와는 명확히 구분되는 보스전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마치 콘솔 액션 게임처럼 보스들이 플레이어의 이동에 제약을 두거나 특정한 방식으로 회피하도록 요구하는 패턴들을 구사했다. 또 NG2와 Nioh처럼 같은 보스를 두 마리 함께 제시하는 식의 다대일 보스전마저 선보였으며, 이는 명백한 발전이다(물론, 다대일 보스전이 사실상 일대일 보스전이나 다름없게 이루어지는 것은 안타까운 부분이나, 최소한 플레이어를 사방에서 압박하는 시늉은 한다. 그것도 FPS로만 한정짓는다면 발전이다). 플레이어는 단조로운 조준과 이동에서 벗어나 보스의 패턴에 맞추어, 그리고 보스와의 상대적 위치 관계에 따라 달리 이동해야만 했다. 덕분에 Doom 2016은 DE 이전까지의 FPS 중에서 가장 우수한 보스전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FPS 중에서 그랬다는 것이지 여전히 액션 게임으로서는 상당히 수준 낮은 보스전들이다. 최소한의 전문화된 이동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이나 말 그대로 ‘최소한’만을 요구하기에 기존의 액션 게임들(대표적으로 Bloodborne)이 요구하던 이동에 비하면 그 깊이가 턱없이 부족했다. 한 치의 비약도 없이 노포 반동과 점프만 가지고도 모든 패턴을 간략히 회피하는 것이 가능했다. 또 콘솔 액션 게임이 기본적으로 공격과 이동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구조를 갖추었기에 두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전술성’과 ‘액션성’을 돋보이게 할 수 있었던 반면, 사격과 이동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이원화 구조를 갖춘 FPS인 Doom 2016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Bloodborne이나 DMC나 NG나 Nioh나 심지어 Dark Souls마저 공격을 ‘언제’ 할지가 매우 중요하지 않았던가? 이는 자연스럽게 Doom 2016의 보스전이 가진 깊이를 경감하는 또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겉보기로만 다대일일 뿐, 실제로는 11 전투나 다름없이 진행된다


  요컨대 정말로 ‘우수하다’는 평을 받을 정도의 보스전을 FPS란 형식에서 갖추고자 한다면, 먼저 보스의 패턴이 깊이 있는 이동을 충분히 요구하지 않는다는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고, 또 조준과 이동의 이원화 구조를 갖추고도 흥미로운 전술적 선택을 요구할 수 있도록 보스전을 설계할 필요가 있었다.

  DE는 이 두 가지 모두를 해결했다. 물론 여전히 앞서 예시로 든 콘솔 액션 게임들에 비해선 다소 뒤떨어지는 보스전을 가지고 있으나(특히 Bloodborne과 NG2의 보스전은 3D 액션 게임사에 길이 남을 만하다. 각각 특정 방식의 보스 디자인에서 어떤 극한을 보여준다. 본 웹진에서 항상 혹평해 마지않는 Dark Souls 3도 최소한 보스전은 잘 만들었다), 적어도 ‘우수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는 보스전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특히 둠 헌터는 둠 헌터가 최초로 소개되는 Doom Hunter Base에서부터 곧바로 두 마리 함께 등장하여 다대일 보스전을 형성하며, Doom 2016의, 그 다대일 보스전이라고 불러주기도 부끄러운 구더기 골렘들과의 전투와 달리 제대로 된 패턴들을 구사하며 공격적으로 플레이어를 압박한다.

  흥미로운 전술적 선택지를 요구해야만 한다는 문제에 대해 DE는 FPS의 특징인 ‘조준’을 심화시킴으로써 해결했다. 둠 헌터의 상체는 에너지 실드로 보호를 받고, 이 실드는 플라즈마 라이플을 통해서만 부술 수 있다. 한편 에너지 실드의 보호를 받지 아니하는 하체의 경우 어떠한 무기로건 직접적인 타격이 가능하되 그만큼 면적이 좁아 조준 난이도가 상체보다는 높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둘 중 어느 곳을 ‘조준’하는가에 따라 무기 선택을 달리 하게 된다. 가령 로켓 런처의 락온 모드는 강력한 화력과 유도 성능을 자랑하나 에너지 실드에 그대로 막히기에 사용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에너지 실드를 선제적으로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 이처럼 조준에 선택지를 부여함으로써 전술성이 상당히 부각되는 디자인이다.

  대체적으로 초반에는 플레이어의 최대 화력이 낮아 상체를 먼저 벗겨버린(ㅎ) 후 로켓 런처의 락온 모드를 활용하여 처리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일 가능성이 높고, 후반에는 노포와 로켓 런처, 슈퍼 샷건 등의 콤보를 이용할 수 있기에 하체를 타격하는 플레이가 더 좋은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게임의 진행에 따라 이러한 ‘전술의 변화’가 요구된다는 것 또한 둠 헌터라는 적이 가진 장점이다.


id Software가 플레이어를 존중하는 방식

  Doom Hunter Base 이후로도 둠 헌터는 여러 아레나 난관에 다른 적들과 함께 등장하며 마치 일반 적처럼 기능한다. 이는 Doom보다는 Quake의 영향이 지대한 DE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매우 ‘둠 다운’ 구조 중 하나이다. 클래식 Doom을 상기해보면, Baron of Hell이나 Arachnotron 등이 초반 레벨에선 보스의 입지를 가지고 등장한다. 이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게임은 진행되지 않는다. 그러나 후반부 레벨에선 이들이 마치 일반 적처럼(또는 ‘쟈코’처럼), 다른 종류의 적들과 함께 조합되어 레벨의 곳곳에 배치되기 시작한다. 특히 Doom II가 이러한 구조가 크게 부각된다.



  이는 그 당시 게임들과 구분되는 상당히 독특한 특징이다. 또 플레이어의 전체적인 화력 증가를 따라잡기 위해 단순히 더 강력한 적을 내보내는 대신 기존에는 보스로서 선보였던 적들을 일반 적처럼 활용하는 것은 다대일 전투의 장점을 백방 활용하는 우수한 게임 디자인이다. NG2, Nioh, Dark Souls 등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기존에 등장시킨 적을 이후 다대일 전투의 난관으로서 활용하는 것이 ‘게으르다’는 것인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Dark Souls 3처럼 단순히 다른 적들과 ‘다르다’는 것만이 유일한 특성인 대충 만든 적들을 폴리건 좀 덧씌워서 찍어내듯이 순차적으로 내보내는 것이야말로 게으른 디자인의 전형이다. Dark Souls 3가 보스 러시 게임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을 받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며, 그것이 비판인 줄도 모르고 거기에 편승하여 보스 러시 모드를 내놓으라고 아우성치는, Dark Souls라는 던전 RPG의 구조를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데에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물론, Dark Souls 3가 최소한 보스전만은 괜찮은 게임이고, 나 또한 Dark Souls 3를 통해 게이머가 될 수 있었으므로, 매 비평마다 열심히 혹평하고는 있으나 개인적인 애정은 가지고 있다.


  보스들 중에서도 이례적으로 가장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바로 머라우더이다. 어떤 이들은 머라우더는 플레이어의 대응법을 하나로 강제한다는 점에서 DE란 게임에 전혀 어울리지 않기에 수준이 낮다고 말한다. 이를 정리해보면 이들의 주장은 ‘머라우더는 DE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수준 낮은 적이다’이고, 그것의 근거는 ‘대응법이 단 하나뿐이다’이다. 만약 근거가 옳다면 이들의 주장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은 철저히 주관적인 영역에 맡겨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애초에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부터가 객관적으로 그릇되었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 또한 마찬가지로 객관적으로 틀렸다.

  먼저 DE는 모든 우수한 FPS와 마찬가지로 조준과 이동의 이원화 구조를 적극 활용해야 하는 작품이다. 이는 곧 ‘적들을 ‘공격’하는 것뿐만 아니라, 적들의 공격을 ‘회피’하는 것 또한 적들의 상대법에 포함됨을 뜻한다. 사실 DE만 이러한 것조차 아니다. 가령 Bloodborne(블러드본)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은가? 적을 변형 공격이나 스탭 직후 공격 등으로 공격하는 것만큼이나, 적의 공격을 회피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던가? 그런데 어떻게 적의 공략법을 논할 때 그것을 공격하는 방법만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같은 기준으로 다른 모든 액션 게임들을 한번 평가해보길 바란다. 공격의 깊이에 있어 다른 게임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다다른 DMC4 정도를 제외하면 모든 게임이 별 1개도 아까운 쓰레기 게임들이 되어버린다. 심지어 DMC4조차 별 1개를 간신히 유지하는 정도일 것이다.

  거기다 DE는 Bloodborne보다도 회피와 이동이 중요한 작품인데, Bloodborne의 경우 적들의 공격이 근거리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아 플레이어가 끊임없이 이동할 필요는 없으며, 또 이동과 공격이 분리되어 이루어지는 구조상 DE만큼 복잡한 입력을 구사할 필요도 없다. 다시 말해, 멀티태스킹의 필요성이 없다. 다만 막다른 길이나 적들에게 둘러싸인 곳 같은 ‘잘못된 위치’에 놓여 있을 경우나 적의 공격이 시작될 시, 그리고 적의 뒤로 돌아 들어갈 시에만 이동해주면 된다. 반면 DE는 적들이 기본적으로 원거리 공격을 하고 플레이어가 근거리로 다가올 경우 반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공격을 수행한다. 즉 플레이어는 심지어 공격을 수행하는 동안에도 언제나 끊임없이 이동해주어야만 하며, 이는 머라우더를 상대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DE에서의 ‘이동’은 Bloodborne에서의 ‘이동’보다 더 중요한 문제 풀이 수단으로 기능한다. 따라서 이러한 게임에선 적을 공격하는 것뿐만 아니라 적의 공격을 회피하는 것 또한 상대법으로 보아야만 한다.

특히 루드비히와 코스의 버려진 자식은 Bloodborne식 보스전의 정점이나 다름없다


  물론 머라우더를 직접적으로(간접적으로는 바닥에 점착 폭탄을 붙인다든가 하는 것들이 있다) 공격하는 방법은 근거리 공격을 유도하여 슈퍼 샷건 + 노포 + 슈퍼 샷건 콤보로 반격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격하는 방법’만이 머라우더의 상대법에 해당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 본 문단의 요지이다. 머라우더의 공격이나 머라우더와 대동되는 다른 적들의 공격과 압박을 회피하는 것 또한 머라우더의 대처법 중 하나로 보아야 마땅하다. 즉 실질적으로 머라우더를 상대할 때 플레이어가 사용해야 하는 도구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훨씬 더 다양한 것이다.

  같은 관점에서 첫 번째 DLC의 신규 몹인 스피릿 또한 호평할 수 있다. 이들을 상대로 초전자파 빔을 사용하는 와중엔 다른 무기를 이용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적들은 여전히 플레이어를 압박해오기에 대시나 이단 점프 등의 이동 옵션이나 장비 옵션을 끊임없이 활용해야 한다. 즉 비록 공격에서의 공략법은 단 하나에 불과할지 몰라도, 회피에서는 여러 다양한 방법들이 허용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수준 높은 회피를 요구하기에(화면을 한 쪽에 고정해야 하고 또 이동 속도가 다소 감소하므로) 이들을 수준 낮은 적으로 평가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본 웹진의 Sekiro 비평을 읽은 독자라면 이러한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아니, 언제는 Sekiro의 적들이 단 한 가지 방법만으로 상대 가능하다는 것이 단점이라고 지적해놓고, 왜 이제 와서 머라우더에게는 면죄부를 주느냐고 말이다. 우선 본 웹진에 업로드된 Sekiro 비평을 다시 읽어보길 바란다. Sekiro 적들의 문제점은 플레이어의 위치 선정을 아예 무의미하게 만들고, 플레이어가 한 자리에 가만히 멈춰 있기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즉 플레이어의 목적이 적의 공격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피격당하는 것에 있기에, 이들을 상대로는 Bloodborne이나 DE의 적들을 상대할 때와 달리 ‘이동’이나 ‘위치 선정’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거나 최소한 무의미하다. 그러니 이들과의 전투에서 하는 것이라곤 가만히 멈춰 서서 리듬 게임에 가깝게 동일한 버튼을 연타하는 것이다(Sekiro의 비평에서 강조한 바를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이러한 리듬 게임의 형식이 그 자체로 가치가 낮다는 게 아니다. 단지 Sekiro는 리듬 게임으로서도 별반 가치가 없을 뿐이다. 만약 Sekiro의 적들이 충분히 다양하면서도 빠르고 또 Nioh처럼 다변화하는 패턴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아니 Nioh도 아니고 최소한 Bloodborne 수준만 되었더라면 충분히 좋게 평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Sekiro의 적들이 충분히 공격적이었더라면, 또 모든 난관이 제대로 된 다대일 전투로 설계되었더라면, 플레이어의 이동과 위치 선정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기에, Sekiro의 단점들이 상당 부분 가려졌을 것이다. 일대일 전투에선 아무 의미가 없는 위치 선정도 적들이 사방에서 플레이어를 압박하는 경우엔 의미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종 보스전 직전에 등장하는 창 무사와 사무라이의 다대일 전투는 꽤 가치가 높다. 이 전투 하나만으로도 Sekiro의 별을 0.5개 올려줘야 하나 고뇌했을 정도이며, Final Fantasy라는 저열한 게임을 플레이해본 이후엔 실제로 올렸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Sekiro는 패턴이 고작 3~4개에 준하는 일대일 보스전이나, 적들이 지나치게 수동적이라 사실상 일대일 전투로 진행되는 무가치한 필드 전투만을 제시한다.

  반면 DE는 애초에 게임의 시스템 자체가 다대일 전투를 기본 전제로 삼고 있다. 머라우더마저 DLC나 마스터 레벨, 슬레이어즈 게이트에선 2명씩 함께 등장하거나, 다른 중형 악마들을 대동한다. 그러니 이들을 상대할 때엔 위치 선정과 이동이 크게 중요할 수밖에 없으며, 거기다 머라우더의 단점은 전부 지워지고 강점은 강화된다. 일대일 전투의 단점을 지운다는 것은 다대일 전투가 본질적으로 내포한 가치이다(인왕 비평의 ‘다대일 전투’ 문단 참조).

  물론 머라우더가 1대1에서는 단조롭다는 것을 부정하진 않겠다. 그런데 대체 DE에 등장하는 적들 중에 '일대일에서 단조롭지 않은 적'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아니, DE를 넘어 Doom과 Quake 시리즈 통틀어 그러한 적이 존재키는 한단 말인가? 이들은 전부 기본적으로 다대일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휴고 마틴의 표현을 재차 빌리자면 ‘체스 피스’들이다. 퀸이나 킹이나 비숍이나 폰이나, 모두 다 홀로일 때엔 아무런 위력이 없고 ‘지루하다’. 그들이 한 데 모여 군단을 이루고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며 자신들의 특색을 한껏 뽐낼 때에만 ‘유용’하다. 당장 둠 헌터만 하더라도 첫 등장 시부터 2마리를 함께 상대하도록 요구해오지 않던가?

  DE의 적들이 완전히 수동적이었다거나 모든 난관이 일대일로만 구성해 있었더라면 적들을 하나하나 따로따로 혹평하는 것이 가능하다. Sekiro나 Dark Souls 3처럼 말이다. 하지만 DE는 모든 난관이 다대일로 이루어져 있고 또 적들은 NG2 만큼이나 공격적이라서 서로와 상호작용하며 매번 새로운 변수를 창출해낸다. 이와 같은 게임에서 적들을 단 하나만 떼어 와서 따로 평가하는 것은 전혀 옳은 평가라 할 수 없다. 게임은 언제나 각각의 요소들이 함께 모였을 때 어떠한 시너지를 내는가를 두고 평가해야 한다. 이를 우리는 ‘맥락’이라 한다. 게임뿐만 아니라 기실 모든 분야가 그렇지 않던가?

  거기다 머라우더는 그 특수성 때문에 다대일 전투에서 다른 적들과 완전히 구분되는 특별한 변수 요인으로서 기능하는데, Quake에서 Shambler란 적이 가지던 독특한 역할과 유사한 역할을 부여받는다. Quake는 기본적으로 적의 투사체 공격을 무빙으로 회피하는 ‘무빙 중심 FPS’이다. 이러한 무빙에는 다양한 방법론들이 존재하는데, 로켓 점프를 활용할 수도 있고 관성 점프를 활용할 수도 있고 대각선 이동을 활용할 수도 있고 적의 뒤로 돌아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Shambler는 플레이어가 시야에 들어올 때 히트스캔 공격을 하기 때문에 이들의 공격을 회피하기 위해선 무조건 지형 뒤에 숨어서 시야의 바깥으로 벗어나야만 한다. 즉 다른 적들과 달리 공격을 회피하는 방법론이 단 하나뿐인 것이다.

  Quake도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다대일 전투로 난관을 구성하는 작품인데, 이 Shambler가 다른 투사체 공격을 하는 적들과 함께 등장하는 경우 플레이어는 상당히 도전적이면서도 독특한 회피를 수행할 것을 요구받는다. Shambler와 플레이어 사이를 가로막는 지형 뒤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플레이어를 향해 날아드는 투사체들을 무빙으로 회피해야 한다. 그렇기에 비록 Shambler가 다른 적들과 달리 ‘특정한’ 회피 방법을 딱 하나만 ‘강요’할지라도, 다대일 전투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다른 적들로는 절대 형성할 수 없는 독특한 난관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고, 따라서 단점이라기보단 게임의 장점에 가까운 것이다. 물론 Quake가 일대일 전투밖에 없는 게임이었더라면 이야기가 달랐을 것이고, 실제로 Shambler가 단 하나만 등장하는 난관은 저급함의 극치이지만 말이다.

  머라우더가 이와 같다. 단, 회피 방법을 하나로 제한하는 것이 공격 방법을 하나로 제한하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DE는 기본적으로 적과 거리가 멀면 멀수록 안전하다. 적들의 근접 공격이 대폭 강화된 것도 원인 중 하나이지만, 무엇보다도 투사체 공격을 회피하는 것 자체가 거리가 멀수록 쉬워지기 때문이다. 적들의 크기가 크로스 헤어의 크기와 별 차이가 없어지는 거리에선 사실상 적에게 공격 받는 것이 공격을 피하는 것보다 어려워진다. 그런데 머라우더와 상대할 땐 먼 거리를 유지할 수 없다. 즉, 플레이어는 언제나 머라우더와 지근거리에 있도록 ‘강요’받는 것이며, 이는 먼 거리에서 적들을 프리시전 볼트나 노포로 안전하게 저격하는 행위를 방지하고, 또 머라우더와 적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다른 적들의 투사체 공격들과 육탄 방어를 대시와 점프, 이동, 노포의 반동, 미트 훅 등을 활용하여 회피하도록 요구한다. 다른 그 어떤 적도 제공할 수 없는 난관이, 머라우더라는 적을 통해서만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Shambler보다도 머라우더가 더 디자인이 잘 된 적이라 할 수 있는데, Shambler도 결국 공격 사거리가 그리 길지 않은 편이라 먼 거리를 유지하기만 하면 지형 뒤에 숨지 않고서도 쉽게 처리가 가능하다. 물론 이를 보완하기 위해 Quake는 대부분의 난관이 비좁고 폐쇄적인 아레나로 디자인하였지만, 그렇지 않은 구간도 존재하긴 한다. 반면 머라우더는 정석적인 방법으론 먼 거리에선 아예 피해를 입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므로(정석적인 방법이 아닌 점착 폭탄이나 노포 충전샷을 바닥에 설치하는 등의 방법들을 활용하면 불가능하지는 않다), 플레이어를 항상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도록 유도한다. 그렇기에 Quake의 Shambler가 달성하고자 하였던 목표를 Doom Eternal의 머라우더가 한층 발전한 방식으로 더 성공적으로 달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요약해보겠다. 머라우더에 대해 플레이어들이 가지는 불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분명 다른 적들과 비교적 다른 철학으로 설계된 적이기에 어떤 스트레스와 같은 것을 받았을 수도 있으리라. 그런데 사실 스트레스는 게임의 본질인데, 난관과 도전이 곧 플레이이자 게임 그 자체인 탓이다. 그렇다고 모든 스트레스가 다 긍정적이라는 말은 아니나, 최소한 구조적으로 평가했을 때 머라우더란 적이 주는 스트레스는 경기적 완성도에 크게 기여하는 우수한 스트레스다. 머라우더는 충분히 제 역할을 다하며, 가장 잘 디자인된 적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다른 적들과는 완전히 구분되는 독특한 난관을 제공하면서도 게임의 다른 부분들과 완벽히 맞아 떨어진다.

  다만 DLC와 마스터 레벨, 그리고 슬레이어즈 게이트를 제한 캠페인에서는 머라우더가 홀로 등장하는 경우가 적잖다는 점은 충분히 비판할 수 있다. 단지 DE의 캠페인은 튜토리얼에 가깝기에 적어도 본 웹진이 보기엔 그러한 비판에 동의할 수 없을 뿐이다. 만약 마스터 레벨이나 DLC가 없었더라면 충분히 타당한 비판이 될 수 있었을 것이나, 머라우더가 언제나 2마리씩 또는 다른 중형 악마들과 함께 등장하는 마스터 레벨과 DLC가 명백히 존재하는 이상 캠페인은 튜토리얼 정도의 역할만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2-2. A Game That Teaches

  과거 NG2의 비평을 읽어본 바 있는 독자라면, 그중에서도 특히 해당 비평에서의 전체적인 ‘논조’로 인해 마치 닌자 크리틱스에서 ‘초보 플레이어에 대한 배려는 완전히 무의미하며 게임은 반드시 어렵고 복잡해야만 의미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이해한 독자라면, 이와 같은 배려에 큰 의미가 있다고 지적하는 본 비평에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본 웹진은 언제나 그와 같은 배려를 중요시했다. 애초에 게임 비평을 시작한 이유엔 더 많은 플레이어들을 게이머로 이끌고, 또 NG2나 Doom II와 같은 우수한 경기들을 플레이해보도록 권하고자 한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실제로 본 웹진의 NG2와 Doom II 비평을 읽고 해당 게임들을 직접 플레이해보게 되었거나 적어도 다시 보게 되었다는 사람들의 메시지나 댓글을 여럿 받아보았으며, 그것이야말로 본 웹진이 아무런 금전적 이득도 없고 시간적 그리고 정신적 손해만을 야기하는 게임 비평을 이어나가는 유이한 이유 중 하나이다(다른 하나는 물론, 게임을 사랑하고, 사랑하기에, 게임의 발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탐구하기 위해서이다).

  NG2는 물론 3D 액션 게임사에서 결단코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이나, 초보 플레이어를 게이머로 성장시키기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다. 그렇기에 NG2를 처음 접한 사람들 중 대부분은 해당 게임이 불합리하게 여겨질 것이고, 더 나아가지 플레이 자체를 포기할 것이다. 그와 같은 안타까운 일을 방지하고자 닌자 크리틱스가 존재하는 것이다. 또 단순히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NG2뿐만 아니라 모든 어렵거나 복잡한 경기들을 폄하하고 깎아 내리는 자들을 수도 없이 봐왔기에, 그런 자들에게 반박하고자 어려운 게임에도 그 나름의 가치가 존재함을 증명한 것뿐이지, 반드시 모든 게임이 어렵고 복잡해야 함을 주장한 것이 전혀 아니며, 이 또한 단순히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NG2에 어떤 ‘공포감’을 느껴 시도조차 못 하는 사람들을 최소한 플레이로라도 이끌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DE는 굳이 비평을 작성치 않더라도 플레이어가 쉽게 접근하여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는 경기이다. 이는 DE가 NG2나 DMC4와 같은 경기들과 달리, 게임이 그 자체로 플레이어를 게이머로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이게 대체 무슨 뜻인가? NG2와 DMC4의 가치는 3D 액션 게임이 탐구할 수 있는 여러 가치 중 몇몇 개의 ‘극단’을 추구하고 또 해당 가치를 창출해내는 데 성공했다는 데 있다. 짧게 말해, ‘극한’이다. NG2의 경우 카메라 저편의 변수와 I-frame의 활용에서 그 어떤 게임도 범접할 수 없었던 경지에 다다랐고 DMC4의 경우 일관된 물리 엔진의 영향 하에 있는 다양한 공격 도구를 활용한 창발적 플레이라는 측면에서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 현재까지도 저 방면에서 두 게임을 앞서는 작품은 나온 바 없다.

  반면 DE는, 사실, 그 어떤 방면에서도 다른 게임들과 완전히 차별화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 굳이 따지자면 리스크와 리워드 또는 도구와 난관의 정합성이 매우 뛰어나다고는 할 수 있겠으나, 이는 우수한 게임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을 수밖에 없는 요소이기에 DE만의 가치라고는 볼 수 없다. 기술적 진보에 힘입어 그에 걸맞은 게임 디자인적 성취를 보여준 것은 맞으나(즉 가장 ‘진보한 게임’인 것은 사실이나), 경기적 완성도만을 따졌을 때는 2.5D 게임의 정점이자 비선형적 서사마저 구축한 Doom II를 뛰어넘었다고 보기는 다소 무리가 있다.

2의 비선형적 서사는 울티마 4 정도를 제한 그 어떤 게임과도 궤를 달리할 정도로 우수하다


  그러나 조금은 달리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하나의 경기를 평가함에 있어선 물론 그것의 경기적 완성도가 제 1의 고려 요소이다. 그리고 경기적 완성도만으로도 분명 DE는 낯부끄러운 찬사를 들을 만한 자격이 있다. 하지만 결국 게임의 발전은 곧 형식의 발전이기에, 새로운 형식을 제시했다든가, 형식의 발전에 선 영향을 끼쳤다든가, 또는 여러 형식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든가 하는 경우 그것마저 게임 비평에서는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를 시대적 가치라 한다. Half Life가 제 아무리 Quake II의 아류작에 불과하고 거기다 경기적 완성도마저 크게 떨어지는 작품이라 하더라도, Doom 2016 이전의 대부분의 FPS가 Half Life의 형식을 그대로 수용했기에, FPS계에 전방위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음을 인정해야만 하고, 그것의 시대적 가치를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다. 앞서의 비평에서 다루었듯, Doom은 분명 결함이 많은 경기이고 후속작인 Doom II에 비할 바 못 되는 경기적 완성도를 가지고 있지만(물론 Doom II에 비해서 그렇다는 거지, 여전히 걸작이다), FPS란 형식 자체를 최초로 제시한 작품으로서 절대 Doom II보다 하대할 수 없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평가할 수밖에 없는 경기가 하나 있다. 바로 Dark Souls(다크 소울 1, 이하 DS)이다. 물론 DS는 비선형적인 월드 디자인과 괜찮은 레벨 디자인, 그리고 준수한 액션을 갖춘 명작이다. 하지만 경기적 완성도로만 따졌을 때엔, 선대의 RPG를 뛰어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RPG에서 던전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고, 특히 DS는 DRPG중에서도 문제 풀이 수단이 사실상 액션과 던전 탐색으로만 한정된 작품이기에 던전 디자인이 매우 중요하다. 허나 이 던전 디자인에서 Thief나 System Shock, Ultima Underworld는 물론이고 DRPG의 시초인 Wizardry보다도 뒤떨어진다. 대표적으로 던전을 이루는 두 주축인 함정과 퍼즐에서 그렇다. 숏컷 디자인도 솔직히 이전의 메트로이드류 경기들과 비교해보면 다소 아쉽다.

  그럼에도 DS가 21세기 최고의 게임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도전과 스트레스라는 게임의 본질이나 다름없는 요소를 전면에 내세워 수많은 개발자, 게이머, 컨슈머 등등 사실상 게임과 관련된 모든 ‘존재’들에게 영영 잊히지 않을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DS가 아니었더라면 게임의 본질은 완전히 잊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DS는 ‘죽음’ 자체를 게임 시스템에 편입시켰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죽음이야말로 게임을 의미 있게 하는 제 1의 요소이기 때문이다. 책임이 없는 선택은 선택이 아니며, 이는 게임을 게임이 아닌 완구로 만든다. 이는 Doom II 비평에서 상세히 설명한 바 있으므로 더 세밀하게 설명하지는 않겠다.

  다른 하나는 사실 Ultima Underworld 이후의 RPG 경기들은 대부분 어느 시점에서건 세이브와 로드가 자유로웠기에, 함정을 어느 정도 무력화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Doom, Doom II, Quake마저 그러했다. System Shock는 분명 DS의 화톳불과 유사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수동 세이브/로드를 자유롭게 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는 상당히 큰 결함이며, 그 결함을 보완할 방책이 ‘플레이어가 알아서 세이브를 봉인하고 플레이하는 것’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더욱 안타깝다(여담이지만, 플레이어들을 그러한 플레이를 하도록 이끄는 것 또한 게임 비평의 책임이다).

  반면 DS는 실시간 자동 세이브를 채택하여 세이브와 로드 남용을 막았고, 거기다 화톳불이라는 체크 포인트를 도입하여 ‘죽음’을 구조적으로 ‘공식화’ 또는 ‘용인’하였다. 이를 보조할, 이전에 비해 발전은 없었지만 최소한 제대로 기능을 하기는 하는 제대로 된 함정 또한 곳곳에 배치했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스스로 제약을 걸고 플레이하지 않더라도 수없이 죽어가며 플레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며, 이는 게임의 본질인 스트레스와 도전을 자연스럽게 부각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또한 이 체크 포인트 시스템을 활용하여 지름길을 연다든가 아니면 상대하기 껄끄러운 난관을 우회할 방도를 찾는다든가 아니면 비선형적인 구조의 월드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다른 레벨로 먼저 향하는 것을 ‘선택’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플레이어가 충분히 유연하게 난관을 깨나갈 수 있도록 허용했고, 이는 고전 게임들보다도 훨씬 죽음이 ‘너그러워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죽음의 리스크 자체는 유지하였고(대표적으로 소울 시스템) 덕분에 경기적 완성도를 해하진 않았다. 다시 말해, 친화적이면서도 게임으로서의 본분은 다 한다.

  DS의 이러한 ‘도전적인 시스템’은 각광받았고, DS와 Demon‘s Souls의 디렉터인 미야자키 히데타카는 통찰력이 남다른 여러 인터뷰를 하며 게임에서의 도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왜 중요한가를 일깨워 수많은 개발자들에게 선 영향을 끼쳤다.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Wizardry는, 던전을 탐험하는 두근거림, 적과 만났을 때의 무서움, 아이템을 손에 넣었을 때의 기쁨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은 결코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 같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재미는 절대로 근본적인 것이며,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중략)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패가 반드시 필요하니까요. 게임에서의 실패란 곧 죽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죽기 쉬운 게임이 된 것도 명확한 사실입니다. 죽기 쉽다는 것은 유저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도 있습니다만, 죽지 않도록 대비하고 실력을 키운다는 측면도 있고 간단히 진행할 수 있는 게임이라면 클리어하거나 진행할 가치도, 메시지의 전달도 생기지 어렵지 않겠습니까.

(중략)

  플레이어 모두가 “이것은 마조히스트 게임이다”라고 하는 (좋은 의미로서) 평판을 받고 있습니다만, 저의 속마음으로서는 Demon's Souls를 마조히스트 게임으로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쓴 웃음)

  확실히 너무 잘 죽는 게임이긴 합니다만, 죽음 페널티 등도 실은 꽤나 가볍게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틀리겠지만, 죽었다고 해서 그렇게 심한 상태가 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 미야자키 히데타카의 인터뷰에서 발췌

  물론 이와 같은 말을 하던 자가 Bloodborne이라는 걸작을 내놓은 이후로는 Dark Souls 3와 참으로 전설적인/s Sekiro과 같이 완벽히 자기모순적인 오합지졸들을 연달아 발매하며 자멸해버렸다는 점이 진정으로 안타까우나, 어쨌건 과거 그가 한 말들은 그 하나하나가 게임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었고, 게임 디자인 역시 그 철학과 일치했었다. 21세기의 게임들 중 게임계에 DS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DS보다 게임계에 이바지한 게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비단 ‘Souls-like’라는 근거를 알 수 없고 근본도 없는 명칭을 공유하는 여러 아류작들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말 그대로 DS 하나가 게임을 살렸다고까지 볼 수 있다.

  DS에 대한 이러한 문단을 읽으며, 어딘가 기시감과 같은 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느끼지 않았다 하더라도 상관은 없으나, 어쨌건 DS의 화톳불 시스템과 레벨 디자인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DE의 모든 시스템의 궁극적인 지향점과 상당히 유사하다.

  가령 화톳불 시스템이 죽음을 너그럽게 하되 끊임없이 죽어야 하는 게임 디자인과 죽음의 리스크를 유지함으로써 제대로 된 도전을 유도했다면, 앞서 언급한 DE의 적들에게 할당된 ‘경직된 역할’은 리스크를 없애는 대신 그것의 상한선을 설정하여 도전을 유도하는 디자인이다. 또한 직관적이고 AAA 게임스럽게 정리된 공격 체계와 자원 관리 시스템은 단번에 알아채기도, 사용하기도 쉽게 설계되었으나 대신 각각을 사용하지 않았을 시에 대한 리스크가 심대하다. 또 적들의 반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고 강력한 근접 공격은, 플레이어에게 미트 훅이나 노포 반동과 같이 직관적으로 쉽게 사용 가능한 도구를 쥐어주는 대신 그것의 활용에 미진하고 위치선정과 거리 조절에 실패하였을 때의 리스크를 명확히 제시한다(여담이지만 이 또한 NG의 적 디자인 철학과 동일하다). 탄약 제약도 다양한 무기의 활용을 ‘가르친다’.

  사실 DE 또한 개발 과정 초기에는 Doom 2016과 같이 리스크와 리워드의 불균형 문제가 심각했던 경기였다. 이는 휴고 마틴의 여러 인터뷰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DE 발매 직전 No clip 인터뷰에서 휴고 마틴은 퀘이크콘에서 처음으로 게임 플레이를 공개했을 당시만 해도 플레이어는 단순히 미트 훅과 슈퍼 샷건만을 가지고도 아무 문제없이 모든 난관을 쉽게 돌파할 수 있었으며, 그것이 큰 문제였다고 밝혔다. 거기서 적 디자인을 강화하고, 자원 제약 시스템을 심화하였더니, 그제야 게임이 할만해졌음을playable 첨언했다. 이 외에도 휴고 마틴은 난관이 플레이어의 도구의 활용을 충분히 이끌어내야만 의미 있음을 여러 차례의 인터뷰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이러한 인터뷰와 게임 디자인이 강조하는 것은 단 하나다. 플레이어에게 어떤 도구를 쥐어주었다면, 반드시 난관으로써 그것의 활용을 이끌어낼 것. 바로 그것이 게임 디자이너로서의 윤리적 의무이고, 이는 곧 게임 자체의 ‘윤리성’이다. DE는 이러한 방면에서 전혀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구조, 즉 리스크와 리워드의 완벽한 균형을 이루어냈다. 윤리성을 갖추는 데 성공한 게임이 갖는 최대의 장점은, 해당 게임의 ‘제대로 된’ 플레이 방식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는 데 있다. 가령, TLOU 2를 어떤 스타일리시 액션 게임(또는 캐릭터 액션 게임, 또는 ‘데메크류’)처럼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유튜브의 Sylar나 특히 SMVR이란 사람이 대표적인데, 이들은 TLOU 2뿐만 아니라 모든 게임들을 ‘멋있게’ 플레이한다. 이러한 자들의 영상이나 트윗을 내세워 TLoU 2도 이만큼이나 우수한 액션 게임이다! 라 주장하는 자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을 TLoU 2의 가치로 인정할 수는 없다. DMC와 달리 구조적으로 그러한 액션 플레이를 유도해내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DMC는 기본적으로 스코어링 게임이며, 매 미션마다 랭크를 매긴다. 높은 난이도일수록 최고 랭크를 달성하는 데에는 일반적으로 알기 어려운 어떤 방법들이 동원되어야 하나, 기본적으로는 ‘무기와 기술을 다양하게 써주는 것’이 고랭크를 달성하는 방법이다. 즉 DMC의 스타일리시한 액션 플레이는 충분히 구조적으로 유도가 된다. 이는 Bayonetta 2 또한 마찬가지인데, 반면 TLoU 2는 그렇지가 않으므로, 이를 게임 ‘리뷰’나 ‘감상’에서 ‘개인적으로’ 또는 ‘아무런 객관적 근거 없이 주관적으로’ ‘선호’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최소한 게임 ‘비평’에서는 이를 게임의 가치로 ‘인정’하거나 ‘고평가’할 수 없다(‘선호’와 ‘고평가’의 차이에 유의하길 바란다).

  TLoU 2가 큰 영향을 받은 게임 중 하나인 메탈기어 솔리드 시리즈의 The Phantom Pain(이하 TPP)도 스코어링 게임이다. TPP는 창발적 게임 플레이라는 분야에선 현존하는 그 어떤 게임들보다도 앞서 있다. 그런데 해당 게임을 플레이해본 자라면 그러한 창발적 상호작용을 전혀 이용치 않더라도 최소한 엔딩은 볼 수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도대체 TPP의 어떤 점이 그리도 우수한 건지, 그냥 오픈월드라 볼 수조차 없는 ‘유비 게임 표절작’이 아닌지 하는 의문을 던지는 자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은 고의적으로 TPP의 스코어링 시스템을 무시하거나 최소한 간과하고 있다. 스코어링 시스템이 버젓이 게임 내에 존재하는데 이를 무시할 이유가 무엇인가가 진정으로 궁금하다. TPP의 스코어링 시스템은, 매우 다양한 게임 플레이 방식을 구조적으로 갖추고 있는 게임답게, 모든 게임 플레이를 보장하거나 유도해내거나 ‘독려’한다. 비살상 플레이도, 전부 다 사살하는 플레이도, 스텔스 플레이도 모조리 보장하며, 팬텀 페인의 가치는 바로 이 우수한 스코어링 시스템에도 있다. 즉 구조적으로 충분히 그러한 창발적/스타일리시한 플레이들을 유도한다.

  만약 TLoU 2가 팬텀 페인과 같은 스코어링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더라면, 그러한 스타일리시한 플레이에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구조적 여건이 ‘객관적으로’ 갖추어지지 않았기에, ‘주관적으로’ 보았을 때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사실 스코어링 시스템이 없었다 하더라도, 그 무적 회피기만 없앴더라면 TLoU 2도 상당한 수작으로 평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TLoU 2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실 대부분의 AAA 게임들은 나쁘지 않은 ‘조작계 포텐셜’ 또는 ‘액션 포텐셜’을 갖추고 있음에도 난관을 통해 그것을 충분히 이끌어내지 못함으로써 붕괴한다. 본 웹진에서 비평한 Sekiro, Hollow Knight도 바로 그러한 작품이다(사실 Hollow Knight는 조작감마저 수준이 낮은 편이다). DE는 그러한 ‘추세’에 정면으로 반하는 철학을 들고 나왔으며, 그 철학이란 사실 ‘철학’이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붙이기도 힘들 정도로 게임 디자인에 있어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마땅한, 말하자면 ‘기본’이나 다름없기에 보편적이다. NG2(시야 저편의 변수와 무적 프레임의 활용)나 DMC 4(마치 언어를 구사하듯 각각의 공격 및 방어 기술을 즉각적으로 꺼내어서 창발적으로 조합하는 플레이 방식), Doom II(비선형적 혼돈)의 철학이란 어느 한 극단을 추구하는 것이었기에 보편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고, 따라서 그 영향이 비교적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과 비교된다.

  간략히 말하자면, DE는 게임계 전체에 선 영향을 끼쳐 다 함께 진일보시키는 고전이라면, NG2나 DMC 4, Doom II는 다른 게임들 따위와는 관계없이 고고히, 정말 인간의 한계를 돌파해내는 데 성공한 듯한 ‘인류의 유산’과도 같은 고전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더 이끌리는 것은 사실이나, 형식의 발전과 시대적 가치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 게임 비평의 관점에서는 전자를 더 우위로 둘 수밖에 없다. NG2보다는 NG가, DMC 4보다는 DMC가, Doom II보다는 Doom이 ‘더 위대한 경기’인 이유도, 21세기 최고의 게임이 (현재까지는) Dark Souls인 이유도 그러한 시대적 가치와 보편성에 있다. 이러한 기준을 마찬가지로 DE에 적용할 수 있다.


  플랫포밍 난관을 도입한 방식에 있어서도 DE는 보편성을 갖추고 있다. Doom II와 Quake는 플랫포밍이 상당히 중요한 경기였는데, FPS란 형식 자체가 이동과 조준의 이원화 구조가 가장 특징적이고, 따라서 ‘조준’을 난관으로 활용하는 만큼(전투) ‘이동’ 또한 활용해야만(플랫포밍) 윤리적이라 볼 수 있다. Doom II 비평에서도 지적한 바를 그대로 다시 인용하겠다.

  ‘실시간의 형식을 채택한 Adventure 게임들은 필연적으로 액션을 통한 모험과 탐색으로 귀결하거나 적어도 그것의 활용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액션을 통한 모험 또한 보통은 플랫포밍으로 귀결한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모험하는 것에, 한 플랫폼에서 다른 플랫폼으로 점프하는 플랫포밍만큼이나 어울리는 문제 해결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 콘솔 Adventure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고, Wizardry와 Ultima의 계보에 속한 Ultima Underworld만 하더라도 플랫포밍 난관이 다수 존재하지 않은가? 미지의 장소로의 모험과 미지의 플랫폼으로의 점프는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 것이다.

  플랫포밍은 또 탐험Exploration을 모험Adventure으로 바꿔준다. 모험은 본질적으로 리스크가 내재되어 있다. 위험 지역을 모험하는 것은, 온갖 함정과 장애물 등의 리스크를 딛고 올라서는 것이다. 반면 탐험은 단순히 한 지역의 곳곳을 누비는 것에 불과하다. 거기엔 리스크가 없거나 부족하다. 플랫포밍엔 성공과 실패가 있다. 다음 플랫폼에 정확히 안착하느냐 혹은 그렇지 못 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결정된다. 즉 본질적으로 플레이어의 모든 점프에 어떤 리스크를 부여하는 것이며, 이것은 모험의 본질과 같다. 단순히 A에서 B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과, A에서 B 플랫폼으로 ‘점프’하는 것은 그 성격 자체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어떤 이들은 DE가 왜 갑자기 Super Mario가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플랫포밍 구간들에 불평불만을 표출한다. 그런데 Doom 시리즈는 원래부터 Super Mario, 그중에서도 특히 Super Mario 3의 영향을 크게 받은 시리즈이다. Doom의 어머니가 Wizardry라면 아버지는 Super Mario이다. 애초에 플랫폼과 플레이어 간의 상호작용인 점프를, 지형지물에 크게 영향 받는 슈팅과 이동으로 구현한 작품이 Doom이다. 심지어 Doom II는 진짜로 플랫포밍 게임으로도 규정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지점들에서 관성을 활용한 플랫포밍이 요구된다(역시 Doom II 비평 참조). 이는 내 개인적인 의견이 아닌, 게임을 직접 플레이해본다면 누구든 파악할 수 있는 게임의 객관적인 구조이다. 다만 본 웹진은 그러한 구조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을 수행할 뿐이며, 본 웹진의 작업이나 의견에 대해 이견을 말하거나 반론을 제기할 수는 있겠으나 Doom II에 실제로 플랫포밍 구간이 다수 배치되어 있다는 객관적 사실 자체는 말 그대로 ‘객관적인 사실’이므로 누구도 반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플랫포밍이 ‘나쁘다’라는 평가에 대해선 얼마든지 논의가 가능하다. 그러나 Doom에 왜 ‘갑자기’ 플랫포밍이 추가되었느냐는 주장은 객관적으로 그릇되었기에 논의가 불가능하며, 아예 배제해야 마땅하다. 다시 강조하겠다. 모든 주장은 주관적이고, 본 웹진의 비평 또한 절대 객관적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관성은 객관적인 근거라는 객관성에 기반을 두고 있어야만 최소한 논의될 만한 가치라도 품을 수 있다.

  물론 DE는 던전을 포기하고 독립적인 아레나 전투들이 선형적으로 배치된 경기이기에 Doom II의 ‘모험’을 완벽히 계승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디자인은 사실 현대 게임의 장점이자 단점인 ‘놀이 공원식 디자인’이다. 그러나, 각각의 수집 요소와 게임 진행에 도움이 되는 업그레이드 요소가 전부 소규모 퍼즐과 플랫포밍 난관으로 기능하도록 함으로써 적어도 개별적인 ‘모험’을 제시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여전히 던전은 존재치 않으나, 이러한 요소들이 단순히 마커 찍어놓고 아무 생각 없이 마냥 달려가서 콜렉팅하는 ‘무의미한’ 수집 요소가 아님에 주목해야 한다. 가령 유비 게임들이나 락스타 게임들의 경우 맵에 빼곡히 채워진 마커가 보이면 단순히 그 마커까지 쭉 달려가 난관 같지도 않은 문제를 풀고 보상 같지도 않은 이상한 쓰레기 컷신들을 감상하거나 수준 낮은 각본의 대화를 견뎌 내거나(그나마 락스타는 각본은 괜찮은 편이라 패드를 내려놓고 게임이 아닌 것을 견디는 시간이 마냥 고통스럽지는 않다) 괴상한 수집품을 획득한다. 이는 인간의 지성에 대한 모독이나 다름없다.

  반면 DE의 ‘마커’는 거기까지의 길이 명확히 제시되지 않기에 3D 레벨에 대한 이해와 고민의 과정이, 물론 수준 높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으나, 어쨌건 요구된다. 최소한 뇌를 쓸 줄은 알아야 수집할 수 있다는 것이다. Taras Nabad의 수집 요소는 다소 멀리 떨어진 석상의 다리 부분을 부수고 거기 숨겨진 스위치를 눌러야만 획득할 수 있는데, 이는 Adventure 게임들이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구조의 ‘퍼즐’이다. 공간의 탐색이 곧 문제 풀이로 직결한다는 점에서 바로 그렇다. 또 몇몇 비밀들은 다소 난도 있는 플랫포밍 난관을 해결해야만 수집 요소에 도달할 수 있으며, 이 또한 Action-adventure에서 자주 쓰이는 ‘퍼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물론 이러한 난관들이 절대 수준 높은 퍼즐이거나, 빼어난 플랫포밍 난관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수집 요소를 모으는 데 있어서도 최소한의 허들은 넘도록 요구하는 것은, 그리고 그 허들을 넘는 데 필요한 것이 바로 FPS의 중추인 ‘이동’과 ‘공간의 탐색’이라는 것은, 휴고 마틴 스스로가 내세운 철학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DE가 적어도 윤리성과 정합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완벽’하게 만든다. 수많은 작품들이 바로 이 두 측면에서 무너져 내렸음을 재차 상기해보자. 닌자 크리틱스에서 비평한 Sekiro와 Hollow Knight, TLoU 2가 전부 그랬다. 기실 모든 게임의 결함은 바로 리스크와 리워드의 불균형에서 기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DE는 그러한 구태에 일종의 경종을 울리었다.

  DE가 발매된 직후부터 서양 커뮤니티(대표적으로 레딧과 4Chan)에선 이에 관한 논의가 매우 활발히 이루어졌었고, 앞으로는 이에 영향 받은 개발자가 끊임없이 탄생할 것이다. 과거 DS가 처음 발매되었을 때 그랬듯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오로지 그것만이, DE가 한 해를 대표하는 게임을 넘어 한 시기era를 대표할 작품으로 평가받아 마땅한 이유이다.


  이는 DS의 가치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 DS는 반복된 죽음, 즉 스트레스를 플레이어에게 체화시킨 것이고, DE는 도구와 난관의 정합성을 내세워 도구를 익히도록 플레이어를 가르치는 것이다. DS가 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영향력 자체는 DE보다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DE 역시, 모든 게임이 으레 갖추어야 마땅한 덕목을 전면에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고평가 받아 마땅하다.


3. One Step Forward

  이와 같은 이유들로 인해 DE는 FPS뿐만 아니라 게임계 전체를 일보 전진시켰다는 평을 받는 데 부족함이 없다. 어떤 이들은 DE가 고전적인 FPS를 충실히 계승하여 고전적인 게임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나 이는 근거 없는 주장이다. 앞서 언급한 소형 적 디자인과 보스를 일반 적으로 활용하는 디자인 두 가지를 제하면 DE에서 클래식 Doom의 흔적이란 찾아볼 수 없다.

  초창기 FPS의 가장 근본적인 난관은 액션이 아닌 바로 던전 탐색(퍼즐 풀이, 모험 등)이었으며 적은 그 던전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오히려 적들과의 전투를 통해서는 샷건 탄약을 제하면 아무런 자원을 획득할 수 없어 전투는 최소화해야 하는 것이었지 그 자체로 목표가 아니었다. 반면 DE는 던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없으며, Doom 3와 거의 동일하게 아레나 전투의 선형적 연속이다. 이는 현대의 거의 모든 3D 액션 게임이 마찬가지로 채택하고 있는 형식이기도 하다. 또 그에 맞게 자원 수급 수단 역시 모험이 아닌 액션으로 변경되었는데, 턴제 형식인 DRPG의 영향을 받아 탄생하였던 FPS가 자원 수급 수단으로서 액션을 택했다는 것은 고전적인 게임성을 되살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기서 완전히 벗어난 것에 가깝다. ‘액션’이란 그 자체로 ‘실시간’을 뜻하며, 실시간이라는 특성 하나만으로 이미 고전적인 RPG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어떤 게임보다도 고전적인 게임성으로부터 거리가 먼 것이 DE이며, 바로 그런 이유로 본 작품은 액션 게임사의 최전선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Doom의 게임성을 계승했다고 볼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클래식 Doom은 슈팅을 통해 모든 구역이 서로와 긴밀히 상호작용하는 통일성 있는 ‘슈팅 던전’이 가장 중요한 구조적 특징이었고 특히 Doom II의 경우 아예 복도를 대부분 없애버린 샌드박스 레벨 위에 무수히 많은 다양한 종류의 적들을 순차적으로 또는 한꺼번에 배치하면서 적이 곧 던전의 벽이자 퍼즐이자 난관 그 자체인, ‘비선형적 혼돈’을 구현해내었다. 이 비선형적 혼돈을 제대로 계승한 3D 액션 게임이란 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데, 이를 3D 게임으로 구현하는 것은 2.5D로 구현하는 것보다 지극히 어렵거나, 아마도, 불가능한 탓이다. 오히려 FPS가 아닌 2D 게임이자 앞서 언급한 Super Crate Box의 개발사인 Vlambeer의 또 다른 걸작 Nuclear Throne(루프 한정)이야말로 바로 그러한 게임성을 제대로 계승한, 말하자면 Doom II의 정신적 후속작에 그나마 가장 가까운 작품이다. 이를 통해 비선형적 혼돈이란 입체보다는 평면으로나 제대로 구현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우리는 단순히 이 ‘비선형적 혼돈’을 ‘광기’로 통칭할 수도 있다. 액션 게임과 턴제 게임의 ‘광기’의 정의는 다소 유사한데, 그것은 바로 ‘무수히 많은 변수들로부터 파생되는 수많은 새로운 선택들’ & ‘그로 인해 사실상 모든 변수들에 완벽히 대처하는 것이 불가능한 난관’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DE는 어느 정도는 이에 해당된다. 실시간으로 곧바로 사용 가능한 수단들로 체력과 아머를 회복할 수 있는 시스템에 걸맞게, 시야 바깥에서 끊임없이 여러 수단들을 활용하여 플레이어의 이동을 방해하고 투사체 공격을 쏟아내는 적들이 다수 등장한다. 다시 말해, ‘적에게 피격 당하는 것을 기본 전제로 삼고 플레이해야 하는 게임’이며, 바로 그러한 점에서 DE는 3D 액션 게임들 중에선 NG2와 가장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DE와 유사한 게임으로 DMC나 Bayonetta(베요네타)를 제시하는 서양 게이머들도 간혹 존재하는데, 두 게임 모두 제 나름의 가치가 있는 것과는 별개로 그다지 옳은 관점이라 볼 수 없다. 먼저 이들이 내세우는 주요 근거인 ‘무기 콤보’는 저 두 게임이 아닌 명백히 Quake에서 거의 그대로 가져오다시피 한 구조이며, 무엇보다도 DMC와 Bayonetta는 모두 구조적으로 적에게 단 한 대도 맞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게임들이다. 각 게임들의 최고 난이도나 스코어링 시스템의 스코어 산출 방식만 보아도 누구든 쉬이 알 수 있으리라).

  그러나 광기와 비선형적 혼돈은 다르다. 본 웹진이 Doom II의 비평에서 비선형적 혼돈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던전의 모든 요소가 적들로 대체되어 있는 것을 지칭하기 위해서였다. 이로 인해 Doom II는 적들의 무작위한 움직임에 따라 던전 진행 루트 자체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반면 DE나 NG2는 진행 루트 자체는 어쨌거나 일자로 매번이 동일하다. 그렇기에 광기와 비선형적 혼돈은 전혀 같지 않다.

  사실, DE 또한 마찬가지로 이를 구현해내는 데 정말 근접한 레벨이 있다. 바로 슈퍼 고어 네스트 마스터 레벨이다. 슈퍼 고어 네스트 마스터 레벨은 기존 레벨에선 단순히 지나가는 통로 또는 쉬어가는 곳 또는 플랫포밍 구간 또는 퍼즐 구간에 불과했던 지점들을 아레나 난관으로 탈바꿈했다. 개중에는 천장이 매우 낮은 구간들도 존재하는데, 이 구간들에선 z축을 활용하기가 어렵기에 적들이 일종의 벽처럼 기능한다. 이는 Doom II의 비선형적 혼돈이 제대로 구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결국, z축을 포기해야만 그것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사실상 3D 게임으로는 Doom II를 제대로 계승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함을 증명한다. 물론 나야 일개 비평가이므로 언젠간 어떤 천재적인 개발자가 등장하여 그것을 구현해내는 데 성공할 수도 있으나, 현재까지 그러한 작품은 등장한 바 없다.

  그러나 오히려 바로 그렇기에, DE는 고전에 얽매이지 않은 채 완전히 새로운 지평을 개척했다고 볼 수 있다. AAA 게임의 세련됨과 3D 액션 게임의, 자칫하면 단점으로까지 비칠 수 있는 ‘현대성’을 적절히 수용하여 오히려 장점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는 대자본의 투자를 받은 게임만이 할 수 있는 개혁이면서도, 대자본의 투자를 받은 게임들은 대부분 실패하거나 애초에 시도조차 않는 도전이었다. 휴고 마틴은 도전했고, 성공했다.

4. Games for Games

  종합적으로 DE는 확고한 철학 위에 세워진 견고한 구조의 경기이다. 모든 도구와 자원 관리 시스템이 세련되게 정리정돈 되어 있으면서도 여러 방면에서 플레이어의 능동성과 깊이 있는 게임 플레이를 구현해놓은 덕에 의미 있는 다양성을 보장한다. 게임 플레이를 넘어, 그야말로 게임의 모든 부분이 단 하나의 점, 즉 ‘게임’으로 모인다는 것 또한 휴고 마틴의 확고한 철학을 보여준다. 모든 컷신은 플레이어가 다음에 상대하게 될 보스나 아레나 전투에 초점을 맞추고 그 외의 용도로는 쓰이지 않는다. Doom 2016과 달리 스킵 불가한 컷신 따위도 없다. 경기의 모든 부분이 오로지 경기만을 위해 존재한다. 이러한 장점이 가장 부각된 것이 바로 Doom Hunter Base 레벨이다. 레벨 전체를 통틀어 천천히 플레이어의 적수를 소개하고, 조립한다. 그 보스를 마침내 물리쳤다고 안도하게 될 때, DE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다대일 보스마저 선보인다. 이러한 ‘연출’은 그 어떤 ‘영화 같은 연출’보다도 감동적이고, 의미 있으며, 강렬하다. 플레이어와 유리된 어떤 폴리곤 덩어리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것이 아닌, 바로 플레이어와 난관 그 자체를 주인공으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장비나 연료, 블러드 펀치가 충전되었음을 알리는 데 특화된 효과음들이나 온갖 정보들을 온갖 경로로 보여주는 UI도 전적으로, 그리고 오로지 게임 플레이만을 보조하기 위해 존재한다. 특히 UI 디자인은 어느 방면에서는 System Shock의 UI 디자인이 지녔던 철학과 맞닿아 있다. 상호작용 버튼이 근접 공격 버튼으로 통일된 것과 같이 사소한 부분에서마저 이와 같은 확고한 경향성이 돋보인다. 근래에 보기 드문 ‘철학’이 존재하는 경기인 것이다.

  음악마저 그렇다. 소리는 순간의 좌표이다. 그 어떤 음도 한 순간을 넘어서 존속할 수 없다. 다가온 음은 멀어간 음과 제가끔이다. 음악은 그 좌표들을 체계적으로 엮어 서로와 공명케 하여 감정이나 의미 따위를 구조하는 예술이다. 그렇기에 음악은 시간의 예술임을 넘어 순간의 예술이다. 그리고 순간적인 판단과 실시간으로 변동하는 난관에의 대처를 요하는 실시간 게임만큼이나 음악을 닮은 것은 없다. 플레이어가 처한 상황과 경쟁의 격함, 순간의 판단을 음악은 북돋고 강화할 의무가 있을 뿐 아니라 그에 그 어떤 외부적 요인보다도 효과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실시간 게임을 구성하는 데 있어 음악은 필수이다.

  음악의 이러한 특성을 가장 잘 활용 및 확장한 것은 Doom(2016)이다. Doom(2016)과 DE의 음악은 변동하는 상황에 실시간으로 동기화된다. 이것의 원시적인 형태는 Ultima Underworld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나 탐색과 전투 구간으로 양분되어 있었을 따름이다. DE는 전투 상황에서도 적과 교전을 벌이고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이동으로 어떤 상황으로부터 빠져나오고 있는지 등 또한 모조리 실시간으로, 그대로, 반영한다. 모든 게임의 사운드트랙이 그러하나 특히 모던 Doom의 음악은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경기 바깥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경기로써만 가치를 부여 받으며, 부여 받은 가치를 플레이어의 경기 수행에 그대로 되부여함으로써 공명한다. 반론의 여지없이, 게임사상 최고의 음악이다.

  게임의 모든 부분이 오로지 게임만을 위해 복무하고 존재하며 기능하는 것은 특히 AAA 게임에서는 매우 드문 고결한 구조이다. 단언컨대 게임은 예술이 아니다. 그러나 게임이 예술로 인정받을(물론 그러한 인정 따위를 필요로 하는 게임은 없다)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게임과 스토리가 명확히 분리되어 진행되고 일정 부분 서로 충돌하기까지 하는 ‘잘난 체’ 하고 ‘올바른’ 게임들에 있지 않다. 물론, TLoU 2를 겨냥한 말이다. 창작물이 하나의 주제를 전달하고자 한다면 창작물 내의 그야말로 좁쌀 한 톨마저도 바로 그 주제를 투영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예술이다. TLoU 2의 경우 스토리의 ‘좁쌀 한 톨’마저도 작품의 주제와 게임 플레이에 명백히 반하고 있거나 최소한 아무런 통일성이 없기에 이를 예술이라 보는 것은 전혀 타당치 않으며, 예술을 떠나 비디오 게임의 평균적인 스토리 및 게임 퀄리티에도 살짝 못 미치는 정도이다.

  그렇기에 그 가능성은 천재를 가장하고 천재병을 앓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으나 그 외의 어떠한 재능도 겸비하지 않은 닐 드럭만이 실제로 천재인 코지마 히데오를 모방하고자 했던 알량한 노력과 처참한 실패의 부산물에 있지 않다. 진정으로 게임이 예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그야말로 게임의 모든 부분이, 단 하나의 점으로 모이는 경기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Ultima IV, Celeste, 그리고 Doom II가 바로 그 예이다. 이중에서도 Ultima IV와 Doom II는 스토리를 완전히 없애고도 비선형적 서사를 구현하여 플레이어의 경험이 곧 경기의 서사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였고, 이는 바로 게임이 서사를 추구할 수 있는 가장 뛰어나면서도 게임다운 방법이다. 게임을 깨나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플레이어만의 고유한 서사이기에, 그것을 구조적으로 뒷받침하는 정도에 따라 예술보다 높은 가치를 품는다. 그렇기에 Ultima IV와 Doom II는 분명 예술의 영역에 발을 걸친 경기들이다.

  DE는 분명 Doom II나 Ultima IV와 같은 비선형적인 서사를 갖추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야말로 게임의 모든 부분이 단 하나의 점으로 모이는 아름다운 디자인은 최소한 TLoU 2보다는 ‘예술’에 더 가까워 보인다.

  물론, 게임은 예술에 집착하지 않을 때 가장 아름답다. 너티독이 TLoU 2와 같은 예술에의 집착이라는 그동안 대부분의 AAA 상품들이 똑같이 택해오던 안전한 선택에 안주할 때, DE는 감히 스트레스라는 게임의 본질을 전면에 내세워 시장에 도전했고, 컨슈머들에 도전했고, 리뷰어들에 도전했다. 이는 대자본 게임으로선 사실상 자충수나 다름없었으나, 게이머들은 DE의 도전장에 기꺼이 응했다. 무수한 스피드러너들과 플레이어들이 탄생하였고, DE의 수많은 요소들과 다양한 플레이 방식, 시스템 분석을 담은 영상들이 뒤따랐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DE에 도전할 것이고, DE는 커뮤니티와 함께 그들을 게이머로 성장시킬 것이다. 이렇듯 게임 플레이란 창작자의 도전에 경기자가 맞받아치며 서로를 호적수로 상호 존중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는 또한 Dark Souls가 지핀 ‘태초의 불을 계승’하는 과정이다. 모든 게임사의 목적이 오로지 수익 추구와 이윤 창출이라고 주장하는 속물들에 아부 또는 편승하고자 게임 요소를 최소화하는 어떤 시류가 있었다. 특히 한국 게임, 또는 게임을 가장한 무언가를 찍어내는 개발자들은 아직까지도 Business Model에 목매고 그 늪을 방황하며 끝없이 아래로 가라앉고 있다. 넥슨의 ‘컨슈머’ 기만에서 시작된 작금의 가챠 시스템 논쟁은 가히 추잡스럽기까지 하다.

  Dark Souls는 그러한 시류에 완전히 반하는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그에 대한 철저히 옳은 답을 들고 와 게임계를 구원해 냈다. 또는, 잊힐 뻔했던 게임의 본질을 ‘재발굴’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 이후로 10년이 흘렀고, 다시 AAA 게임의 대체적인 경향성은 TLoU 2와 같이 게임임을 부끄러워하면서도 그 외의 어떠한 예술적 가치도 창출해내지 못 하는 상품을 ‘양산’해내는 쪽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특히 FPS는 게임계의 퇴보에 가장 앞장섰던 형식이었다. 그랬던 게임계에 난데없이 나타난 Doom Eternal과 숱한 인터뷰들에서 언제나 같은 사실을 일관되게 강조하는 휴고 마틴은 분명 게임계를 다시 한 번 변혁시킬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Dark Souls와 미야자키 히데타카가 그랬듯 말이다.

  물론 id Software의 DE가 Dark Souls만한 영향력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Dark Souls가 던지는 질문이 보다 ‘본질적’인 탓이다. 그 본질적인 질문과 질문에 대한 답을 구조화한 게임 디자인으로 Dark Souls는 2010년대를 지배했다. DE가 그런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먼 미래에 인류가 2020년대를 돌아볼 때, 찬란한 불빛을 그때에까지 쏘아 보내고 있을 고전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게임 리뷰어’들이 GotY로 선정했으나 얼마 안 가 전혀 플레이되지 않고 잊힐 양산품인 TLoU 2도, 어떠한 특색도 없는 작품들만을 찍어내는 개발사의 어떠한 특색도 없는 Hades도 아닐 것이다. 시간이 그와 같이 게임으로서 비윤리적인 상품들이 가진 편의성을 부식시킬 것이고, 그래픽이라는 화려한 빛깔을 침착시킬 것이고, 트렌디함에 금을 내고 종국엔 존재 자체를 소멸시킬 것이다. 시간이란 그런 것이고 ‘트렌드Trend’란 그런 것이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도 퇴색되지 않는 고전들이 있다. 그 모든 과정 속에서도 조금의 부식도 겪지 않을 견고한 뼈대와 영원할Eternal 구조를 갖춘 경기들이다. 이들은 그래픽과 사운드, 편의성 등이 모조리 낡아 떨어지더라도 시간의 풍파를 견디고 살아남는다. Doom이 그랬고, Doom II가 그랬으며, Quake가 그랬다. 이들은 여전히 플레이되고 있다. 본질적인 것이 살아남는 것은 진리가 수많은 투쟁과 함께 살아남는 과정과도 같다. 어떠한 트렌드에도, 시대상이나 시간의 흐름에도, 영향 받지 아니하고 항상 같은 모습으로 굳건한 것이다. 분명 먼 미래에까지 게이머들을 통해 끊임없이 플레이되고 게이머들에게 도전받을 Doom Eternal 역시, 수많은 투쟁과 함께 시간에 도전하고, 살아남을 것이다. 시간은 언제나 진리의 편이다.


★★★★★
5/5

-Lee Yin


Game of the Year 2020
Previous Post Next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