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매일 2015.12.5.
개발사 Vlambeer
디렉터 Jan Willem Nijman
실기 PC


0. 6 Seconds Before Launch


  6.48초.

  어떤 게임에겐 퍼블리셔 로고의 인트로를 보여주기에도 벅찬 시간이고 어떤 게임에겐 의미라곤 없는 컷신 몇 컷이나 의미심장하지 않은 대사 몇 줄을 ‘관람자’의 머릿속에 욱여넣는 시간이다. 또 어떤 게임에게는 반복 노가다라는 일련의 ‘게임으로서 무의미한 행위’를 이루는 ‘동일한 버튼 몇 번 누르기’라는 무가치하고 일방향적인 ‘상호작용’에 소요될 뿐인 시간이며 출발선에 닿기 위하여 최상위 메뉴를 한 번 훑기에도 벅찬 시간이다. 그러나 <Nuclear Throne(뉴클리어 쓰론, 이하 NT)>에게 6.48초란, 플레이어가 모든 채비를 갖추고 경기장에 입장하여 경기에 돌입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단 6.48초다. 퍼블리셔가 따로 없는 인디 게임답게 배급사 로고는 등장하지 않으며 다만 개발사 Vlambeer와 게임 엔진 Gamemaker의 로고만이 잠깐 화면의 정중앙을 점거했다가 사라진다. 이마저도 마우스 클릭으로 스킵 가능하다.Am 코드를 거치어 서서히 고조되는 인트로덕션 음악은 Play 버튼을 누르고 캐릭터 선택창이 등장할 때면 클린 코드웍을 스킵하고 G - A를 반복하는 디스토션 파워 코드로 폭발한다. 짧디 짧은 로딩 시간이 지난 후엔 어떠한 컷신도, 대화문도 튜토리얼도 없이 곧바로 플레이의 전권이 부여된다. 이후로 게임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7초도 되지 않는 시간에,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NT의 6.48초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모든 인트로 시퀀스를 마우스 좌클릭으로 스킵할 수 있음은 톱다운 슈터라는 본 경기의 형식과 아름다운 통일성을 가진다. 말 그대로 인트로를 쏴 죽이는 것이며, 경기장의 입구와 내부의 상호작용을 일관되게 하는 것이다. 또한 플레이어가 경기에 돌입하는 데 넘어야 할 장애물 또는 ‘비 게임적 요소’들을 최소화한 것은, 카트리지를 꽂는 행위가 곧 경기장으로의 입장을 뜻하였던 클래식 게임들을 떠오르게 한다.

  이러한 도입부는 지극히 인디다운 또는 ‘독립자본 게임Independent Game’다운 것이다. 그 어떤 대자본 게임AAA Game이 감히 투자자의 로고를 스킵하고도 무사할 수 있겠으며 비 게임적인 요소를 이만치나 최소화하고도 수익을 얻으리라는 망상을 할 수 있겠는가? 퍼블리셔의 로고가 가장 먼저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제작사와 배급사를 헷갈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며 이는 퍼블리셔가 다분히 의도적으로 조장하는 모호함이다. 투자자들은 그들의 최상위 게임 디렉터나 마찬가지이고 비게임적인 요소 또한 상품성에 치중해야 하는 대자본 게임들로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기실 NT는 독립자본 게임 그 자체나 다름없는 작품이다. 그 개발 과정부터가 커뮤니티 참여형으로 이루어졌었다. 매주 Jan Willem Nijman(이하 JW, 게임 디렉터/프로그래머)을 위시로 한 게임 개발자와 개발 참여자들의 방송이 트위치에서 스트리밍되었었고, 얼리 엑세스 버전을 구매하여 플레이한 자들의 피드백이 해당 방송과 스팀 페이지 등으로써 제시되었었다. 개발에 참여하는 그 누구도 자본의 투자에 묶여 있지 않았다. 게이머들은 Vlambeer로부터 그 어떠한 금전적 보상도 받지 않았기에 정식 QA나 펀드로 보기엔 무리가 있었고, Vlambeer는 오로지 얼리 엑세스 게임의 판매액으로만 개발을 진행했기에 게이머들의 피드백을 일별하여 채택하는 주관 또는 게임관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방송은 그들이 1주일 간 축적한 지식을 서로와 실시간으로 나누고 순수히 게임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었던 자본독립적인 공간이자 시간이었다. 전무후무한 개발 루프였으며, 대자본 게임으로선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방식이다. 8비트 클래식의 형식적 특징들을 훌륭히 계승하면서도 현대 독립자본 게임의 긍정적인 특성을 극단적으로 구현한 예이다.

  물론 대자본 게임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대 받을 수 없듯 그저 독립자본 게임이라는 이유만으로 고평가 받을 이유나 근거 또한 없다. 중요한 것은 이로 인해 형성되는 개발 환경의 성격이다. 자본독립적인 개발 환경은 창작자에게 자본독립적인 자유를 보장한다. 자유를 낭비하는 자들은 무수하다. 게임과 별반 관련 없는 요소들에 집중하다 자멸하는 자도 있고, 게임으로 본인의 예술관을 펼쳐 보이겠다는 치기로 맹렬히 도전하다 산화하고는 ‘게이머는 죽었다’는 괴상한 구호를 외치며 마치 처음부터 그것이 목적이었다는 양 정치로 선회하는 자들도 있다. 자본은 작품을 가두는 한계임과 동시에 중심을 잡아주는 닻이다. 자신만의 닻이 없는 자들은 자유의 망망대해에서 어디에도 정박하지 못하고 끝없이 방황할 따름이다.

  그러나 JW의 Vlambeer는 그 데뷔작부터가 <Super Crate Box>라는 불멸할 걸작이었으며 NT 직전에 개발한 <Luftrauser>의 리메이크작마저 걸작의 경지에 올라 있다. 고전 아케이드 경기의 형식을 ‘부활’시키겠다고 공식 홈페이지에서 천명하기까지 한 개발사답게, 이들은 언제나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오직 구조, 게임 그 자체의 발전에만 투신해왔다. 확고한 신념과 철학을 지닌 개발사에게 주어진 자본독립적인 자유는 격과 결을 달리하는 걸작이 탄생할 수 있는 저변을 마련해 주었다.

  NT는 Vlambeer가 여태 개발하였던 그 어떤 경기들보다도 다대한 시스템과 난관을 자랑한다. 개발 과정도 그 어떤 전작들보다도 길고 어려웠음을 그들은 술회한다. NT의 정식 발매를 끝으로 Vlambeer의 이름으로 작품이 선보여지는 일은 더는 없었다. 창작의 염화가 사그라든 곰의 다음 단계는 동면이었다. JW는 <Minit>이나 <Disc Room>과 같이 Vlambeer 시절의 게임들과는 상이한 형식을 갖춘 어드벤처 작품들의 개발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Rami Ismail은 늘 그랬듯 게임보다는 게임 산업과 정치에 치중하였다. 프로토타이핑마저 이루어지지 않았던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2020년 발매 예정이었던 <Ultrabugs>도 있었고 결국 프로토타이핑에 그친 <FFFLOOD>의 공개도 있었다. 개중 무엇도 발매될 수 없었다. 이는 NT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기에 권태에 사로잡혔던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Vlambeer라는 이름 하에서 내놓을 수 있는 경기 중 그 어떤 것도 NT를 뛰어넘을 수는 없음을 그들 스스로 자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후자라면, 그 판단은 백번 지당하다. 그들은 NT에서 모든 것을 불살랐다.


1. In 3 Days


  Vlambeer 경기들의 대체적인 특징은 단 하나의 창의적인 규칙을 중심으로 짜인 경박단소한 구조이다. 독립자본 게임들의 플레이 경험이 많은 게이머들이라면 이미 주지하고 있듯, 이는 대부분의 독립자본 게임들이 띠는 경향성이기도 하다. 독립자본 게임의 여명기부터 존속해온 개발사로서 Vlambeer가 그러한 경향성이 형성되는 데 적잖은 영향을 끼친 것도 물론 사실이지만, 독립자본은 극소수의 경우를 제하면 언제나 소규모 자본을 뜻하고, 이는 대체적으로 게임을 정제하여 비게임적인 요소들을 배제하도록 개발사들을 이끌게 된다. 화려한 겉치장으로 생색낼 자금이 부족하므로 본질을 파고드는 것이다. 이러한 형식적 특징은 여명기의 아케이드 게임들과 8비트 클래식들이 지니었던 미덕이며, Vlambeer는 그것을 독립자본 게임으로 ‘부활’시킨 최초의 독립자본 개발사 중 하나였다.

  특히 Vlambeer가 보여준 구조의 정제와 순수한 구조에의 집중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단 하나나 둘의 규칙만으로 물 샐 틈 없이 완전한 구조의 경기를 구성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간단한 구조를 자랑하는 경기들답게 하루에서 이틀 정도면 게임의 전반적인 플레이 루프 개발이 완료되었다. Vlambeer의 첫 작품인 Super Crate Box가 대표적이다. <Doom Eternal(둠 이터널)> 비평에서도 잠시 언급한 바 있듯, Super Crate Box는 1. 상자를 획득하면 무기가 변경된다. 2. 또한 점수가 제공된다. 라는 단 두 개(관점에 따라 한 개)의 규칙만으로도 완벽하다. 무기는 각각 독특한 활용법 또는 ‘리스크와 리워드’를 보유하고 있기에 그 자체로 개별적인 난관으로서 기능한다. 물론 보다 유용한 무기는 존재하나, 점수를 획득할 유일한 방도가 상자를 집는 것, 다시 말해 ‘다음 난관에 투신하는 것’이기에 끝없는 무기와 난관의 순환이 이루어지며, 기실 그 자체로 흠 없는 다회차성과 변수를 창출한다. 한 상자에서 다음 상자로 향하는 길목엔 언제나 적과 플랫포밍 난관이 배치되어 있다. 상자가 동적 변수라면 이들은 정적 변수이므로, 플레이어는 상황과 자신의 위치, 그리고 적의 배치에 따라 항상 조금씩 다른 경로를 채택하게 되며 이 또한 플레이어로 하여금 매번 새로운 플랫포밍 난관을 맞닥뜨리게 한다(재미있게도 이러한 플레이 루프는 DOOM ll와도 상당 부분 유사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Vlambeer나 JW의 그 어떠한 작품도 Super Crate Box를 뛰어넘은 바 없다. 어쩌면 NT 정도가 예외는 될 수 있을지 모르나 그것도 아주 간소한 차이로 그럴 것이다. Luftrausers 또한 사격과 체력 회복을 엮은 창의적이고 우수한 규칙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Super Crate Box에는 못 미친다. 이미 첫 작품에서 Vlambeer는 자신들이 선택한 개발 기조의 극단이자 최고봉을 보여주었기에, 동일한 기조로는 그 무엇도 Super Crate Box를 넘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비단 Vlambeer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개발사들에도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Exit the Gungeon(엑싯 더 건전)>이나 <Hell is Other Demon(헬 이즈 아더 데몬)>과 같이, Super Crate Box의 규칙을 표절하거나 거기에 영향 받은 독립 자본 게임들은 적잖았다. 개중 한 치라도 진보한 경기를 보여준 것은 없다.


  NT는 다소간 다른 성격을 띤다. 본 작품 역시 기본적인 플레이 루프는 단순하다. 프로토타입 격인 Wasteland Kings는 게임잼에서 단 3일 만에 개발이 완료되었으며 본격적인 NT의 개발에 돌입하고 나서도 기본 틀의 개발은 1주일이 채 안 걸렸던 것으로 보인다. 키보드와 마우스 조작을 기준으로 WASD의 이동과 마우스의 조준 및 좌클릭 사격, 그리고 각 캐릭터마다 하나씩 할당된 우클릭 특성이 조작의 전부이며 적들은 하나나 둘 정도의 패턴과 매우 단순한 AI를 보유하고 있다. 진행 또한 간단하기 이를 데 없다. 한 난관의 적을 모두 처치하면 다음 난관으로의 포탈이 열리는, 말하자면 가장 단순화된 아레나 슈터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한 아레나에서 다음 아레나로 걸어갈 필요조차 없다.

  뻔한 톱다운 슈터의 구조이다. NT가 흔히 <The Binding of Issac(바인딩 오브 아이작, 이하 BoI)>이나 <Enter the Gungeon(엔터 더 건전, 이하 EtG)>과 함께 비교되는 것도, 외형에 있어서는 이러한 경기들과 그리 차별화되지 않으며 내부적으로 Super Crate Box나 Luftrausers와 달리 한 눈에 부각되는 핵심적인 규칙마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Vlambeer는 기존과는 다소 다른 방식으로 NT를 완성해나가기 시작했다. 기존 작품들은 단 하나의 규칙과 공명하는 단순한 난관과 적만을 개발한다면 그것이 곧 게임의 완성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NT에서, Vlambeer는 끝없는 다양화와 세분화 작업으로써 개발을 이끌어갔다. 미니멀리즘Minimalism 기류의 경기를 제작하던 이들이 다소 맥시멀Maximal한 개발을 2년 넘게 유지하는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1-1. Legacy of DOOM ll


  단순하고 전형적인 톱다운 슈터라는 껍데기의 이면에, NT는 <DOOM ll(둠 2)>의 형식적 특징들을 숨겨두고 있다. 이를 넘어 사실상 DOOM ll의 정신적 후속작이다. 그들이 개발한 고전 FPS의 패러디인 <Gun Godz>보다도 NT가 훨씬 더 DOOM ll와 유사하다. 어떤 이들은 3D 게임인 DOOM ll에 대체 NT와의 유사성이 어찌 있을 수 있겠으며 설사 있다 하더라도 그 정도는 다른 슈터들이 서로와 유사한 정도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말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도 쏘고 저것도 쏘네’ 정도 말이다.

  먼저 지적할 것은 DOOM ll를 3D 게임으로 보는 시각은 그릇되었다는 점이다. 일인칭 시점이라는 시야의 제약을 받으며 던전을 돌파한다는 데 있어선 3D 형식의 일부를 차용하였고 그것이 경기의 핵심으로 작용하는 것 또한 사실이나 그뿐이다. 복층도 없고, 시선을 위아래로 돌리는 것마저 불가하다. 평면 공간이 지닌 광기 또한 구조의 핵심인 만큼 전반적으로 2D 형식의 특징 역시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DOOM ll 비평에서 논증한 바 있듯, 2.5D 경기의 상징이자 이상향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결정적으로 NT를 유수의 2D 슈터들과 구분 짓고 FPS에 보다 가깝게 만드는 형식적 특징들이 있다. 그 하나는 지형지물과의 상호작용이다. <Super Mario Bros.(슈퍼 마리오브라더스)>와 <Wizardry(위저드리 1)>의 자손인 FPS 또는 <DOOM(둠 1)>은 태생적으로 지형지물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는 슈팅과 이동의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물론, 기존의 아케이드 슈터들 중에서도 지형지물이 등장하는 일이 꽤 빈번했다. 가령 <Vulcan Venture(그라디우스 2)>는 스테이지 2부터 파괴 가능한 지형, 얼음, 닫히는 문 등으로써 탄이나 적의 움직임 외로도 플레이어의 행동반경을 충실히 압박했다. 그러나 사실, 이들마저 일종의 ‘탄’으로 파악하는 것이 지당하다. 이러한 게임들에서 지형지물과 플레이어 간의 상호작용 수준은 탄과 플레이어 간의 상호작용 수준과 별 차이가 없는 탓이다. 접촉하면 사망한다. 그뿐이다.

  반면 DOOM은 Super Mario의 후계답게 관성으로써 지형지물과 끊임없이, 다소 복잡하게, 상호작용한다. DOOM ll와 <Quake(퀘이크 1)>에 이르러선 적잖이 압박되는 플랫포밍 난관들마저 배치되며 어느 관점에선 아예 플랫포머란 태그를 붙이는 것도 가능하다. 스피드런이라는 게이밍 문화를 경기 풀이로 채택한, 또는 바로 스피드런이라는 게이밍 문화를 앞장서서 조성한 경기라는 점에서도 쉬이 알 수 있듯, 지형지물이나 미세한 조작 차이로써 가감되는 관성은 슈팅만큼이나 DOOM의 핵심으로 기능했다.



  물론 NT엔 관성이 없거나 무의미한 수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형지물과의 상호작용이 가진 또 다른 특성을 고려해보아야 한다. 그것은 주도권과 단절이다. 기존의 2D 슈터들은 벨트스크롤 형식으로 묘사될 수 있을 정도로 그 진행에 있어 플레이어의 주도권을 허용하지 경우가 다반사였고 아직도 순수한 2D 슈터의 형식을 지닌 경기들은 그렇다. 시간의 흐름과 스테이지 진행이 엄격한 비례 관계에 놓여 있었으며, 그 관계에서 조금이라도 탈피한 경기들(가령 <Contra(콘트라)>)은 그 자체로 순수한 슛뎀업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DOOM은 다르다. 던전 탐색 경기이다. 그리고 던전 탐색 경기들은 플레이어의 임의와 능동성의 보장이 구조의 핵심이다. 적과의 교전을 회피하거나 최소화하는 것이 DOOM의 목적이다. 물론, NT는 DOOM과 달리 적을 모조리 처치해야만 다음 스테이지로 진행 가능한 경기이므로 이 점에 있어서만큼은 둘 간의 유사성이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DOOM에서 플레이어가 적들과의 교전을 회피하는 방식이다. 바로 지형지물을 통한 단절이다. 2D 슈터에서 이루어지는 회피는 모두 탄의 회피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교전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 외에는 경기를 풀이할 방도가 따로 없음을 뜻한다. 순수한 액션이다. 슛뎀업이 가장 순수한 ‘액션’ 또는 ‘실시간’ 형식인 이유이다. 반면 DOOM의 회피란 상황 그 자체로부터의 회피이다. 중립적인 벽의 존재로 인해 DOOM에서의 교전은 언제나 한 지형에서 반대편 지형까지로 제한되어 있으며, 그 제한된 구역으로부터 벗어나는 경우, 교전은 종결된다.

  즉 단순화하자면 DOOM은 지형지물 간마다 개별적인 교전이 존재하고, 플레이어는 능동적으로 한 교전에서 다음 교전으로 나아가거나 회피하게 된다. 앞서 예시로 든 Vulkan Venture로 비유하자면, DOOM의 경기 풀이 방식이란 모아이 석상을 깨부수다가 조금 앞쪽으로 이동하여 얼음과 씨름하고 다시 뒤쪽으로 이동하여 닫히는 문 사이로 침투해드는 레이싱을 벌이는 것과 같다. 물론 DOOM 비평에서 설명한 바 있듯, 이렇게 교전으로부터 벗어나더라도 적들이 플레이어를 쫓거나 향해 사격하는 탓에 리스크는 중첩된다.

  NT가 바로 그렇다. 모든 교전은 지형으로써 단절된다. 따라서 적의 탄을 회피하는 것보다는 그 무수한 탄이 날아오는 상황 자체를 지형지물로써 회피하는 방식의 플레이가 요구된다. 이것은 커버 슈팅과는 다르다. 커버 또는 엄폐물은 플레이어가 엄폐하였다가 고개만 내밀어 다시 사격 가능한 일종의 ‘방패’의 개념이다. 그리고 방패는 일방적이다. 교전으로부터의 회피가 아닌, 교전 중에 난데없이 무적기를 발동하도록 허용하는 것과 같다.

  반면 NT나 DOOM의 지형은 적의 탄을 방어하는 기능과 함께 플레이어의 운신에 제약을 두는 역할을 한다. 즉 교전이 지형지물 간으로 제한이 된다 함은 적과 플레이어 간의 거리 또한 한쪽 지형지물에서 반대쪽 지형지물로 제한이 되는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는 경기의 ‘경쟁성’ 또는 ‘폭력성’을 극대화하는데, Quake에서 상세히 설명한 바 있듯, 한 경기의 경쟁성은 거리와 반비례 관계에 있는 탓이다(물론 엄폐물 역시 플레이어의 운신을 어느 정도는 제약하나, 모든 지형지물이 플레이어의 운신을 제한하는 정도는 그 지형지물의 ‘길이’와 비례하는데, 엄폐물은 모든 엄폐물이 으레 그렇듯 길이가 짧은 탓에, 당연히, NT나 DOOM의 ‘연속적인’ 벽에 비하여 그 정도가 현저히 낮을 수밖에 없다).



  적들 또한 지형지물과 빈번히 상호작용한다. NT의 적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이동과 공격이 연계되는 적, 이동과 공격의 이원화가 이루어진 적, 그리고 이동이 곧 공격인 적이다. 대부분의 적들은 첫 번째에 해당한다. 공격하기 위하여 이동을 멈추거나, 공격이 적들에게 특정한 방식의 이동을 강제한다.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이 세 번째이다. 이들은 쉽게 말해 플레이어에게로 돌진해 오는 적들이다.

  두 번째 부류의 적들은 대부분 IDPD에 해당하는데, 이들은 그 스킨부터가 인간형이라는 점에서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듯 플레이어의 호적수 역할을 한다. Ninja Gaiden의 닌자형 적이나 멀티 플레이어의 상대방과 같이 인간의 판단력과 움직임을 모방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플레이어가 선택 가능한 캐릭터들이 보유한 특성을 그대로 활용하기도 하는데 크리스탈이나 피시의 것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사격은 지형지물에 튕겨져 나오거나 지형지물을 파괴하기도 하는 등 플레이어와 지형지물의 상호작용을 보다 복잡하게 하는 요인이다. 또한 지형지물에 방해 받는 시야의 개념 역시 전투 상황에서 지형지물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도록 하는 원인 중 하나이다.




  보스가 자신만의 독자적인 방 또는 ‘보스룸’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닌 완전히 열린 스테이지를 자유로이 활보하는 방식으로, 마치 일반 적 또는 쟈코처럼 활용된다는 점에서도 DOOM과의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FPS와 유사한 또 다른 특성은 시야의 제약이다. 또는, 시야적 주도권과 시야적 단절이다. 어떤 것에 대하여 주도권이 있다 함은 리워드를 플레이어가 임의로 조정하도록 허용하는 대신 그 조정으로부터 기인한 리스크마저 플레이어가 온당히 책임지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요컨대 선택의 허용이다. 따라서 주도권의 핵심은 포기이다. 버릴 것을 주도적으로 선택 가능하게 하는 것이고 버려야만 취할 수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버린 것으로부터의 ‘단절’이다.

  NT의 카메라는 언제나 플레이어의 위치와 마우스 포인트 또는 크로스헤어의 위치를 3:1 정도의 비율로 나누는 점으로 이동한다. 이로써 플레이어가 교전하고자 선택한 방향의 반대편은 시야의 범위가 좁아지게 한다. 반대편과의 순간적인 단절이다. 즉 FPS의 핵심적인 특징인 시야의 제약이 부분적으로나마 구현되어 있다. 카메라의 이동이 곧 플레이어가 사격하는 방향의 변화라는 점은 FPS라는 형식을 이루는 양대 주축인 지형지물과의 상호작용과 조준과 이동의 이원화 구조 다음으로 핵심적인 구조이다. 톱다운으로서 NT는 최대한 해당 구조를 구현했다. 4:3 화면비를 채택한 것도 탁월하다.

4:3 화면비 바깥에서 돌진해오는 적은 큰 위협이다



  그러므로 NT는 조이스틱이 아닌 마우스의 게임이다. 조이스틱이 세밀한 연속적 이동을 구현하는 도구라면 마우스는 빠르고 단절적인 이동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 조이스틱은 플레이어의 위치 좌표를 연속적으로 가감하나, 마우스는 센서 아래의 특정한 지점으로 마우스를 이동시키듯 플레이어의 위치 좌표를 다른 좌표로 ‘대체’한다. 조이스틱은 도구 자체에 이동속도의 상한선이 내재되어 있고 마우스는 그것이 플레이어에게 내재되어 있다. 또한 다른 조이스틱과 한 쌍인 조이스틱은 조준과 이동의 특성이 모두 스틱에 종속되어 있다. 반면 마우스는 키보드와 한 쌍으로 최대 8가지의 각진 방향으로의 0이나 1의 이동만을 허용한다. 그렇기에 세밀한 이동에 있어서는 단점을 노출한다. 탄막 슈터Bullet Hell나 3D 콘솔 액션 게임 등 조심스러운 이동이 요구되거나, 이동이 여러 단계(가령 달리기와 걷기)로 분리되어 있거나, 이동과 공격이 연계되거나, 공격의 ‘방향’이 중요하지 공격하는 ‘위치’가 중요하지 않은 경기에는 조이스틱이, FPS나 RPG처럼 크로스헤어의 위치를 사실상 순간이동시키다시피 세밀하게 변경해야 하는 경기에는 마우스가 적합하다.

마우스로 플레이한 것이긴 하나, 이러한 경기엔 조이스틱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따라서 조준점의 위치에 순간적인 변화를 가해야 하고 세밀한 이동보다는 한 지형지물에서 다음 지형지물로의 이동을 기해야 하는 NT는 키보드와 마우스의 한 쌍이 보다 적합하다. FPS의 여러 형식적 특징들을 그대로 계승한 이상 이는 당연한 귀결이다.

  간혹 NT를 탄막으로 규정하는 자들이 있는데, 객관적으로 그릇된 시각이다. 탄막 경기들에서 탄이란 일종의 벽이다. 플레이어는 한 화면을 가득히 채우는 벽 사이로 난 길을 실시간으로 파악하여 경로를 설정하거나 곧바로 나아가게 된다. 즉 일종의 실시간 미로 찾기이다. 더군다나 탄은 그 궤적에 따라 실시간으로 위치가 변동되므로, 플레이어가 나아갈 수 있는 경로 또한 실시간으로 영향을 받아 막다른 길과 그렇지 않은 길을 오고가며, 플레이어의 위치를 좇는 유도탄은 플레이어의 이동이 영향 받거나 영향을 끼치는 또 다른 층위의 변수로서 작용한다. 이러한 탄들은 실제 지형지물과 달리 서로와 중첩되고 서로를 투과하기에, 변동성이 크다. 이는 DOOM ll에서 적이 곧 벽이자 퍼즐이자 함정이자 방해물로서 기능하던 것의 극단적인 발전형이다. 그리고 실시간 미로 찾기에는 실시간으로 플레이어의 위치좌표에 모든 방향으로 세밀하고 연속적인 변화를 주는 것이 요구되므로 조이스틱이 더없이 적합하다.

  그러나 NT는 탄과 벽이 명확히 분리되어 있다. 미로 찾기를 하듯 길을 더듬어 나아갈 이유가 없다. 한 지형에서 다음 지형으로 빠르게 이동하거나, 적의 탄이 발사되는 방향의 수직선을 따라 이동하는 것이 전부이다. 간혹 원시적인 단계의 탄막으로 규정 가능한 패턴을 보유한 적이 존재키는 하나 단 하나의 보스를 제한 모든 적이 지형지물이 온전히 보전된 아레나에 그대로 소환되는 NT의 특성상, 탄막으로서의 의미는 없다.


  이상의 논증을 읽고도 DOOM ll와의 유사성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다. DOOM을 위시로 한 FPS와의 유사성을 설명하였을 뿐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DOOM ll와의 유사성은 노출되지 않는다.


1-2. …… and Spelunky


  개별적인 아레나에서 벌어지는 전투가 DOOM의 계승이라면 그러한 아레나 모두를 아우르는 게임의 총체적 구조는 <Spelunky(스펠렁키)>와 판박이이다. 동일한 테마 하에서 점진적으로 난도가 증가하는 맵을 서너 개 돌파하면(NT는 셋, Spelunky는 넷) 다음 테마로 진행하는 구조나 각 테마 별로 고정된 퍼즐을 타파할 시 숨겨진 맵으로 나아갈 수 있는 등(이 점은 사실 Super Mario에 둘 모두가 영향 받은 것이다) 피상적으로 짚어낼 수 있는 유사점부터가 다대하다.

  그러나 Spelunky가 NT에 끼친 영향은 피상적인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Spelunky를 단 두 단어로 요약하자면 다양화와 세분화이다. 두 측면에서 NT와 비교될 만한 경기들이 몇 있다. NT와 마찬가지로 Spelunky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나아가 2D <The Legend of Zelda[젤다의 전설]>의 영향을 받은) BoI와 BoI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와 NT로부터의 영향과 탄막 전투를 첨가한 EtG이다. 이들을 로그라이트Roguelite라는 근거를 알 수 없는 명칭으로 묶기도 하나 모든 장르명이 으레 그렇듯 상업적 용어일 뿐 구조적 분석에 의한 형식적 분류가 아니므로 비평적으로는 무의미하다. <Rogue(로그)>의 절차생성과 로그라이크Roguelike 형식의 경기들이 가진 창발적 상호작용을 Super Mario와 엮은 Spelunky를 제하면, 그 외의 경기들은 Rogue와의 유사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Spelunky마저 로그라이크로 분류할 순 없다.

  단 하나 유사점이 있다면 그것은 절차 생성일 것이고 이는 다양화의 상징이다. 실시간이건 턴제이건 관계없이, 대체로 경기들에서 지형지물은 고정적 변수로 작용해왔고 여전히 그렇다. 난관과 시각적으로 상호작용하며 경쟁하는 경기라는 게임의 특성 상, 엄격한 조율을 거친 스테이지란 곧 경기 그 자체나 진배없다. 특히 ‘적과의 경쟁’보다는 ‘난관의 극복’에 보다 방점이 찍힌 싱글 플레이어 경기들에서 그렇다. 재능 있는 창작자들은 언제나 플레이어에게 허용된 조작에 걸맞은 난관을 형성하고자 적이나 지형지물의 배치나 함정 및 퍼즐의 구조 등을 그 사소한 부분마저 모두 세심하고 강박적일 정도로 치밀히 조율했다.

  절차 생성을 채택한 경기들은 조율의 책임을 무작위성에 일정 부분 할당한다. DOOM ll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 이로써 형성되는 난관은 정돈되거나 치밀히 계산된 것이 아니다. 도리어 무작위성으로써 플레이어로 하여금 매 회차 조금씩이나마 서로와 차이가 있고 ‘다변화’하는 난관 또는 ‘혼돈’에 대적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따라서 모든 경기를 모험Adventure으로 탈바꿈시킨다. 플레이어는 몇 번을 반복 플레이하건 자신의 앞에 놓인 길의 안전성을 ‘완전히는’ 담보 받지 못한다.



  무작위한 지형의 형성은 특히 BoI이나 EtG보다도 Spelunky와 NT에서 보다 우수한 가치를 형성하는데, 이들은 아레나가 모두 하나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일종의 ‘던전’에 가까운 탓이다. 물론 NT의 아레나들은 다만 적들이 지나다니는 통로에 불과할 따름이기에 순수한 의미에서의 던전이라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우수한 던전이 가지는 장점을 어느 정도는 함께 가지는 탓에, 피상적인 의미에서는 던전에 가깝다 할 수 있다. BoI와 EtG는 Zelda와 같이 한 스테이지가 개별적이고 단조로운 방들로 분리되어 있다. 그리고 각각의 방들을 선형적으로 잇는 통로들로써 하나의 스테이지가 구성된다. 총체적이고 ‘단일화’된 던전을 플레이어의 임의대로 모험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방을 하나 하나 순서대로 깨나가는 개념에 가깝다.

  두 디자인 방식은 무작위성의 상한선이 크게 차이난다. BoI와 EtG는 방 디자인에 몇몇 개의 정해진 포맷이 존재한다. 또한 방과 방을 잇는 통로는 사실상 게임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비어 있는’ 공간이나 진배없으며, 한 방에서 이루어지는 전투는 다른 방에서 이루어지는 활동과 전연 무관한 탓에 서로에 그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다. 체력, 무기, 탄약 등으로써나 미약하게 연결되어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점은 스테이지가 형성되는 데 있어 절차 생성이 가지는 위력을 대폭 절감한다. 매 회차 차이점이라고는 각각의 방이 어떤 위치와 순서로 배치하는가 정도뿐이고(물론 지형지물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그렇다는 의미이다) 그마저도 플레이어의 활동이 언제나 방에서 방으로 완벽히 단절되는 탓에 큰 의미가 없다. 요컨대 매우 원시적인 수준의 절차 생성 디자인이다. 하다못해 Rogue조차 적들이 통로로써 이동이 가능하였다. 그보다도 원시적이다. (이러한 비판을 Zelda나 Metroid에 대한 비판과 동일시하는 것은 오해이다. 두 경기는 퍼즐로서 던전이 통일성을 가진다. BoI와 EtG의 퍼즐이라곤 어느 색의 상자를 열기 위해 열쇠를 소모할 것인가 수준의 것들뿐이다.)

  물론 Spelunky도 통로만 제하면 BoI, EtG와 유사한 방식으로 스테이지를 형성한다. 한 스테이지를 대략 16개의 사각형 또는 ‘방’으로 구분 짓고 각각의 방들을 무작위하게 배치하는 방식이다. 각각의 방 디자인 또한 고정되어 있다. 몇 번만 죽어보아도 기시감이 느껴지는 레벨들뿐일 것이다.

  중요한 건, 통로가 없다. 통로가 없는 탓에 방과 방이 연결되는 방식에 무작위성이 크게 개입할 수 있고 또한 방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들이 다른 방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첫 스테이지에서부터 이는 명백하다. 황금 마스크를 집는 순간 추락하는 돌덩이는 좌우를 오가며 벽을 파괴하고, 상점 주인을 공격하고, 뎀젤을 살해한다. 한 방에서의 활동이 전체 스테이지에 그만한 파괴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예는 무수하다.

  NT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고정적인 방들을 배치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이른바 Drunken Walker라 불리는 방식을 차용했다. 그나마 개별적인 방의 디자인은 고정되어 있던 Spelunky와 달리 NT는 테마에 종속된 아레나들이 가지게 되는 전체적인 경향성이 있을 뿐 그 경향성을 준수하는 한도 내에선 모든 무작위가 허용된다. <Ninja Gaiden ll(닌자 가이덴 2, 이하 NG2)>나 클래식 DOOM과 마찬가지로 사소한 벽 하나의 배치 차이만으로도 전혀 다른 전투 양상이 펼쳐지기에, 이러한 무작위성은 다른 그 어느 게임들에서보다도 NT에서 그 영향력을 크게 발휘한다(물론, NG2에 비한다면 NT와 DOOM에서 지형지물이 가지는 영향력은 매우 낮은 수준이기는 하다). 거칠게 말하자면 Super Mario의 지형지물과 상호작용하는 플랫포밍을, 지형지물과 긴밀히 상호작용하는 슈팅으로 구현한 것이 DOOM이라면, Spelunky와 NT의 관계도 동일하게 설명할 수 있다.


  다양화는 오히려 특기할 게 적다. 절차 생성은 Rogue 때부터 있던 가장 기본적인 특성 중 하나이다. 세분화는 다르다. Rogue 및 로그라이크(장르로서의 로그라이크가 아닌 Rogue의 형식을 충실히 계승한 경기들을 칭한다) 경기들은 새로이 얻게 되는 도구들이 모두 제각각의 키보드 자판을 할당받는다. 반면 Spelunky의 영향 하에 있는 독립자본 경기들은 기존에 존재하는 조작계에 사물과의 상호작용이나 기술의 효과가 추가되는 방식이다. 즉 기존의 단순한 조작계는 그대로 유지된다. 패미컴 시절의 경박단소한 경기들이 가졌던 가치를 훌륭히 계승하였을 뿐만 아니라 확장마저 이루어내었다. 이는 PC 게임의 키보드가 가진 가치를 콘솔 게임의 패드로 충실히 이식한 몇 안 되는 예이기도 하다. NT에서 레벨업마다 플레이어는 전체 뮤테이션 풀에서 무작위하게 선택된 네 개의 뮤테이션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이는 플레이어에게 새로운 상호작용을 제공한다.


  다양화와 세분화가 제대로 이루어진 경기답게, NT의 플레이어는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영구적 죽음을 가진 경기에서 시행착오란 죽음이다. Throne을 상대로 마침내 승리하기까지는 수없는 죽음이 선행될 수밖에 없다. Throne에게 승리하는 것으로 한 회차는 마무리된다. 재미있게도, NT에서 죽음으로써가 아닌 Throne에 대한 승리로써 경기를 마무리 짓는다 하더라도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최소 20시간에서 30시간 이상을 소요하여야 Throne의 보스방에 접근이라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한 경기를 타파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짧으나 그 플레이를 구현하기 위하여선 수없는 시행착오와 최적화의 과정을 요구하였던 8비트 게임들과 동일하다. 스트레스를 지양하는 시대의 트렌드에서 벗어나, NT는 경기를 플레이하는 필수적인 요소로 죽음을 존중했다.


1-3.


  이러한 의구심이 자라났을 수 있다. 그래서 뭐 어쩌란 건가 하는. NT가 평범한 톱다운 슈터에 다름 아니며 이와 유사한 독립자본 게임이 대량 생산되는 현 시장에선 그리 특기할 만하지 않다 생각할 수 있다. 크게 틀리지 않은 판단이다. 하나의 경기를 조망하고 정제하기 위하여선 반드시 경기의 모든 것을 플레이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게임 비평의 필수불가결한 선결 조건이다. 마찬가지로 Throne 보스까지의 NT는 별다른 개성이나 철학이 없는 경기이다.

  LOOP 이전까지는 말이다.


2. YOU'VE BEEN LOOPED



  한 경기가 구조적으로 구축 가능한 최고의 가치는 ‘재정의’이다. 게임이 기존의 구조로부터 탈피하여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플레이어 역시 그에 맞추어 그 새로운 모습에 걸맞은 새로운 플레이로 한 단계 도약해야만 한다. 즉 게임과 플레이어의 성장이 동치된다. 챕터 10의 NG2가 그러하였고 스테이지 8의 DOOM ll가 그러하였고 블러드문의 Bloodborne이 그러하였다. 그리고 NT의 LOOP는, NG2나 DOOM ll, 그리고 Bloodborne보다도 더 높은 수준의 재정의를 이끌어낸다. 그야말로 게임이 기존에 쌓아둔 모든 게, LOOP로 인해 해체되고, 재구축되며, 재정의된다. NT를 이야기할 때 LOOP를 빼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2-1. Dismantle


  엄밀히 말하면, 게임의 구조는 프로그램을 뜻하고, 프로그램 또는 프로그래밍 또는 ‘코드’ 자체가 뒤바뀌는 또는 ‘해체’되는 것은 게임이 갖추어 마땅한 ‘규칙의 일관성’을 해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게임에서 구조의 해체란 ‘고정 관념’ 또는 ‘내적 규칙’의 해체이다.

  모든 게임은 내적 규칙들을 갖추고 있다. 예컨대 각각의 테마엔 정해진 적 종류만이 등장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는 코딩으로 정해진 규칙이 아닌 창작자가 임의로 설정한 것이다. 창작자가 동일한 테마엔 동일한 종류의 적만을 배치함으로써 플레이어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납득케 하여 고정 관념화하는 것이다. 모든 플레이어의 우수한 플레이는 경기의 취약점을 이용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고정 관념들 또한 경기의 취약점에 해당하므로 플레이어의 모든 플레이는 고정 관념들 위에 쌓아 올려진다. 그렇기에, 창작자가 그것을 박살낼 때, 플레이어는 방황한다. 이전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수의 적들이 쏟아져 나오고, 전혀 다른 테마에서나 볼 수 있던 적이 등장하여 전혀 새로운 변수를 형성할 때 방황은 시작된다.

  이것을 훌륭히 활용한 예는 NES 경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Ninja Gaiden (닌자용검전, 이하 닌자용검전)>이다. 닌자용검전은 최종 스테이지 전까지는 언제나 스테이지 별로 세이브가 이루어진다. 사망하여 목숨을 모두 소진할 경우 사망한 스테이지의 초입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러나 마지막 세 스테이지들(6-1, 6-2, 6-3)에선 그 내적 규칙이 사라진다. 플레이어는 최종 보스 3연전의 어느 구간에서건 사망한다면 언제나 6-1에서부터 재시작해야 한다. 기실 닌자용검전은 이 구간 이전까지는 모두 튜토리얼에 불과하다고까지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내적 규칙의 해체는 한 경기가 선보일 수 있는 그 어느 난관보다도 위력적이다. 새로운 해답으로의 방황은 플레이어의 성장이 있기 전까지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내적 규칙의 해체가 존재하기 위하여선 내적 규칙의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 NT는 내적 규칙들을 LOOP 이전까지 몇몇 보스를 제하고는 상당히 철저하게 엄수함으로써 그에 성공했다. 그렇기에 LOOP에서의 ‘전복’이 가지는 파괴력은 막강하다.

  특히 NT의 특징적인 경기성이 이 전복과 시너지 효과를 얻는다. 앞서 말했듯 NT는 패미컴 시절 경기들처럼 끊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플레이하는 것 자체엔 큰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10분의 플레이를 위하여 최적화되어야 할 요소가 수없는 탓에 수없는 시행착오 또는 죽음이 요구된다. 무수한 죽음을 딛고 일어선 플레이어가 마침내 보스를 정복하고 게임을 정복했노라 자만할 때, 그 면전에서, 전복이 이루어진다.



  LOOP에서 이루어지는 해체 또는 전복은 5-3 보스가 지닌 두 특성의 확장이다. 하나는 지형지물의 무시이고, 다른 하나는 적의 소환이다. 이 두 요소는 모두 NT가 유지하던 내적 규칙을 파괴한다. 지형지물 간으로 교전이 단절되어 있는 NT에서 지형지물을 무시하는 패턴은 단절을 연결로 바꾸는 전복이다. 버릴 것을 버릴 수 있도록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주도권을, 적이 앗아가는 턴이 발생하는 것이다. 일반 적들이건 보스건, 이 두 특성을 각각 어떠한 방식으로건 함유한 적들이 LOOP에서 대거 등장한다. 5-3 보스가 초입 플레이어들의 첫 진입장벽인 이유는 이에 있다.



  이 두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적이 바로 IDPD 밴이다. 매 아레나마다 플레이어의 현재 위치로 지형지물을 파괴해가며 돌진해오는 IDPD 밴은 정차 시 적들을 쏟아낸다. 연결은 불가피하다. 그렇기에 IDPD 밴은 LOOP를 상징한다. 작게는 지형지물들로 분리되어 있던 아레나의 어느 위치에 있건 일관되게 작동함으로써, 크게는 각각의 테마로 분리되어 있던 모든 맵에 일관적으로 등장함으로써, IDPD 밴은 그 자체로 LOOP라는 하나의 거대한 ‘테마’를 이룬다.




  플레이어를 향해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는 압박은 여러 시스템 간의 상호작용을 촉발시키고 연결시키어 플레이어를 여러 창발적인 죽음으로 이끌어간다. 이 점 또한 Spelunky에게서 물려받은 훌륭한 유산이며, 각각의 시스템이 재구축됨으로써 가지는 새로운 의미이다.


2-2. …… and Redefine


  그리고 이러한 내적 규칙의 해체와 재구축은 재정의를 이끌어낸다.

  정의는 주관이다. 인간이 사물에 부여하는 것이지 사물이 본질적으로 부여 받는 것이 아니다. 철학적으로는 다소 이견이 있을 수 있는 주장이겠으나 최소한 게임에서는 반드시 그렇다. 경기를 구조할 때 창작자는 제 나름의 의미를 각각의 규칙에 부여해두고자 하나 그것들은 그 자체로는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게임이란 경기자와 경기의 합이고, 경기자가 플레이하는 그 순간만이 게임이기에, 의미란 언제나 경기자로써만 부여 가능하다. 창작자의 최선이란 경기자가 자신이 의도한 의미를 가지도록 ‘유도’하는 것뿐이다. 플레이어는 각각의 규칙(세분화하자면 뮤테이션이나 아이템, 캐릭터 특성 등)에 자신만의 가치를 부여하고 그로써 규칙들은 의미를 가진다. 이렇게 정의된 규칙들이, LOOP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내고 새로운 리스크와 리워드를 부여받는다. 따라서 자신의 정의를 플레이어는 시정할 의무가 있으며 이는 곧 재정의이다. 그렇기에 게임에서 구조의 재정의란, 플레이어가 한때 정해둔 ‘정의’로부터의 성장을 의미하고 또한 고정 관념의 타파를 의미한다.

  요컨대 앞서 설명한 해체가 게임의 성장이었다면 재정의는 플레이어의 성장이다. 위와 같은 변화에 더해 적 수의 폭증과 그에 수반하는 빈곤한 탄약으로 인해 플레이어는 전투 상황에서 끊임없이 경로를 재설정하게 된다. IDPD 벤과 곳곳에서 소환되는 IDPD 병사들은 플레이어의 주도권을 앗아가고, 플레이어를 위험한 곳으로 내몬다. 이 순간부터 전투는 밀고 나가기가 된다. 폭발형 적, 근접형 적들은 플레이어가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 먼저 처리해야 하는 적 또는 변수로서 기능하여 플레이어의 경로 설정을 방해하고, 그렇기에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적이 곧 탄이자 벽으로 작동하며, 실제로 적을 탄으로 발사하는 적들도 존재한다. 또한 시야의 단절이 더욱 큰 영향을 끼친다. 사방에서 적들이 쏟아지고, 지형지물로써 단절되지 않은 시야 바깥의 적들이 플레이어를 압박해온다. Super Crate Box, 나아가 DOOM ll와 동일한 플레이 방식이, 전혀 다른 재료들로써 구현된다.


  DOOM ll와 Super Crate Box, 그리고 NT는 따라서 그 전투 수행 방식만 따지자면 본질은 같다. 경로의 재설정이다. 그러나 앞선 두 게임들에서 NT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DOOM ll와 Super Crate Box에서 경로의 재설정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직관적이다. 둘 모두 게임 진행에 있어 필수적인 오브젝트들을 순차적으로 획득해야만 하는데 그 경로상에 끊임없이 변수가 등장하여 플레이어가 사전에 설정해둔 경로를 어그러뜨리는 탓이다(자세한 사항은 DOOM ll 비평 참조). 그러나 NT에서 그것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추상적이다. LOOP에 이르러서조차 ‘한 아레나의 적들을 모두 처리할 것’이라는 목표는 변함이 없으나, 단절을 연결로 바꾸며 사방에서 압박해오는 적과 빈곤한 탄약이 플레이어를 끝없는 전투로 내몰게 된다.

경로의 재설정

  이 이유 외로도 NT가 DOOM ll보다 우수한 경로의 재설정을 구조하였음을 증명하는 근거가 있다. DOOM ll에서 각각의 스테이지들을 연결하는 것은 무기와 탄약, 체력과 방어구이다. 앞선 전투에서 이들의 손실을 최소화하거나 보충을 최대화하는 것이 이후 스테이지들로 그대로 계승된다. 이는 쉽게 말해 자원 제약이다. 자원 제약으로써 통일성을 가지는 디자인은 흔하다. 적들을 처리할 방법론에 제약을 둘 따름이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서, NT는 아예 적과 플레이어 간의 상호작용 자체의 근간에 영향을 끼친다. 적들의 수가 무수해졌음으로 인해 모든 뮤테이션이 제각각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는다. LOOP 이전까지는 무의미하였던 탄약 뮤테이션이나 공격 속도 뮤테이션, 그리고 변수를 통제해주는 뮤테이션(적탄 속도 감소, 죽음 1번 방지 등)이 급부상한다.

  이는 RPG와 아무런 유사점도 없이 다만 겉껍질만 RPG스러운 ‘업그레이드 트리 시스템’과 달리, 진정으로 RPG와 구조적 유사성을 보이는 시스템으로 뮤테이션을 한 단계 진화시킨다. RPG는 앞선 비평에서 언급한 바 있듯 어드벤처Adventure에 속한 형식이다. 직사각형과 정사각형의 관계이다. 두 형식 간의 차이는, 어드벤처는 퍼즐과 해답이 1대1로 대응되는 경향이 강하다면, RPG는 그러한 해답을 플레이어 스스로가 어느 정도 능동적으로 조율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정통 RPG 형식의 상징인 파티원이 대표적이다. 각 층마다 적을 정상적으로 상대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전투력 수치가 있다면 RPG에선 파티원의 레벨이나 스탯 주사위 굴림, 장비나 조합, 직업, 전술 등을 활용하여 플레이어가 임의로 그 수치를 ‘조합’할 수 있다. 앞선 비평에서 든 비유마저 재차 꺼내들자면, 어드벤처는 고정된 열쇠들이 제시되는 것이고, RPG는 그 열쇠를 제작 가능한 재료들이 제시되는 것이다. 이러한 RPG의 특성을 극단화한 것이 소위 Immersive Sim라 불리우는 계열의 선구자격인 Looking Glass의 경기들이다.

  NT가 이와 같다. LOOP를 진행하기 위하여선 충족되어야 하는 스탯들이 존재한다. 이는 각각 탄약 수급, 체력 수급, 그리고 공격 속도이다. 각각을 단번에 충족시켜주는 1티어 뮤테이션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NT는 매 레벨업마다 뮤테이션을 랜덤하게 제시하는 탓에, 언제나 1티어 뮤테이션들을 선택 가능하리란 보장이 없다. 그렇기에 이른바 2티어, 3티어 뮤테이션들마저 각각의 수치 중 어느 하나가 충족되지 않았다면 그것들을 선택하고 조합하여 1티어 뮤테이션이 가지는 효과를 대체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며, 반대로 이미 충족시켜 놓았기 때문에 해당 수치의 1티어 뮤테이션이 등장하더라도 포기하게 되는 상황이 온다.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이고 매번 다른 게임 플레이 방식을 구현한다. 전혀 쓸모가 없는 듯한 뮤테이션들조차 상황 여하에 따라 반드시 선택하게 되는 상황이 오고 이는 적응과 대처를 요구한다. Super Crate Box에서 매번 무기를 바꿔주어야 하는 당위를 상자의 획득과 점수 시스템을 단일하게 엮음으로써 부여하였다면, NT에서는 그것을 RPG스럽게 충족시켜야 하는 스탯들로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분명 Super Crate Box보다 발전한 방식이다. Super Crate Box에선 앞선 무기의 활용이 뒷선 무기의 활용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지뢰를 제하고는 전혀 없다. 그렇기에 각각의 상자 획득은 개별적인 난관으로서 기능할 뿐 모든 상자 획득을 아우르는 통일성은 없다. 반면 NT에선 앞선 뮤테이션 선택이 뒷선 선택들에 온전히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모든 뮤테이션 선택은 통일성을 가진다.

  또한 이러한 선택들은 그대로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끼치며, 반대로 게임 플레이 성향이 이 선택들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가령 나는 스테로이드로 돌진 플레이를 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 탓에 메디킷 체력 +4 뮤테이션, 탄약과 메디킷 드롭율 증가 뮤테이션, 상자 개수 증가 뮤테이션, 모든 상자를 탄약 상자로 바꾸어주는 저주와 탄약 상자가 언제나 모든 종류의 탄약을 가지고 있도록 하는 뮤테이션을 선택한다. 이들은 다른 캐릭터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말하자면 2~3티어 뮤테이션들이다. 그러나 나의 게임 플레이 성향과 스테로이드라는 캐릭터의 특성에 알맞다. 반대로 돌진 플레이를 선호하지 않는 플레이어들은 드롭 아이템을 끌어 모으는 범위를 증가시키는 뮤테이션이나 적을 죽일 시 랜덤하게 체력 회복을 시켜주는 뮤테이션 따위를 선호할 것이다. 또 내가 모르는 성향과 선호가 있을 것이고 그 모든 제각각의 성향과 선호, 플레이 스타일의 존재는 그 자체로 뮤테이션 시스템이 가지는 깊이를 증명한다.

뮤테이션 덕에 대부분의 자원 회복은 액션에서 기인한다

  이는 Spelunky에서 보여준 세분화의 변증법적 확장이자 DOOM ll가 보여준 서사 구축의 확장이다. Spelunky는 발견과 상점 단 두 요소만으로도 필요한 아이템들을 모두 충당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블랙마켓의 존재는 선택을 무의미하게 한다. 어느 아이템을 선택하기 위하여 어느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선택 자체가 제시되지 않는다. 앞서도 누차 강조하였듯, 주도권 또는 선택의 핵심은 포기이다. 포기할 수 있어야지만 선택은 의미 있다. Spelunky는 각각의 아이템을 획득하는 루트가 다만 개별적인, 그것도 매 회차 동일한 난관에 불과할 따름이기에 선택이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이에 NT는 뮤테이션 시스템으로서 선택의 요소를 추가한 것이다. 물론 Spelunky와 달리 NT는 뮤테이션 선택이 각각의 개별적인 난관으로서 기능하지는 않으나, 그것이 고스란히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끼침으로써 그 자체로 제가끔의 리스크와 리워드를 지닌 ‘난관’을 형성한다.

  또한 뮤테이션의 선택과 플레이어의 성향, 그리고 앞선 선택들 이 세 요소가 맞물리면서 끊임없이 순환하고, 매 회차 다른 선택을 강제하는 것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끊임없이 경로를 재설정하도록 요구하는 것과 맞닿아 비선형적인 서사를 구축한다. 게임만의, 게임다운 서사이다.


3. Once Again


  이 모든 것이 단 20분가량 내로 이루어진다. 플레이어는 대체로 20분 내의 어느 시점에서 사망에 이르고 그것으로 경기는 종결된다. 한 번의 사망은 곧 한 생의 유실로 이어진다. 진행도는 초기화된다. 무기 뮤테이션은 상실된다. 전장은 재생성되며 쌓여간 시체와 스러진 보스는 생명을 돌려받는다. 작은 죽음들로 이루어진 한 회차의 죽음이자 종말이다. 경기 내의 누구도 당신이 왔다 감을 기억하지 않는다. 당신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상하거나 전용 대사를 내뱉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잃은 것은 당신뿐이며 난관은 처음 그대로의 악랄한 모습으로 여전하다. 당신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오로지 앎만이 있다. 오로지 당신만이 종말이 왔었음을 알고 그것이 온 경위를 안다. 당신은 종말을 복기한다. 그 종말 너머에서, 새로운 경기가 떠오른다. 당신의 아바타는 이룬 것도 나아간 것도 없다. 당신의 조작만을 기다릴 뿐이다. 당신만이 내적으로 새로운 것을 깨닫고, 잘잘못을 가리어 객관화하고, 스스로를 지탄한다. 실수와 실패의 기억을 축적한다. 그럼으로써 조금씩, 당신은 반짝이는 숫자 따위로는 표기되지 않는 방식으로 나아간다. 나아감을 명백히 하지 못한 채 나아간다. 또 다른 20분이 지나고, 또 다른 시작점에 당신은 선다. 그리고 반복한다. 다시, 또 다시.

  이 순환의 구조를 Vlambeer는 ‘The Struggle Continues’라는 문장으로 간단명료하게 요약한다. 이 문장은 루프에서의 죽음마다 화면에 새로이 새겨진다. ‘당신은 이를 즐길 것이다’거나 ‘멋진 컷신이 코앞이다’거나 ‘조금만 더 하면 사기적인 무기를 준다’거나 ‘수집품이 있을 것이다’가 아니다. ‘The Struggle Continues’이다. 역경은 계속된다. 당신이 제 아무리 편법을 찾고 보상을 바라더라도, 역경은, 처음과 같은 모습으로, 계속된다. 경기자들은 자진하여 역경의 무간도에 발을 들인다. 다시, 또 다시, 당신은 죽음이 기약된 전장에 선다. 흠 하나 찾기 어려운 완전한 경기장에.

  NT의 한 플레이 회차는 플레이어의 죽음이나 제각각의 엔딩 시퀀스로 마무리가 된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살펴본다면 각각의 아레나마다 새로운 전장, 예측 불가능한 구조의 난관이 제시됨으로써 소프트 리셋이 이루어지는 것에 가깝다. 포털Portal을 넘어설 때마다, 플레이어는 불확실성에 투신하게 된다. 게임 내에서 등장하는 그 어떤 포털보다도 거대한 것은 LOOP로 이어진 포털이다. 그 포털로써 NT의 모든 것은 재구축된다. 플레이어는 여태껏 자신이 진실이라 믿었던 것을 용감하게 포기하고, 새로운 의미들을 무기 삼아 LOOP를 돌파해 나가야 한다. 그것은 끝없이 변동하는 불확실성이라는 난관에 발을 내딛는 것과 닮아 있다.

  의외로 많은 수의 게임들이 괜찮은 아이디어와 함께 좋은 경기가 될 수도 있었을 법한 잠재력Potential을 가지고 있다. 개중 그러한 잠재력을 발현하는 데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다. 본 웹진에서 비평한 바 있는 The Last of Us Part ll, Hollow Knight, DOOM lll 또한 모두 별이 될 수도 있었던 게임이다. 그러나 비윤리적인 디자인 선택과 기존 방식에의 안주, 그리고 빈곤한 창의력으론 좋은 아이디어조차 지리멸렬해진다. 이들은 그 사실의 방증이다.

  반대로 NT의 LOOP는 어떻게 평범한 아이디어가 흠없는 규칙성을 가진 완벽한 경기로 탈바꿈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Vlambeer가 Super Crate Box와 Luftrausers에서 보여주었던 창작 방식을 고려했을 때 이는 더욱 놀라운 성과이다. Doom 2016의 뛰어난 아이디어들이 빛을 발하기 위하여 4년의 세월이 걸렸고, 또 다른 후속작을 필요로 하였다. 그런데 NT는 Doom 2016에서 Doom Eternal으로의 발전을 단 하나의 경기에서, 단 2년만에 이루어냈다. NT는 그 어떠한 후속작도 발전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위대한 제작사의 루도그래피에 어울리는, 더없이 훌륭한 피날레다.

★★★★★
5/5
-Lee Y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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