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Prologue
그러나 Quake 이후, 황금기를 선두에서 이끌던 Doom의 존 로메로와 Doom II의 샌디 피터슨이 모두 떠났다. 후자의 영향력을 단지 ‘레벨 디자이너’ 수준으로 낮잡아 보기 쉬운데, 샌디 피터슨이 Doom II에서 제작한 샌드박스 레벨들은 모두 그 자체로 새로운 게임 플레이를 이끌어내는 혁신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레벨들이 곧 Doom II 그 자체였으며, Doom II에서의 샌디 피터슨은 사실상 게임의 전체적인 구조와 플레이 스타일을 좌지우지하던 게임 디렉터나 다름없었다. Doom의 존 로메로는 말할 것도 없다. 즉 표면적으로는 레벨 디자이너 둘을 잃은 것이지만, 실제론 게임 디렉터급 인재가 둘이나 떠나버린 것과 같다.
전면에서 게임을 이끌 디자이너의 부재 탓인지, 이후 id Software는 수렁에 빠진다. 물론 팀 윌리츠도 좋은 레벨 디자이너이고 아직도 id Software에 남아 있으나 우수한 레벨을 넘어 경기의 전체적인 구조를 설계하는 역할을 맡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Quake II(퀘이크 2)와 Doom 3(둠 3) 모두 기존 작품들의 열화판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Quake II의 디렉터는 울펜슈타인 3D에서부터 아트 디자인을 담당하였던 케빈 클라우드이지만, 전직 아트 디렉터였던 Doom 2016과 Doom Eternal의 휴고 마틴과 달리 게임 디렉터로서의 능력은 부족하여 경기의 구조적 발전을 이끌어내진 못하였으며, Doom 3의 실질적 디렉터인 팀 윌리츠 또한 매한가지였다. 본 두 작품은 모두 id Software의 고전들의 그늘에 예속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고 각 게임만의 독자적인 가치를 가지는 데 실패했다. 이 시기를 일종의 암흑기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 웹진은 단순히 암흑기로만 해당 시기를 규정하고 싶지 않다. 물론 암흑기인 것은 사실이나, 명칭이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정확히 무슨 이유로 Quake II와 Doom 3의 시기가 암흑기인 것인가? 단순히 해당 게임들의 경기적 완성도가 특정 수준에 미달하기 때문이라 뭉뚱그릴 수도 있겠으나, 비평에선 언제나 그보다는 상세히 분석하여 보다 정확히 표현할 필요가 있다.
두 게임은 서로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두 게임 모두 Doom II가 아닌 Doom에 뿌리를 두고 있다. 즉 Doom의 서로 다른 요소들을 각각 가져가 스스로의 핵심으로 삼은 것이다. 다소 과장하여 말하자면, Doom을 반으로 쪼개면(그리고 우수한 게임 디자인을 평범하거나 미천한 수준으로 열화하면) Quake II와 Doom 3이 탄생한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겉보기에는, Quake II는 Doom의 빠른 이동 속도를 그대로 계승한 무빙 중심의 아레나 슈터이다. 또 Doom에서 맵을 비선형적으로 탐색하여 키 카드를 찾고 함정을 헤치며 진행하였듯, Quake II 역시 언뜻 비선형적으로 보이는 레벨들을 탐색하며 키 아이템을 찾고 전투를 수행하며 진행하게 된다. 반면 Doom 3은 겉보기에는 Doom의 서바이벌 호러Survivor Horror적인 특징, 즉 자원 제약과 비가시적인 압박(상세히 후술하겠다)을 보다 세분화시켰다. 애초에 게임 개발 목적이 서바이벌 호러였는지 서바이벌 호러에 어울리는 더딘 이동 속도와 손전등 시스템을 통해 느린 게임 플레이를 지향하며, 적들이 전방위에서 등장하여 플레이어를 시종일관 압박한다. 그래서 언뜻 Doom 3은 서바이벌 호러나 최소한 호러 게임으로 보일 수 있다.
물론 눈치 챘겠지만, 일부러 ‘언뜻 보기에’란 표현을 중복적으로 사용하여 각각의 게임들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두 게임이 ‘언뜻 보기에’ 이러저러한 것과 상반되게, 구조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형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특정한 형식의 게임이 되기를 희망하거나 그것의 흉내만 낼 뿐, 정작 그 형식의 게임이 되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할 수 있다. 즉 ‘시늉’인 것이다.
따라서 본 웹진은 해당 시기를 지칭하는 데 있어 ‘암흑기’보다 더 정확하고 ‘나은’ 명칭을 생각해내었다. 이른바 ‘시늉의 시대Age of Pretense’이다. 이것은 비단 이드 소프트웨어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게임은 이례적으로 고전 명작들이 넘쳐나는 분야이다. 그러면서도 수준 이하의 개발자들로 인해 그때로부터 큰 발전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후대(즉 현대)의 대부분의 개발자들은 과거의 고전들을 열화하거나,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실상의 표절작들을 제작 및 양산하는 데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비선형적인 레벨을 가장하는 선형적인 레벨들, 어드벤처를 가장하는 워킹 시뮬레이터 및 인터랙티브 드라마, 호러를 흉내 내는 레일 슈터들이 그 예이다. 이처럼 특정한 형식인 시늉만 할 뿐 실제론 완전한 열화판 또는 전혀 다른 형식의 작품이나 다름없는 게임들과 표절작들이 수도 없이 양산되는 것은 게임에 전체적으로 큰 퇴보를 가져오며 또는 ‘이미 가져왔으며’, 지극히 지양되어야 하는 동향이다.
이러한 양산작 또는 표절작들은 고전들과 구분되는 어떤 가치를 창조해내는 데 실패하였으므로, 어차피 몇 십 년이나 몇 백 년만 지나더라도 모조리 잊히고 말 것이며, 따라서 비평할 가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시대적으로 아무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작품을 플레이하고 심지어 거기서 재미마저 느낀다면(대표적으로 본 웹진은 Sekiro(세키로)를 혹평하였으나, 최소한 매우 재미있게 플레이했었다. 이토록 게임의 가치와 재미는 전혀 같게 볼 수 없다) 개인적인 차원에선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할 수 있겠으나, 그것들을 비평함으로써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을 하는 것은 쓰는 자로서나 읽는 자로서나 심각한 시간 낭비 아니겠는가. 구조적 결함들의 지난한 나열에 불과할 테니.
그럼에도 Quake II와 Doom 3을 굳이 비평하는 것은 세 가지에서 기인한다. 첫째, 이들을 우선 비평해놓아야 Doom(2016)과 Doom Eternal(둠 이터널)이 얼마나 혁신적이고 시대적 가치가 높은 작품인가를 차후 정확히 다룰 수 있고, 또 그래야만 id Software 연대기를 완성하여 게임사에서 이드 소프트웨어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제대로 조명할 수 있다. 그리고 둘째, 이처럼 겉보기와 실제 구조가 다른 작품들을 하나 정도는 비평해놓아야 게임의 겉면, 즉 스킨과 게임의 뼈대, 즉 구조가 왜 동일시될 수 없는가를 확고히 할 수 있다. 나아가 게임을 단순히 개인적인 소감과 취향에 따라 ‘리뷰’하는 것과, 게임의 객관적인 구조를 분석하여 그것에 주관적으로 가치를 매기는 ‘비평’의 차이 또한 명확히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Doom 2016과 Doom Eternal의 전체적인 구조에 Doom 3이 끼친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기실 액션이 아닌 전체적인 레벨 진행만 놓고 보았을 때 두 게임은 Doom 3의 방식을 어느 정도 그대로 계승했다. 따라서 Doom 3의 구조적인 분석을 해놓아야 이후 Doom 2016과 Doom Eternal을 보다 깊게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비평에서 닌자 크리틱스가 이루고자 하는 바는 이 세 가지이다.
1. Quake II
상술했듯 Quake II는 빠른 이동 속도와 강력하고도 재장전을 요구하지 않는 무기들을 플레이어에게 도구로서 제시한다. 즉 이 점만 놓고 보자면 전형적인 무빙 중심의 FPS이다. 히트 스캔 적들의 변화도 Doom에서 전격적으로 개편하였다. Doom의 히트 스캔 적들은 단순히 플레이어가 시야에 들어오면 곧바로 플레이어의 방향으로 공격하는 방식이었으므로, 적의 시야 안에 있는 경우 공격을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물론 낮은 확률로 적의 공격이 빗나가는 것은 가능하나, 그것을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회피해내었다 볼 수는 없다). 반면 Quake II의 히트 스캔 적들은 정면 방향의 일직선상만 공격하며, 플레이어가 정면에서 벗어난 위치로 이동하는 경우, 천천히 플레이어의 방향으로 회전하며 부채꼴 모양의 타격존을 형성한다. 즉 히트 스캔 공격들마저 Quake II에선 위치 선정과 무빙으로 회피할 수 있다. 이는 히트 스캔 적들이 Doom에서 가지던 독특한 특징(Doom 비평 참조)을 희석시키긴 하나, 나름 신선하고 나쁘지 않은 변화라 할 수 있다. 히트 스캔과 무빙 중심의 게임 디자인을 잘 결합한 것이니 말이다.
레벨 디자인은 흔히들 허브 시스템이라 부르는 형식을 갖추었다. 각 미션마다 여러 구역들로 분리되어 중심 허브에 연결되어 있는 방식이며, 이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각각의 구역들을 반복적으로 오가며 키 아이템을 찾고 문을 열고 지름길을 해금하도록 한다. 따라서 겉보기엔 비선형적이다.
그러나 실제론 전혀 그렇지 않다. 우선 Quake II는 Quake나 Doom II와 달리 길쭉한 복도형 레벨들이 다수 존재한다. 제 아무리 적들의 히트 스캔 공격이 무빙으로써 회피될 수 있게 개편되었다 하더라도, 복도들에선 무빙으로 그 히트 스캔 공격들을 회피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어쩔 수 없이 복도로 이어지는 문 바깥쪽 벽이나 엄폐물을 활용한, 이른바 ‘커버 슈팅’ 또는 ‘빼꼼샷’으로 난관을 파훼하도록 강제된다. 게임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레벨들이 이와 같이 복도형 구조를 갖추고 있고 매우 드물게 넓은 아레나가 등장한다.
이러한 아레나 디자인조차 그다지 좋게 평가할 수 없다. 가령 Quake에선 플레이어가 특정 아레나에 진입할 시 플레이어의 뒤를 봉쇄하여 후진을 막아놓고 적들을 사방에서 투입시킨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적들의 돌진과 공격을 회피하고 관성과 점프를 활용하여 뛰어다니며 전투를 수행하게 된다. 반면 Quake II는 이러한 폐쇄적인 아레나가 거의 없다. 적들은 거의 언제나 플레이어의 앞쪽에서만 등장하며, 따라서 플레이어가 벽 뒤에 숨어 앞만 바라보며 적들을 상대하는 일이 빈번하다. Quake II에선 Quake와 달리 천천히 전진하며 순차적으로 적들을 하나하나씩 단계적으로 처리해나가게 된다.
이와 같은 디자인이 본질적으로 내포한 문제점은, 모든 다대일 전투를 사실상 일대일 전투나 다를 바 없이 만든다는 것이다. 앞선 비평들에서 본 웹진은 제대로 디자인된 다대일 전투가 제대로 디자인 된 일대일 전투에 비해 언제나 더 가치 있고 우수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수도 없이 설명 및 증명한 바 있다. 그럼에도 간략히 재설명하자면, 그것은 각각의 적들이 가진 약점이 다대일 상황에선 상호 보완되고, 변수가 훨씬 더 다양하여 플레이어로 하여금 보다 능동적이고 창발적으로 대처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Ninja Gaiden 2 비평과 Nioh 비평 참조). 사실 Ninja Gaiden 2(닌자 가이덴 2)나 Nioh(인왕)까지 갈 것도 없다. 당장 Doom과 Doom II, 그리고 Quake부터가 다대일 전투의 가능성을 전폭적으로 활용한 예들이다.
반면 Quake II의 적들은 이동 속도가 지나치게 느리고, 공격 속도도 느리며, 투사체 속도도 느리다. ‘느림’만큼이나 이들을 정확히 설명하는 단어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빼꼼샷에 아무런 난관이 없다. 그냥 고개 내밀고 한 발 쏘고 느릿느릿 다시 벽 뒤로 기어 들어가 숨더라도 적들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활 시스템이나 그에 준하게 플레이어의 끊임없는 전진을 요구하는 시스템이 없다. 빼꼼샷을 번번이 실패하더라도, 언제나 무한한 기회가 다시 제공되는 것이나 다름없어 리스크와 리워드의 분배가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수준 낮은 적 디자인은 복도형 구간들에서의 전투뿐만 아니라 얼마 되지도 않는 아레나 전투 구간들조차 수준 낮게 만들어버린다. Quake에서 적들은 반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근접 공격을 구사하여 플레이어로 하여금 언제나 적정 수준의 거리를 유지하도록 강제하였고, 각각의 적들이 모두 특징적이면서도 위협적인 공격 패턴들을 가지고 있었다(Quake 비평 참조). 또 이동 속도나 공격 속도가 모두 매우 빨라서 플레이어를 끊임없이 압박한다. 다대일 전투만이 제공할 수 있는 변수는 최소 2개 이상의 변수가(즉 2명 이상의 적이) 맞부딪혔을 때 파생되는 것이므로(즉 함께 플레이어를 향해 어떤 액션을 취했을 때 파생되는 것이므로), 적들이 충분히 공격적이어야만 다대일 전투만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것이며, 그러지 않는 경우 사실상 일대일 전투와 다를 바가 없다.
그에 비해 Quake II의 적들은 근접 공격부터가 웃음만 나온다. 지나치게 느리다. 오히려 적들에게 다가가 근접 공격을 유도하여 적들이 근접 공격을 하는 동안 완벽히 무방비 상태에 있게끔 하는 식으로 적의 약점을 악용하기가 쉽다. 거기다 빠르게 돌진해오며 플레이어의 이동 반경을 줄이고 일직선상에 투사체들을 흩뿌려놓으며 보다 정확한 회피를 요구하는 Quake와 달리, Quake II는 적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에도 가까워지는 것에도 아무런 리스크가 없다. Quake의 적들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적정 거리를 유지함과 동시에 투사체의 궤적이나 돌진 공격의 방향을 염두에 두며 좌우로도 회피하도록 요구했다. 반면 Quake II의 적들은 일단 돌진 공격을 가진 적이 게임 내에서 거의 등장하지를 않아 회피 방향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다. 즉 단순히 한쪽 방향으로 멈추지 않고 이동할 것만을 요구할 뿐이라서 순간적으로 적의 공격에 반응하여 다른 방향으로 회피하는 상황이 거의 없다.
거기다 몇몇 적들은 무빙으로 회피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패턴을 구사한다. 가령 포물선 궤적으로 수류탄들을 난사하는 패턴은 그 수류탄을 쏘는 방향이나 궤적이 무작위해서 눈으로 보고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적의 회전 속도가 느리다는 점을 이용해 뒤로 돌아 들어가는 것이 빼꼼샷을 제하면 유일한 파훼법인데, 이 패턴을 구사하는 적들은 보통 두 마리 이상씩 함께 등장하므로 이조차도 불가능하다. 물론 굳이 적에게 피격당할 위험을 감수한다면 가능하긴 하겠으나, 굳이 그러도록 강제하는 구조적 기반이 Quake II에는 없다.
무기 디자인에도 작지 않은 결함이 있다. 앞선 비평에서 Quake의 주요 가치 중 하나가 무기 교체 콤보임을 언급한 바 있다. 이는 무기 교체 딜레이가 전혀 없어 발사 후딜레이만 신경써준다면 여러 무기들을 상황에 맞게 조합함으로써 하나의 ‘콤보’를 만들어 적들과 대적하는 것을 뜻한다. Quake는 공격적이고 빠른 적들로 인해 플레이어와 적들 간의 거리가 끊임없이 변화했으며, 이에 맞추어 플레이어는 근거리/중거리/원거리에 적합한 무기들을 끊임없이 교체해가며 적들을 상대해야 했다. 이로 인해 Quake에서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무기의 가짓수는 7가지이지만, 그 조합의 경우의 수 하나하나가 사실상 독자적인 무기인 것이나 다름없다. 혹여 Devil May Cry를 플레이해본 사람이라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런데 Quake II는 무기 교체 콤보가 불가능하다. 교체 딜레이가 Doom에 필적하게 긴 탓이다. 그래서 Quake와 같이 무기들을 빠르게 바꿔가며 전투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Doom처럼 각각의 난관에 적합한 무기를 사전에 생각해두고, 해당 난관에 진입하기 직전에 적합한 무기로 교체하는 식으로 전투가 진행된다. 이러한 변화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당연히 아니다. 당장 Doom만 해도 긴 무기 교체 딜레이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충분히 깊이 있고 가치 있는 전투를 선보이지 않았던가. 무기 교체 콤보를 없앤 것까지는 문제가 있다할 수 없다. 모든 게임이 무기 교체 콤보를 가지고 있을 필요도, 전작에서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전작의 모든 것을 그대로 가져올 필요도 없다. 그러나 Quake II는 여러 복합적인 디자인상의 결함들이 맞물려 Doom과 같은 가치를 가지는 데 실패했다.
Doom 비평에서 설명한 바를 다시 상기하길 바란다. Doom은 여러 다른 층위에서 각각의 무기들에 개성과 특색, 그리고 쓰임새를 부여했다.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하자면, 하나는 경직률이다. 경직률로 인해 발사 속도나 히트 스캔/투사체의 차이만으로 상황 별 유용성이 충분히 차별화된다. 또 하나는 탄종이다. 플라즈마 라이플과 BFG는 각각 탄종을 공유한다. BFG는 사실상 난관 하나를 생략하게 해줄 만큼 강력한 무기이므로, 이러한 탄종의 공유는 플라즈마 라이플의 활용에 큰 제약을 가한다. 따라서 플라즈마 라이플은 탄종이나 경직률을 전혀 고려치 않는다면 체인건의 완벽한 상위호환이지만, 탄종과 경직률로 인해 둘은 모두 유용하게 쓰인다(자세한 설명은 Doom 비평 참조).
Quake II에는 경직률은 없고(사실 아예 없지는 않으나 전투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탄약은 넘쳐난다. 따라서 다른 무기의 활용을 강제하는 유일한 변수는 적과의 거리뿐이다. 사실상 근거리에서 유용한 무기와 원거리에서 유용한 무기, 이 두 종류의 무기만 가지고 플레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각각의 무기들은 물론 그 무기만의 어떤 특색이 있기는 하다. 가령 레일건만 보더라도 Quake의 멀티 플레이어에 일대 혁명을 불러온 무기이다. 하이퍼 블래스터는 적들로 하여금 웅크리도록 하여 시간을 벌 수 있고 체인건은 화력은 막강하나 총알을 낭비한다. 다양한 무기들을 ‘체험’해볼 수 있다는 점에선 충분히 만족스럽다 할 수 있다. 특히 Quake II의 체인건을 한 번 써본 사람은 누구든 그 ‘손맛’과 사운드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이러한 무기 교체 콤보의 부재와 각 무기 간의 독특한 쓰임의 결여는 더더욱 빼꼼샷으로 게임을 진행하도록 강제한다. 또, 설사, 플레이어가 너그러운 마음을 베풀어서, 게임을 매우 전투적으로 플레이한다 하더라도, 다시 말해 앞으로 끊임없이 돌진하며 마치 아레나 슈터처럼 플레이한다 하더라도, 애초에 적들의 공격성이나 이동 속도, 공격 속도가 너무 낮아 제대로 된 다대일 전투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적들의 공격을 회피하는 것이 단순히 한쪽 방향으로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수월히 이루어진다. Quake에선 돋보였던 3D 레벨을 풍부히 활용한 여러 플랫포밍 구간이나 독특한 아레나 디자인, 함정들은 Quake II에선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즉 전투적으로 플레이해도 고작 Quake의 하위호환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다만 몇몇 구간들에선 서로 다른 종류의 적들을 괜찮게 조합하여 우수한 액션 난관을 선보이긴 한다. 가령 레일건을 무기로 사용하는 로봇과 다른 근거리나 원거리 적들을 조합한 경우, 무빙과 회피의 방향에 특히나 신경을 써주어야 한다. 이와 같은 난관들이 보다 많았더라면, 더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레벨 디자인도 마찬가지로 비선형적인 시늉만 할 뿐 그냥 선형적인 레벨이다. 물론 플레이어의 동선이 자주 겹쳐지면서 소위 말하는 ‘Back Tracking'이 이루어지긴 하나, 전부 눈속임에 불과하여 진행 경로가 거의 강박적으로 선형적이다. 연출이나 문과 통로의 배치를 통해 마치 비선형적인 것처럼 가장할 뿐이다. 가령 당신의 아침 루틴이 침실에서 침대를 정리하고 부엌에서 식빵을 먹고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침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부엌에서 물을 마신 후 출근하는 것이라 가정해보자. 이 루틴을 정확한 순서로 수행하지 않는 경우 당신은 해고당하거나 해고에 준하는 사내 정치에 휘말리게 된다. 그리고 부엌, 화장실, 침실은 모두 거실로 통로가 이어져 있으며, 거실에서는 아무 데로나 자유롭게 향할 수 있다. 이 경우 당신은 먼저 침실에서 부엌으로, 부엌에서 화장실로, 화장실에서 다시 침실로 그리고 침실에서 다시 부엌으로 가는 진행 경로를 짜게 될 것이다. 언뜻 보면 동선들이 겹쳐지면서 마치 비선형적이라는 착각을 줄 수 있다. 아니, 저번에 부엌에 또 왔었는데 이번에도 다시 부엌에 가서 키 아이템(H2O)을 회수해야 하네? 이것 참 비선형적인걸?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를 정제해보면, 그냥 침실 A -> 부엌 A -> 화장실 -> 침실 B -> 부엌 B의 순서로, 즉 지극히 선형적으로,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이, 마치 컨테이너 벨트로 옮겨지는 화물과 같이 이동했을 또는 이동당했을 뿐임을 알 수 있다.
Quake II의 레벨 디자인은 이와 같다. 플레이어는 그냥 앞으로 쭉 가면서 저절로 열리는 문들로 멈추지 않고 진입하기만 하면 게임이 저절로 깨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이것은 Quake II의 영향을 크게 받아 이른바 허브 시스템을 도입하였다는 소리를 듣는 Half-life도 마찬가지이며, 이처럼 비선형적이거나 길 찾기가 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대부분의 현대 게임들은 실제론 지극히 선형적이고 경직된 진행 경로를 가지고 있다. 물론 모든 게임이 비선형적일 필요는 없으나, 적어도 비선형적인 척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비선형적이지 않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받아 마땅하며, 또 선형적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좋은 레벨 디자인을 선보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Resident Evil 4, The Evil Within 1, Doom Eternal 등등 숱한 예시가 있다) 단순한 일직선의 복도형 레벨만을 구현해냈다는 점은 안타까움과 비웃음만 자아낼 뿐이다.
단, 마지막 두 레벨은 비선형적이다. 한 구역에서 다른 구역으로 향하는 방법이 최소 두 가지씩 있으며, 어떤 연출이나 대놓고 보이는 문과 통로의 배치를 통해 플레이어를 한 쪽으로만 이동하도록 요구하지도 않는다. 플레이어는 진지하게 맵의 구조를 생각하고, 과거에 보았던 막힌 문을 계속 회상하며 키 아이템을 획득한 후 Back Tracking을 통해 해당 구역들로 다시 돌아오도록 요구한다. 또 일명 지름길들도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다. 이 두 레벨만으로도 최소한 Half-Life보다는 좋게 평가할 수 있다.
솔직히 술회하자면, Quake II는 딱히 비평할 만한 특색이 없는 작품이다. 너무나도 평범하다. 여러 단점들을 지적하긴 하였으나, 평범한 게임들은 모두 최소한 이 정도로는 단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이 id Software의 작품만 아니었어도, 단순히 ‘Quake의 아류작에 하위호환 격이다’라는 한 문장만으로 요약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id Software의 싱글 플레이어 게임 암흑기를 연 작품이니만큼, 최소한 이 정도로는 다룰 필요를 느꼈다. 결론적으로 Quake II는 Quake와 Doom의 아류작에 지나지 않으며, 어떠한 개성도 없어 굳이 플레이해볼 가치가 없다. 본 작품을 플레이할 생각이 혹시라도 있는 자는 되도록 그 생각을 하루라도 빨리 고쳐먹고 Doom이나 Quake 같은 고전들에 도전해보길 바란다. Half-Life는 비록 경기적 완성도는 형편없으나 이후 FPS에 끼친 영향을 고려했을 때 반드시 한 번 정도는 플레이해볼 가치가 있지만, Quake II는 그럴 이유가 없다.
2. Doom 3
2-1. Level Design
2004년 작 Doom 3은 Quake II보다는 할 말이 많은 작품이다. 그러나 게임 그 자체보다는 Doom 3이 도달하고자 시도했던 경지가 게임 비평적으로 상당히 흥미롭기 때문이다. 이를 성취하고자 Doom 3은 여러 다른 요소들을 구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이 거의 겉핥기 수준으로만 구현 내지는 디자인되어 있는 데에서 그친다. 즉 아무런 깊이가 없다. Quake II와 마찬가지로 Doom 3도 시늉만 하는 게임인 것이다.
간혹 이와 같이 깊이가 없다는 비판을 읽은 독자들 중 ‘게임이 그렇다면 무조건 복잡해야 하느냐’고 묻는 경우가 있는데, 전혀 그런 뜻이 아니다. 애초에 깊이와 복잡함은 같은 것이 아니다. 이후 더 상세하게 설명하는 글을 따로 쓸 일이 있겠지만 일단 간략하게나마 요약해보겠다. 가령 <Nuclear Throne(뉴클리어 쓰론)>은 꽤 간단한 게임이다. 조작부터가 사용하는 자판이 6개가 넘지를 않으며(이마저도 방향키를 제하면 2개이다) 아무 무기와 Mutation을 선택하더라도 일반 보스들과 일반 레벨들까지는 손쉽게 클리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너머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Mutation과 각 무기들의 활용도를 깊이 고민해보야 하는데, 일명 ‘Loop’라 불리는 단계에선 이들의 활용도가 Loop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지는 탓이다. 그러나 여전히 조작 자체는 Loop에서나 일반 레벨에서나 똑같이 간단하다. 이처럼 ‘메타의 전복’을 불러오는 작품들은 충분히 깊이 있다 할 수 있는데, 게임 진행에 따라 유용한 직업들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Wizardry 또한 하나의 예시로 들 수 있을 것이다. Wizardry 역시 지금 기준에서 보면 그 턴제 전투 자체는 지극히 간단하고 단순하다. 그러나 그 전투에까지 이르는 사전 작업, 즉 직업 선택이나 파티 구성에 충분한 깊이가 있기에 그 가치를 과소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반면 과거 비평한 바 있는 <Hallow Knight(핼로 나이트)>는 분명 사용 가능한 기술은 Nuclear Throne보다 다양하여 조작할 게 많다. 그러나 그러한 기술들 중 대부분은 거의 쓸모도 의미도 없는데, 레벨 디자인이 그것을 쓰도록 충분히 유도 및 압박하지 않는 탓이다. 즉 Hallow Knight가 Nuclear Throne보다 복잡한 게임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경기적 완성도는 더 얄팍한 것이다.
즉 본 웹진에서 어떠어떠한 게임에 ‘깊이가 없다’라 일컬었을 때, 이것을 게임이 ‘충분히 복잡하지 않다’는 비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게임은 복잡할 필요가 전혀 없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얼마나 깊이 있는가와 플레이어를 충분히 시험하는가, 그리고 형식의 발전을 이끌어내었는가이며, 깊이와 복잡함은 전혀 같게 볼 수 없다. ‘복잡하지 않은’ Super Hexagon은 기존의 형식을 크게 발전시키고 게임계에 어떤 바람을 불러온 시대의 고전이지만 ‘복잡한’ Hollow Knight는 <Metroid(메트로이드)>의 형식에 아무런 발전을 가져오지 못한 작품이듯 말이다.
우선 레벨 디자인부터 보자면, Doom 3도 마찬가지로 Quake II처럼 대부분 복도형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또 동선이 겹치는 구간들을 배치해놓아 비선형적인 척 하나 실제론 그냥 완벽히 선형적인 게임이다. Quake II처럼 앞으로 쭉 가면서 온갖 연출들을 맞닥뜨리고 적들을 처리하다 보면 게임이 알아서 완파된다. 퍼즐은 퍼즐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고, System Shock에서 가져온 듯한 ‘오디오 로그를 들어 비밀번호 알아내기’는 왜 이러한 저질의 ‘문제 풀이’ 또는 ‘내러티브 전달 방식’이 게임에 엄청난 해악이 되는가를 똑똑히 보여준다.
이는 Doom과 같은 기존의 FPS 게임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던전을 없애고 수준 낮은 일자형 레벨들로 대체하였던 Half-Life와 Half-Life 이후 대부분의 FPS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특징이다. 물론 FPS에 던전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수도 없이 언급하였듯 FPS가 DRPG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은 객관적 사실이나 그렇다고 던전 그 자체가 FPS의 필수 요소인 건 아니다. FPS는 어디까지나 3D 레벨을 1인칭 시점에서 활보한다는 점에서 DRPG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기본적으로는 Super Mario처럼 지형과 긴밀히 상호작용하는 고속 액션을 PC에서도 구현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형식이다.
하지만 던전을 없앴다 함은 결국 던전 탐색과 같은 어드벤처성을 버리고 액션만을 취하겠다는 것인데, 이 경우 레벨 디자인을 평가하는 기준은 그것이 ‘얼마나 비선형적으로 탐색이 이루어지고 퍼즐과 함정이 플레이어를 훌륭히 압박하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충분히 깊이 있는 액션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가 된다. 좋은 예시로는 Quake가 있다. Quake도 어떤 관점에선 던전이 아예 없는 게임이라 볼 수 있다. 그 대신 여러 다양한 아레나와 독특한 함정들, 기믹들을 배치하여 전투를 보다 능동적이고 지능적으로 수행하도록 요구한다. Doom 3은 이러한 아레나 전투의 비중이 Quake II에 비해 높아졌다. 복도형 구간과 아레나 전투들의 연속이며, Ninja Gaiden II와 같은 선형적인 액션 게임들의 전체적인 틀과 상당히 유사하다. Ninja Gaiden II 비평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지형과 긴밀히 상호작용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면 단순히 지형에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액션에까지 큰 영향을 끼칠 수가 있다. 폭탄 수리검과 폭탄 화살, 벽을 활용한 여러 기술들 등 NG II는 그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었고, 상당히 다양한 지형들을 아레나로서 제시하였으며, 따라서 비록 완전한 일자 진행의 선형적인 게임이라 할지라도, 레벨 디자인은 매우 뛰어나다고 평가할 수 있다.
2-2. Horror
Doom 3는 호러 게임으로도 구분된다. 컨슈머들이 흔히들 말하는 호러 ‘장르’는 그래픽과 사운드를 통해, 다시 말해 경기의 껍데기들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공포를 주고 깜짝 놀래키는 연출들을 진행 경로의 곳곳에 배치해놓은 그러한 작품군을 총칭하는 단어이다. 다만 이러한 것들은 호러 ‘장르’의 특징들은 될 수 있을지언정 호러 ‘형식’의 특징들이라 할 수는 없는데, 애초에 게임의 구조와는 별 관련이 없는 요소들이기 때문이다(장르와 형식의 차이점에 대한 설명은 이드 소프트웨어 연대기 1 참조).
호러 형식의 주요 난관은 비가시적이거나 비실재적이면서도 시종일관 게임 전체를 지배하는 압박이다. 이러한 압박(숨겨진 적, 숨겨진 함정 등) 자체는 게임의 구간 별로 실재할 수도 실재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호러 형식의 게임들은 압박이 실재하는 경우와 실재하지 않는 경우를 플레이어가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가시적이고 확실한 요소들을 제시하지 않거나 숨김으로써 플레이어로 하여금 언제나 시야의 바깥이나 미지의 장소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받도록 한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상대방(게임 그 자체를 뜻한다)의 다음 수를 언제나 예측하거나 파악하고자 고민하게 되며, 따라서 이러한 심리적 압박은 곧 사고의 압박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사실 압박은 게임의 본질이기도 한데, 그것이 곧 난관이기 때문이다. 과거 여러 비평들에서 닌자 크리틱스는 게임이 플레이어로 하여금 자신의 플레이를 충분히 고려하고 복기하며 잘못된 점들을 수정해나가도록 ‘시험’하지 않는다거나 플레이어에게 제공된 여러 도구들을 ‘충분히 활용하도록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구조적 결함으로 지적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지적들은 표현만 다를 뿐 사실상 ‘게임이 플레이어를 제대로 압박하지 않는다’와 같은 말이다. 그렇기에 호러 게임의 압박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압박 즉 ‘난관’이 도대체 어떻게 다른 것인지 의아할 수 있다.
차이는 간단하다. 호러 게임의 압박은 미지에 대한 공포와 유사하게, 미지에서 기인한다. 게임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구조를 숨기기 때문에 압박이 가시적이지도, 그 실존 여부가 확실시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호러 게임에선 그러한 미지의 위협을 사전에 예측하거나, 거기에 대처하는 것이 플레이에 있어 가장 핵심적이다. 그것을 파악하는 것이 곧 경기의 전부인 것이다(순수한 호러 형식에 한해서 그렇다는 뜻이다).
반면 호러 형식을 갖추지 않는 타 게임들에선 그러한 압박이 가시적이다. 가령 Ninja Gaiden II나 Doom II의 적들이 위협적인 이유는 그것이 스스로의 규칙들이나 패턴을 숨기기 때문이 아니다. 적의 패턴과 AI를 모조리 파악 및 분석하더라도, 항상 시야의 저편이나 다대일 전투에서만 파생 가능한 숱한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어 플레이어가 그러한 변수들에 모두 정확히 대처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이것은 미지의 것에서 기인하는 압박이나 위협이 아니며, 경기의 핵심 또한 단순히 미지의 것을 예측하거나 파악하여 거기에 대처하는 것이 아니다. 적들을 완벽히 분석 및 파악한 것을 바탕으로, 이제 그것들의 공격을 어떻게 피하고 어떻게 반격하고 언제 어떤 기술을 활용할 것인지 하는 대처법들을 고려하고 또 그대로 수행하는 것이 핵심이다. 다시 말해, 그것을 파악하는 것 자체는 문제의 풀이에 있어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요건에 불과한 것이다.
이는 사실 앞선 비평에서 상세히 설명한 바 있는 어드벤처&RPG와 액션의 차이와도 어느 정도 유사하다. 어드벤처&RPG의 형식에서 주로 사용하는 난관들은 엔딩을 본 이후론 그 위력을 크게 잃는다. 퍼즐의 해답을 안다거나, 함정의 위치/대처법을 아는 것이 곧 난관의 풀이로 직결하는 탓이다. 즉 첫 번째 플레이에서, 경기의 구조가 완전히 가려져 있을 때 가장 강렬하고 가치 있다. 하지만 액션 게임은 엔딩을 본 순간부터 시작된다. 구조가 모두 드러나더라도 언제나 난관의 풀이엔 실시간 입력 즉 액션이 요구되므로, 다회차에서도 그 난관들이 위력을 크게는 잃지 않는다. 사고가 문제 풀이로 직결하지 않는 것이다(이드 소프트웨어 연대기 2와 3 참조). 그렇기에 우수한 DRPG는 어느 정도는 호러 형식으로도 규정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System Shock나 Wizardry, Thief와 같은 경기들이 그렇다.
이제 이를 바탕으로 Doom 3이 호러 형식을 활용한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호러 게임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이른바 ‘점프스케어’도 비가시적인 압박에 해당한다. 점프스케어를 채택한 경기는, 멀리서 관찰했을 땐 안전해 보이던 공간이 그 공간 안 어딘가에 놓여 있던 어떤 특정한 트리거를 플레이어가 발동시키는 순간 갑자기 매복해 있던 적들이 튀어나와 안전하지 않은 공간으로 변모한다. 그 트리거는 단지 가시적이지 않았을 뿐 언제나 그 공간에 존재했던 것이므로, 압박 또한 마찬가지로 언제나 실재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프스케어를 경험한 플레이어는 다른 구역들을 탐색할 시에도 항상 매복 공격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실제로는 안전한 구역에서조차 플레이어는 그 안전성을 확실히 보장할 길이 없으니 언제나 압박을 받는다.
Doom 3의 어두운 공간은 이러한 미지의 심리적 압박을 유지하고 환기하는 역할을 한다. 적들의 위치와 행동을 가림으로써 비가시적인 위협을 형성하는 것이다. 플레이어는 어두운 공간을 밝히기 위해선 반드시 주 무기를 손전등으로 교체해야 하며, 이는 플레이어를 무장 해제 상태로 만든다. 의외로 괜찮은 디자인이라 평가할 수 있다. 어두운 공간을 확인하여 심리적 압박을 없애는 대신 적이 반응할 수 있는 시간(= 플레이어가 적을 확인한 후 다시 손전등을 집어넣고 총기를 꺼내기까지의 딜레이)을 줄 것인가, 아니면 총기를 계속 들고 다니되 사운드만 듣고(모든 적들은 플레이어를 발견할 경우 특유의 사운드를 낸다) 적의 위치를 예측하는 식으로 플레이할 것인가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므로, 이론적으로는 리스크와 리워드가 나름 적절히 분배되어 있다. 특히 히트 스캔 적들이나 조용히 다가와 근접 공격을 하는 적들은 시야에 들어오는 즉시 처리해야만 아무런 피해 없이 상대할 수 있어서 손전등을 들고 다니다가 적의 시야에 들었을 경우 Nightmare 난이도 기준으로 곧바로 사망하기 십상이다. 물론, 적어도 이론적으론 그렇단 말이다.
문제는 이론에만 그친다는 점이다. 그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해보면 손전등을 쓰지 않고도 적들의 위치가 전부 가시적이다. 적들마다 눈이 반짝인다든가 공격 시에 빛이 난다든가 하기 때문이다. 애써 어두운 공간과 손전등 시스템을 디자인해놓고 양쪽 모두를 완벽히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디자인적 선택을 내려버린 것이다. 물론, 여전히 어두운 공간의 지형은 손전등 없이는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설사 적들의 눈이 빛난다든가 해서 그들의 위치가 완전히 노출이 된다 할지라도, 만약 Doom 3이 조준과 이동의 이원화 구조를 적극 활용해야만 전투 난관을 통과할 수 있는 게임이었더라면(즉 정상적인 FPS 게임이었더라면) 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조준할 곳은 적의 빛나는 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회피할 수 있는 공간은 오로지 손전등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여기서도 어느 정도의 리스크와 리워드의 분배가 적절히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Doom 3은 전혀 그런 게임이 아니다. 어두운 공간에서 적들은 많아봐야 2~3마리 정도나 같이 등장하고, 이들의 공격 속도나 투사체 속도가 지극히 느리기 때문에, 딱히 지형을 파악하지 않더라도 회피하는 것에 어려움이 없다. 거기다 대부분의 투사체들은 총으로 쏴서 중간에 폭발시킬 수가 있다. 그러니 굳이 이동으로 투사체를 피할 필요 없이, 조준과 슈팅만으로도 회피의 문제까지 해결되는 것이다. 아니, 아예 투사체를 발사하기도 전에, 대충 빛나는 곳에다가 총알 몇 발 갈겨주면 알아서 픽픽 쓰러져 나간다. 투사체는 적어도 포물선의 궤적으로 운동이라도 하지, 적들은 공격 중에 이동하는 경우가 전혀 없으니 조준에 실패할 일도 없다. 거기다 이러한 어두운 공간들이 등장하는 경우엔 플레이어의 후진을 막아놓지를 않는다. 즉 근거리 적들이 밝은 곳으로 나오도록 유도하는 것이 너무나도 쉽고 자연스럽게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Doom 3이 이 어두운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이 천편일률적이다. 그냥 적 하나가 어두운 곳에 매복해 있다가 튀어나오는 패턴을 게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똑같이 써먹는다. 한 가지 패턴만이 끝없이 반복되면은 그것은 더 이상 미지의 압박으로 기능할 수 없으며, 미지의 압박으로 기능할 수 없으면 호러 난관으로서의 의미나 효용성, 가치를 모조리 잃게 된다. 그리고 더는 플레이어에게 어떤 심리적 또는 사고의 압박을 가할 수 없다. 이는 곧 시스템의 깊이가 없음을 뜻한다. Doom 3의 호러란 기껏해야 첫 몇 십 분이 지나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패턴과 깊이를 상실해버리며, 이후부터는 아무런 사고의 압박이 이루어지지 않는, 평범한 레일 슈터로 전락해버린다. 호러인 시늉만 하는 레일 슈터에 불과한 것을 어찌 호러 게임이라 할 수 있겠는가?
물론, Doom 3의 음산하고 어두운 그래픽이나 사운드 등에서 ‘공포’를 충분히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공포란 것은 게임의 재미와 별반 차이가 없는 단어이다. 즉 거기엔 통용 가능한 일관적인 기준이나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 어떤 사람은 거미를 보는 것에서 공포를 느낀다. 그렇다면 거미가 나오는 모든 게임은 호러 게임인 것인가? 그 사람한테는 그렇다고 할지도 모르는데, 게임 비평, 특히 구조주의적 게임 비평에선 그러한 ‘비평 불가’하고 ‘객관적인 근거들로 밑받침할 수 없는 비이성적인(그 사람이 비이성적이란 게 아니다)’ 요소들을 배제해야 마땅하다. 결국 비평이기에 주관적인 가치 평가의 작업이 없어서는 안 되겠으나, 그러한 주관적인 평가는 모두 게임의 구조라는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즉 객관적인 주장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는 허상이지만, 적어도 게임 비평가들은 객관적인 근거들로 밑받침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을 펼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다. ‘공포’나 ‘재미’라는 것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분석할 것인가? 어떤 사람은 백지를 바라보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고 어떤 사람은 웹서핑에서도 재미를 느끼며 어떤 사람은 랜덤 박스에서도 재미를 느낀다. 그렇다면 이들 역시 모두 우수한 게임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인가? 이러한 기준에서는 게임 평가라는 것 자체가 아예 이루어질 수 없다. 어떠한 게임이건 적어도 누군가에게는 재미있을 수 있는데, 누가 감히 게임을 ‘평가’하겠다는 것인가? 그러니 재미나 공포와 같은 것을 완전히 배제하고 게임의 구조라는 객관적인 요소를 근거로 삼아야 한다는 게 요지이다.
Nioh 비평에 이어 또 다시 강조하건대, 본 웹진에선 어떠어떠한 게임이 사실 재미가 없다거나 공포를 느끼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는다. 누구든 무엇에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고 공포를 느낄 수 있다. 당신이 Sekiro나 Red Dead Redemption 2와 같이 본 웹진에서 크게 비판한 게임들을 재밌게 했다면, 좋은 일이다. 당신이 그 게임들을 플레이하고 또 다른 플레이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매 시간 행복과 즐거움을 느꼈다는 사실에 나 또한 기쁘다. 누구든 자신의 여가 시간을 그와 같은 방식으로 보내며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좋은 일이 아닐 수 있을까? 사실 나조차도 Sekiro는 ‘재미있게’ 플레이했고 Red Dead Redemption 2의 사냥 콘텐츠도(혹은 사냥 콘텐츠만) ‘재미있게’ 소비했다. 애초에 재미가 없었다면 Sekiro를 6회차씩이나 플레이하고 이후 업데이트되자마자 한 번 더 플레이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만 재미가 있었는가 없었는가 하는 것과, 게임을 구조적으로 분석하고 경기적 완성도를 따지어 가치 평가를 내리는 것은 완전히 별개일 뿐이다.
즉 Doom 3의 구조가 플레이어를 심리적/사고적으로 압박하지 않으므로 호러 형식이라 볼 수 없다는 말은, ‘세상 누구도 Doom 3에서 무서움을 느껴선 안 돼! 이딴 게 무섭다고? 이 겁쟁이 녀석! 엄마 품으로나 돌아가시지!’ 또는 ‘이 쓰레기 자식! 이딴 게 어떻게 재미있다는 거야! 네가 사람이냐!’라는 주장이 절대 아니다. 단순히 구조를 분석해보건대 플레이어를 압박하는 비가시적인 요소들이 그래픽과 사운드밖에 없으므로 호러 형식에 해당할 수는 없음을 지적하는 것뿐이다. 경기의 형식은 철저히 객관적이면서도 구조적인 규칙의 뼈대를 분석하여 판명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래픽과 사운드는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 말하자면 경기를 치장하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물론 경기에 크게 기여하는 시각적/청각적 요소도 존재하긴 하나(가령 Nioh 2의 빛나는 약점이라든가, Resident Evil 보스들의 눈이라든가, Doom Eternal의 갖가지 보조 효과음이라든가) 그렇지 않은 경우 그것들을 게임 비평에서 고려할 이유는 없다. 이 점 유의해주었으면 한다.
2-3. Nightmare
수준 낮은 레벨 디자인과 호러 형식이 아니라는 데에 대한 설명은 충분히 마쳤다. 그런데 사실, 호러 형식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게임을 혹평할 수는 없다. 제 아무리 선형적인 슈터라 하더라도 액션의 설계 여하에 따라 고평가할 수도, 저평가할 수도 있다.
Doom 3의 액션은 기본적으로 자원 제약을 첨가한 아레나 슈터이다. 자원 제약은 언제나 Doom 시리즈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였고 여전히 그렇다. Doom I이건 II이건 리부트이건 Doom Eternal이건, 자원 제약이 빠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Doom 비평에서도 지적한 바 있듯, 이는 무기의 활용과 진행 경로 설정에 큰 영향을 끼친다.
Doom 3도 얼핏 보면 자원 제약 시스템이 세분화되어 있다. 탄약은 물론이고 스태미나와 재장전(당연하게도, 이 또한 일종의 자원 제약이라 볼 수 있다. 액션 게임에선 시간도 하나의 자원이다) 등을 일단 구현해놓긴 하였다.
그런데 대체 이것들이 게임 내에 왜 존재하는 것인지 이유를 알기가 어렵다. 시스템에 깊이가 없는 것을 넘어서, 그냥 완벽히 무쓸모하고 무의미하다. 스태미나는 적어도 1분 30초 정도는 멈춤 없이 달려야만 모두 바닥이 날 정도로 넉넉하고 탄약도 게임 내내 부족할 일이 전혀 없다. 표방하기만 자원 제약이지 제약으로서 기능하지를 않는다. 비유하자면 Dark Souls의 스태미나가 50번 연달아 구르고 50번 연달아 공격하고 5분 내내 달려야만 완전히 소모되는 것과 같다. 이럴 거면 스태미나가 있을 필요가 있겠는가? 스태미나 시스템에 어떤 의미가 있으려면 적어도 전투 시퀀스가 유지되는 시간이 스태미나가 완전히 동이 나기까지 걸리는 시간보다는 길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Doom 3의 전투는 극소수의 예를 제외하고는 최소 10초 최대 20초 정도면 모두 종료된다. 그리고 전투와 전투 사이엔 스태미나를 완전히 회복하고도 남을 만큼의 여유 시간이 제공된다. 그러니까, 전투 상황 내내 달리기를 누르고 있어도 아무 상관없는 것이다.
스태미나의 무의미함은 달리기와 걷기 간의 선택의 무의미함으로 직결하고(왜냐하면, 잠자기가 졸기의 상위호환이듯이, 달리기가 모든 방면에서 걷기의 상위호환이기 때문이다. 산책을 즐기고 싶지 않은 한 말이다) 이는 나아가 위치 선정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The Evil Within은 Resident Evil 4를 현대적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대각선 이동과 달리기, 그리고 자유로운 방향 전환을 추가하였다. 대신 거기서 기인하는 불합리함(적의 입장에서 불합리하다는 뜻이다)을 고작 2초 정도 달리면 바닥나는 스태미나(업그레이드하더라도 그리 넉넉하지 않다)라는 제약을 추가하여 위치 선정의 중요성을 유지하면서 해결했다. 단순히 달리기와 대각선 이동이 불가능했던 Resident Evil 4의 ‘제약’을 완전히 없애는 대신, 또 다른 층인 ‘자원 관리’ 요소를 추가하여 위치 선정을 보다 현대적인 전술 요소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처럼 잘만 디자인한다면 경기적 완성도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게 스태미나 시스템인데, Doom 3은 무슨 연유로 이리 디자인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왜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솔직히 더 분석할 가치도 못 느낀다. 동 날 일 없는 탄약도 마찬가지로, 굳이 설명하면서 독자들의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Doom 3의 스태미나와 탄약은 자원 제약을 흉내 내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결국 자원 제약과 호러 형식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멀고도 먼 길을 돌아서 왔지만, 이 기나긴 글은 Doom 3이 왜 호러 게임이 아니고, 또 왜 자원 관리가 요구되는 게임이 아닌가를 설명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이렇게 구조적으로 의미 없는 것들을 모두 벗겨내면 남는 것은 ‘선형적인 일인칭 슈터’란 형식뿐이다. 드디어, 액션에 대한 설명을 조금 해보겠다.
Doom 3의 Nightmare는 Quake나 Quake II의 Nightmare와 달리 나름 게임 플레이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체력이 25 초과일 시 5초 당 5씩 감소하며, 맵 곳곳에 배치되어 있던 체력팩이 사라진다. 여전히 체력을 회복시켜 주는 체력 기계(정확한 명칭을 모르겠다)는 그대로지만, 체력팩만큼이나 빈번히 등장하지는 않는다. 체력 25는 대부분의 공격에 일격사당하거나 2방 정도밖에 버틸 수 없는 양이다. 대신, 소울 큐브라는, Nightmare 미만의 난이도에선 게임의 중후반부부터나 주어졌던 무기를 시작부터 사용할 수 있다. 해당 무기는 보스를 제외한 모든 적을 일격사시키며, 100에서 적이 사망한 시점의 플레이어 체력을 제한 만큼 몇 초에 걸쳐 천천히 회복시켜준다. ‘체력을 100까지 회복시켜준다’라 표현하지 않은 이유는, 엄밀히 말해 체력이 회복되는 동안 적에게 공격을 받으면 그 피해량만큼 100에서 제한 수치까지만 회복되기 때문이다. 이 소울 큐브는 적 종류를 불문하고 대략 7마리 사살하면 재충전된다. 허나 소울 큐브는 총기와 달리 즉발되지 않고 사전 딜레이가 비교적 긴 편이기 때문에,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며 히트 스캔 공격을 하는 Commando와 같은 적들을 상대로 사용하고자 한다면 위치를 사전에 예측하여 발사해야 적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일이 없다.
이러한 디자인에서 파생되는 전투 수행 방식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a. 기본적으로 체력이 낮으므로, 적이 공격할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적들의 매복 위치나 소환 지점들을 모두 외워두고 진행한다.
b. 적의 위치를 전부 외우는 것으로조차 피격 받지 않고 돌파하기 어려운 구간은 소울 큐브로 체력을 일시적으로 높여서 진행한다.
c. 처리하기 까다로운 적들(Commando나 Archvile 등)을 소울 큐브로 단숨에 처리한다.
슈팅 게임 매니아들은 눈치 챘을지도 모르겠지만, Doom 3에서 소울 큐브의 역할은 슈팅 게임에서 ‘봄Bomb’의 역할과 상당히 유사하다. 거기다 적들의 위치 등을 모조리 암기한 것을 바탕으로 플레이해야 한다는 점에서 암기형 슈팅 게임과 구조적 유사성을 보인다. 그런데 사실, 이는 Doom 시리즈에서 Doom 3만이 가진 독특한 특징이 아니다. 가령 Doom과 Doom II의 비평에서 지적한 바 있듯, 해당 게임들의 Nightmare 난이도에서도 역시 각각의 구간에 적합한 무기를 먼저 고려해두고, 해당 구간에 진입하기 직전에 그 무기로 교체해야만 했다. 거기다 소울 큐브는 BFG와도 상당히 유사한데, BFG가 한 ‘난관’을 통과시켜주거나 적어도 거기에 궤멸적인 타격을 가한다면, 소울 큐브는 한 개인을 제거한다는 차이점만이 있을 뿐이다. 물론, Doom 3에도 BFG는 등장하지만 말이다.
즉 이러한 디자인 자체는 Doom과 Doom II에서 그대로 계승해온 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이 두 게임은 적에게 피격당하는 것을 기본 전제로 삼고 플레이하는 게임인데, 변수 요인이 너무나도 다양하여 플레이어가 그것들을 모두 완벽히 통제하기란 불가능한 탓이다. 즉 각각의 구간들에서 등장하는 적들을 모두 암기하고 어떤 무기로 교체해야 할지 또 어디서 어떤 아이템을 집어야 할지 등등을 다 사전에 짜놓고 플레이하더라도, 언제 어디서 플레이어가 예측 못 한 변수가 발생할지 모르기에, 언제나 플랜 B, 플랜 C와 같은 대안들까지 활용할 것을 고려하며 플레이해야 한다.
반면 Doom 3은 변수 요인이 전혀 다양하지 않다. 난관 하나 당 등장하는 적의 수는 2~3마리 남짓으로 줄었고 경직률이나 대미지 주사위 굴림, 적 부활 시간과 같은 확률적인 변수들도 전부 사라졌다. 그렇기에 플레이어가 모든 변수를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며, 이로 인해 체력을 25로 고정하다시피 해놓은 것은 상당히 합당한 디자인적 선택이라 할 수 있다. Nioh 비평에서도 지적했었지만, 플레이어가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있는 게임은 적어도 최고 난이도에서라도 응당 모든 변수를 통제하도록 요구해야만 한다. 그것이 그와 같은 부류의 게임들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그리고 가장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게임 디자인이다. 플레이어에게 어떤 도구를 쥐어주었다면 그 도구를 풍부히 활용하도록 레벨 디자인이나 시스템 등으로 압박하고 요구해야 하는 것이 게임 디자이너로서의 윤리이니 말이다. 달리 말해, 변수가 모두 구조적으로 통제 가능하면서, 최고 난이도에서조차 적들에게 단 한 대도 맞지 않을 것을 요구하지 않는 게임은 불합리하다. 이러한 부류의 게임들 중 대표적으로 Devil May Cry나 Nioh는 모두 플레이어가 변수를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작품이며, 두 작품의 최고 난이도 또한 적들에게 일격사 당하도록 강제한다.
그렇기에 일격사 디자인은 그 자체로는 불합리하다 할 수 없다. 가령 Doom이나 Doom II와 같은 게임에서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플레이하도록 요구한다면, 그것은 불합리하다. 애초에 적에게 피격당하는 것을 기본 전제로 삼은 게임이기 때문이다. 반면 Nioh나 Devil May Cry에선, 철저히 합리적인 게임 디자인이다.
그래서 Doom 3이 체력에 소극적인 제한을 둔 것은 나름 일격사 디자인을 활용하고자 시도는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 게임의 다른 모든 부분들이 그러하듯, 이조차도 시늉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우선, 암기형 슈터라고 불리우는 작품들은 절대 암기만으로 완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Ikaruga(이카루가)>에서 흑탄과 백탄의(또는 흑탄과 백탄을 발사하는 적들의) 등장 순서를 외우고 플레이어가 기체를 놓아야 하는 위치를 외운다 하더라도 일단 액션 수행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그러한 ‘암기된 요소’들을 바탕으로 게임을 깨나갈 수가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Doom과 Doom II도 그렇다(각 게임의 비평 참조). 만약 암기만으로 깰 수 있었더라면 그것은 사실 액션 게임이라 하기도 부끄럽다. 액션 게임의 특징은 사고가 문제 풀이로 직결하지 않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게임들의 관건은, 게임의 난관이 암기 이상의 무언가를 요구하는가이다.
Doom 3은 요구하지 않는다. 일단 대부분의 적들이 샷건 한 방이나 두 방에 사망하기 때문에, 그들의 위치로 가서 좌클릭 한 번 눌러주면 전투가 끝난다. 또 적들의 투사체 공격은 플라즈마 라이플로 쉽게 지울 수 있어 먼 거리에서도 적에게 피격 당한다는 위험 부담이 전혀 없으며, 앞서 언급하였듯 탄약도 넘쳐나기에 멀리서 플라즈마 라이플로 적들을 모두 도륙내는 것을 방지할 적절한 자원 제약 시스템도 미비하다. 거기다 소울 큐브는 지형을 통과하기까지 한다. 즉 적의 위치를 알고 있기만 하면, 대충 그쪽 방향으로 마우스 커서를 돌려서, 적이 반응할 새도 없이 소울 큐브를 발사하여 제거하는 것이 가능하다.
거기다 적 디자인도 Quake도 아니고 Doom과 Doom II보다도 수준이 낮다. 대부분의 적들이 아무런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단순히 던지는 투사체의 모양 정도의 차이만 가질 뿐이다. 사실상 원거리 적(투사체/히트스캔)과 근거리 적 단 세 종류밖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d. 천천히, 엄폐물 뒤에 숨어 빼꼼샷을 한다든가 적들을 입구 쪽으로 유인해내는 식으로 복도 레벨들의 전투를 수행하고, 아레나 전투에선 적 소환 위치를 모두 외워둬서 소환되자마자 처치한다.
히트 스캔 공격을 하는 적이건 뭐건, 빼꼼샷이면 모두가 공평히 삭제 당해버린다. 이쯤 되면, 비평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도 상당히 맥 빠진다. 열심히 본 게임에 이러저러한 요소들이 있고 그것들이 지향하는 바는 이러저러하고 이것은 이러저러한 형식을 갖추었거나 적어도 갖추려고 노력했고 이것은 이러쿵저러쿵하다 하고 설명해본들 뭐하겠는가? 어차피 그것들이 모두 게임에서 제대로 기능조차 하지 않는데 말이다. 열심히 구조적으로 분석해보았자 보이는 것은 무언가가 되기 위한 시늉만 열심히 해대는 허상뿐인 것들이니, 어떻게 맥이 안 빠질 수 있겠는가? 결국 호러 디자인도, 일격사 디자인도, 자원 제약 디자인도, 다 그냥 거적 데기처럼 겹겹이 기워 넣었을 뿐 깊이가 아예 없고 서로 지극히 모순적이라서 아무 의미도 가치도 찾을 수 없다. 이러한 게임을 비평해보겠답시고 3번씩이나 엔딩을 보아야 했다는 사실에 깊은 자괴감을 느낀다. 전부 다 흉내 내기이자 공허한 시늉에 불과한데 말이다.
3. Age of Pretense
그럼에도 두 게임의 비평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서문에서 밝힌 세 목적들을 모두 달성하긴 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처럼 단지 어떤 것을 표방할 뿐인 게임과, 실제로 그 어떤 것을 구조적으로 잘 갖춘 게임은 절대 같지 않다. 안타깝게도, 현대의 대부분의 게임사들, 특히 AAA 게임사들은 구조에 대한 깊은 이해나 고민 없이 상품을 찍어내기에만 급급하다. 그들의 상품은 어떤 목소리이다. 화려한 그래픽과 번쩍이는 효과와 아득하게 발전한 기술, 그리고 멋있어 보이는 스토리라는 수사로 치장한 채 무언가를 보장하는 목소리이다. 멀리서는 이것이 분명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나, 가까이 다가가 잘 관찰해보면 실질적으로 이 목소리가 전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끝도 없는 중언부언만을 일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공허하다. Doom 3을 보라. 저 어색한 폴리건 덩어리들을 한번 잘 봐보길 바란다. 제 아무리 당대 최고의 기술을 동원하여 어둡고 음산하고 유려한 그래픽을 빈약하고 앙상한 구조에 끼얹었다 할지라도, 고작 16년만 지나도 저렇게나 낡아 보인다. 그 낡은 먼지 같은 것들을 다 닦아내니 남는 것은 경기적으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앙상한 뼈대뿐이다. 반면 Doom과 Doom II, 그리고 Quake는 여전히 비견될 게임이 없을 정도로 우수한 경기를 제공한다. 껍데기를 다 벗겨내어도 그 기둥이 워낙 단단하여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덕분에 경기로서의 생명력을 아직까지도 유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물론 게임 또한 하나의 프로그램이자 기술이므로 기술적 발전을 앞당긴 작품들을 마냥 하대할 수는 없다. 루킹 글래스 스튜디오의 작품들은 그 경기로서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다른 모든 게임들을 아득히 추월하는 기술성으로도 크나큰 호평을 받았었다. Quake 또한 마찬가지로 완벽한 프리 룩을 활용할 수 있는 3D 레벨을 구현한 기술적 면모가 돋보였었다. 그래서 혹자는 Doom 3 역시 단순히 기술적 발전만으로도 고평가 받을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비단 Doom 3뿐만 아니라 The Last of Us Part II와 같이 대자본이 투입된 AAA 상품이 발매될 때마다 그와 같은 주장을 펼치는 누군가는 꼭 한 명씩 등장한다.
그러나 Quake의 비평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 게임이 제 아무리 기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할지라도, 결국 기술이 게임 그 자체이지는 않다. 게임은 어디까지나 플레이어와 규칙이 시각적으로 상호작용하며 경쟁하는 경기이며, 따라서 그것에 대한 평가도 언제나 경기적 완성도에 대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기술적 발전이 게임 디자이너들로 하여금 다룰 수 있는 도구들의 폭을 넓혀주는 것은 사실이다. Ultima Underworld를 통해 3D 레벨에의 탐색과 창발적 상호작용이 보다 폭넓게 활용됨으로써 3D RPG와 속칭 ‘이머시브 심Immersive Sim'이라 불리는 부류의 작품군이 탄생할 수 있었듯 말이다.
Doom 3은 이러한 게임들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다. 단순히 그래픽적으로만 발전하였을 뿐 기술의 발전을 전폭적으로 활용하여 게임 디자인의 확장 내지는 발전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아니, 오히려 기존의 FPS와 호러(또는 호러 시늉을 하는 무언가)의 형식 양쪽 모두에서 크게 퇴보했을 뿐이다. 기술적 발전이라는 것은 언제나 게임의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만 의미 있는 것이다.
결국 id Software의 싱글 플레이어 암흑기는 기술적 발전은 있었으나 경기로서는 퇴보에 퇴보만을 거듭하였던 시기이다. Doom 3 이후 id Software는 거의 모바일 게임 개발에만 맹진하였으며, 2011년에 발매한 Rage 이후로도 무려 5년이라는 긴 공백기를 가졌다. Quake III: Arena나 Quake Live와 같은 멀티 플레이어 경기들을 운영하긴 하였고 특히 Quake III의 중요성을 절대 간과할 수는 없으나, 이조차도 1999년에 발매된 작품이며, 이후론 제대로 된 싱글 플레이어 경기는 내놓을 수 없었다. 그 기간 동안 Activision(액티비전)과 EA(일렉트로닉 아츠)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았었다는 소문도 있었고 게임을 수도 없이 개발 중단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한 소문들 중 id Software가 새로운 Doom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확실히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었으나, 2012년에 유출된, Doom인지 아닌지도 모를 신작의 스크린샷들 정도나 떠돌았었을 뿐 소문의 신빙성을 보장할 길이 없었다. 게이머들은 다만 기다렸다. 게임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Doom이 신작으로 다시 돌아올 날을, 여러 루머들과 가십들을 뒤적거리며, 보다 성실한 자들은 Doom과 Doom II에 꾸준히 재도전하며.
Quake II
★☆
1.5/5
Doom 3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