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게임 비평을 시작하기 전 작성한 글이라 지금의 제 관점과는 다른 부분이 다수 포진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본 게임에 대한 제 전체적인 생각은 여전히 같으나 비평 수정이 불가피합니다.
여유 시간이 생기는 대로 전체적으로 수정할 계획입니다.

닌자 크리틱스 게임 비평은 게임을 재미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경기적 완성도로 평가합니다.
즉 당신이 RDR 2를 재미 있게 플레이한 것을 문제 삼는 게 아닙니다.
당신 모두의 취향을 존중합니다. 당신들이 어떤 게임에서 재미를 느꼈다는 것은 물론 좋은 일입니다.
다만 게임 비평에선 취향과 같이 본질적으로 일관적일 수 없는 잣대를 배제해야할 뿐입니다.
이 점 유의하여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발매일 2018.10.26
개발사 Rockstar Studios
실기 PlayStation 4 Pro



1. 게임과 현실, 그리고 현실의 함정


2018년 10월 26일, 락스타 게임즈가 <레드 데드 리뎀션 2(Red Dead Redemption 2)>를 발매했다. 이 게임은 발매 전부터 현실적인 디테일과 다양한 상호작용, 그리고 스토리텔링을 장점으로 내세웠고 웹진들 역시 거기에 무게를 두고 호평을 내렸다. 아예 차세대 오픈월드 게임이란 별명까지 붙여줬다. 하지만 웹진들의 리뷰를 읽으며 나는 그들이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게임에서 현실성 내지는 사실성이라는 것은 솔직히 게임의 가치추구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애초에 게임이 현실을 완벽히 복사해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나 무엇보다도 애초에 그럴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현실성은 게임의 몰입에 도움이 된다는 점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게임들은 그 현실적인 디테일을 취사선택한다. 단순히 현실적이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아무 디테일이나 집어넣지 않는다. 어떤 사실적인 묘사가 게임성에 도움이 된다면 구현하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구현하지 않는다. 요컨대 게임을 개발할 때의 목적은 여러 디테일들 구현시켜놓고 자기들끼리 ‘와 디테일 쩐다' 하면서 자축하는 게 되어선 안 된다. 이러한 현실성의 함정에 빠져 게임 개발의 목적이 게임을 현실에 가깝게 만드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물론 RDR 2에 사실적인 디테일이 많은 건 사실이다. 아마 내가 해본 게임들 중 가장 현실에 가까운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게임들이 RDR 2보다 디테일이 떨어지는 것 역시 아니다. 수많은 웹진들과 유저들의 주장과는 달리 말이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린가. 방금은 RDR 2가 가장 디테일하다며? 아마 글쓴이가 드디어 정신병에 걸려 궤변이나 늘여뜨려 놓고 있나 보다.

  궤변이 아니라 사실이다. 왜냐하면 RDR 2가 가진 ’디테일‘과 게임에서 흔히 말하는 ’디테일‘은 엄연히 다른 뜻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서는 RDR 2의 디테일이 보통 게임에서 말하는 디테일의 한 카테고리에 속해 있다고 할 수 있다.

  RDR 2의 디테일이라는 것은 현실을 모방하고자 노력한 흔적이다. 이 게임은 대부분의 상호작용에 모션이 들어가 있다. 말 먹이기, 말 닦기, 말 묶기, 말 타기, 말에서 내리기, 말에서 떨어지기, 안장에 총 집어넣기, 안장에서 총 꺼내기, 요리하기, 음식 먹기, 루팅 하기, 템 줍기, 서랍 열기, 서랍 닫기, 씻기 등등 모든 행동들에 모션이 존재한다. 또 잠도 자고 무기도 계속 닦아주며 좋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이를 현실적인 디테일이라고 한다. 이러한 디테일 덕분에 RDR 2는 서부 시대를 그대로 재현한 듯한 느낌을 준다. 광활한 초원을 달리다 보면 내가 정말로 카우보이가 된 듯하다. 그 어느 게임보다도 말을 실제로 타는 듯한 느낌을 잘 살렸다. 여러 비주얼적인 디테일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그렇다고 레드 데드 리뎀션 2가 다른 그 어떠한 게임들보다도 디테일한 건 절대 아니다. 현실에 가장 가깝다는 말이 가장 디테일하다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게임들에서의 디테일은 쉽게 말해 두 가지다. 하나는 스토리텔링에서의 디테일이다. 쉽게 말해 이 디테일은 내적 일관성을 위한 것이다. RDR 2가 구현한 디테일의 목적이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라면 이 내적 일관성을 위한 디테일은 어떠한 게임이 그 자체만으로도 말이 되게 도와준다. 즉 게임이 현실과 분리된 독자적이고 비현실적인 가상 세계를 본바탕으로 두더라도 플레이어들이 충분히 그 세계를 납득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이는 핍진성과도 연관되어 있다.




 간단하게 설명해보겠다. 슈퍼맨은 강하다. 이 미국 패권주의의 상징에게 대적할 자는 아무도 없고 현실 속 미국처럼 그야말로 못 하는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슈퍼맨에게도 약점이 있는데, 바로 크립토나이트다. 당연하게도 그렇게나 강력한 슈퍼맨의 약점이 무슨 초록색 돌덩이라는 건 현실적인 관점으로 생각했을 때 전혀 말도 안 된다. 애초에 슈퍼맨의 존재부터가 현실적이지 않다.
 하지만 만약 슈퍼맨이 여러 만화나 게임, 영화 등의 매체에서 일관성 있게 크립토나이트에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건 내적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슈퍼맨은 언제 어디에서나 크립토나이트에 약하다. 그리고 작가들은 이 점을 이용해 슈퍼맨이란 프랜차이즈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 만약 슈퍼맨에게 약점이 없었다면 슈퍼맨 프랜차이즈는 이미 멸종하고 말았을 것이다. 왜 슈퍼맨이 크립토나이트에 약한가에 대해 현실의 관점에서 설명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게 슈퍼맨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작품들이 제대로 굴러가기 위한 원칙이기 때문이다. 판타지 소설에서 마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현실적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갑자기 그 원칙을 깨버리지만 않는다면 문제없다.
 그런데 어느 날, 슈퍼맨이 갑자기 배트맨이 방사한 크립토나이트 가스에 뒤범벅이 되어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리고 그에 대한 아무런 부가 설명이나 복선이 없었다면, 그건 내적 일관성을 깨버린 것이다. 즉 작가는 슈퍼맨이 갑자기 크립토나이트에도 끄떡없는 모습을 그려내고 싶다면 왜 그런가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붙이거나, 복선을 깔아두어야 한다.
 요컨대 스토리텔링에서의 디테일이란 이러한 내적 일관성이 깨지지 않도록 돕는 복선이나 설명 따위다. <프레이(Prey)>라는 게임을 예로 들자면, 프레이에선 타이폰이라는 외계 생명체가 나온다. 이 외계 생명체의 유전자를 이용해 플레이어는 타이폰이 가진 여러 능력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유전자를 너무 많이 섭취하면(섭취한다는 표현은 좀 우습긴 하나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다) 포탑들이 플레이어를 타이폰 생명체로 감지하여 공격한다. 왜냐하면 타이폰 유전자를 더 많이 섭취하면 섭취할수록 플레이어 인체 내부의 타이폰 유전자 비중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 포탑들은 꽤 강력하여 적이 되었을 때 큰 난관으로 다가온다. 이게 바로 게임의 디테일이 내적 일관성을 유지하는 장치로 이용되며 동시에 게임 플레이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예다. 단순히 현실성을 모방하기 위한 게 아니더라도 게임의 이러한 요소들은 디테일이 될 수 있다.
 내적 일관성을 위한 디테일들을 아예 게임의 컨셉으로 잡아 발전시켜서 명작이 된 작품으로는 <뉴 베가스(Fallout: New Vegas)>가 있다. 이 게임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모션도 엉성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행동과 선택이 정말로 세계에 영향을 끼친다. 예컨대 어디서 NCR을 도우면 다른 데에서 NCR 장교가 플레이어를 알아보고 그때 그 일 덕분에 도움 많이 되었다고 언급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헬리오스 원에서 NCR 병력을 소탕하면 다른 NCR 장교가 '웬 떠돌이 배달부가 헬리오스 원에 있던 우리 병력을 모조리 싹슬이했지 뭐야!'하는 식으로 언급한다. 또 플레이어가 게임 내에서 미스터 아파트 같은 주요 인물을 죽이면 일반 NPC들이 그 사람의 죽음을 계속 언급한다.
 여기까지는 레드 데드 리뎀션 2 역시 제대로 갖추고 있는 요소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RDR 2는 NPC들이 주인공인 아서 모건의 행동에 몇 줄의 대사를 던지며 반응할 뿐, 아서 모건이 스토리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정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게임에 선택지가 없다는 말은 아니나 정작 스토리의 중요한 분기에서는 선택지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호제아와 더치가 대립할 때 플레이어는 누구 의견을 지지할지 선택할 수가 없다. 이 게임에서 선택지란 대부분 은신 플레이를 할지 정면 돌파를 할지 고르는 거나 동료를 왼쪽에 배치할지 오른쪽에 배치할지 고르는 수준이다. 그리고 이 정도 선택지들은 다른 게임들도 거진 다 가지고 있다. 다만 RDR 2처럼 대놓고 광고하지는 않을 뿐이다. 와! 이것 좀 보세요! 우리 게임은 동료를 왼쪽에 배치할지 오른쪽에 배치할지 고를 수 있답니다! 심지어 어디다 배치하든 간 결과는 똑같지만 말입니다! 참 대단하죠? 이를 ‘Illusion of Choice’ 라고 부른다. 유의미한 선택지는 거의 절대 주지 않고 쓰잘데기 없는 선택지들만 던져주며 마치 플레이어가 스토리를 선택했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다른 게임들엔 이미 이러한 선택지들이 게임 플레이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데 말이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좀 비꼬긴 했으나 마치 RDR 2에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듯이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 한 말이었다. 단순히 두 게임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것이며, 모든 게임의 스토리가 비선형적이고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할 필요는 없다. 뉴 베가스에서는 메인 스토리와 관련된 모든 NPC들이 플레이어의 행동과 선택을 거의 언제나 언급하고 그 행동에 반응한다. 그에 맞추어 기존과 다른 퀘스트를 준다. 플레이어가 그 어떠한 선택을 하든 간 뉴 베가스는 그 선택에 알맞은 게임 플레이를 제공한다. 즉 개발진이 선택들의 경우의 수를 최대한 계산하여 어떻게 플레이하든 적어도 말은 되게 각본을 세심하게 써넣은 것이다. 덕분에 뉴 베가스는 메인 스토리의 내적 일관성을 계속 유지한다. 메인 스토리 라인 자체는 빈약할지언정 적어도 내적 일관성이 깨지는 순간은 이 게임의 스케일을 생각했을 때 사실상 없는 수준이다.
 뉴 베가스조차도 이러한 부분에서 완벽하진 않으나(예컨대 하얀 장갑 공동체 미션에서 모티머는 이미 플레이어에게 자신들이 인육을 먹는다고 고백했는데도 자꾸만 그 사실을 말한 적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적어도 정말 살아있는 세계와 상호작용한다는 느낌은 준다. 그 누굴 죽이더라도 스토리는 말이 되게 이어진다. 몇몇 죽일 수 없는 에센셜 NPC가 있으나 적어도 폴아웃 3, 4보다는 훨씬 적은 편이다. 때문에 뉴 베가스는 다회차 플레이를 하면서도 스토리가 이전과 똑같이 진행되는 것 같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는다. 완전히 똑같은 선택을 한 경우라면 몰라도 말이다.
때문에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세계는 뉴 베가스 같은 디테일이 뛰어난 다른 오픈월드 게임들과 비교하면 정말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플레이어가 세계에 거의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 것 같다. 심지어 오픈월드 게임이 아닌 프레이나 디스아너드보다도 더욱 상호작용 요소가 적다. 디스아너드는 플레이어가 적을 얼마나 죽이느냐에 따라 세계가 변화하고 프레이는 죽일 수 없는 NPC란 게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슨 NPC를 죽이든 간 스토리가 이어진다. 뉴 베가스처럼 말이다. 심지어 가장 중요한 캐릭터들 중 하나인 제뉴어리를 죽이더라도 스토리는 말이 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선택들과 디테일은 플레이어가 실제로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세계와 끊임없이 교류하고 그 세계를 바꾸어 나갈 수 있도록 해준다. 레드 데드 리뎀션 2는 그렇지 않다.


이 게임에서 동료들은 있으나 마나한 존재들이다. 상호작용은 무의미하다.


또 디테일은 게임의 주제를 강조하기 위한 도구로도 사용된다. 블러드본은 스토리나 세계관, 그리고 게임 플레이에서 계속 피를 강조한다. 심지어 회복 포션도 수혈액이고 화폐 단위부터가 블러드 에코다. 프롬 소프트웨어는 이 주제를 더욱 강조하고자 적이 피격당할 때마다 튀기는 피가 플레이어의 옷에도 묻도록 했다. 때문에 적을 열심히 때려잡다 보면 어느새 내 캐릭터가 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디테일은 게임의 주제를 계속 상기하고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어찌 보면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디테일이란 것들이 이 카테고리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블러드본이 단순히 옷에 피가 튀긴다는 점 딱 하나만으로 찬사를 받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이러한 식의 소소한 디테일은 본래 그런 것이다. 개발진이 신경 쓴 디테일을 눈치채면 소소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나 결국 그 자체만으로는 좋은 게임이란 평가를 받기엔 부족하다. 사실 옷에 피가 묻는다는 점 딱 하나 때문에 블러드본이 차세대 오픈월드 게임이라고 평가하는 글을 읽어보고 싶긴 하다. 물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주장은 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요컨대 보통 게임에서의 디테일이란 현실을 완벽히 모방하는 걸 목적으로 두지 않는다. 그냥 별생각도 없이 여러 구차한 모션들 넣어두고 ‘이건 현실이랑 비슷하니까’ 하며 자축하기 위함이 아니란 말이다. 디테일은 내적 일관성을 깨지 않고자 충분한 설명과 복선을 깔아두거나 게임의 주제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아까 말했듯 현실적인 디테일들이 게임의 몰입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다. 하지만 지나치게 현실적인 디테일과 모션은 몰입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몰입을 깨버린다.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 이러한 현실적인 디테일은 구차한 잡일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잡일을 하는 게 레드 데드 리뎀션 2를 하는 이유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게임은 원래 그거 하는 게임이니 그건 단점이 아니다’라는 식의 변호는 사실상 아무 말도 안 하는 것보다 나을 게 없다. <몬스터 헌터(Monster Hunter)>는 원래 노가다 하는 게임이고 실제로 노가다 요소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제대로 된 무기나 장식주를 만들려면 같은 몬스터를 반복해서 사냥해야 한다. 때문에 몬스터 헌터 월드에 와서는 노가다 요소가 많이 줄었음에도 여전히 노가다 요소를 단점으로 꼽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이에 대해 ‘몬헌은 원래 노가다 하는 게임이라 노가다 요소는 단점이 아닌데?’라고 옹호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적어도 비판과 평가에 있어선 이러한 옹호는 전혀 말도 안 된다. 노가다 요소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존재치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분명 같은 몬스터를 반복적으로 ‘사냥’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노가다 요소는 몬스터를 사냥한다는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좋은 면도 있다. 다만 그러한 논리대로라면 모든 게임의 모든 단점에 대해서도 똑같이 옹호할 수 있을 뿐이다. 어떠한 게임이 재미있다고 말하는 것과, 그 게임에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그런데 차라리 몬스터들을 반복적으로 사냥하는 건 나름 재밌기라도 하지 RDR 2의 지루한 잡일들은 재미도 없다. 재미도 없을 뿐더러 게임성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앞서 예시로 든 뉴 베가스나 디스아너드, 프레이 같은 게임들과는 달리 디테일이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끼치거나 하지는 않는단 말이다. 그냥 총이나 좀 더 닦아주고 말이나 좀 더 먹여주고 루팅이나 좀 더 오래 하는 수준이다. 애초에 이 게임엔 허기 수치나 피로도 같은 것도 없다. 밥을 적게 먹으면 저체중에 걸리긴 하나 저체중과 과체중의 차이는 거의 무의미한 정도다. 이 게임에서 밥을 먹는 행위란 그냥 다른 게임에서 회복 포션을 먹는 행위와 거의 다를 게 없다. 플레이어는 밥을 전혀 먹지 않고서도 게임을 깰 수 있다. 잠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생존 게임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생존 요소조차 RDR 2엔 없는 것이다. 대신 무슨 괴상한 루팅 모션, 어이없는 조작감, 지나치게 협소한 상호작용 판정 범위만이 있을 뿐이다.
결국 RDR 2의 디테일들이란 디테일만을 위한 디테일이고 불편함만을 위한 불편함이며 현실성만을 위한 현실성이다. 모든 게임이 무조건 편하기만 해야 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고, 개인적으로 편의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게임을 저평가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크 소울 같은 게임은 미니맵이나 네비게이션 시스템을 희생하며 아예 길 찾기를 주요 게임 플레이로 만들었다. 이 게임에선 길을 헤매면 헤맬수록 곳곳에 숨어 있는 아이템들을 더욱 잘 발견한다. 이 아이템들은 플레이어가 길을 헤매더라도 쉽게 포기할 수 없게 적절한 동기와 보상으로써 작용한다. 편의성의 희생이 게임성에 큰 도움이 된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RDR 2는 편의성을 희생함으로써 얻은 게 전혀 없다. 그러한 디테일들을 보고 감탄하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느끼는 사람은 충분히 존재할 수 있으나 좋은 게임이 되기엔 지루한 루팅 모션보다는 더 큰 무언가가 필요하다. 바로 메인 컨텐츠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게임의 메인 컨텐츠는 레드 데드 리뎀션 2가 가진 가장 큰 단점이다.
2. 길 잃은 바이킹




레드 데드 리뎀션 2에서는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두 가지 요소가 양립한다.

이 게임의 오픈월드 세계는 정말 아름답다. 물론 명예도와 지명수배/현상금 시스템은 엉성하기 짝이 없다. 특히 명예도 시스템은 시스템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일관성이 없다. 하지만 그게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비록 시스템들이 엉성하긴 하나 시스템이 얽히고설킨 오픈월드 세계는 RDR 2의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에 가깝다. 랜덤 인카운터도 많고 이벤트들도 다양하다. 특히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몇몇 이벤트들은 단발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계속하여 발전한다는 점이었다. 예컨대 마을에서 거지에게 돈을 주면 다음에 마을에 들를 때마다 그 거지는 계속 플레이어에게 친한 척을 하고 말을 건다. 만약 플레이어가 그 마을에서 나쁜 짓을 하고 돌아다니면 거지 역시 이에 반응하여 플레이어를 나무라는 듯한 말을 한다.  이러한 식의 이벤트들은 꽤 참신했고, 실제로 내 행동이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환경적인 요소만으로 스토리를 전개시키는 장소도 많다. 가장 재밌었던 것은 예쁘게 꾸민 양의 시체와 그 옆에 놓인 바지를 벗고 있는 농부 시체였다. 단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해가 쏙쏙 되지 않는가? 락스타 게임즈는 단순히 시체 두 구를 배치하는 것만으로 스토리텔링과 재미를 동시에 잡은 것이다.
이처럼 RDR 2의 오픈월드 세계는 드넓고 여러 인카운터와 자연스러운 스토리텔링으로 그득하다. 특히 L2를 이용한 대화 시스템은 독특했다. 게임의 흐름을 끊어먹지 않아 자연스럽고 몰입도 깨지지 않는다. 이후 많은 게임들이 이 시스템을 차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오픈월드 게임이 뛰어난 오픈월드 세계를 가졌다면 뭐 그걸로 충분한 것 아닌가?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좋은 오픈월드 세계에 좋은 인카운터, 이벤트를 가지고 있다면 이미 반쯤은 명작이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RDR 2의 성공은 결국 절반만의 성공이다. 이 게임의 핵심적인 문제점은 다름 아닌 나머지 절반이다.
사냥하고 포커 치는 게 제아무리 재밌다 하더라도 결국 그러한 것들은 사이드 컨텐츠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오롯이 사냥만을 하고자 RDR 2를 산 사람들이 틀렸단 말은 아니다. 위쳐 3도 궨트만 하는 사람이 있고 뉴 베가스도 캐러밴이나 블랙잭만 하는 사람이 있지 않던가? 다만 이 게임이 어떤 부분을 집중적으로 개발했는지를 생각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난 첫 15시간 만에 RDR 2 세계의 모험을 끝마쳤다. 다른 오픈월드 세계 게임들을 생각하면 비교적 짧은 시간이다. 왜 그런 걸까?
폴아웃 3을 예로 들어보자. 폴아웃 3은 뉴 베가스에 비해서는 메인 퀘스트 라인이 빈약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폴아웃 3이 무조건 뉴 베가스보다 나쁜 게임인 건 아니다. 뉴 베가스 같은 경우엔 메인 퀘스트 라인의 팩션 싸움에 치중하여 다양한 선택지와 각본으로 승부를 보았다면 폴아웃 3은 다르다. 여러 독특한 지역들과 볼트들은 폴아웃 3이 모험성을 강조한 게임이란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크리스 아벨론조차 모험성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베데스다를 따라잡지 못 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폴아웃 3에는 수많은 사이드 퀘스트들도 존재한다. 이 사이드 퀘스트들은 해결 방법도 다양하고 무엇보다도 재밌다. 즉 모험할 방대한 오픈월드 세계뿐만이 아니라 그 안을 채워 넣은 사이드 퀘스트들도 풍부한 것이다.
폴아웃 4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기술을 아예 퍽 시스템과 통일해버리면서 롤플레잉 요소는 현저히 떨어졌지만 대신 각 지역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러 잡지들로 퍽을 올리거나 이런저런 스탯 보너스를 받을 수 있게 디자인했다. 예컨대 어떤 잡지는 힘을 1 올려주고 어떤 잡지는 크리 확률을 높여주고 하는 식이다. 이러한 잡지들은 폴아웃 4 세계를 모험하는 원동력이 된다. 마치 다크 소울처럼 건물 구석구석을 뒤지도록 동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우선 RDR 2의 환경적인 요소를 통한 스토리텔링이 폴아웃 3보다는 빈약하다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여전히 재밌긴 하나 깊이는 부족하다. 폴아웃 3 같은 경우엔 모든 볼트나 지역들이 단말기나 쪽지를 통해 나름 체계적인 스토리를 갖추었다. RDR 2는 그 정도로 깊이 있지는 않다. 그리고 RDR 2의 세계엔 폴아웃 4엔 있는 모험의 동기가 많이 부족하다. 물론 전설 동물을 사냥하여 그 가죽으로 강중유를 많이 들고 다닐 수 있는 가방을 만든다든가 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때문에 사이드 퀘스트들이 이러한 보상(동기)으로써 필연적으로 존재했어야만 했다. 폴아웃 3처럼 말이다. 문제는 RDR 2에는 퀘스트가 없다는 점이다. 퀘스트가 아니라 미션들만이 있을 뿐이다. 웃기게도 이 미션들은 RDR 2의 자유로운 오픈월드 세계를 즐기고 싶다면 무조건 피해 가야 한다. 모험의 동기와 보상이 아니라 그 반대로 작동한다는 말이다. 퀘스트 같은 경우 여러 퀘스트들을 동시에 받아두고 플레이어가 원하는 순서대로 깨는 게 가능하다. 미션은 그럴 수 없다. 일단 미션을 시작하면 플레이어는 무조건 그 미션을 깨는 데에만 집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애초에 게임이 그렇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미션 지역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게임 실패 화면이 뜬다. 메인, 사이드 미션 가릴 것 없이 RDR 2의 미션들은 다 이런 식이다.
이동의 자유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 방식의 자유조차 없다. 플레이어는 무조건 게임이 시키는 대로만 따라야 한다. 이 미션들이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알고 싶다면 챕터 1을 보면 된다. 누구든지 만장일치로 지루하다고 동의할 수준이다. 어떤 사람들은 챕터 1은 튜토리얼이기 때문에 지루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이는 틀린 말이다.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은 RDR 2의 챕터 1이 왜 지루한가를 제대로 모르는 것이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튜토리얼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제대로 하기 위해 필히 익혀두어야 하는 조작법과 여러 메커니즘들을 소개하는 구간이다. 즉 플레이어가 이 기술들을 마음껏 활용해볼 수 있도록 안전한 장소를 제공한다. 불친절하기로 유명한 다크 소울 1조차 첫 지역에서만큼은 반격조차 하지 않는 망자들이 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요컨대 이러한 게임들의 튜토리얼은 난관이랄 게 없어 지루한 것이다. 근데 플레이어에게 조작을 가르치긴 해야 하니 당연히 감안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무엇보다도, 보통 튜토리얼 구간은 그다지 길지 않은 경우가 많아 그렇게 지루하지도 않다.



하지만 RDR 2의 챕터 1은 다르다. 물론 이 챕터 역시 튜토리얼의 역할을 수행한다. 다만 게임 플레이를 소개하는 시간은 매우 짧다. 게임 플레이는 짧은데 정작 챕터의 길이는 3시간쯤 된다. 즉 게임 플레이를 가르쳐주는 구간들이 너무 띄엄띄엄 배치되어 있다. 각 게임 플레이 사이에 빈 공간이 많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빈 공간에는 무엇이 있는가? 바로 컷신과 컷신, 스토리와 스토리, 대화와 대화의 연속이 도사리고 있다.

RDR 2는 1편의 후속작이지만 동시에 프리퀄이기도 해서 스토리상으로는 1편보다 앞선 시점이다. 그래서인지 락스타는 온갖 스토리라인과 각 인물들의 개성, 배경 등을 한꺼번에 소개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결국 그 욕심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는 건지 그냥 패드 들고 영화관 가서 갓난아기처럼 버튼이나 뿜뿜 눌러대고 있는 건지 헷갈리게 만들었다. 지루한 오프닝 컷신을 보고 말을 타고 열심히 달리다 드디어 총 좀 쏘겠다 싶으면 전투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다시 컷신이 이어진다. 물론 컷신은 스킵하고자 한다면 스킵 할 수 있긴 하다. 문제는 플레이어가 컷신을 스킵 할 것을 두려워한 락스타 게임즈가 영악한 꼼수를 부렸다는 사실이다.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미션은 대충 이렇게 진행된다. 우선 미션을 함께 수행할 NPC가 있는 곳으로 가 미션을 시작한다. 아, 하지만 게임 플레이가 시작되기엔 아직 이르다. 일단 그 NPC와 함께 먼저 목적지까지 달려야 한다. 이 구간은 절대 스킵할 수 없다. 물론 다른 게임에서도 대부분의 경우 퀘스트를 수주하는 장소와 실제로 퀘스트를 깨는 장소가 다르다. 하지만 RDR 2에서 이 점이 문제 되는 건 바로 이 게임의 미션들은 무조건 한 번에 하나씩만 수주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게임에서는 퀘스트를 받아놓고 다른 퀘스트들도 함께 받아둘 수 있다. 심지어 퀘스트를 깨러 가는 도중에도 얼마든지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다. 갑작스레 발생한 랜덤 인카운터를 해결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RDR 2는 그렇지 않다. 미션을 깨는 동안에는 랜덤 인카운터도 발생하지 않을뿐더러 플레이어가 다른 길로 새기만 하면 미션 실패 화면이 등장한다. 체크 포인트 간 간격도 커서 목적지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길이라도 잘못 들어 미션을 실패하면 처음부터 다시 말을 타고 달려야 한다. 물론 옵션에서 네비게이션 시스템을 킬 수는 있다. 근데 어차피 광활한 평야라 무슨 길을 선택하든 어쨌든 목적지에 도달할 수는 있는데도 아주 조금만 엇나가도 미션을 재시작하게 만든다.

때문에 다른 게임과 달리 RDR 2에서는 NPC와 함께 목적지까지 달리는 구간을 스킵 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수의 미션은 실질적인 게임 플레이가 이루어지는 구간보다 목적지를 향해 말을 타고 달리는 시간이나 도착한 후에도 무슨 요상한 이유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길다. 바로 이런 식으로 디자인함으로써 락스타는 플레이어가 NPC들과 대화하는 부분을 스킵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컷신이 아니라 ‘게임 플레이’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게임 플레이라 부를 수조차 없지만 아무튼 컷신은 아니니 절대 스킵 할 수 없다는 논리다.

솔직히 나는 락스타 게임즈가 어떻게 이 정도로 플레이어들을 우롱할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나는 보통 개발사가 플레이어를 우롱한다는 표현을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불합리해 보이는 디자인들은 대부분의 경우엔 그냥 개발진의 능력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이러한 식의 미션 진행은 그냥 락스타 게임즈가 악의를 가지고 이런 식으로 개발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부러 NPC들과의 대화를 플레이어가 끝까지 다 듣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자신들이 쓴 각본을 게임을 사는 유저들보다도 중요시한다는 점은 꽤 충격적이다.

분명히 말하겠지만, 이게 단점인 이유는 RDR 2의 미션들이 퀘스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션들은 사실 레드 데드 리뎀션 2에 속한 게 아니라 사실상 독립적으로 따로 존재하는 미니 게임이다. 왜냐하면 미션을 수행하는 도중엔 랜덤 인카운터도 발생하지 않고 기차나 빠른 이동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RDR 2가 말을 타고 가는 시간이 많아 지루하다는 말은 반만 틀렸다. 미션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기차나 빠른 이동을 통해 말을 타고 달리는 시간을 비약적으로 줄일 수 있다. 그런데 미션만 시작하면 그럴 수 없다. 그리고 미션 내에서 말 타고 달리기만 하는 시간은 지루하게도 길다. 애초에 미션을 하지 않는 동안엔 빠른 이동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 게임의 세계는 온갖 인카운터와 이벤트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 그냥 빠른 이동이나 기차로 그런 것들을 다 스킵 해버리면 게임을 제대로 즐기지 않는 거라고 생각한다. 근데 정작 빠른 이동이 필요한 순간엔 빠른 이동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은 우습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러한 단점 역시 챕터 1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롯이 NPC들과의 대화로만 이루어진 구간들을 컷신으로 만들어놓지 않아 스킵 할 수가 없다. 내가 컷신을 무조건 스킵하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게임 플레이도 없으면서 이 구간이 컷신이 아닌 이유를 못 찾겠다는 말이다. 컷신이나 다름없는 구간에서도 손가락 아프게 계속 패드의 X 버튼을 연타하고 조이스틱을 위쪽으로 올려두고 싶지는 않다. 이건 게임 플레이가 아니다. QTE조차 이거와 비교하면 복잡하고 깊이 있어 보인다.

즉 챕터 1이 지루한 이유는 그게 게임의 튜토리얼 구간이기 때문이 아니라 영화의 튜토리얼 구간이기 때문이다. 게임을 하려는데 영화나 보고 있으니 필연적으로 지루할 수밖에 없다. 마치 게이밍 마우스니 키보드니 다 바리바리 싸들고 영화관 가서 스릴 넘치는 장면마다 자판이나 좀 눌러주는 듯한 느낌이다. 따라서 튜토리얼 구간이라 지루할 수밖에 없다는 말은 반만 맞았다. 우습게도 챕터 1은 영화의 기준으로도 지루하고 못만든 축에 속한다. 요컨대 게임으로 보나 영화로 보나 그냥 못만들었다.

자, 이제 챕터 1에 대한 설명을 끝마쳤으니 다른 5개의 챕터들도 설명해보겠다. 아,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챕터 1이 가진 문제점들은 사실상 RDR 2의 모든 챕터들이 공통적으로 가졌기 때문이다. 특히 챕터 5는 무슨 콜 오브 듀티를 하는 것 같다. 레드 데드 리뎀션 2가 가진 구차하고 불편하며 동시에 별 의미도 없는 현실적인 디테일을 단순히 ‘이건 서부 시대를 재현한 게임이니까’ 하고 옹호하는 사람들은 RDR 2의 미션들을 옹호해선 안 된다. 이 미션들을 하면서도 서부 시대를 직접 살아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가?

거기다 가끔 이루어지는 게임 플레이라는 것도 게임이 딱 정해놓은 길만 정확히 따라야 한다. 플레이어는 미션을 하는 동안에는 게임에 반대할 수 없다. 게임이 시키는 행동만 허용되어 있고, 시키지 않은 행동은 해서는 안 된다. 챕터 4 마지막에 플레이어인 아서 모건은 갱단 멤버들과 함께 생 드니를 탈출하고자 한다. 이때 더치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경비들을 선착장으로 유인하라고 명령한다. 아서가 어떻게 유인하냐고 물으니 휘파람이라도 불라고 한다. 나는 무슨 큰 소리를 내면 될 것 같아 선착장에다 다이너마이트를 두 번이나 던졌다. 하지만 경비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혹시 선착장에 가서 소리를 내야 하나 싶어 미니맵에 노랗게 표시된 지역으로 가서 다이너마이트를 다시 두 번 던졌다.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더치가 휘파람이라도 불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방향키를 눌러 휘파람을 불었더니 그제야 경비들이 반응했다.

물론 게임에서 휘파람을 불라고 말하긴 했으니 어느 정도는 내 잘못이다. 그런데 다이너마이트 소리엔 꿈쩍도 안 하던 경비가 휘파람에는 반응하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그것도 한 명만 반응한 게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 있던 경비들이 다 선착장으로 나왔다. 오롯이 휘파람 소리 때문에 말이다. 이런 식으로 게임이 플레이어의 자유를 너무나도 억압하여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전혀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다른 게임들에 비해 훨씬 자주 일어난다. 다른 게임에서는 적어도 다이너마이트만으로도 적 NPC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현실성을 강조하는 게임이 오히려 현실성이 부족한 것이다.



휘파람은 되지만 다이너마이트는 안 된다.

바로 이와 같은 점에서 RDR 2는 디테일이 매우 떨어진다. 현실적인 디테일은 기를 쓰고 살려놓고 정작 게임 플레이의 디테일은 사실상 없는 수준이다. 내가 RDR 2만 유독 가혹하게 평가하는 게 아니라 그냥 다른 모든 게임들과 비교해도 RDR 2의 디테일은 구리다. 디테일과 상호작용을 장점으로 내세운 게임이 바로 그 부분에서 가장 뒤떨어진다.

딱 한 가지 예시만 들어놓고 마치 전체 게임이 그런 식이라며 빼애애액대고 일반화하는 내가 우습게 보일 수도 있다. 나도 얼마든지 다른 예시들을 들어주고 싶다. 문제는 그럴 수가 없다. 왜냐하면 다른 예시들이란 게 사실상 RDR 2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미션들이기 때문이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이다. RDR 2의 미션들 중에 플레이어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고 게임의 규칙이 일관적으로 작용하는 미션이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미션에선 창문을 넘나들 수 있고(챕터 4 오드레스콜과 싸우는 미션) 나머지 미션들에선 불가능하다. 다른 미션들에선 데드 아이를 얼마든지 쓸 수 있지만 어떤 미션에선 데드 아이조차 못 쓴다(챕터 5 선장 구하는 미션). 누가 배신자인지 아는 상황에서 배신자를 죽이면 미션 실패가 떠서 게임을 재시작해야 하는데(챕터 6 마지막 미션) 바로 몇 분 뒤에 그 배신자와 싸우다 아서가 죽는다. 명예가 높을 경우 더치가 배신자를 내쫓아주긴 하나 어쨌든 아서가 죽는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어떤 미션에서는 보안관들의 신체 부위 어딜 쏘건 보안관이 한 방에 죽고(챕터 4 허탕쳐서 전철 타고 도망치는 미션) 똑같은 미션 뒷부분에서는 보안관이 갑자기 총알 여러 방 맞아도 죽지 않는다. 어떤 미션에서는 보안관을 죽이면 명예가 떨어지는데(챕터 2, 3, 4, 5, 6의 대부분의 미션) 몇몇 미션에선 명예가 떨어지지 않는다(챕터 4 전철 타고 도망치는 미션, 챕터 3 발렌타인 은행 터는 미션).

정말 모든 챕터, 모든 미션들마다 이러한 단점들을 쭉 나열할 수 있다. 내가 이 게임을 특별하게 여겼다거나 해서 이러한 단점들이 더욱 부각되는 게 아니라, 그냥 다른 숱한 게임들에 비해서도 RDR 2의 미션들은 일관적이지도 않고 디테일하지도 않으며 현실적이지도 않다. 물론 쓰레기 게임들과 비교하면 RDR 2가 훨씬 낫긴 하다. 그런데 쓰레기 게임들보다 낫다는 점은 칭찬이 아니다. 안도의 한숨 같은 거다. 휴, 적어도 쓰레기는 아니니 다행이다 하는 식의. GTA 5의 개발비가 2천8백억이었고 RDR 2는 아마 그와 비슷하거나 더 많을 것이다. 약 3천억 정도의 개발비를 쓰고 고작 ‘적어도 쓰레기는 아니네’ 하는 말이나 듣고 싶은가?

결국 이러한 미션들이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메인 컨텐츠이자 ‘메인 단점’이다. RDR 2의 오픈월드 세계와 이 미션들 간의 관계는 마치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가 묘사한 배트맨과 조커의 관계와도 같다. 오픈월드 세계 속에서 플레이어는 막을 수 없는 힘이다. 그 무엇이든 할 자유가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런데 이 미션들만 시작하면 플레이어는 절대 움직일 수 없는 물체가 된다. 오픈월드 세계에서 누릴 수 있었던 자유란 이 미션들만 시작하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만다. 게임이 정해놓은 딱 한 가지 길이 아니면 그 무엇이든 할 수 없다. 메인 미션과 사이드 미션 전부 똑같다.

근데 그렇다고 각본이 좋은 것도 아니다. NPC들과의 대화는 대부분의 경우 전혀 흥미롭지 않다. 메인 스토리는 그 퀄리티를 떠나 충분히 흥미롭지만 미션 내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시간에 오가는 대화는 솔직히 관심이 가지 않는다. 물론 이건 나만의 주관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적어도 갓 오브 워 신작의 각본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갓 오브 워 신작 역시 배 타는 시간이 꽤 길다. 하지만 크레토스가 들려주는 어색한 이야기나 미미르의 이야기는 오히려 목적지에 도착해도 단순히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싶게 만든다. 난 목적지에 도착하고서도 이들의 대화를 듣기 위해 배에서 내리지 않고 기다린 적도 많다. 무엇보다도 갓 오브 워 역시 한 퀘스트를 하며 동시에 다른 퀘스트를 할 수 있다. 아주 특이한 상황일 때만 빼면 말이다.

때문에 앞서 말했듯 이 미션들은 레드 데드 리뎀션 2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RDR 2 안에서 할 수 있는 독립적인 미니 게임처럼 느껴진다. 그 왜 스타 2 자유의 날개 캠페인에서 히페리온 안에서 할 수 있는 길 잃은 바이킹 있잖는가. RDR 2의 미션들은 바로 길 잃은 바이킹 같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 RDR 2의 자유로운 오픈월드 세계와 분리되어 있다. 그리고 마치 배트맨과 조커처럼 끊임없이 충돌하고 서로 모순된다. 적어도 다크 나이트에서의 배트맨과 조커의 충돌은 스토리상에서 두 상반된 인물들이 충돌하는 것이기에 재밌다. 애초에 모든 스토리에는 갈등이 존재하지 않던가. 그런데 레드 데드 리뎀션 2는 스토리가 아니라 게임 플레이가 서로 충돌한다. 무엇보다도 미션들 플레이 타임은 55시간 정도 된다. 이쯤 되면 미션들이 미니 게임인 게 아니라 오픈월드 세계가 미니 게임인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출처: http://www.thisisgame.com/esports/nboard/159/?n=17289


3. 결말



결국 레드 데드 리뎀션 2는 그 결말만큼이나 처절하고 슬프다. 이 게임은 방향성이 엇갈린 컨텐츠들이 많아 아예 락스타 게임즈 내부에 두 가지 파벌이 존재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나는 진정한 오픈월드 게임을 만들자는 쪽이고 다른 하나는 GTA 5나 만들자는 쪽이다. 아마 둘이 싸우는 걸 보다 못한 하우저 형제가 그냥 둘 다 각자 원하는 거 만들고 하나로 합치자고 제안했을 것이다. 결국 그렇게 해서 나온 게임이 레드 데드 리뎀션 2인 것이다. 짜잔. 물론 말도 안 되는 헛소리지만, 적어도 이 게임이 누더기 골렘 같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게임의 방향성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이것저것 재밌어 보이는 것들을 다 넣으면 분명 게임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으나 실제론 오히려 해당 게임의 본질을 흐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본질이 흐려지면 그 게임이 다른 게임보다 뛰어난 점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애초에 모든 부분들을 다 뛰어나게 만드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거대 자본이 투입되는 AAA 게임들이 겪고 있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너무나도 많은 부분들에서 유저들을 만족시키고자 하여 개발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개발비는 높아지고 본전은 쳐야겠으니 다른 흥행했던 게임들을 모방하는 식으로 개발이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그게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러한 AAA 게임들은 독창적인 무언가가 없다. 그 게임만의 독특한 본질이 없다는 말이다. 차세대 오픈월드 게임이라고 불리고 있는 RDR 2 역시 다를 바 없다. 이 게임은 차세대 오픈월드 게임이 아니라 현세대 오픈월드 게임이다. 사실 미션들만 보면 현세대 오픈월드 게임의 수준에도 못 미친다. 오히려 구세대에 가깝다.

물론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개발비가 높을수록 시장 경제에 따라 안정성 높은 개발 방식을 선호하는 건 당연하다. GTA 5의 개발비는 2800억이다. 아마 레드 데드 리뎀션 2는 그보다도 더 많은 예산과 시간이 소모되었을 것이다. 나는 락스타 게임즈가 쏟은 예산과 시간을 존중한다. 하지만 가정환경이 불우했던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는 것도 이해는 된다. 그냥 개발비가 높다는 점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을 뿐이다. 여전히 이 게임의 본질이 흐려졌다는 점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나는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본질이 무엇인지 섣부르게 판단하고 싶지 않다. 적어도 서부 시대를 직접 살아가는 듯한 그 느낌을 잘 살리긴 했다. 문제는 미션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을 뿐더러 게임으로써의 가치도 사실상 없다. RDR 2가 자랑하던 다양한 상호작용과 세세한 디테일은 이 미션들을 깨는 동안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만다. 애초에 그러한 상호작용과 디테일이 가치가 있었느냐는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콜 오브 듀티처럼 정해진 선로를 따라 총 좀 쏘고 컷신 보고 총 쏘고 컷신 좀 보는 지루한 게임 플레이만 반복된다. 그건 게임 플레이가 아니다. 유사 영화다.

만약 영화적 연출을 이용해 게임보다 영화와 더욱 비슷한 무언가를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면, 확실히 성공적이다. 사실 락스타는 GTA 5에서 이미 그 목적을 달성한 바 있다. 다만 내가 굳이 레드 데드 리뎀션 2에 강한 비판을 가하는 것은, 이 게임은 적어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GTA 5와 달리 RDR 2의 맵은 여러 컨텐츠들로 그득하다. 이 세계를 모험하는 건, 락스타 게임즈의 그 어떤 게임들보다도 게임에 가깝다. 때문에 레드 데드 리뎀션 2는 게임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실제로 맵을 모험하고 사냥하고 인카운터와 이벤트 해결하는 첫 15시간만큼은 게임이었다. 그것도 뛰어난 게임 말이다. 그렇기에 나머지 미션만 깨는 55시간이 더욱 실망스러운 것이다.

때문에 레드 데드 리뎀션 2가 정말 좋은 게임인지는 모르겠다. 완성도가 너무 뒤죽박죽이다. 레드 데드 리뎀션 2는 완성도가 높으면서도 동시에 심각하게 떨어진다. 이 게임을 오픈월드 세계로 평가했을 때, RDR 2는 좋은 게임이다. 아니면 적어도 좋은 맵이다. 모험하는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RDR 2를 구매해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의 플레이 타임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션들로 평가하면, 이 게임은 최악의 게임이다. 최악이란 표현은 너무 과장되었다. 애초에 게임이라 부를 수도 없다. 락스타 게임즈가 이 게임에 쏟은 노력과 예산, 시간을 존중한다. 하지만 점점 게임의 어두운 면을 마주하고 접해갈수록 실망감만 커졌다. 첫 몇 시간 동안 난 정말로 이 게임을 즐겼다. 때문에 끝까지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양극화된 게임의 완성도는 그럴 수 없게 만들었다. 결국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엔딩을 보면서도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처절하고 슬픈 엔딩임이 틀림없었음에도 이 게임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른 가치 없는 게임들처럼, 레드 데드 리뎀션 2는 쉽게 잊히고 말았다.


☆ 0.5/5



-Lee Y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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