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매일 2016.03.13
개발사 id Software
디렉터 Hugo Martin, Marty Stratton
실기 PC
1. Two Types
12년 만에 돌아온 Doom 시리즈의 정통 후속작, <Doom(2016)(둠 2016 or 둠 리부트)>은 사실 Doom 시리즈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작품이다. 적들의 생김새가 같고 플레이어 캐릭터 또한 같다. 지구 레벨에서 진행되다가 중간 지점에서부터는 지옥 레벨 또한 오가는 것 역시 Doom 시리즈와 동일하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게임과는 별반 관련이 없는 스킨들에 불과하다. 당시 리뷰어들은 Doom(2016)을 두고 클래식 Doom의 게임 플레이가 ‘지옥으로부터’ 돌아왔다고 칭송해대었지만, Doom(2016)이 Doom 시리즈에서 가장 유사한 작품이 있다면 그것은 Doom이나 Doom II가 아닌 바로 Doom 3이다. 다만 모두의 머릿속에 있는 그 ‘둠’이란 것의 어떤 ‘그릇된 이미지’ 내지는 ‘밈Meme’이 그들이 플레이해본 적 없는 ‘클래식 Doom’을 대신하여 그 자리를 차지했을 뿐이다. 가령 ‘찢고 죽인다’ 또는 ‘둠 가이는 뭐든지 다 박살내버린다’ 또는 ‘Dark Souls에선 당신이 망자들과 함께 한 방에 갇혀 고통 받지만 Doom에선 악마들이 당신과 함께 한 방에 갇혀 고통 받는다’ 따위의 것들 말이다. 실제론 Doom과 Doom II의 플레이어가 Dark Souls ‘따위’에서보다 몇 배는 더 고통받을지언데(Dark Souls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난이도적인 측면에서의 지적이다). 애초에 상당수의 실시간(즉 액션) 던전 RPG는 함정과 매복으로 플레이어를 실시간으로 압박한다는 부분에서 Doom과 Quake의 방법론을 그대로 계승하였고 Dark Souls 또한 예외는 아니나 이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 본 비평의 주안점은 아니므로 생략하겠다.그렇다. 플레이하지 않더라도 포스트를 대충 읽기만 하면 플레이한 것과 동일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게임은 뭣하러 하는가? 글이나 읽어라.
어쨌건, 당연하게도 이러한 밈들은 실제 클래식 Doom이 어떠한 게임이었는가를 전혀 투영하거나 반영하지 못한다. ‘클래식 Doom’으로 통칭되는 Doom과 Doom II부터가 서로 전혀 다른 작품 아니던가? 두 작품은 전혀 ‘킹왕짱 강력한 플레이어가 미약한 악마 머저리 사생아들을 마구 찢고 죽이는 또는 찢어 죽이는’ 경기가 아니다. 차라리 그 반대에 가깝다. Doom은 에피소드 1을 제하면 복잡하게 설계된 던전을 천천히 돌파하며 키 카드와 스위치의 위치를 파악해 나가는 경기이고, 반면 Doom II는 최단 경로를 세심하게 설정해야 하고, 통제되지 않은 무수한 변수들에 맞추어 그 경로를 시시때때로 수정해야 하며, 온갖 플랫포밍 난관들을 돌파하기 위해 관성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이만큼이나 두 작품은 ‘찢고 죽이는’ 게임이 아니며, 이만치나 두 경기는 서로 다르다. 그것은 앞서의 두 비평에서 명명백백히 한 바 있다.
그럼에도 두 작품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슈팅으로써 통일성을 갖추는 던전’일 것이다(자세한 것은 Doom과 Doom II 비평 참조). 더 간략화하자면, 그것은 ‘던전’이다. 물론 던전이 FPS의 필수 요소는 아니나, FPS 자체가 던전 RPG와 콘솔 액션 게임의 융화에서 시작된 형식이니만큼 초창기에는 던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비록 1인칭 시점에서 3D 레벨과 상호작용하며 난관을 풀이하는 것만이 던전 RPG로부터 계승한 것이라도, 던전의 발전은 한때 FPS의 발전과 함께였다. 그러나 긴 시간이 흘렀고, FPS는 차차 액션에 치중하는 만큼 던전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으며, 현대 FPS인 Doom(2016)은 그 추세를 따라서 던전이 아예 없는 선형적인 슈터의 레벨 디자인을 기반으로 삼았다. 복도형 레벨에서의 전투와 아레나 전투의 선형적 연속뿐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Doom(2016)이 클래식 Doom과 전혀 다른 게임인 이유이며, Doom 3와의 가장 큰 공통점이다.
이것은 게임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게임이 반드시 던전을 갖출 이유는 하등 없다. 던전을 포기한 FPS는 그 공백을 액션성으로 채우게 되며 Doom(2016)도 마찬가지이다. Doom(2016)은 ‘아레나 슈터Arena Shooter’ 계열의 경기이다. 다시 말해 각각의 난관들이 서로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며, 플레이어가 해당 구역에 진입하자마자 다른 구역과 연결된 통로들이 모두 폐쇄되어 적들을 모조리 처리하기 전까진 더 진행할 수 없다. 이는 현대의 액션 게임 시리즈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추세이기도 하다. 가령 Devil May Cry(데블 메이 크라이)도 4편까지는 던전이 있는 시늉은 하였고 Ninja Gaiden(닌자 가이덴)은 아예 그 첫 작품과 Black에선 던전 탐험과 모험이 상당히 큰 지분을 차지했었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후속작에선 던전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전투와 전투와 전투와 전투만이 선형적으로 나열된 경기가 되었다. 즉 Action-adventure로 시작한 액션 게임 시리즈들이 adventure를 버리고 Action 그 자체에만 집중하기 위해 게임의 중심을 모험과 길 찾기, 퍼즐 풀이 등에서 전투 그 자체로 옮긴 것이다.
Doom(2016)도 그렇다. 이것은 클래식 Doom으로부터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또 한동안 FPS 계를 지배하던 Half-Life류 작품들에게의 결별 선언이다. 대체적으로 FPS에는 두 가지 다른 부류의 작품군이 존재한다. 하나는 전술성을 가미한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순수한 액션, 즉 조준과 이동이라는 ‘피지컬’적인 요소만을 또는 최소한 그것을 최대한으로 부각한 부류이다. 이 두 부류는 재미있게도 각각 Doom과 Doom II에서 출발하였는데(다시 강조하지만 그만큼이나 둘은 다른 작품이다), 전자엔 Duke Nukem 3D, <Blood(블러드)>, Quake II, 그리고 Half-Life가 해당되고 후자엔 Quake, Doom 64, <Serious Sam(시리어스 샘)> 등이 해당된다.
가령 1997년 작 Blood는 각 무기마다 Secondary Fire, 즉 보조 사격을 구조적으로 갖춘 최초의 게임들 중 하나이다. 두 가지 다른 사격 방식을 적절히 배합해가며 각각의 난관들을 깨나가게 된다. 또 Duke Nukem 3D의 무기들은 어떤 독특한 상태 이상을 적에게 부여한다. 적을 얼린다거나, 작아지게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 가능하다.
이는 게임의 페이스 문제로도 직결한다. 후자의 FPS는 페이스가 매우 빠르다. 가령 Doom II는 적들이 끊임없이 부활하거나 사방에서 함정이 열리며 적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또 이들이 구역 간의 빈 공간을 자유로이 활보하며 걷잡을 수 없는 변수들을 제시하여 플레이어를 압박한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반드시 스피드런과 같은 방법으로 경기를 풀이하게 된다. Quake와 Serious Sam은 폐쇄적인 아레나에 상당히 빠르고, 이동성이 높은 적들을 풀어놓아 플레이어로 하여금 정확하고 신속하게 회피 및 사격하도록 요구한다. 적들을 모조리 제거하기 전까진 다음 구역으로 진행할 수 없다(물론 Quake는 아직 던전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은 초창기의 아레나 슈터이니만큼 열려 있는 구간들이 적잖다). 이처럼 적과 플레이어 간의 거리가 가깝게 제한되어 있으므로 경기의 폭력성은 증가한다. Quake 비평에서 언급한 바 있듯, 폭력성은 거리에 반비례한다.
반면 전자의 FPS는 플레이어가 페이스를 자유로이 조절하는 것이 가능하다. Doom 또한 Doom II와 마찬가지로 적들이 끊임없이 부활하였으나 Doom II와 달리 각각의 구역이 통로로 이어져 있어 한 구역에서 다음 구역으로 진행할 시 이전 구역의 적들로부턴 완전히 안전하다. 곳곳에 쉴 수 있는 빈 공간들도 다수 배치되어 있고 속칭 빼꼼샷으로 진행해야 하는 부분들도 적잖다. 또 에피소드 1 이후의 모든 레벨들은 전투보다는 던전 풀이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Duke Nukem 3D와 Blood는 던전이 완전히 열려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 위협으로부터 거리를 벌릴 수가 있고, 커버를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다. 커버란 것은 플레이어가 안전한 공간, 즉 플레이어만의 ‘턴’을 형성하기 때문에, 그 ‘턴’ 뒤에 숨은 채 플레이어는 각각의 구역들과 적들을 어떤 무기들의 조합으로 풀이할지, 또는 어떤 루트로 진행할지 시간을 들여 고민할 수 있다. 거기다 어떤 무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또는 어떤 구역을 어떤 루트로 진행할 것인가가 그 자체로 해당 난관의 풀이로 직결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수류탄 같이 조준만 정확하다면 적에게 전혀 피해를 받지 않고도 적들을 타격할 수 있는 무기가 제공되어 있고, 숨어서 수류탄을 던지기 좋은 커버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또 여러 다양한 루트를 둘러보며 적들이 없는 쪽으로 또는 뒤돌고 있는 쪽으로 돌아서 들어가는 것 또한 가능하다. Half-Life 2 또한, 적어도, 중력건을 활용한 여러 다양한 상호작용을 통해 난관을 마치 퍼즐처럼 풀이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중력건은 Half-Life 2의 몇 안 되는 장점이기도 하다.
사실 이 전자에 해당하는 작품군의 특징은 TPS의 특징과 유사하다. 콘솔 패드의 한계로 인해 극한의 슈팅 액션을 콘솔 게임으로 구현하기가 어려워 대신 그 디자인적 공백을 전술성을 가미함으로써 극복하였기 때문이다. <Resident Evil 4(바이오하자드 4)>, 6, <The Evil Within(디 이블 위딘 1)>, <The Last of Us(더 라스트 오브 어스 1)>, <Dead Space(데드 스페이스 1)> 등을 보면 순수한 액션성(즉 정확한 조준과 신속한 이동의 이원화 구조)보다는 전술성(즉 사실상 존재치 않는 무빙샷을 통해 플레이어의 전술적 선택을 강조)을 부각하고 있다.
그렇기에, 마우스와 키보드로 플레이 가능한 FPS의 조준과 이동의 이원화 구조를 충분히 활용하지 않는 Doom 계열의 작품군은 그 전술성과 레벨 디자인에서 충분한 깊이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당연히도 좋은 평가를 내리는 것이 불가하다. Doom(2016)은 이 전자와 후자의 작품들 특징을 적절히 섞어서 그 단점을 보완했다. 우선 ‘이동’ 그 자체의 중요성이 심지어 Doom II나 Quake보다도 부각되었다. 두 작품들에서조차 벽 뒤에 숨는 플레이가 어느 정도는 요구되었었고 Archvile이나 Shambler 같은 적들을 상대할 때 그리고 레벨 디자인에 따라서 어느 정도는 지형 중심으로 플레이해야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러나 Doom(2016)은 그야말로 모든 공격을 이동으로 회피하며 적들의 명중률도 플레이어가 끊임없이 이동할 시에만 급격히 낮아진다.
좌우로 끊임없이 이동하기만 하면 적들의 명중률이 감소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전술성도 가미했다. 기본적인 무기 디자인은 Quake와 유사하다. 단 하나를 제한 모든 무기가 근거리/중거리/원거리에서 유용한 정도로 분류되어 있다. 거기다 무기 교체가 재장전 시간을 생략하는 대신 짧은 딜레이 이후 곧바로 이루어지므로 무기 재장전 시간을 계산해서 무기를 교체해야 했던 Quake보다도 쉽게 무기 콤보를 활용 가능하다. 다만 거기에 추가적으로, Blood처럼 모든 무기가 보조 사격을 갖추고 있다. Blood의 보조 사격은 기존 무기를 강화한다든가, 아니면 조금 달리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식이었다. 가령 다이너마이트의 경우 기본 사격으로는 충돌할 시 곧바로 폭발한다면 보조 사격으론 반드시 일정 시간이 지나야만 폭발한다. 혹은 머신건은 기존 사격은 일반 총과 같이 크로스헤어에 히트 스캔 데미지를 가하며, 보조 사격은 전방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사격한다. 이처럼 기존 사격과 보조 사격은 다르긴 하나, 그 차이가 미미하다. 반면 Doom(2016)의 보조 사격은 사실상 완전히 다른 무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며, 우클릭의 활용도 보다 다양하다. 가령 로켓 런처는 우클릭 시 발사되었되 충돌하거나 소멸하지는 않은 모든 로켓들을 곧바로 원격 조종하여 폭발시키거나 적 하나를 락온하여 3개의 유도 로켓을 발사한다. 보다시피 Blood보다도 더 ‘다양한’ 옵션을 제공한다.
한편으로는 위 로켓 런처의 예시에서 알 수 있듯 이 보조 사격은 조준의 중요성을 낮춰준다. 이동의 중요성은 부각시켰으나, 순수한 조준과 이동의 정확성을 요구하는 플레이로부터는 다소 벗어나 있다. 다시 말해, 보조 사격을 적절히 조합함으로써 부족한 조준 실력을 보충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특징은 게임에 전술적 깊이를 더해준다.
이와 같이 던전이 사라지고 전술성을 부각시킨 이동 중심의 액션 게임이나, 한편으로는 언제나 Doom 시리즈의 척추나 다름없었던 자원 제약 시스템은 여전히 갖추고 있다. 단, 클래식 Doom이 자원 수급 수단을 ‘맵에 고정적으로 배치된 자원’, 즉 ‘탐색’으로 한정지었었다면(히트 스캔 적들은 샷건 탄약을 드롭하긴 하였으나 당연히 주요 수급 수단은 아니었다) Doom(2016)은 체력을 충당할 수 있는 글로리 킬과 탄약을 충당할 수 있는 전기톱, 그리고 방어구를 충당할 수 있는 룬을 통해 자원 수급 수단을 탐험 중심에서 액션 중심으로 옮기고자 하였다. 이 또한 Doom 3의 소울 큐브를 어느 정도 계승하였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만큼이나 액션을 부각하기 위해 모험과 탐색, 그리고 던전을 사실상 제거한 경기이다. 그렇기에 Doom(2016)의 난관은 적 그 자체이다. 과거의 FPS는, 독보적인 Doom II를 제하면, 적들이 사실상 고정 포탑과 같이 기능했다. 근접 공격 적들은 플레이어를 향해 쭉 달려오기만 하고, 원거리 적들은 플레이어가 가시거리 안쪽일 시 고정 포탑처럼 멈춰 서서 플레이어를 향해 무한히 발포한다. 이는 적들이 단지 던전을 구성하는 일부분, 즉 일종의 벽이나 함정처럼 기능했던 탓이다. Doom은 물론 적 디자인이 좋은 편이지만 사실 Pinky 정도를 제외하면 전부 다 플레이어의 전진을 육탄 방해하는 장애물의 역할을 겸한 고정 포탑이나 다름없었다.
즉 이러한 적들은 던전에서의 배치를 통해 제대로 된 난관으로 기능하기에, 던전이 없는 작품에서는 난관으로 활용하기 어렵다.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Half-Life를 포함한 그 이후의 대부분의 FPS 게임들에서의 적들은 고정 포탑이나 다름없이 기능했고, 그것이 그 작품들의 패착이자 근본적인 모순이었다. 이들과 달리 Doom(2016)은 Quake의 적 디자인을 다소 발전시킨 형태이다. 모든 적이 서로와 구분되는 특징적이면서도 다양한 패턴을 가지고 플레이어를 압박한다. 플레이어와의 거리에 따라 다른 패턴을 구사하기도 한다. 가령 Mancubus는 원거리에선 일반 투사체 패턴, 중거리에선 화염 방사기 패턴, 근거리에선 그라운드 슬램 패턴을 구사한다. 이처럼 상당히 세분화되어 있어 적 하나하나가 Quake보다도 입체적이고 특징적이다. Quake의 원거리 적들도 결국 고정 포탑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는데 말이다.
이러한 적 디자인은 사실 Ninja Gaiden의 적 디자인과 유사함을 알 수 있을 텐데, 이는 Quake와 Ninja Gaiden의 적들이 디자인된 철학 자체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적들이 거리 별로 다른 패턴을 구사하기에 어느 정도 만능에 가깝지만, 홀로서는 제대로 된 난관으로서 기능할 수 없어, 다른 종류나 같은 종류의 다른 적들과 적절히 조합한 경우에만 제 힘을 발휘한다. 즉 Ninja Gaiden 2의 비평에서 언급한 바 있듯, 멀티 플레이에서의 ‘사람’ 한 명이 구사 가능한 여러 능력들을 여러 단위로 쪼개어 여러 적들에게 고르게 분배한 것과 같은 디자인이다. 즉 사실 Quake의 적 디자인이 발전한 형태가 Ninja Gaiden의 적들이나 다름없으며, 이는 Doom(2016)의 후속작인 Doom Eternal의 게임 플레이가 Ninja Gaiden 2에 훨씬 더 가까워졌음을 통해 쉽게 파악할 수 있다(이에 관한 설명은 Doom Eternal 비평에서 상세히 다룰 것이다). 물론 Doom(2016)이 Ninja Gaiden의 영향을 받았을 리는 아마 없을 것이며, 일종의 수렴 진화로 파악하는 것이 올바르다.
이처럼 Doom(2016)은 던전을 완전히 없애고 자원 수급과 난관을 모두 적 하나로 집중시킨 대신 적들과 그들을 상대로 사용 가능한 도구들 모두에 이전의 FPS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깊이를 주었다. 전체적으로는 상당히 혁신적인 시도였고, Doom(2016) 이후로 등장한 FPS들은 어떠한 방식으로건 Doom(2016)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 Desync나 Ultrakill이 대표적이다. 그렇기에 이것만으로도 Doom(2016)은 고평가 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웹진은 Doom(2016)이 가진 수많은 결함들과 미숙한 디자인을 지적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 각각의 요소들이 서로 잘 맞물리지도 않고 독자적으로 보았을 때에도 상당히 뒤떨어지는 완성도를 갖추었다. 여전히 ‘공격적이고 이동 중심이지만 전술적 요소도 가미한 슈터’라는 확고한 디자인 철학은 충분히 돋보이나, 그 철학에 맞추어 경기를 제대로 구조화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아직 Hugo Martin은 Doom에서의 샌디 피터슨과 같이 제 재능을 만개하지 못했다.
2. Risk and Reward
모든 잘못된 액션 게임 디자인은 ‘리스크와 리워드’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단 하나도 빠짐없이 그렇다. 그것이 잘못된 디자인의 모든 것은 아니나, 모든 잘못된 디자인은 이 단점을 어떠한 방식으로건 내포하고 있음은 사실이다.Doom(2016)은 이 방면에서 매우 독특하다. 물론, 나쁜 방향으로 말이다. 보통 리스크와 리워드의 분배가 문제되는 게임들은 리스크가 리워드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경우에 해당하는데, 이는 현대의 컨슈머들이 더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워드의 마초적인 게임들을 선호하지 않는 탓이다. 그러한 게임들은 필연적으로 플레이어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밖에 없으니, 비록 스트레스가 게임의 본질이라 하더라도 컨슈머들은 그것을 되도록 지양하게 된다. 그렇기에 AAA 게임들은 대부분 리스크가 리워드에 비해 지나치게 낮다. 즉 게임이 아닌 것은 아니나, 그만큼 게임에서 멀다. 가령 키보드 자판 하나만 아무렇게나 눌러도 돌파되는 난관은 난관일 수 없는데, 이는 리스크가 리워드에 비해 지나치게 낮기 때문이며, 따라서 리스크가 리워드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게임은 게임으로부터 멀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허나 반대로, 만약 그 자판 하나를, 모니터에 특정 붉은 신호가 떠오르는 순간,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23초 내로 입력해야하는 경우, 이는 반대로 리스크가 리워드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것이다. <Vanquish(뱅퀴시)>는 물론 모든 미카미 신지의 게임들이 으레 그렇듯 우수한 경기이다. 그러나 근접 공격의 자원 소모가 심대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하기가 어렵다. 그 소모를 절반 정도로만 줄였어도 매우 좋은 시스템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이처럼 리스크와 리워드는 불균형적이면 경기에서 멀어지거나, 아니면 어떤 특정한 도구의 효용성을 지나치게 떨어뜨린다. 당연하게도 둘 모두 지양되어야 하는 디자인이다.
Doom(2016)이 정말 독특한 것은, 이 두 가지 문제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리스크가 너무 높은 경우와 리워드가 너무 높은 경우 모두에 해당한다. 이러한 게임은 매우 희소하다. 아니, 희소한 것을 넘어 개인적으로는 처음 본다. 물론 좋은 방향으로 희소한 것은 절대 아니며, 단지 연구 대상으로 적합할 뿐이다. 말하자면 희귀병과 같은 것이다. 물론 연구자들 입장에선 대단히 만족스러운 연구 결과 내지는 기록 내지는 무언가 과학적인 어쩌고 저쩌고들을 뽑아낼 수 있어 행복하겠으나, 실험 대상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죽고 싶을 것이다. Doom(2016)은 아마 그런 작품일 것이다. 차라리 죽고 싶은 작품 말이다.
로우 리스크, 하이 리워드
2-1. Low Risk, High Reward
당연하게도, 리스크와 리워드의 분배를 논할 땐 난관에 대한 논의를 빠뜨릴 수 없다. 모든 게임은 플레이어가 활용 가능한 도구와, 그 도구를 활용해야 하는 난관의 합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선택을 내린다는 것은 사용할 도구나 그 도구의 활용법을 고르는 것이기에 그 자체로는, 경기적으로, 의미가 있다 할 수 없다. 그러한 선택에 어떤 의미, 즉 ‘리스크’와 ‘리워드’를 부여하는 것은 전적으로 난관의 책임이다. 각각의 도구를 사용할 당위성 또한 마찬가지로 난관을 통해 부여된다.Doom(2016)은 조준과 이동의 이원화 구조가 핵심인 FPS 형식의 경기이다. 난관이 이 두 측면을 각각 어떻게 풍부히 활용하도록 이끌어내는가를 중점적으로 따져봐야 리스크와 리워드의 불균형 문제를 다룰 수 있다.
우선 이동을 통한 문제 풀이가 너무나도 간략하고, 속된 말로, 속된 말은 아니지만 사실 비평에서는 극히 지양되어야 하는 말로, ‘쉽다’. 모든 적에 대한 대처법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거나, 좌나 우의 한쪽 방향으로 멈추지 않고 이동하는 것뿐이다. 이는 적 디자인의 문제이기도 하고 아레나 디자인의 문제이기도 하다. 적들은 분명 서로와 완전히 다른 독특한 공격과 행동패턴을 갖추고 있지만, ‘충분히’ 차별화되지는 않아서, 사실상 그냥 근거리로 돌진해오는 적과 원거리에서 투사체 공격을 하는 적으로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가 있다. 즉 Doom(2016)은 돌진형과 원거리형, 단 두 종류의 적들밖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또 이 투사체 공격과 근거리 돌진 공격은 모두 회피하는 방법이 좌나 우로 계속 움직이는 것이기에, 적어도 회피에 있어서만큼은 단 한 종류의 적밖에 없는 것이다.
가령 <Nioh(인왕)>나 <Bloodborne(블러드본)>을 보면, 두 게임 모두 적의 정면을 기준으로 어느 쪽 방면에 위치해 있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적의 회전 속도 때문이기도 하나, 무엇보다도, 어느 위치에 있는가에 따라 적들이 구사하는 패턴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또 적들의 공격이 어느 쪽에서 시작되어서 어느 방향으로, 어디까지 휘둘러지는가에 따라 플레이어의 회피 방향도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그렇기에 Bloodborne의 회피는 모두 같은 구르기 버튼 하나로 발동되지만, 방향성과 적과 나의 상대적 위치/거리 관계가 너무나도 중요하기에 매 회피가 전부 다 다른 별개의 회피에 가깝고, Nioh는 거기에 더해 회피 도구 자체도 다양하게 제공한다.
이는 이동이 근본적으로 가진 특성을 전폭적으로 활용한 매우 우수한 디자인이다. 회피와 이동에는 연속성이 있다. 앞뒤좌우 키를 누르면 무슨 하이퍼 링크를 타고 들어가듯 각각의 키에 할당된 고정된 좌표로 순간이동을 하는 게 아니라, 키를 누른 만큼 플레이어의 현재 좌표에 변화를 주는 개념이다. 즉 플레이어의 현재 위치 좌표는 어떤 단 하나의 선택이 이끌어낸 결과값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이전까지의 모든 선택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가져와 추산한 결과값이다.
이러한 연속성이 중요한 이유는 플레이어의 잘못된 선택들이 단순히 버튼 하나 누르는 것만으로 리셋되거나 되돌려지지 않고, 그것이 차곡차곡 누적이 되어 어떤 명확한 패널티를 반드시 부과한다는 점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러한 디자인은 여태껏 플레이어가 잘 쌓아 오던 ‘옳은 선택들’이 기존에 풀이해오던 난관과는 완전히 유리된 또 다른 난관에서의 단 한 번의 버튼 입력만으로 완벽히 무의미해지는 것을 방지하기도 한다. 가령 <God of War 3(갓 오브 워 3)>의 QTE가 대표적이다. 첫 보스인 포세이돈의 체력을 모조리 깎아놓더라도 이후 등장하는 QTE 파트에서 단 한 번이라도 실수를 범하면 보스전을 특정 구간에서부터 다시 치를 것을 요구한다. 이는 파편화한 디자인의 대표적인 예시이며, 게임의 통일성과 게임성을 해한다. 그렇다고 모든 QTE가 본질적으로 해악인 것은 아니다. Resident Evil 4, 6과 같이 각 부위 타격 별로 각기 다른 상호작용들을 작동하기 위한 수단 정도로 쓰인다면 통일성을 해한다고 볼 수 없다. QTE가 하나의 선택에서 다음 선택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이니 말이다.
게임이 플레이어로 하여금 적들에게 둘러싸이게 하거나 구석으로 몰리도록 하는 것은 그 이전까지 플레이어가 내려온 여러 잘못된 명령들에 책임을 묻는 것과 같다. 우수한 3D 액션 게임은 따라서 위치 선정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는다.
물론 Doom(2016)과 Nioh/Bloodborne은 전혀 다른 게임이지만, Quake의 적 디자인이 Ninja Gaiden의 적 디자인과 유사하듯, Bloodborne과 특히 사실상 Ninja Gaiden의 정신적 후속작에 가까운 Nioh의 적 디자인과도 유사하다. Quake도 Doom(2016)처럼 회피에 할당된 특정한 키(즉 구르기나 막기 같은 것)는 없다. 다양한 도구를 제시하지는 않는 것이며, 이는 고전 게임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고전들의 또 다른 특징은, 전혀 다양하지 않은 간략한 도구들만을 제시하고서도, 매우 깊이 있는 난관을 통해 그 도구들을 ‘깊이 있게’ 활용하도록 유도해낸다는 점이다. 즉 야마우치 히로시가 말한 바대로, ‘경박단소’하다. Quake는 Shambler나 Vore, 그리고 Ogre와 같이 지형을 적극 활용하거나 지형과 적극 상호작용하는 투사체들을 특정한 방향으로 회피해내어야만 하는 패턴들을 구사하는 적들이 많았기에 단순히 한쪽 방향으로 쭉 내달리는 것만으로 모든 난관을 손쉽게 풀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반면 Doom 2016은 모든 적들이 각기 다른 모양의 투사체들을 발사하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모두 플레이어를 향해 일직선으로 냅다 뻗어오는 투사체에 불과하기에 지형지물을 활용할 이유가 전혀 없고 따라서 이동에도 깊이가 없다. 그렇다고 적들의 패턴이 Nioh나 Bloodborne만큼이나 세분화되어 있지도 않아, 플레이어가 어느 위치에 있든 간 적들의 공격을 회피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다. 단순히, 열심히, 어느 방향으로건, 움직이는 것.
대단한 회피 동작처럼 보이나, 단순히 멈추지 않고 이동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Doom(2016)은 이동이 본질적으로 갖춘 ‘연속성’을 전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이는 또한 아레나 디자인의 문제이기도 하다. 모든 아레나들이 전부 다 같다. 모양이 좀 다르고, 분위기가 좀 다르며, 배치된 조명이나 장식품들이 좀 다를 뿐, 경기적으로 완벽히 동일하다. 모두 다 좀 넓고, 오픈되어 있고, 수직적이다. 플레이어의 이동에 제약을 가하는 어떤 함정이나 비좁은 골목 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다. 이러한 아레나 디자인과 적 디자인이 매우 부조화스러워 듣기 싫은 또는 ‘플레이하기 싫은’ 불협화음을 유발한다. 적들 개개인의 공격력은 높으나 기동성은 떨어지고 수도 매우 적은 반면, 맵들이 전부 다 열려 있어서(즉 폐쇄적인 아레나들이 지나치게 넓고 한 플랫폼에서 다른 곳으로 나아갈 공간이 완벽히 열려 있어서) 적들이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전체적인 틀은 물론 적 디자인이나 무기 디자인만 보아도 본 작품은 사실상 Quake의 후속작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Doom 리부트가 아닌 Quake 리부트인 것이다. 그런데 Quake는 매우 다양한 종류의 레벨 디자인을 선보였다. 어쩔 땐 운신에 제약을 가하는 함정을 배치해두기도 하고 그냥 비좁은 복도형 지형에서 바닥으로부터 솟아오르는 나사들을 피해가며 싸우도록 강제하기도 했고 높은 곳에 창을 뚫어놓고 포물선의 궤적으로 투사체를 발사하는 Ogre를 배치하여 높이 차이를 만들어 적들은 플레이어를 공격하기 쉽지만 그 반대는 어렵게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디자인들은 공통적으로 플레이어와 적들 간의 간격을 좁힘으로써 적들을 위협적이게 만든다. 이는 FPS란 형식 자체가 본질적으로 지형지물과 고속 액션의 상호작용에서 출발했고, 따라서 액션과 지형지물의 상호작용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려면 지형적으로 플레이어를 압박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좁아야 한다. 클래식 Doom에서 플레이어는 다수의 투사체를 회피하기 위하여 관성을 적극 활용해야 하고, 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지형지물과의 충돌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적을 향해 발사하기 위해선 화면의 중앙을 적에게 고정해야 하므로 주위의 지형지물을 확인하는 것이 불가하다.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불가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언제나 주변의 지형지물을 머릿속으로 그려놓고 그 위치를 예상하며 플레이하게 된다.
반면 Doom(2016)은 지형과 고속 액션의 상호작용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동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겠답시고 FPS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인 지형과의 상호작용을 거세한 것이다.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건 레벨의 어느 위치나 높이, 지점에 있건 그냥 좌나 우로 열심히 움직여주면 모든 공격이 알아서 플레이어를 비껴가준다. Doom(2016)에 능숙해진 플레이어가 가장 자주 겪게 되는 죽음이 무엇인지 아는가? 적들이 플레이어를 둘러싸서? 또는 플레이어가 잘못된 방향으로 회피를 해서? 아니다. 가장 자주 맞는 죽음은 단순히 잘 눈에 띄지도 않는 어디 구석에 숨어 있던 악랄하고도 야비한 Imp가 아무 예고도 없이 던진 화염구에 맞아 고통스럽고 짜증스러우면서도 당황스럽게 불타 죽는 것이다. 그뿐이다. 그 이상의 난관은 없다.
즉 이동은 적들의 모든 공격에 대해 가장 쉽고 아무런 자원을 요구하지 않는(= 로우 리스크) 너무나도 파괴적이고 강력한(= 하이 리워드) 도구이다. 지형 중심의 액션을 완전히 포기하고 순수한 이동 중심의 액션 게임을 만들고자 하는 포부는 좋다. 좋으나, 그렇다면 지형과의 상호작용을 대신할 만한 무언가가 반드시 존재해야 했다. 가령 적들이 미칠 듯이 공격적이라 사실상의 지형지물처럼 기능한다든가, 또 적들과의 거리를 적절히 유지하는 것이 난관의 풀이에 있어 너무나도 중요하게 작용하도록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사실 Doom Eternal은 바로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2020년의 Hugo Martin은 그럴 수 있었다. 4년 전의 어린 Hugo Martin은 그럴 수 없었다.
그런데 나약하디 나약한 적들에 비하여 무기들의 위력은 지나치다. 플라즈마 라이플의 스턴 봄은 이동과 같이 모든 적들의 모든 행동과 모든 위협을 완벽히 무력화시킬 수 있는, 로우조차 아니고 ‘제로’ 리스크 하이 리워드의 무기이다. 슈퍼 샷건은 장전 없이 두 번 연달아 발사할 수 있어 근거리의 적들은 녹아나기 바쁘다. 로켓 런처의 락온은 로켓 런처의 느린 탄속과 공격 속도라는 ‘리스크’를 완벽히 보충하되 로켓 런처의 장점을 그것도 정확히 세 배로(왜냐하면 3개의 탄을 연달아 발사하니, ‘말 그대로’ 세 배이다) 강화하는 모드이다. 이들의 특징은 각각의 무기가 가지고 있는 리스크를 완벽히 벌충하고 리워드만 수 배 강화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지 마시라, 이들보다 더 심각한 무기가 존재한다. 이름하야 가우스 캐논이다. 슈퍼 샷건이나 플라즈마 라이플, 로켓 런처는 최소한 거리에 따라 유용도가 달라진다. Quake의 무기들처럼 말이다. 가령 슈퍼 샷건은 근거리에서만 유효타를 적중시킬 수 있으며, 플라즈마 라이플은 투사체 속도가 느려 먼 거리에선 맞추기가 어렵고, 로켓 런처도 마찬가지이다. 스턴 봄이나 락온도 먼 거리에선 그다지 유효하지 않다. 그런데 이놈의 가우스 캐논이라는 무시무시한 녀석은 사실상 히트 스캔 무기라서 어떤 거리에서건 동일한 위력을 발휘한다. 뭐, 좋다. Quake의 네일건도 사실상 모든 거리에서 사용 가능한 만능 무기 아니었던가? 위력만 적당히 조절한다면야, 별 문제될 게 없다. 문제는, 이 위력이란 것이, 사실상 슈퍼 샷건 다음으로 가장 강력하다. ‘사실상’으로 묘사할 게 참 많은 무기다. 심지어 이 가우스 캐논의 반동은 어마어마한 기동력을 플레이어에게 제공한다. 발사의 순간에 맞추어 점프를 하면 뒤로 몇 십 미터는 날아가는데, 이를 통해 모든 적들로부터 삽시간에 거리를 벌릴 수가 있다. 적들의 기동력은 이 가우스 캐논의 반동을 활용한 기동력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Doom(2016)이 본격적으로 붕괴하는 것도 바로 이 가우스 캐논이 처음으로 제공되는 Kadingir Sanctum에서부터이다(사실 직전 레벨에서 제공되긴 하나, 레벨의 말미에 배치되어 있어서 제대로 사용하기 시작하는 것은 Kadingir Sanctum이다). 이전까지는 나름 전술적인 판단이 요구된다. 아, 여기 적은 이걸로 스턴시키고 저기엔 수류탄 던져놓고 내 위치는 여기로 잡아 놓고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가우스 캐논만 집으면 이 모든 게 전부 무의미해진다. 즉 이 레벨은 무기의 위력이, 게임이 정상적으로 굴러갈 수 있었던 어떤 임계치를 넘어서는 시점인데, 이때부터는 막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공격적으로’ 또는 ‘무빙 중심으로’ 전투를 풀어나가는 게 아니라, 그냥 적들 소환 위치 다 외워서 가우스 캐논 빵야 빵야 갈기는 그런 식으로 플레이하게 된다. 리스크 높은 플레이를 지양해야 하는 Ultra Nightmare에서는 특히 그러한 플레이가 더 부각된다.
심지어 보스조차 반동 기동력을 따라잡지 못한다
수없이 강조하듯 FPS는 조준과 이동의 이원화 구조가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런데 이 조준과 이동 양쪽 모두에서 만능이나 다름없는 가우스 캐논이 대체 어떻게 게임을 붕괴시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실 있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무기들의 위력을 낮추어 적들의 수준으로 끌어 내리는 것이다. 이는 리스크를 유지하되 리워드를 크게 낮추는 방안이다. 이를 채택한 게임은 대표적으로 Dark Souls와 Dark Souls 2가 있다. 적들이 다른 액션 게임들에 비해선 매우 허약하고 수동적인 편이지만, 그만큼 플레이어에게 허용된 도구들의 위력도 매우 낮으며 그것들에 제약을 가하는 시스템적 기반도 마련되어 있다. 가령 벽에 무기가 부딪히면 튕겨나간다든가, 아니면 이동 속도를 낮추어 모두에게 열화와 같은 ‘사랑’을 받는 늪과 같은 것들 말이다. 거기다 Dark Souls 2는 적들의 배치나 다대일 전투가 소울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뛰어나다. 그렇기에 Dark Souls 2는 매우 좋은 액션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두 번째 방안을 더 매력적이고 높은 수준의 디자인으로 평가한다. 두 번째는 바로 적들을 무기만큼이나 강력한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다. 즉 철저한 하이 리스크 하이 리워드의 마초적인 경기로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디자인을 제대로 활용한 게임은, 여태껏 지겹도록 반복해서 언급한 게임들이라 독자들로서는 이제는 질릴 만도 하겠으나 분명 질릴 만치 반복할 가치가 있는, 바로 <Nuclear Throne(뉴클리어 쓰론)>이나 Ninja Gaiden 2이다. Nuclear Throne은 루프Loop에 진입하는 시점에서의 플레이어는 눈에 뵈는 게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실제로 장님인 캐릭터를 선택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뮤테이션도 하나나 두 개 정도 빼고는 전부 골라놓았고 장비한 무기들도 대부분의 적들을 한 번의 클릭으로 단번에 지워버릴 수 있을 강도이다. 그런데 루프에서는 그만큼 엄청난 물량의 적들이 플레이어의 탄약에 압박을 가하고, 또 맵의 곳곳에서 적들을 실은 수송차들이 튀어 나와 플레이어가 공격적이고 정확하면서도 신속하게 플레이하도록 강요한다. 즉 유리 대포이다.
Ninja Gaiden 2는 액션 게임 역사상 가장 강력한 도구들을 플레이어에게 제시하는 경기이다. 각 기술마다 무적 프레임이 몇 프레임씩 꼭 갖추어져 있는 것은 다반사이고 광역으로 적들을 휩쓸어버리며 데미지 또한 높다. 사실 게임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컷신에서 선보여지는 아무 ‘액션’들을 갖고 와도, 아니 심지어 Ninja Gaiden 2의 컷신들로 비교해보아도 Ninja Gaiden 2의 실제 게임 플레이에 비하면 M4 셔먼을 향해 반자이 돌격을 감행하는 일본군의 총검술 수준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만큼 적들의 물량이 많고, 또 적들 개개인이 가진 패턴들이 모두 매우 강력하면서도 세분화되어 있어 풍부하다. 심지어 같은 종류의 적조차 플레이어와의 거리에 따라 다른 패턴을 구사하는 등 만능이다. 이는 Nioh도 마찬가지이다. 원거리에서는 원거리 패턴을, 근거리에선 근거리 패턴을 구사하는 식이다.
앞서 말했듯, Doom(2016)의 적들도 과거의 FPS에 비하면 기동력이 높고 나름 특수한 행동 패턴을 가지고 활동한다. 그러나 충분치 않다. 가령 적들의 물량을 무지막지하게 늘렸더라면 플라즈마 라이플의 스턴 봄이나 로켓 런처의 락온 모드의 위력이 ‘상대적으로’ 낮아져서 ‘공평’했을 것이다. 아니면 적들이 플레이어의 운신을 방해하는 패턴을 구사한다든가(가령 지형지물을 소환한다거나 플레이어와 근접할 시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근접 공격 패턴을 구사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하였더라면 플레이어의 이동이 가진 리스크가 보다 높아지고 또 회피가 세분화되었을 것이며 위치 선정의 중요성도 크게 부각되어 이동의 연속성이라는 특징이 강화되었을 것이다.
사실 어떤 게임의 디자인적 결함을 지적하거나 거기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비평의 역할이지, 그 결함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건 비평과 별 관계가 없다. 보통 같았더라면 이러한 ‘보완책’들을 제시하지도 않았겠으나, 굳이 해결책을 제시한 이유는, 이 후자, 즉 적들의 위력을 플레이어의 수준으로 끌어 올린다는 해결책을 채택한, Game of the Year를 넘어 Game of the Era로 등극하여 길이길이 플레이될 후속작이라는 낯간지러운 칭송을 받아도 부족함이 없는 후속작이 2021년 기준으로는 이미 발매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이는 다음 비평에서 제대로 다뤄보겠다.
후속작.
리스크를 높이는 방안엔 각각의 무기를 사용하는 것 자체에 어떤 제약을 가하는 것도 있다. 앞서 회피와 이동에는 연속성이 있다는 언급을 하였다. 그와 달리 무기 교체에는 연속성이 없다. 단지 하나의 무기를 다른 무기로 대체하는 것이며, 이동으로 따지면 적들에게 둘러싸였을 때 단지 버튼 하나 누르는 것만으로 안전한 곳으로 순간이동되는 것과 같다. 즉, 이동과 달리, 무기를 잘못된 것으로 교체하거나 발포했다고 하여 패널티를 부과 받진 않는다.
이러한 무기 교체에도 이동과 같이 연속성 있는 패널티를 부과하여 통일성 있게 하나로 엮을 방법을 액션 게임 디자이너들은 오래도록 고민해왔다. 그리고 그 고민을 해결할 가장 간단하면서도 정석적인 해답은 언제나 탄약 제약이거나, 시간 제약이었다. 간혹 Devil May Cry나 Hovertank 3D처럼 스코어링 시스템으로 해결한 작품도 있었으나 이는 극소수의 예시이며 특히 Devil May Cry의 경우 언제나 스타일 미터 시스템의 결함을 지적받기도 한다. 그만큼 탄약/시간 제약은 안전하면서도 확실한 게임 디자인이다.
Doom 시리즈는 언제나 이 두 가지 디자인을 모두 택했다. 무기 교체 딜레이를 넣어 특정 구간에 진입하기 전에 그 구간에서 유용한 무기로 사전에 교체하도록 반드시 요구했으며, 잘못 교체했을 경우 그 ‘딜레이’ 자체가 패널티로 직결하였다. 특히 Doom II는 빠르게 밀고 나가야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무기를 잘못 교체하는 것의 패널티는 곧 체력과 방어구의 손실로 이어졌다. 즉 이 무기 교체 딜레이는 바로 체력과 방어구를 통해서 연속성을 부여받는다.
참고로 재장전도 마찬가지로 시간이라는 자원을 소모하여 연속성을 부여하는 제약에 해당한다. 그러나 Doom(2016)은 무기 교체 딜레이나 재장전을 택하진 않았다. 대신 탄약 제약을 택했다. 어떤 무기를 사용하건 탄약을 소모하도록 하는 것은 플레이어의 선택이 명확히 수치화되어 기록되는 것이다. Doom과 II, 그리고 Quake는 모두 무기 교체에 연속성을 부여하기 위해 탄약 제약을 확실히 가했다.
Doom(2016)도 물론 탄약 제약이 존재한다. 무의미하게 말이다. Doom 3 수준은 아니나 무의미하다. 우선 맵 곳곳에 자원들이 지나치게 많이 배치되어 있고 개중엔 심지어 탄약을 최대치까지 채워주는 상자 같은 것도 존재한다. 첫 네 개의 레벨들에선 탄약 제약이 나름 유효하여 무기들을 다양하게 섞어줄 필요가 있으나 그 이후로는(즉 빌어먹을 가우스 캐논이 게임에 소개된 이후로는) 탄약 최대치 업그레이드와 적 드롭 탄약량 증가 룬의 추가로 인해 완전히 무의미해진다. 무엇보다도, 적들이 사망 시 상당히 높은 확률로 탄약을 드롭한다. 이 문제점이 가장 부각되는 것이 BFG 탄약인데, 전투를 수행하다 보면 BFG 탄약이 무슨 4개씩 드롭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무기는 한 웨이브를 완전히 지워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위력적으로는 BFG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BFG를 사용하지 않을 유일한 이유는 탄약 제약뿐인데, 이 탄약이 너무 자주 드롭된다는 것은 BFG를 지나치게 자주 사용할 수 있게 허용한다는 문제를 야기한다. 한 전투 당 2번씩 BFG를 발사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과장이겠으나, 딱히 실제 게임 플레이를 크게 왜곡하는 과장은 아니다.
이 탄약 제약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기에 발생하는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다양한 무기의 활용을 전혀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클래식 Doom은 탄약 제약을 제하고도 경직률이나 투사체/히트 스캔 여부로 다양한 무기의 다양한 활용을 다양하고도 다양하게 요구했다. Quake도 탄약 제약은 물론이거니와 거리에 따라 다른 무기들을 제각각 활용하도록 요구했다. Doom(2016)은 이러한 기반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다. 사실상 슈퍼 샷건이나 가우스 캐논이나 로켓 런처 중 하나만 들고도 모든 레벨을 아무 문제없이 돌파 가능한 수준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탄약 제약을 보다 빡빡하게 하거나, 아니면 클래식 Doom처럼 경직률 같은 요소를 통해 각각의 무기에 그 무기만의 특수함을 부여하거나 해야 했는데, 그러한 기반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를 않으니 Quake II처럼 무기를 다양하게 활용할 필요성이 없다. 여섯 개 이상의 무기가 주어진 게임에서 모든 난관을 단 하나의 무기만으로 돌파가 가능하다는 것은 그만큼 그 게임에 깊이가 없음을 뜻한다.
2-2. High Risk, Low Reward
이처럼 로우 리스크 하이 리워드의 디자인은 게임의 깊이를 없애고 난관을 무력화한다. 반대로 하이 리스크 로우 리워드의 디자인도 문제가 된다. Doom(2016)의 경우, 바로 근접 공격들이 그러하다.이는 탄약 제약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Doom(2016)의 근접 공격들인 글로리 킬과 전기톱은 자원 수급 수단을 탐색에서 액션으로 옮기고자 한 시도이다. 그런데 자원 제약이 제대로 작동하지를 않으니 이 자원 수급 수단들을 활용할 이유가 전혀 없다. 글로리 킬은 체력이 특정 퍼센테이지(대략 60%~65%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이상일 시 체력을 5만큼 회복시켜주고, 체력이 그보다 낮은 경우엔 굳이 글로리 킬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무슨 적이건 아무렇게나 죽이기만 하면 체력 25 가량을 확정적으로 드롭한다. 액션으로 방어구를 수급할 방도는 룬인 Armoured Offensive를 쓰는 것인데, 이는 글로리 킬 발동 시 아머를 회복시켜 준다. 문제는, 이 글로리 킬이라는 것이, 전투 중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아니 오히려 사용하는 것을 최대한 지양해야 하는 기술이란 점이다.
글로리 킬을 수행하는 동안엔 우선 가만히 제 자리에 멈춰 있게 된다. 그런데 Doom(2016)은 플레이어가 열심히 이동할 시에만 적들의 명중률이 떨어진다. 그러니 글로리 킬의 무적 프레임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적들의 투사체가 별안간 날아드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즉 무적 프레임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령 누구든 글로리 킬을 보는 순간 곧바로 떠올리게 될 Ninja Gaiden 2의 멸각은 무적 프레임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적 프레임이 끝나더라도 곧바로 방어 키나 회피 키를 눌러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할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Ninja Gaiden 2는 3인칭 게임이기에 주변 동태를 쉬이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Doom은 1인칭 게임이다. 마우스를 사용할 수 있는 1인칭 게임이 조이스틱을 사용하는 3인칭 게임에 비해 화면을 쉽게 돌릴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글로리 킬을 수행하는 도중엔 카메라를 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1인칭 시점이라는 시야적 제약만이 남게 된다. 거기다 방어나 회피 키도 없다. 현재 자리로부터 곧바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가우스 캐논 반동인데, 글로리 킬 직후에도 후딜레이가 미미하게나마 존재하여 가우스 캐논을 꺼내거나 발사하면서 점프하기도 전에 적의 투사체에 당해버리게 된다.
이 모든 걸 감수할 정도로 확실한 리워드가 존재하기는 할까? 자, 생각해보라. 대부분의 투사체 공격들은 대략 50~80 사이의 공격력을 가진다. 그런데 글로리 킬은 많아봐야 30 정도의 체력을 회복시켜준다. 초등 수학을 문제없이 교육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30이 50~80보다는 작은 숫자임을 다소 시간은 걸릴지 몰라도 어쨌건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체력이 60% 이상일 시엔 고작 5만을 회복시켜 준다. 그 누가 5를 회복하겠답시고 50~80의 위험을 감수하겠는가? 초등 교육을 마치지 않은 사람들? 그렇기에 체력을 60% 위로 끌어올리는 방법은 사실상 탐색밖에 없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글로리 킬이 안전한 경우도 있다. 가령 벽으로 둘러싸인 위치라든가, 적들이 공격을 명백히 중단한 상태라든가 할 때처럼 말이다. 그런데 글로리 킬이 주는 리워드가 고작, 말 그대로, 한 손으로도 다 표현할 수 있는 수치의 체력뿐인데 왜 그냥 총으로 쏴 죽이지 않고 굳이 다가가 t를 누르겠는가? 만약 탄약 제약이 제대로 작동하였더라면 t를 누를 이유가 존재했겠으나, 이미 우리는 Doom(2016)의 탄약 제약이 허상뿐인 것을 모두들 알고 있다. 그러니 키보드에서 t를 뽑아놓고 플레이하는 것을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글로리 킬은 무의미하니 좌클릭이나 열심히 하는 것이 이롭다
이러한 점은 전기톱의 효용성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전기톱의 리워드는 a) 탄약 제공 그리고 b) 적 하나 즉시 제거 이다. 그런데 탄약이 넘쳐나기 때문에 전자의 리워드는 무의미하다. 여전히 후자의 리워드는 의미가 있으나, 이는 1인 대상으로 사용 가능한 BFG라 보는 것이 타당하지 자원 수급 수단을 이루는 축이라고 보는 것은 뽕을 빤 상태라면 모르겠으나 이성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즉 클래식 Doom이나 Quake의 자원 압박 요소를 그대로 계승했고, 이를 액션 위주로 옮기고자 여러 디자인적 선택들을 내렸으나, 이것들이 게임 플레이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거나 없는 수준인 것이다.
이 글로리 킬과 전기톱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큰 호평을 받은 시스템이며, 본 웹진 또한 이 근접 공격들 뒤에 숨은 어떤 ‘철학’이나 ‘디자인 방향’ 어쩌고 저쩌고는 상당히 가치 있다고 보는 데 동의한다. 자원 수급 수단을 탐색에서 액션으로 옮기겠다는 것이며, 또 Halo의 계집애 같은 또는 PC적으로 말하자면 전혀 계집애 같지 않을 수 있고 남자다운 이라고 묘사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겁쟁이 플레이 대신 ‘둠 가이’다운 ‘공격적인’ 플레이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결국 그 의도만을 호평할 수 있을 뿐 실제로 어찌 적용되었는가를 살펴보면 비판만을 할 수밖에 없다. 결국 리스크에 비해 리워드가 너무 높다면은 그것은 난관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고, 리워드에 비해 리스크가 너무 높은 경우엔 도구를 무가치하게 만든다. 희귀병을 앓고 있는 Doom(2016)이 이제 그만 제발 좀 죽여 달라고 외치는 것이 느껴지니 추가적인 비판사항을 기계적으로 열거하지는 않겠다. 연구는 끝났다.
3. Not ‘Eternal’ Enough
내내 비판하긴 했으나 Doom(2016)은 분명 좋은 작품이다. 단지 희귀병을 앓고 있을 뿐이다. 이 작품이 Half-Life와 Halo로 완전히 붕괴되어 버린 FPS를 다시 정상적인 궤도로 올려놓은 것도 사실이고, 이후의 FPS 작품들이 본 작품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 또한 사실이다. 사실 가우스 캐논이나 슈퍼 샷건 하나만 들고 플레이하더라도 충분히 가치 있기도 하다. 아레나 디자인이 모두 동일함을 지적하였으나 적어도 수직성을 갖춘 이 아레나들은 FPS가 오래도록 잊고 있던 가치를 되살리는 데 성공하였으며, 전투와 전투와 전투와 전투의 숨 막힐 정도로 선형적인 나열임을 지적하였으나 나름 비선형적인 탐색 요소와 나쁘지 않은 플랫포밍 구간이 곳곳에 충분히 잘 숨겨져 있어 무려 지능의 활용을 요구하기도 하고, 적 디자인의 문제점을 지적하였으나 최소한 시도는 하였고, Quake 이후의 숱한 싱글 플레이어 FPS 작품들의 적들보다는 훨씬 깊이 있게 디자인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영원’히 남을 고전이 되기엔 턱없이 부족하나, 수작인 것은 사실이다.굳이 단점을 더 지적하고자 한다면은 아케이드 모드가 스턴 봄과 샷건 3연타 헤드샷만을 강제한다는 것과 대부분의 현대 액션 게임들이 공통적으로 앓는 고질병이나 다름없는 빈약하고 무의미한 업그레이드 시스템(또는 몇몇 사람들에게 별 이유도 없이 ‘RPG’ 시스템이라 불리우는 바로 그것)과 울트라 나이트메어에서 다소 불공정하게 보일 수 있는 Imp의 시야 바깥에서의 저격과(물론 시야 바깥의 변수를 다루는 것은 좋다. 좋으나, 거기에 대처할 도구는 충분히 마련해야 Ninja Gaiden 2처럼 공정함을 유지할 수 있다. Doom[2016]에는 그와 같은 도구가 없다) Doom 시리즈 치고는 또는 사실상의 Quake 리부트작 치고는 플랫포밍이 다소 부실하다는 것(이는 사실 중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조준과 이동의 이원화 구조를 갖춘 FPS에서 이동을 활용한 플랫포밍을 모험의 난관으로 활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기 때문이다. 뭔 소리인지 이해가 안 간다면 Doom II 비평을 참조 바란다) 등등 언급할 요소들이 무궁무진하지만, 요점은 결국 이렇다. Doom(2016)은 좋은 철학을 갖추었고, 여러 좋은 시도들이 돋보이고, 나름 혁신적이기까지 하다. 비록 그 시도들이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으나, 경기적 완성도 자체는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수작이고, 보다 거대하고도 위대한 후속작의 기반으로는 제 역할을 충실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