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매일 2009.2.7.
개발사 From Software
디렉터 Hidetaka Miyazaki
실기 Playstation 3


0. 반동적 게임


  1990년대 후반, 비디오 게임은 거대한 흐름을 맞이한다. <Final Fantasy VII(파이널 판타지 7, 이하 FF VII)>은 상호작용 불가한 고용량 컷신과 연출을 이전의 그 어느 게임보다도 우수한 퀄리티로 구현하여 ‘시네마틱 컷신’을 탄생시키었고 <Half Life(하프 라이프, 이하 HL)>는 연출을 통한 심리적 압박과 오브젝트 배치로 플레이어를 자연스럽게 특정한 길로 유도하여 스토리를 진행하였다. 이 두 게임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른바 ‘스토리형 게임’의 전범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플레이 요소가 전무하다시피 한 FMV가 유행하기도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게임 플레이 또는 ‘경기’는 열화한 한편 플레이와 무관한 수동적 감상 시간을 늘리어 게임 플레이를 끊임없이 방해한다는 점이다. FF VII은 CRPG의 최대 장점인 플레이어와 세상의 능동적 상호작용과 비선형적 서사 및 문제 풀이를 없애고 그 빈 자리를 플레이어와 분리된 주인공과 ‘동료’들, 그리고 통일성 없는 사이드 퀘스트와 미니 게임으로 채워 선형적인 스토리를 내세웠다. 또 HL은 DRPG적 던전 탐색과 3D 공간에서의 끊임없는 이동 액션이 구조의 중추였던 Doom과 Quake의 FPS를 지극히 선형적이고 이동이 적은 건슈팅이나 다름없는 단순한 액션으로 열화하여 ‘스크립트된 체험형 연출’을 강화하였다. 선형적이고 수동적인 스토리는 본질적으로 비디오 게임의 능동성과 대척점에 있는 탓에 이들은 능동성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대자본 게임AAA Game은 대부분 이들의 발자취를 따랐다. 비디오 게임의 구조는 갈수록 열화되었고 편의성이란 명목으로 능동적 플레이를 자동화하는 시스템이 우후죽순 추가되었으며 상호작용 불가하거나 가능하더라도 경기적으로 무의미한 컷신의 비중은 갈수록 늘었다. 여전히 비디오 게임의 구조적 발전을 이끄는 작품들은 등장하였으나 대세는 명백히 FF VII과 HL의 스토리형 게임이었다.

  이 흐름은 <Super Mario 64(슈퍼 마리오 64, 이하 SM64)>와 Ocarina of Time, Quake와 Ultima Underworld가 완성하여 보편화한 ‘3D 게임 작법’과는 달랐다. 3D 혁신이 게임 디자인의 혁신이었다면 FF와 HL의 혁신은 경기의 구조와는 무관한 스토리 연출의 혁신이었다. 게임 디자인의 발전이 아닌 그래픽이나 성우가 녹음한 대사 추가 등의 기술적 발전이었고 개발 자본과 시장의 성장이었다.




  ‘도전적 난이도’ 역시 지양되었다. 도전 자체가 플레이어를 계속 패배시키고 풀이를 고민하도록 하여 스토리 흐름을 끊어 먹는다는 것도 이유였지만, 상업적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멋진 스토리 연출과 수려한 3D 그래픽의 기술적 구현은 거대 자본의 투입으로만 달성할 수 있었으므로 그만큼 더 많이 팔아야 했다. 개발사 간 군비 경쟁이 심해지었고 그만큼 기존보다 광범위한 소비자층이 요구되었다. 비디오 게임에 그리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기 힘든 ‘피곤한 현대인’이 다수인 현대 사회인 만큼 ‘피곤한 난이도’는 아예 잘못된 디자인 취급이었다. 그렇게 경기에 대한 도전이 필연적으로 유발하는 ‘스트레스’는 점점 잊히어 갔다.

  이러한 흐름에 도전하는 몇몇 게임들이 있었다. 이타가키 토모노부는 도발적인 인터뷰와 과격한 언어로 어려운 난이도의 가치를 주창하였으며 코지마 히데오는 입으로는 스토리형 게임을 주장하는 듯 보여도 언제나 경기성이 강조된 게임을 만들고 매번 European Extreme이라는 도전적 난이도를 빠짐없이 추가하였다.


  허나 이들은 흐름에 도전하는 드높은 가치의 비디오 게임을 만들기는 하였으나 흐름 자체를 뒤바꾼다든가 하지는 못했다. 이타가키 토모노부의 Ninja Gaiden은 보편적으로 널리 플레이될 수 없어 그 자극적인 인터뷰만이 널리 알려질 뿐이었고 코지마 히데오의 Metal Gear Solid는 오히려 스토리형 게임이라는 오명을 써 그 구조적 가치는 쉬이 간과되었다(이는 코지마 히데오 본인이 어느 정도 자처한 점도 있다).

  비디오 게임의 구조에 대한 치열한 고민으로 탄생한 애덤스 형제의 Dwarf Fortress나 데렉 유의 Spelunky는 소규모 자본과 간소한 프로그래밍으로도 시스템적인 게임 디자인과 창발적 상호작용 속에서 도전적인 경기를 구현할 수 있다는 혁신을 보여주었으나 아직 이러한 독립 자본 게임Indie Game 시장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탓에 Steam이 나오기 전까지는 스토리형 게임이라는 흐름을 뒤바꿀 정도는 못 되었다. 애당초 거대 자본 게임이 비디오 게임 시장의 비대화를 주도하였던 탓에 이 비도전적 게임들이 대중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해져 도전적인 게임은 도전적이란 이유만으로 소비자들에게 널리 인정받을 수도 선호될 수도 없었다.

부활 아이템을 훔쳐 상인을 한 쪽으로 전부 유인하고


반대편에서 부활한 후 상점 아이템과 총기를 모두 훔친다. 순수하게 일관적인 규칙이 이러한 창발성 플레이를 보장하였다.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진 듯 프롬 소프트웨어가 나타났다. 프롬 소프트웨어는 이미 90년대 초부터 활발하게 비디오 게임을 발매하고 있었지만 소수의 게이머만 주목할 뿐 광범위한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애초에 인지도랄 게 없었다. 2007년, 프롬 소프트웨어의 미야자키 히데타카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게임의 개발을 주도했다. 그것이 2009년작 <Demon’s Souls(데몬즈 소울즈, 이하 DS)>였다.

  여러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 DS는 개발자들마저 팔기를 포기한 작품이었다. 미야자키 히데타카는 ‘어차피 팔리지도 않을 테니 내 아이디어들이 실패하더라도 아무도 신경 안 쓸 것이다’고까지 말하였다. 2008년 도쿄 게임쇼에서의 시연은 시연자 다수가 캐릭터 생성 화면조차 넘기지 못할 정도로 호응이 없었다. 오히려 그렇기에 미야자키 히데타카는 더 과감하게 게임을 도전적이게 만들 수 있었다. 상업적 성공을 고려하여야만 하기에 도전적일 수 없었던 비디오 게임은 상업적 실패가 예정되었을 땐 도전적일 수 있었다. 월드 텐던시가 바뀌어 붉은색 적이 추가되는 등의 사망 패널티로 인해 죽을수록 게임의 난도는 오히려 올라갔고 애초에 많이 죽어야만 파악 가능한 함정이 곳곳에 배치되었다. ‘비디오 게임은 플레이어를 계속 죽여야만 의미 있는 철학을 말할 수 있다’는 게 미야자키 히데타카의 주장이었다.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없었던 이 반동적 게임은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초기 예상 판매량을 월등히 뛰어넘어 2011년에는 1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는데, 본 게임이 플레이스테이션 3 독점작이었단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는 더욱 놀라운 성과이다. 프롬 소프트웨어는 이후 2011년에 DS를 기반 삼은 <Dark Souls(다크 소울즈)>를 플랫폼 제약 없이 발매하였고 최종적으로 500만장에 근접하게 팔렸다.

  단순 상업적 성공뿐만이 아니었다. DS와 Dark Souls는 비디오 게임 담론을 영원히 바꾸었다. 이타가키 토모노부의 게임이 그 구조적 성취와는 별개로 비디오 게임 담론에서는 단순히 인터뷰 몇 마디만이 인용될 뿐이었다면 DS는 Dark Souls와 함께 한때 잊히었던 비디오 게임의 고전적 가치를 다시 주목받게 하였다. 그것은 물론 도전이었다. 플레이와 무관한 스크립트 연출과 상호작용 불가한 컷신으로 범벅이었던 비디오 게임을 정제하여 그 본질로 되돌아갔다. DS는 21세기 비디오 게임사史에 지워질 수 없는 족적을 남기었다.

1. 정제


  그렇다고 본 비평이 DS가 도전적이었음에도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다루는 건 아니다. 그 이유의 연구는 게임 비평과 무관한 상업적 분석일 따름이다. 본 비평은 DS가 어떠한 방식으로 비디오 게임의 잊히었던 가치를 현대적인 3D 게임의 구조로 되살리었는지, 그 과정에서 현대 3D 액션 게임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정제하였는지를 다룬다.

1-1. 공방


  정제라는 말이 그다지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정제는 미니멀리즘의 작법이다. 어떤 형식을 규정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를 남기고 나머지는 쳐내는 작업이다. 즉 비디오 게임의 특정 형식을 정제한다면 자연스럽게 비디오 게임의 본질이 부각된다.

  DS의 정제 대상은 3D 액션이었다. SM64로 시작한 3D 시대에서 액션은 2D와는 크게 다른 모습으로 진화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비디오 게임의 3D화가 자연스럽게 액션에마저 영향을 끼친 것에 가깝다. 그렇기에 현대 3D 액션을 정제하고자 한다면 3D의 정제에 우선 주력하여야 한다. 3D에서 2D로, 또는 3D적인 것에서 2D적인 것으로의 회귀다.

  3D와 2D의 차이는 물론 축의 개수이다. 평면은 플레이어와 난관이 가용할 수 있는 공간이, 당연하게도, 평면에 한정된다. 비디오 게임이 플레이어를 압박하거나 반대로 플레이어가 비디오 게임을 압박할 방향은 상하라는 Y축과 좌우라는 X축 두 개뿐이다. 3D 게임은 거기에 Z축이 추가된다. 비디오 게임에서 축의 추가란 즉 변수의 추가다. A, B, C, D라는 네 개의 공격 패턴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공격 패턴이 언제나 하나씩만 제시된다면 플레이어가 대응해야 할 패턴의 가짓수는 네 개다. 그런데 만약 2개씩 조합하여 제시된다면 그 가짓수는 12개가 된다. 조합 가능한 수가 늘수록 가짓수는 그보다 큰 폭으로 증가한다.

  매우 단순한 비유지만 요점을 이해시키기엔 충분하다. 요컨대 축의 증가는 곧 대응해야 할 패턴 조합의 증가며 이는 즉 변수의 증가다. 그렇기에 3D 실시간 게임은 아무리 단순화하여도 3D 공간을 충분히 활용하기만 한다면 2D 실시간 게임보다 변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각 패턴의 차이가 보다 미묘해지는 탓이다. 패턴의 차이는 시간적이기도 공간적이기도 하다. 1초 딜레이의 공격과 2초 딜레이의 공격은 히트박스가 같아도 시간적인 차이로 인해 다르다. 또 딜레이가 같아도 히트박스 차이로 기술을 공간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3D는 히트박스의 차이를 입체적으로 구현할 수 있어 평면적으로만 구현해내는 2D 게임보다 더 미세하게 각 공격 기술을 구분한다. 덕분에 공방의 교환 역시 더 미세하다.

  DS는 공방이 교환되는 구조만 따진다면 3D 밀리 컴뱃 게임으로 규정할 수 있다. 적의 AI나 패턴 디자인은 모두 플레이어가 근접 전투를 수행한다는 가정에서 짜였다. 마법 등의 원거리 공격이 게임의 난도를 급격히 완화하는 것 역시 그러한 이유에서다. 이 3D 밀리 컴뱃 게임의 두 정점은 모두 2008년에 달성되었다. 하나는 <Ninja Gaiden II(닌자 가이덴 2, 이하 NG2)>고 다른 하나는 <Devil May Cry 4(데블 메이 크라이 4, 이하 DMC4)>다. NG2는 3D 공간상의 전면적인 압박과 카메라 제약이라는 측면에서, DMC4는 미세한 차이의 무수한 기술을 자유로이 조합하여 물리 엔진과 창발적으로 상호작용한다는 측면에서 각각의 성취가 있다.

  DS는 이 두 게임과 전혀 다르다. NG2나 DMC4나 각각의 기술은 미세한 히트박스와 딜레이 차이, 적의 운동 상태에 변화를 주는 정도 차이만으로도 전혀 다르게 쓰인다. 같은 방향으로 공격하는 기술조차 미묘하게 다르다. 반대로 DS는 대부분의 무기가 사실상 좌우로 휘두르는 공격과 상하로 휘두르는 공격, 그리고 앞으로 찌르는 공격뿐이다. 각각의 방향에 대해 하나에서 두 개 정도의 공격 기술만을 도구로 제시한다. 이러한 DS의 공격 기술은 사실상 닌텐도 64나 어쩌면 슈퍼 페미컴으로도 구현 가능할 정도로 단순화되어 있다.

구르고 공격하기의 반복

  방어도 그렇다. NG2는 미묘한 무적 프레임 차이로 구분된 여러 기술과 방어 및 패링으로, DMC4는 로얄 가드의 방어 및 패리와 트릭스터의 순간이동 등으로 다양한 방어 기술을 제시하나 DS는 그냥 구르기와 방어, 그리고 패리가 전부다. 이 중에서도 구르기가 압도적인 범용성을 자랑하여 DS의 방어는 사실상 구르기로 일원화되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복잡하였던 공방 기술이 단순해지자 자연스럽게 액션도 단순해졌다. 밀리 액션 게임의 공방은 기본적으로 턴의 주고받음이다. 상대 턴에는 내가 회피하고 내 턴에는 상대가 회피한다. 가령 NG2는 미세한 차이의 기술 또는 패턴으로 양쪽 경기자가 서로의 턴에 끊임없이 개입한다. 턴 전환은 한쪽의 무방비함을 다른 쪽이 활용할 때 이루어진다. 기술이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구분될 수 있듯 턴 전환 역시 시간적일 수도 공간적일 수도 있다. 가령 이즈나 드롭은 무적기다. 하지만 무적 프레임이 끝난 후에도 기술 자체의 후딜레이는 이어져 한동안 조작이 불가능하다. 만약 이 후딜레이 동안 상대방이 잡기 기술을 쓴다면 플레이어는 대처할 수 없다. 그러면 턴은 시간적 요인으로 전환된다. 만약 적이 회전속도가 느린 공격 패턴을 쓰는 도중에 플레이어가 좌우나 점프로 회피하여 딜레이가 짧은 기술을 써서 적을 경직시킨다면 적의 공격 패턴은 중단된다. 그러면 턴은 공간적 요인으로 전환된다(패리 등의 특수 룰은 예외로 두겠다. 패리 역시 공간적인 턴 전환이지만 히트박스가 정반대라는 점이 다르다).

  요컨대 시간적 턴 전환은 어느 한쪽의 공격 패턴이 끝나 후딜레이에 갇혀 있을 때만 가능하다. 공간적 턴 전환은 어느 한쪽의 패턴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그 히트박스를 미묘하게 피해내어 처벌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래서 시간적 턴 전환은 정형적이다. 턴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동일한 패턴 프레임으로 결정된다. 반대로 공간적 턴 전환은 비정형적이다. 히트박스나 플레이어 위치 등 요인이 일관적으로 처리되지만 어느 시점에건 플레이어가 개입하여 턴을 전환시킬 수 있는 탓에 그렇다.

  이를 3D 게임의 특성과 연관 짓는다면 새로운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3D 게임에서 추가된 축은 시간 축이 아닌 공간 축이다. 즉 시간의 흐름 또는 프레임 데이터의 처리 자체는 2D건 3D건 똑같으므로 시간적인 턴 전환 역시 똑같다. 공간적인 턴 전환은 다르다. 공간 축이 추가되었으므로 플레이어가 히트박스를 회피할 수 있는 방향이 0에서 359도로 늘어났다. 따라서 플레이어가 공간적으로 적 턴에 개입할 여지가 일반적으로 2D보다 더 많다. 즉 공간적인 턴 전환, 또는 비정형적인 턴 전환이라는 건 3D 형식으로 강화되는 요인이다. 2D 게임에서도 양 경기자의 직선 사거리나 히트박스의 상/중/하단 구분에 기반하여 턴이 전환될 수 있으나 3D만큼 폭넓지는 않다.

  그런데 DS의 공방 기술은 미세한 입체적 히트박스를 통한 구분이 거의 없으며 난관도 좌우 기동이 힘든 복도형 구조일 때가 대부분이다. 거기다 플레이어의 이동속도는 느리고 점프도 없어 상대방의 공격을 미묘하게 회피하는 게 구조적으로 지양된다. 그래서 DS의 공간적 턴 전환이란 대개 2D 게임처럼 무기의 직선 사거리로만 발생한다. 적 사거리 바깥에 머무르거나 정확한 타이밍에 구르지 않고서는 적의 공격을 회피할 방도가 딱히 없다. 좌우로 굴러 입체적으로 기동하는 것 역시 구르는 동안엔 게임과 상호작용할 수 없고 구르기의 딜레이가 긴 탓에 구른 후 적을 마주하면 다시 직선 사거리만이 유의미해지므로 평면적이다.

사거리만이 가장 중요한 전투

  이처럼 3D 형식이면서도 공간적인 턴 전환을 거의 활용하지 않는 탓에 DS의 턴 전환은 지극히 정형적이다. 한쪽이 공격을 이어나가고 있다면 상대방이 거기에 개입할 여지가 없다. 슈퍼 아머가 없는 적과의 공방에선 플레이어가 이어나가는 공격에 적이 능동적으로 개입할 수 없어 스태미나가 소진될 때까지 마냥 적을 때릴 수 있으며, 반대로 슈퍼 아머가 있는 적과의 공방에선 적의 공격 패턴 중에 개입할 수 없어 구르고 또 구를 뿐이다.

  이렇게 시간적인 턴 전환만을 허용하는 구조는 전투를 수동적이게 만든다. 공격은 능동적인 풀이고 방어는 수동적인 대처인데 DS의 공격은 수동적인 대처 사이 사이에 끼워 넣는 수준이다. 거기다 스태미나까지 있다. 공격할 스태미나가 없을 땐 단순히 전투 시간이 늘어날 뿐이지만 방어할 스태미나가 없으면 체력 감소나 죽음 등으로 직접적으로 처벌 받는다. 어느 모로 보건 방어가 공격에 우선할 수밖에 없다.

먼저 공격하기엔 리스크가 있으므로 적의 공격이 끝나기를 기다린 후 공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스태미나를 충족할 수단이 단순히 기다리는 것뿐이라 스태미나는 시간 자원처럼 기능한다. 플레이어 턴에는 공격 버튼만 누르게 되므로 스태미나가 시간제한이나 다름없고 상대방 턴에는 상대방의 공격 패턴이 끝날 때까지 회피하거나 플레이어의 스태미나가 다시 적정 수준까지 차오를 때까지 시간을 두고 기다리어야 하므로 역시 패턴 프레임이라는 시간제한을 기다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공간적 턴 전환은 거의 없고 시간적 턴 전환은 스태미나 시스템으로 도리어 강조되었단 점에서 DS의 공방은 평면적이다.

스태미나가 다하면 물러날 뿐

1-2. 던전, 또는 스테이지


  난관 역시 상당히 단순하다. Wizardry나 Ultima Underworld 등의 DRPG에서 던전은 언제나 끊임없는 되짚어보기Backtracking를 요구하는 탓에 비선형적이다. 반면 DS의 이른바 ‘던전’은 1-1 등의 극소수를 제하면 선형적이다. 물론 언뜻 보기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지름길을 열어 이전엔 막혀 있던 문으로 되돌아가는 등 되짚어보기처럼 보이는 요소가 어느 정도 있다. 하지만 DS의 되짚어보기는 여러 연출과 시청각적 신호 등으로 게임이 플레이어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것에 가까우며, 이는 엄밀히 말해 되짚어보기라 하기 힘들다. 맵의 구석구석을 살피다 보면 게임은 (전투를 제할 시) 알아서 진행된다. 기존 DRPG에선 이러한 플레이가 불가능하다. Wizardry는 첫 번째 층부터 던전과 맵 필기를 대조하며 이 던전이 어떠한 방식으로 플레이어를 이동시키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던전의 구조가 왜 이러한지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하면 플레이어가 진행할 수 없게 가로막는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던전의 구조를 이해하려면 어느 지점에서 어떤 시행착오가 필요한지를 능동적으로 계획하여 모험하여야만 한다. 따라서 던전 속 함정과 개별적 퍼즐뿐만 아니라 던전 구조 자체가 일종의 퍼즐이자 난관이다. DS는 그렇지 않다.

  되짚어보기가 없을 뿐 DS의 던전은 3D 구조를 충실히 활용한다. 여러 지점에서 Z축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며 낙사 대미지와 다음 플랫폼의 높이 차이를 고려해야만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 허나 대부분의 난관은 기본적으로 복도형 구조라서 폭넓은 공간 탐색이 아닌 그 복도형 구조의 지형을 채운 적을 무찌르거나 원거리 공격을 회피하며 나아가는 전투 활동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공간이 광활한 스테이지도 독으로 인한 체력 감소와 구르기 제한, 느린 이동속도 등 전투에 대한 패널티만 제시되고 딱히 제대로 된 퍼즐이 있는 건 아니라서 공간 탐색이 주요 난관으로 기능하지는 못한다. 여러 직관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 장소에서 무기나 마법을 발견할 순 있지만 이들이 난관에 대한 직접적인 풀이로 작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간접적으로만 도움이 되어서 무시될 수 있다. 함정과 매복이 곳곳에 도사리어서 처음 맞닥뜨릴 땐 쉬이 죽지만 처음뿐이다. 익히고 나서는 쉽게 회피할 수 있다. 따라서 함정의 작동법을 추론하는 과정을 요하기보다는 단순 암기를 요한다.


  Wizardry의 방위 함정과 순간이동 함정은 끊임없이 플레이어가 어느 방향을 바라보며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추론하도록 하고 다크존과 방 구조 자체를 바뀌는 함정은 맵 필기를 퍼즐화한다. DS는 암기할 뿐이다. 그렇기에 DS의 이른바 던전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던전이 아닌 일종의 스테이지에 가깝다. 적의 매복과 함정을 암기하여 정해진 위치에서 정확한 실시간 입력을 수행하여 스테이지 돌파하고 이후 보스의 패턴을 암기하거나 즉각 반응하여 격파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DRPG의 비선형적인 문제 풀이와 퍼즐 풀이는 거의 동원되지 않는다.

1-3. 구르기


  평면적인 공방과 스테이지에 가까운 던전 등으로 인해 DS는 동시대의 3D 밀리 컴뱃 게임이나 DRPG와는 전혀 다르다. 대신 클래식 악마성 3부작과 매우 유사하다.

  어떤 게임의 본질을 알고자 한다면 무엇을 성취하였을 때 게임이 타파되는지를 살펴야 한다. 현대의 3D 액션 게임은 대부분 아레나 전투의 선형적 나열이라서 전투의 승리가 곧 게임에서의 승리로 직결한다. DS는 그렇지 않다. 게임에서 승리하는 조건은 페미컴 2D 액션 플랫포머와 마찬가지로 한 지점에서 출발하여 반대편 지점에 다다르는 것이다. 그렇게 필드를 진행하여 끝에 다다르면 보스전이 가로막는다. 실질적인 체크포인트인 요석은 보스전 장소와 멀리 배치되어 있다. 따라서 보스전에 다다르는 과정 자체가 가장 강력한 난관이며 오히려 보스전은 짧으면서도 암기할 것도 단순하여 큰 압박을 주지 못한다. 지나가는 게 목표이므로 필드에서는 적과의 공방을 되도록 회피하여야 한다. 그렇다고 적과의 교전을 언제나 회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비좁은 골목에서 적이 플레이어를 육탄 방어하는 탓에 진행하려면 이들을 반드시 무찌르거나 최소한 적을 유인하여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각각의 함정이 추론이 아닌 암기를 요하는 것 역시 패미컴 2D 액션 플랫포머와 같다.



  물론 이러한 구조는 어느 특정한 게임 단 하나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패미컴 시절 2D 액션 플랫포머 전반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클래식 악마성 3부작을 DS와 가장 유사하다고 하는 것인가? 당장 Super Mario Bros.라는 패미컴 플랫포머와 Wizardry라는 DRPG 양쪽 모두에 영향 받은 Doom만 하더라도 전체적인 게임 진행은 DS와 같지 않은가? 시작점에서 도착점까지의 이동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이에 대한 답은 구르기다. Doom은, Doom 비평에서도 언급하였듯, Super Mario Bros.의 관성과 빠른 스크롤링을 1인칭 DRPG에 이식하고자 한 시도였기에 플레이어의 이동이 물리 엔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반면 DS의 구르기는 물리 엔진과 무관하다. 지형지물과 부딪히지 않는 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거리만큼을 반드시 이동한다. 이는 악마성 3부작의 점프와 기능적으로 동일하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구를 때마다 언제나 새로운 변수 속으로 뛰어든다. 굴러서 다다른 곳이 벽이라면 플레이어는 적들에게 둘러싸여 불리한 상황에 놓인다. 거기다 사방에 낙사 함정도 도사리고 있다. 플레이어의 이동속도가 느리고 점프도 없으며 구르거나 달릴 때마다 스태미나를 소모하므로 특정한 위치에서 벗어나는 것이 동시대의 다른 3D 게임보다 패널티가 크다. 심지어 벽에 무기가 부딪히면 공격이 중단되기까지 한다. 체력 회복 역시 구르기와 마찬가지로 게임과의 상호작용을 막아버려 더더욱 플레이어를 같은 위치에 붙들어 놓는다. 그로써 전체 지형에서의 위치선정이 중요해진다.

악마성 점프의 특성을 가장 잘 부각하는 스테이지

DS의 구르기도 구르는 중의 조작이 불가능하다

  액션 게임에서 위치선정이 중요한 이유는 플레이어의 선택과 리스크를 축적하여 전투에 통일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플레이어란 오브젝트의 이동만을 놓고 본다면 액션 게임은 일종의 공 튀기기다. 곳곳에 도사린 함정이나 적의 공격, 또는 지형지물의 가로막음을 회피하여 공을 좋은 위치로 움직여야 한다. 이 위치란 적을 공격하기 좋은 곳일 수도 있고 단순히 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한 곳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위험한 시작점에서 궁극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도착점까지 이동하는 과정에도 새로운 시작점과 목표 지점이 계속 생겨난다. 플레이어가 공을 어느 방향으로건 조금 밀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위협이 새롭게 등장하여 플레이어의 선택을 시험한다. 그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다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면 역시 또 다른 위협 또는 불이익이 등장한다. 그래서 공의 움직임은 시작점에서 도착점까지의 직선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그때 그때의 위협에 대응하며 조금씩 좌나 우, 또는 심지어 뒤로까지 이동하며 궁극적인 도착점에 다다르는 곡선적인 움직임이다.

  이 곡선 경로는 수많은 선택과 그에 대한 처벌(또는 처벌 가능성)로 인한 새로운 선택의 축적이다. 맨 처음 시작점에서 플레이어가 맞닥뜨렸던 위협은 도착점에 다다를 땐 소멸하겠지만, 그 위협이 그 당시 플레이어의 움직임에 어떠한 방향으로건 영향을 주었기에 그 당시의 리스크 또한 소멸하지 않고 축적된 채다. 이는 공의 움직임이 본질적으로 연속적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플레이어의 선택은 휘발되지 않고 연속성을 지닌다.

  하지만 만약 플레이어가 공을 아무 위치로나 곧바로 순간이동시킬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러한 방식의 움직임에는 그 곡선적 경로에서 플레이어가 내려야만 했던 수많은 선택이 존재할 수 없다. 공의 움직임이 연속적이지 않은 탓이다. 따라서 선택과 리스크는 축적되지 않는다.

  앞서 DS에서 플레이어는 3D 공간에서 자유로이 움직이지만 공방은 평면적이라 지적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공방과 무관하게 3D 공간에서의 움직임은 입체적이란 뜻이다. 즉 이러한 입체적인 움직임에 입체적인 압박을 가하기만 한다면 3D 게임의 특성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나마 잘 활용하였다 할 수 있다. 기존 패미컴 액션 플랫포머가 지형지물의 압박을 구현하는 방식이 단순 낙사였다면 DS는 3D 공간에서 활용 가능한 여러 수단을 추가로 동원하였다. 만약 난관이 비좁지 않은 개활지고 낙사도 없었더라면 플레이어가 매 순간 내리는 선택은 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플레이어가 왼쪽으로 가건 오른쪽으로 가건 뻥 뚫리어 있고, 아무리 이동속도가 느릴지라도 최소한 적보다는 빠르므로, 단순히 달려 지나감으로써 대부분의 위협을 회피할 수 있다. 여전히 플레이어의 움직임은 연속적이지만 각 상황이 적절히 플레이어를 압박하지 못하기에 시작점에서 도착점까지의 움직임은 마치 순간이동하듯 직선적이다.

  허나 DS는 난관이 비좁고 사방에 낙사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탓에 플레이어의 움직임은 곡선적이게 된다. 적을 공격할 때 플레이어의 무기가 벽에 부딪히지 않아야 하고, 적의 공격으로부터 회피할 때 낙사하지 않아야 하므로 플레이어는 매 순간 리스크에 대응하며 곡선적으로 도착점까지 달려간다.

  공방과 던전 탐색은 지극히 단순하여서 제대로 된 난관으로 기능할 수 없지만 지형지물은 시종일관 플레이어를 강하게 압박한다. 적의 공격이 플레이어를 압박하는 건 그 공격을 피하고 반격하는 게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 공격으로 인해 플레이어가 구르거나 이동할 때 지형지물이나 낙사의 압박과 직접적으로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DS는 악마성의 현대적 계승작이자 입체적 재해석이다.

3D의 특징을 충실히 활용하여 '단순히 지나가는 것조차 난관으로 기능'하는 고전적 게임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살려내었다

2. 놀이와 경기


  이렇게 패미컴 액션 플랫포머의 ‘낙사’ 압박을 3D 게임으로 재구현하고자 DS가 추가한 시스템은 꽤 많다. 하지만 이 시스템들은 전부 플레이어에게 어떤 새로운 조작을 요한다기 보다는 이동이나 구르기와 같은 기본적인 조작을 더 정밀하게 요구할 뿐이다. 그래서 여전히 게임 플레이 자체는 단순하다. 수단의 간소화는 수단과 목표의 관계를 선명하게 한다.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이 간결하니 그 수단을 숙련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가 된다. 그로써 비디오 게임은 더 도전적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모든 비디오 게임의 플레이 과정은 사고와 행동의 연쇄다. 난관과 도구를 파악하여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한 사고를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이다. 고전적 액션 게임에서 점프와 공격, 아이템 사용과 같은 대부분의 상호작용은 버튼 입력 한 번으로 간단히 수행되고 그만치 간단한 결과를 내놓는다. 각 도구의 용법이 이미 매뉴얼로 제시되기에 무기의 사거리나 점프 거리 등의 세부 수치 정도만 간단한 실험을 통해 파악하면 끝이다. 게임을 진행하며 추가로 익히는 내용은 새로운 상호작용이 아니라 단순히 적 패턴이나 플랫폼 구조 등 난관의 구조에 한정된다. 그래서 게임이 요구하는 사고가 단순하다. 플레이어의 고민은 대부분 어느 순간에 점프하고 공격할 지, 어떠한 아이템을 습득하여 언제 사용할 지를 파악하고 암기하는 과정이며, 행동은 이렇게 암기된 내용을 정확하게 수행하는 과정이다. 적합한 순간에 정확한 입력을 하는 것이 이러한 고전적 디자인이 요구하는 사실상 유일한 풀이다.

  반면 현대적인 액션 디자인은 우선 익혀야 할 상호작용(즉 수단)부터가 방대하다. 물리 엔진은 더 정교하게 현실을 모방하고 액션 기술은 평면이 아닌 입체적 히트박스로 구분된다. 세밀한 물리 엔진과 입체 공간의 상호작용은 단순한 물리 엔진과 평면 공간 간 상호작용보다 예측하기 힘들다. 축의 증가는 단순히 좌표계에 숫자를 하나 더하여서 변수를 1만큼 늘리는 게 아니다. 지수적으로 확장한다. 2D에서 플레이어는 대개 앞과 뒤 단 두 가지 방향만을 바라보지만 3D에서는 0에서 359도까지 구현된 각도를 연속적으로 거치며 회전하거나 특정한 각도에 머무를 수 있다. 그래서 축이 하나 늘면 플레이어가 취할 수 있는(또는 강제적으로 던져지는) 운동 상태는 수백 배 는다. 적과 지형지물 또한 마찬가지며 플레이어와 이들 간의 상호작용은 또 각각이 취할 수 있는 각도와 운동 상태가 곱셈 관계로 얽히어 변수를 창출한다. 기술 발전 덕에 시뮬레이션적 요소가 강화되어서 온갖 시스템이 독립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기술적 다양성, 각각의 기술과 오브젝트 간 상호작용이 고전적 액션 게임보다 방대해졌으므로 더는 수단이 단순할 수 없고 그 수단을 익혀 활용하는 것 역시 언제나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사고는 매 난관에 대해 도구의 새로운 상호작용을 알아내는 과정이 추가로 요구되며 행동 역시 단순 암기된 내용을 정확히 입력하는 것에 머무를 수 없다. 게임은 필연적으로 과거보다 시스템적이고 플레이는 자연스럽게 보다 창발적이다.

  수단의 비대화는 수단 간의 우열을 가리는 작업을 어렵게 한다. SM64를 필두로 한 현대적 액션 게임은 폭넓게 제시되는 기술들로 인해 거의 샌드박스에 가깝다. 한두 가지 수단의 갈고 닦음이 아니라 개중 어떠한 수단을 선택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1차 난관으로 기능한다. 그래서 현대적인 액션 디자인은 자연스럽게 고전적인 액션 디자인보다 놀이의 특성이 강해지고 경기로부터 멀어진다.

  놀이와 경기는 또 무엇이며 둘의 차이는 어떻게 되는가? 개인적 목표와 경기적 목표로 놀이와 경기를 구분할 수 있다. 놀이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즐거움을 취하고자 개인적인 목표를 내세워 달성하는 행위다. 그래서 놀이 행위는 비일관적이고 즉흥적이다. 어디까지나 나 자신이 즐겁기 위한 행위고 즐거움은 정량화할 수 없기에 그렇다. 즐거움을 해하는 요소는 언제든지 목표에서 배제할 수 있다. 반면 경기는 경기의 규칙이라는 객관적 구조가 경기적 목표를 형성하여 경기 참여자로 하여금 이를 달성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규칙 집행자가 시종일관 관여하며 플레이를 제약하고 경쟁자 집단의 성패를 정량화하여 승패를 가른다.

  놀이는 목표의 달성은 물론이고 목표에 이르는 과정 역시 즐거워야 한다. 즐겁지 않다면 놀이일 수 없다. 반면 경기는 즐겁건 즐겁지 않건 플레이어가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적극 활용하도록 강요한다.

  SM64로 정립된 현대적 액션 게임 디자인은 경기의 승패와는 무관한 개인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게 허용하는 정도가 고전적인 액션 게임 디자인보다 크다. 여전히 DMC는 스타일 랭크로 플레이어의 도전을 격려하고 Monster Hunter는 타임어택으로 실시간 입력을 갈고 닦게 하고 NG는 카메라 제약과 공격적인 적 AI로 플레이어를 순수한 폭력과 대면시킨다. 하지만 이미 수단이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방대해지고 복잡미묘해진 탓에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 앞서 플레이어는 어떠한 수단을 택할지를 깊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 고민은 게임 디자인으로 특정한 선택이 자연스럽게 유도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유도일 뿐 강제는 아니므로 어쩔 수 없이 플레이어 개개인의 성향, 취향 등이 개입한다. 플레이어의 목표는 단순히 게임에서 제시된 모든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난관을 타파하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 이상으로 어떻게 하면 더 폭넓고 다양한 방법으로 그 목표를 ‘재미있게’ 달성할 수 있는지를 플레이어는 고려하게 된다. 반드시 재미를 목표로 게임을 플레이하겠다고 결심하지 않더라도 플레이어는 이미 재미를 어느 정도 고려한다. 거기다 발전한 시각 효과는 그러한 개인적 목표의 달성을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하여 더 ‘재미있게’ 만든다.

  방대해진 수단과 상호작용이라는 구조적 요인이, 방대한 수단 중 무엇을 배제하고 무엇을 사용할지 어떤 것을 선호하고 불호할지 등의 심리적 요인과 복합적으로 얽혀 현대적 액션 게임을 고전적 액션 게임보다 놀이에 가깝게 한다. 악마성에서 똑같은 채찍질로 똑같은 좀비를 때려잡는 건 언제나 동일한 수단과 유사한 과정을 낳는다. 따라서 플레이어의 개입은 그 채찍질을 얼마나 정확한 거리에서 정확한 순간에 수행할지에 머무른다. 하지만 SM64에서 관성, 거리, 각도 등으로 세분화된 점프 기술로 산을 오르는 건 언제나 매번 다른 수단 선택과 과정을 초래한다. 어떤 수단을 언제 어떻게 활용할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그렇기에 놀이적 특성이 고전적 2D 액션 게임보다 강하다.

  거기다 게임 디자인의 난점도 더해졌다. 플레이어를 수동적으로 압박할 각도가 세분화하였다는 건 반대로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회피 가능한 각도도 세분화하였음을 뜻한다. 플레이어의 능동성을 강화한다는 건 따라서 적절한 수준의 압박이 없다면, 혹은 압박이 있더라도, 게임을 경기보다는 놀이에 가까워지게 한다. 경기적 구조란 제약에 있지 자유에 있지 않다. 경기의 규칙 자체가 플레이어를 제약하는 수단이지 자유로이 하는 수단이 아니다.

  물론 비디오 게임은 경기를 형성하는 규칙이 곧 가상 세계를 구현하는 규칙이므로, 규칙은 플레이어를 제약하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자유로이 하는 수단일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가상 세계의 규칙을 두 종류로 나누어서 보아야 한다. 그 규칙이 경기로서의 규칙인지, 아니면 가상 세계의 법칙으로서의 규칙인지. 현실에 대입하면 간단하다. 경기로서의 규칙이란 손으로 공을 만지지 말라든가 공과 무관한 태클을 걸지 말라든가 하는 것이다. 이들은 경기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사실 물리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는 않다. 오히려 물리적 규칙은 사람이 공을 손으로 만질 수 있게 하거나 다른 사람과 충돌할 수 있게 한다. 그것이 법칙으로서의 규칙이다.

  비디오 게임에서 이러한 ‘법칙으로서의 규칙’은 개발 기술의 제약을 받는다. 현대에는 Ultima Underworld와 같은 각 오브젝트의 물리적 구현이 손쉽게 가능하나 패미컴 시절에는 카트리지 용량에 맞추는 선에서 이를 구현하기가 지극히 어려웠다. 즉 물리적 규칙의 발전은 개발 기술의 발전과 함께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발전을 통해 비디오 게임의 가상 세계는 보다 미세한 측면까지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기술의 발전 속에서 플레이를 미세하게 제한하여 가치 있는 경기를 구현하는 것은 게임 디자인의 발전으로만 가능하다. Quake와 Half Life의 게임으로서 가치 차이는 그래픽이나 세상의 미세함에 있는 게 아니라 적과 함정이 플레이어를 얼마만큼 어떻게 압박하는가에 있다. Quake는 물리 엔진과 즉각적으로 교체할 수 있는 다양한 무기로 플레이어의 능동성을 기존 FPS보다 강화하는 한편 다층적으로 적을 배치하고 곳곳에 함정과 매복을 배치하여 플레이를 제약한다. HL은 그렇지 않다. 3D와 물리 엔진을 구현하여서 능동적이지만 이를 적절히 제한하지 못해 경기로서 실패한다.

  마찬가지로 현실에 대입하면 이해가 쉽다. 우리가 중력에 붙잡히는 건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침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공을 발로 차서 골대에 넣는 행위는 오직 경기 규칙 아래에서만 유의미하다. 모든 놀이적 행위는 경기적 제약 없이는 놀이에 그친다. 모든 선택은 그에 합당한 처벌이 있어야 유의미하다. 기술의 발전은 게임의 가능성을 넓힐 뿐 그 자체로 게임의 가치를 규정하지는 않는다. 오직 게임 디자인의 발전으로 그 가능성을 실현할 때라야 비디오 게임은 가치 있다.

  그래서 현대의 비디오 게임이 과거보다 대체로 덜 도전적인 건 단순히 스토리형 게임이 대두된 탓만은 아니다. 기술적 발전으로 부여된 자유를 제한하는 게 과거보다 더 어렵고 다채롭고 복잡하고 비직관적으로 변했기 때문도 있다. 도전적인 현대 게임마저 과거보다 방대한 변수로 인해 놀이적 특성이 더 부각된다.

  거기다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게 많아질수록 게임 개발자는 비디오 게임과 무관한 쓸모없는 것들에 몰두할 가능성이 커진다. 플레이어 역시 게임의 다른 요인에 더 집중할 가능성이 고전적인 비디오 게임보다 높다. 번쩍이는 그래픽과 사실적이면서 보기 좋은 컷신, 예쁘거나 귀엽거나 잘생긴 캐릭터들과 전문 필자가 집필한 대화문. 소비자뿐만 아니라 게이머조차 이러한 요소에 한 번쯤은 눈이 갈 수밖에 없다. 기술의 한계로 과거엔 불가능하였던 게 이제는 가능하다. 비디오 게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예쁘장하다.

  이들은 쓸모없다. 이들이 비디오 게임이라는 프로그램 안에 있다는 사실은 그것의 유의미함을 입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비디오 게임은 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이다. 플레이어가 이 코드 덩어리를 플레이하는 바로 그 순간만이 비디오 게임이다. 단지 편의상 그 코드 덩어리를 비디오 게임이라 부르는 것뿐이다. 축구의 룰북은 축구가 아니다. 선수들이 서로와 육체적으로 얽히며 직접적으로건 간접적으로건 공을 골대로 운반하거나 상대방의 운반을 저지하는 그 과정만이 축구다. 이 코드 덩어리가 구현하는 가상 세계는 플레이어가 그것을 정복하고자 뛰어들 때만 실재한다. 그래서 그 정복 과정과 무관한 컷신, 대화문 등은 엄밀히 말해 ‘비디오 게임 안’에 있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어쨌거나 눈에 보이고 귀로 들리는 탓에, 비디오 게임에 대한 플레이어의 인식에는 반드시 영향을 준다. 경기 자체는 매우 도전적이면서 어려운 MGS 시리즈는 컷신이 길고 캐릭터와 스토리가 우스꽝스러워서 대중에게 도전적인 게임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래서 DS는 모두 버렸다. 미세한 가상 세계를 구현하지도 않았고 물리 엔진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않았다. 지형 구조는 2D 게임인 듯 비좁아서 게임 진행 역시 2D 게임과 유사하며 공격과 방어 역시 한두 개뿐이라 수단을 선택하는 과정에 플레이어의 취향이 딱히 개입하지 않는다. 난관은 폐쇄적이고 풀이는 한정적이다. 게임 플레이는 자유로운 탐방과 창의성이 아닌 정확한 실시간 입력과 암기로 구성된다. 세상의 배경 설정이나 서사는 대부분 간접적으로 제시된다. DS의 스토리는 마치 고전적인 비디오 게임 패키지 뒷면이나 매뉴얼의 간략한 설명을 읽는 듯하다. 세상을 구성하는 최소한의 요소만 있다. 여기에 놀이적 요소가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다.

3. 단 한 번의 의문


  그러나 한계가 있다. 3D 액션 게임을 정제하여 수단과 목표의 관계를 간결하게 한 것은 비디오 게임의 본질을 강조한 것이면서 동시에 3D 비디오 게임 작법을 포기하고 현대 게임의 한계에 맞서기를 회피한 것이다. 비디오 게임이 기술적으로 발전하며 여러 정밀한 시스템과 미세한 액션을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놀이적 특성을 강조하지만 플레이어의 능동성 역시 강화한다. 이 능동성이 중요한 이유는 비디오 게임이라는 매체에서 플레이어와 개발자의 관계가 매우 유별나기 때문이다. 플레이어가 잠재적 구조를 간택하여 직접 상호작용하고 경쟁한다는 현행적 사건의 순간만이 비디오 게임이므로, 개발자만큼이나 플레이어는 비디오 게임의 주요 창작자다. 언제나 플레이어 주도로 새로운 해법이 발견되고 실행된다. 비디오 게임에 잠재되어 있던 가치를 프로그래머조차 상상할 수 없었던 경지로 이끈다. 그래서 플레이어의 능동성을 강조하는 것은 비디오 게임의 잠재적 가치의 가능성을 넓히는 것과 같다.

  가령 Ultima Underworld는 기술적 발전에 부응하는 게임 디자인의 발전으로 실시간 액션과 물리 엔진의 상호작용을 통한 난관 풀이를 완전한 3D에서 선보이는 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여러 난관을 플레이어가 전투로만 해결하고자 할 때 전투 외의 방법을 강구하도록 하는 압박이 부족하여 놀이적 특성이 강해졌다. Ultima Underworld가 제시하는 폭넓은 창발적 문제 풀이는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써도 되고 안 써도 되는 놀이로 전락했다.

  System Shock는 이 구조를 도전으로 정제하는 데 성공했다. Ultima Underworld의 시스템적 게임 디자인과 창발적 게임 플레이를 온전히 수용하면서도 전투 외의 수단을 통한 문제 풀이를 자원 압박과 난관 구성으로 강요한다. 거기다 시간제한까지 있다. 실시간 게임의 시간제한은 플레이어가 게임 내에서 내리는 모든 선택을 프레임 단위로 처벌한다. System Shock는 선택하도록 강요할 뿐 무엇을 선택할지는 플레이어가 스스로 자원, 시간 등 요소를 고려하여 판단하도록 맡긴다. 덕분에 System Shock는 3D 게임 작법을 온전히 활용하면서도 놀이적 특성을 없애고 경기적 특성을 강조한 도전적인 게임이 될 수 있었다. 단지 복잡성 때문에 보편적일 수는 없었을 뿐이다.

좌측 상단의 타이머에 주목


  DS는 그렇지 않다. 비디오 게임의 가능성을 확장하였다기보단 ‘한때 이러한 가치가 있었는데 왜 우리는 자꾸만 다른 것들에 눈을 돌리는가’ 하는 회고 및 선언에 가깝다. 비디오 게임이 반드시 복잡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모든 비디오 게임이 현대적 게임 디자인 작법을 수용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단순히 DS가 비디오 게임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은 게임의 구조 그 자체가 아니라 구조로서 전달되는 미야자키 히데타카의 도전에 대한 철학에 국한됨을 지적하는 것이다. 즉 DS의 구조는 철학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고결한 것이지 그 구조 자체가 철학과 무관하게 하자 없이 완전한 것도, 대단한 구조적 발전을 이끌어낸 것도 아니다. ‘한 지점에서 도착점까지 이동하기’ 자체를 지형지물 압박과 구르기 등으로 강화하여 3D 형식으로 구현한 건 명백한 성취다. 하지만 DS의 영향력이 너무나도 컸던 탓에 그 평면적이고 단조로운 공방 구조가 마치 모든 3D 밀리 컴뱃 게임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공정한 구조’ 취급을 받게 되었다.

그나마 이러한 다대일 전투는 비정형적인 턴 교환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가치 있다

  이러한 평가는 오히려 DS의 지형지물 압박조차 불공정한 것으로 낙인 찍히게 하는 등 그 영향이 반드시 긍정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형지물 압박이 없는 DS는 그 공방 구조를 근본적인 수준에서 뜯어 고치거나(Nioh, Bloodborne) 다대일 전투를 강제하여 비정형적인 턴 전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거나(Dark Souls II) 보스전을 매우 정밀하게 디자인하거나(Elden Ring) 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단순 암기로 전락한 전투는 궁극적인 별도의 목표를 보조하는 수단으로서는 우수할 수 있어도 그것 자체가 유일한 난관 구조라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DS의 철학이 비디오 게임사에 끼친 영향을 부정할 순 없다. 이미 말하였듯 플레이어와 개발자의 관계는 공동 창작자에 가깝다. 지난 수십 년 간 진행된 대중의 유입은 이러한 공동 창작자 관계를 단순히 서비스 제공자와 서비스 소비자의 관계로 격하하였다. 반짝거리고 예쁘장한 유인 요소를 구현하여 더 많은 판매고를 올리고자 하는 욕구가 더 많은 대중을 유입시키고 그렇게 유입된 대중은 기존보다 더 반짝거리고 예쁜 것을 바란다. 이러한 구조는 항상 더 많은 소비자가 유입하여야만 지속 가능하므로 개발자가 소비자의 눈치를 보며 어떻게 하면은 더 예쁘장한 소비품을 편안하고 안락하게 제공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예쁜 것을 쫓는 과정을 방해하는 도전은 이미 불합리하다. 소비자는 불만을 제시하고 제공자는 그 불만을 수용하는 한편 최대한으로 수익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비디오 게임의 경기적 진보에 대한 치열한 고민 대신 상업적 성공에 대한 고민이 개입한다.

  라이브 서비스 게임은 더하다. 특정 플레이어가 특정 영웅과 아이템의 새로운 활용법을 발견하면 개발자는 그것이 자신들의 의도가 아니란 이유로 거세한다. 그리고 서비스 소비자를 유지하고자 변화만을 위한 변화를 주기적으로 감행한다. 이는 정상적인 구조가 전혀 아니다. 최연성이 말하였듯, 비디오 게임을 영구적 베타테스트 상태에 놓는다. 한때 우수하였던 구조는 그것이 너무 익숙하여 서비스 소비자를 붙잡아 둘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비디오 게임 산업은 명백히 소비자의 존재로 유지된다. 플레이해 볼 생각도 없이 수십 개의 패키지를 구매하여 묵혀두는 것도 산업적으로는 유의미한 활동이다. 발전된 기술은 발전 속도만큼이나 쉽게 낡는다. 방금까지만 해도 사실적이었던 그래픽은 얼마 안 가 비사실적인 게 되어 대중의 관심을 잃는다. 대중들에게 비디오 게임은 5년만 지나도 낡은 게 된다. 고전 게임은 충분히 편의적이지 않아 가치 없다. 그래서 비디오 게임 산업은 지나간 것에는 눈길을 주지 않고 당장 가장 아름다운 게임을 찍어내는 데에만 주력한다. 이들의 아름다움은 미와 혼동되어 마치 반짝거려야만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착각된다. 이 아름다움은 껌을 감싸는 은박지의 반짝거림일 뿐이다.

  비디오 게임은 소비됨으로써가 아닌 플레이됨으로써 존속한다. 패키지를 수십 개 쟁여 두는 것은 산업적으로는 유의미할지 몰라도 다른 플레이어의 도전 기회를 앗아가거나 가격 장벽을 높이는 탓에 비디오 게임의 관점에선 그 무엇보다도 해롭다. 개발자는 플레이어가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게임을 개발하고, 플레이어는 도전할 가치가 있는 게임에 수없이 반복하여 도전함으로써 비디오 게임을 영속하게 한다. 도전, 폭력, 경쟁은 태초부터 인류와 함께하였기에 시간 초월적이고 보편적이다. 그 어느 예술도 구현할 수 없는 비디오 게임만의 가치다.

  DS는 영속할 가치가 있는 비디오 게임이 무엇인가를 되짚어주었다. 서비스 제공자와 서비스 소비자의 관계로 전락한 스토리형 게임의 흐름에 반하여 비디오 게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간소한 구조로 부각하였다. 이것이 DS와 MGS/NG의 차이다. 앞서 MGS나 NG도 도전적인 요소를 강조하였음을 언급한 바 있다. 사실 난이도로만 따지면 두 게임이 DS보다 훨씬 어렵다. DS의 난이도는 일반적인 비디오 게임의 중간쯤이다. 그럼에도 MGS와 NG 등이 게임 담론을 본질적으로 바꿔놓지 못했던 건 플레이어의 시선을 잡아끌 다른 요소들이 너무 많거나(MGS) 너무 고도로 발전한 탓에 널리 플레이될 수 없었거나(NG) 한 탓이다.

  하지만 DS는 게임 플레이를 방해하는 컷신을 모두 없애고, 창발적 상호작용이나 개방적 구조의 난관도 포기하고, 매우 단순한 시스템과 플레이 구조를 구축하였다. 모든 선택에 합당한 처벌이 있고 난관이 폐쇄적이라 도전적이지만, 간소한 플레이 루프로 인해 난이도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래서 보편적으로 플레이될 수 있었다. 구조가 단순하니 논할 것도 단순하다. 그렇게 DS는 단 하나의 가치, 바로 도전이라는 가치를 게임 담론에서 끊임없이 다루어지게 할 수 있었다. DS 이후로 대부분의 대자본 게임은 형식적으로건 실질적으로건 도전적인 난이도를 추가하였으며 이들에 도전하는 게이머의 수 역시 늘었다. 도전에 별 관심 없던 사람들도 한 번쯤은 저 사람들이 왜 자진하여 고통받고자 하는가 하는 의문 정도는 품게 하였다. 단 한 번 의문하게 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5/5

-Lee Y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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