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매일 2017.2.7
개발사 Team Ninja
감독 Fumihiko Yasuda, Yosuke Hayashi
실기 PlayStation 4 Pro



0. 서문


본래 인왕 2가 발매된 후 1과 2를 동시에 엮어서 비평하려 했다. 공개된 정보들을 보고 인왕 2와 1 사이에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픈 베타 테스트를 통해, 2가 1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의 플레이 스타일을 요구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인왕 2에 대한 평가는 1과는 다른 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인왕 1의 비평글을 먼저 올린다. 언제나 그랬듯, 게임을 플레이해본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글이 될 것이다.

1.


인왕은 오해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감상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한 감상엔 옳고 그름이 없다. 누군가가 ‘인왕은 재미없는 게임이다‘라는 감상을 내놓더라도, 누구도 거기에 반박할 수 없다. 그 사람이 재미없다는데 도대체 누가 그걸 어떻게 반박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랜덤박스에서도 재미를 느낀다. 아무리 랜덤박스가 비윤리적이고 추잡한 시스템이라 비판받아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찾는다. 누군가는 단순히 백지를 바라보며 상상하는 것에서도 재미를 느낄 것이다. 무언가가 재미있다는 말은 가치 평가가 아닌 그저 감상일 뿐이며, 감상일 뿐인 것에 반박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취향 고백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재미로 게임의 가치를 매기고자 하는 것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다. 만약 재미가 게임의 본질이고 모든 게임의 가치가 재미로 평가되어야 한다면, 게임들 간에 어떤 우열이 존재할 수 있을까? 무슨 평가를 하든 간 “나는 재미있는데?” 혹은 “나는 재미없는데?” 라는 말 한 마디도 반박하지 못 할 것이다. 심지어 “네가 뭔데 남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깎아 내리냐?” 같은 말도 들을 것이다. 가치 평가란 그 자체로 우열을 가리는 작업이므로, 모든 가치 평가는 결국 취향 존중이라는 미명 하에 용인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게임 비평이란 것 역시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재미를 가치 평가의 잣대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 게임은 경기의 일종이다. 플레이어와 규칙이 경쟁하는 것. 상호작용이란 바로 그 경쟁 속에서 플레이어와 규칙이 맞닿는 지점일 뿐이다. 물론 상호작용이 중요치 않다는 말은 절대 아니나, 결국 ‘경쟁’이 본질인 게임을 상호작용성만으로 정의할 순 없다. 그렇게 해버린다면 시청자의 투표로 진행되는 드라마나 선택을 통해 결말이 정해지는 인터랙티브 무비 등이 전부 게임이 되어버리는 희극이 벌어진다.

그러나 경쟁과 승패는 그 어떤 예술에도 없는 게임 본연의 가치이며, 바로 그런 이유로 Ninja Critics에선 게임을 경기로서 평가해 왔다. 여태껏 레드 데드 리뎀션 2나 세키로, 셀레스트, 그리고 할로우 나이트를 바로 이 기준에서 평가했고, 앞으로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대로 평가할 것이다. 이런 가치 평가에서 게임의 재미는 논할 이유가 전혀 없다. 달리 말하면, 본 웹진에서 혹평한 게임 역시 누군가에게는, 심지어 비평가 자신에게도 재밌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여기선 당신이 재밌어 하는 게임이 사실은 재미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것이 경기로서 어떻게 가치 있고, 어떻게 가치 없는지를 평가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인왕은 좋은 경기를 제공하는 게임이다. 물론 <Dark Souls(이하 DS)>에 그 근간을 두고 있으나, DS와는 여러 방면에서 방향성이 다르다. 문제 해결의 수단이 레벨의 탐색이나 (캐릭터의) 성장에 집중되었던 DS와 달리, 인왕은 액션과 (플레이어의) 성장에 치중해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이걸 달리 말하면, DS 1과 달리 다양한 성장 방식이나, 적재적소에 배치된 함정들, 3D 공간의 높은 활용도 등으로 대표되는 뛰어난 레벨 디자인을 제공하는 게임은 아니란 뜻이다.

즉 인왕이 오해된 게임이라는 말은, 그것이 재미없는 게임이라는 오명을 썼음을 뜻하지 않는다. 대신 구조적으로 매우 오해된 게임이라는 것을 뜻한다. 본 게임은 파밍과 음양술 등 액션 이외의 다른 문제 해결 수단 역시 제공하지만, 그런 것들은 단순히 이 게임의 전투 파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초보자용 루트이다. 음양술의 종류에서도 이것은 자명하다. 단순히 적의 공격 속도나 이동 속도를 느리게 만드는 것에 불과하므로.

게임은 결국 게임과 플레이어의 합이다. 모든 뛰어난 게임은 플레이어 없인 가치가 없다. 제 아무리 게임이 깊이 있더라도 그 깊이를 온전히 활용하는 플레이 없이는 의미 없다. 따라서 게임과 플레이어의 관계는 단순히 창작물과 소비자의 관계로만 해석할 수 없다. 게임의 절반을 개발자들이 만드는 것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플레이어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즉 어떤 게임을 하든 언제나 똑같은 방식으로 플레이하는 사람은 언제나 반 정도는 동일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왕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디아블로와 같은 파밍 게임으로 하는 사람은 결국 파밍 게임밖엔 플레이할 수 없을 것이며, 다크 소울과 같이 한 자세만 고정하고 잔심은 전혀 쓰지 않은 채 플레이하는 사람은 결국 다크 소울 아류작밖엔 느끼지 못 할 것이다. 인왕은 단순히 그러한 게임으로 취급받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작품이다. 다크 소울이 단순히 '백령 소환하거나 소울 노가다하면 누구나 깰 수 있는 쓰레기 게임'이란 평가를 받는 것이 아깝듯 말이다. 모든 게임은 바로 그 게임에 맞는 플레이로 평가받아야 한다. 인왕 역시 인왕다운 플레이를 통해서만 평가되어야 한다. 본 비평은 바로 그 기준에서 작성되었다.


인왕은 액션 게임이다.

2. Dark Souls의 완성형


그렇다고 인왕에 대한 DS의 영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다를 뿐, 전투 자체는 큰 틀에선 DS와 같다. 사실 인왕은 DS 전투의 뼈대를 그대로 가져와 완벽하게 완성시킨 게임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인왕을 액션으로만 평가하더라도, 그 근간이 DS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결국 인왕의 한계조차 바로 DS에서 빌려온 형식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에.

한계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인왕의 전투가 플레이어로부터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인왕의 기본적인 틀은 사실 DS와 거의 똑같다. 인왕의 많은 적들 역시 DS처럼 공격과 방어의 순간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 슈퍼 아머가 있으므로 플레이어는 적의 패턴을 피하고, 다음 패턴이 시작되기 전에 공격하고, 다시 패턴을 피하는 것을 반복하게 된다.




속도와 공격 기술들의 다양성만 다를 뿐, 같은 형식이다.

똑같은 형식이고, 지향점 역시 같다. 인왕 또한 DS와 마찬가지로 기력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똑같은 틀을 가져왔음에도 인왕은 여러 크고 작은 변경점으로 DS의 전투를 다방면에서 완성시켰다. 방어적이고 수동적인 플레이를 요구한 DS와 달리 인왕은 공격적이고 능동적인 플레이를 요구하게 되었다. 바로 잔심 시스템을 통해서 말이다. 인왕에선 공격한 이후엔 L1을 눌러 잔심을 쓸 수 있다. 잔심을 쓰면 공격으로 소모했던 기력 중 일정량만큼이 재충전된다. 또 잔심을 씀과 동시에 자세까지 바꿔주면 일정한 양의 기력이 추가로 생산된다. 이것을 유전이라 하며, 유전을 통해서 공격으로 소모한 기력 이상의 양을 생산할 수 있다.

오롯이 공격 직후의 잔심으로만 소모량 이상의 기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자. 회피를 통한 잔심으론 소모량 이상의 기력을 회복할 수 없다. 즉 공격이란 적에게 피해를 가하는 행동임과 동시에, 공방 양쪽으로 활용 가능한 자원을 생산하는 활동이기도 한 것이다.


기력에 주목하라.


이것이 전투 시스템에서의 가장 큰 차별점이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공방 양쪽으로 소모되는 자원인 기력을, 공격적인 수단들을 통해 관리하고 적재적소에 투자하여 생산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의 기본적인 틀은 명백히 DS에서 가져왔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동시에 DS의 스태미나 시스템보다 능동적Active이고 공격적이다. DS의 스태미나란 행동 포인트이다. 플레이어는 한정된 행동 포인트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공격하고 방어할 수 있다. 스태미나의 자연적 회복량을 늘리는 장비나 소모품은 존재하나 그 방식이란 전부 수동적Passive이며,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스태미나를 생산할 방법은 없다. 그렇기에 플레이어 자신이 능동적으로 기력을 조율하고 생산할 수 있는 잔심 시스템의 추가가 큰 차이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인왕이건 DS이건 전투 내내 자원의 관리에 숙달되도록 요구하지만, DS는 단순히 자원의 제약을 피해가고, 효율적으로 행동하는 플레이만을 요구하는 반면, 인왕은 플레이어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자원을 투자하고 관리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나아가 기력이라는 공통된 자원으로 공격과 방어를 엮은 구조는 공방이 모두 중요한 인왕의 구조적 특징을 더욱 강조한다. DS는 결국 적의 패턴을 정확히 암기하고 그것들을 정확한 타이밍에 피해내는 것이 적을 공격하는 행위보다 훨씬 중요하다. 플레이어가 활용할 수 있는 공격의 가짓수 자체도 적을뿐더러, 스스로 행동 포인트(스태미나)를 재생산할 방도가 없어 능동적인 플레이가 그다지 권장되지 않다. 반면 인왕은 다양한 공격 기술들을 통해 스스로 행동 포인트와 공격 타이밍을 창출해낼 수 있고, 그것이 권장된다. 그러므로 공격과 방어가 모두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공격과 방어의 관계가 평등하다고 보는 것에는 조금 회의적이다. 결국 방어보다는 공격이 더 깊이 있고 복잡하며 잔심을 통해 기력을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왕의 방어는 손해를 최소화하는 과정이다. 방어적 행위로는 절대 이득을 볼 수 없다. 단순히 체력적 피해를 기력의 피해로 치환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 따라서 적의 모든 공격을 완벽하게 회피하고 막아내는 것은 이 게임에선 그저 기본 중의 기본일 뿐이다. 진정으로 이 게임에서 어려운 것, 그리고 인왕이 진정으로 플레이어에게서 요구하는 것은 이득을 보는 행위, 즉 가능한 한 모든 순간을 적을 공격하는 데 할애하고, 잔심을 끊임없이 활용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매우 다양한 종류의 공격 기술이 존재하는 것이며, 플레이어는 자신에게 허용된 시간을 바로 그 공격 기술들로 빡빡하게 채워 넣어야 한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어떻게 방어할지’ 보단, ‘어떻게 공격할지’를 갈고 닦게 된다.


정말로 회피는 기본 중의 기본에 불과하다.

그 일련의 회피 속에 공격을 어떻게 욱여넣느냐가 관건이다.


3. 공방


사실 방어에 대해선 이 점만 알고 있으면 된다. 인왕의 회피는 무적 프레임이 짧고, 후딜레이가 의외로 긴 편이다. 회피만으로는 적의 모든 공격을 피해갈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만큼 막기의 성능이 뛰어나다. 속성 공격이나 가드 불능기를 제외한 모든 공격을 아무런 체력 피해 없이 막아낼 수 있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자신이 공격하는 상황이 아니거나 기력을 빠르게 회복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언제나 막기 버튼을 누르고 있어야 한다.

가령 회피를 두 번 연달아 하더라도 첫 번째의 회피와 두 번째 사이의 비는 시간만큼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지 못 하다. 하지만 막기를 한 상태로 두 번 회피를 한다면 이 비는 시간에 받는 공격을 다소 막아낼 수 있다. 물론 막기의 기력 소모는 적의 공격을 회피하는 것보다 월등히 높다. 그래서 인왕 역시 기본적으로는 회피를 통한 방어가 가장 자주 쓰이고 그만큼 유용하다. 다만 DS나 심지어 <Bloodborne(이하 BB)에 비해서도 훨씬 빠른 적의 공격 템포 때문에 막기를 어쩔 수 없이 쓸 일이 반드시 있고, 회피만으로 적의 공격을 피하는 것보다 기력의 소모가 더 클 수밖에 없다.


모든 공격을 회피만으로 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고로 잔심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공격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 공격에서의 핵심은 총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자세 시스템이다. 인왕의 자세 시스템은 <Devil May Cry(이하 DMC)>의 플레이어블 캐릭터 단테의 스타일 시스템과 근본적인 부분에선 같다. 각각의 자세/스타일마다 다른 활용법이 있고, 실시간으로 변경할 수 있다는 점 덕분에 모든 자세/스타일을 전적으로 활용하며 전투에 임해야 한다는 것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지만, 인왕의 자세 변경은 말 그대로 어떠한 상황에서건 가능하다. 즉 상단으로 공격함과 동시에 하단으로 자세를 바로 변경한 후 회피는 하단의 것으로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런 식으로 자세 변경을 잘 활용하기만 한다면 각 자세의 단점을 다른 자세의 장점으로 보완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자세 변경 시스템은 유전과도 잘 맞물린다. 상단으로 적을 몰아붙이고 싶지만 기력이 부족한 경우, 상단으로 공격함과 동시에 하단으로 바꿔준 후 잔심을 사용하며 중단 - 상단으로 연달아 자세를 변경하면 똑같은 상단의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유전 2의 효과를 온전히 받을 수 있다. 즉 자세 변경이란 공격, 방어, 회피, 그리고 기력 보충이라는 활동들을 유연하게 연계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스템이다.


상단 강공격으로 공격하고 하단으로 회피한다



두 번째 핵심은 적을 공략할 층위가 체력과 기력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이다. 체력 대미지가 높은 대부분의 공격 기술은 기력 대미지가 낮고, 기력 대미지가 높은 것은 체력 대미지가 낮다. 플레이어는 주어진 상황에 맞게 두 종류의 공격 기술들을 유동적으로 섞어 쓸 줄 알아야 한다.


가령 사나다 유키무라는 쓰쿠모 상태에서 기력이 10% 가량 남게 되면 플레이어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으로 대시를 여러 번 하면서 스스로 기력을 전부 소모한 후, 플레이어가 대처할 틈도 없이 곧바로 쓰쿠모 무기를 다시 사용하여 기력을 전부 재충전한다. 기력을 모조리 소모한 채로 공격받는 적들은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 플레이어의 공격으로부터 무방비해지지만, 공격받지만 않으면 그로기에 빠지지 않는다는 점을 영악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플레이어가 단순히 방어적으로만 나온다면 사나다 유키무라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플레이어는 사나다 유키무라의 기력이 적을 땐 더 큰 리스크를 지면서까지 기력을 모조리 깎아내어 그로기 상태에 빠뜨리고자 노력해야 한다. 비단 이 보스 한 명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수수께끼의 사무라이나 다테 마사무네 등 쓰쿠모 무기를 쓰는 인간형 보스는 전부 이런 행동 습성을 가지고 있다. 즉 적들조차 수동적인 플레이보다 능동적인 플레이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디자인되었다. 또 요괴형 적들은 기력을 다 깎아내면 슈퍼 아머가 사라져 플레이어가 원껏 공격 콤보를 활용해 이기적으로 공격할 수 있으므로, 기력을 다 깎는 것 역시 체력을 깎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이렇게 스스로 도망을 간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다시 쓰쿠모를 썼을 것이다.

공격 패턴을 기력을 다 깎아버림으로써 차단할 수도 있다.


사나다 유키무라나 수수께끼의 사무라이 같이 요괴형 기력을 가진 보스들도 그렇지만, 다치바나 무네시게나 오카쓰 같이 인간형 기력을 가진 보스들은 그보다도 더 공격적인 플레이를 요구한다. 요괴형 기력은 자연적으로 재생하지 않는 반면 인간형 기력은 플레이어의 기력처럼 자연적으로 빠르게 재생한다. 따라서 인간형 기력을 가진 적을 상대로 끊임없이 몰아붙이지 않는다면 기력을 모조리 깎아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러한 공격의 과정 중에도 플레이어는 잔심을 통해 공격에 소모할 기력을 계속 재생산해주어야 한다. 잔심의 활용과 공격적인 플레이 모두를 요괴형 적들보다도 더 심하게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회피 직후 공격의 활용도가 높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대시나 구르기를 한 직후의 공격은 기존 평타 공격보다 짧은 선딜레이와 월등히 높은 대미지를 자랑하며, 이후 약 공격이나 강 공격 콤보로도 이어질 수 있다. 즉 적의 공격을 회피한 직후 곧바로 반격하는 것에 대한 리워드가 확실하다. 또 적이 공격하고 있는 와중에도 회피와 공격을 유연하게 연계할 수 있게 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워드의 전형이다.

즉 인왕에선 플레이어와 적의 기력 양쪽 모두를 플레이어가 관리해야 한다. 두 기력의 관리 수단이 모두 능동적이기에 제대로 된 관리를 위해선 언제나 공격적인 플레이가 필요하다는 것이야말로 인왕이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제대로 드러낸다. 인왕은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전투는 제대로 된 이득을 취하지 못 하게 한다. 공격적으로 적을 끊임없이 공격하여 기력을 깎는 등의 이득을 취하고, 필요한 순간마다 잔심을 눌러주며 기력을 생산하고, 필요한 순간에만 회피와 방어를 정확하게 써주며 손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인왕이 플레이어에게서 원하는 플레이이다.


회피 직후의 공격은 이렇게 강공으로 연계할 수 있다.


공격 기술들의 조작법이 매우 간단하고 길이도 짧다는 점 역시 잔심이 중요한 인왕의 특성에 맞게 설계된 점이다. 인왕은 플레이어가 작은 단위의 기술들을 조합해 바로 그 상황에 필요한 공격 콤보를 만들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점은 분명 <Ninja Gaiden(이하 NG)>에서 가져온 것이다. NG나 인왕이나 기본적으로는 공격 모션을 중단할 수 없다. 하지만 NG는 수리검과 막기 버튼을 통해, 인왕은 잔심과 회피를 통해 조건부적으로 중단할 수 있다. 이 점을 활용해 여러 공격 기술을 잔심과 회피라는 접착제로 서로 이어 붙여 그 상황에 알맞은 자신만의 공격 콤보를 임의로 만들어내야 한다.



특히 인간형 적을 상대론 잔심을 통한 모션 캔슬이 매우 중요하다.


4. 적


물론 이러한 조합의 가짓수나 공격 콤보의 깊이는 DMC가 인왕에 비해 압도적으로 더 뛰어나다. NG 역시 공격 기술들을 자유롭게 조합한다는 부분은 DMC보다 뒤떨어진다. (NG와 DMC는 지향하는 바가 다르므로 뒤떨어진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인왕과 NG가 진정으로 빛나는 것은, 그것이 공격이건 방어이건, 모든 도구가 변수 통제의 수단으로 쓰인다는 것이다. 게임의 변수는 보통 난관에서 비롯하며, 액션 게임에서의 변수란 물론 적이다. NG 1과 2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적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것은 인왕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면 잘 만든 적이란 무엇인가? 인왕의 요괴들과 쓰쿠모를 쓰는 인간 적들은 물론 DS처럼 슈퍼 아머가 있어 공격과 방어의 순간이 명확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적 디자인 자체는 NG를 닮아 있다. 즉 NG의 모태인 격투 게임을 떠올리면 된다. 격투 게임을 잘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상황에서건 작은 틈만 보인다면 곧바로 치고 들어가거나 상대방의 기습 공격을 순간적으로 방어해내고 회피할 수 있는 반사신경을 갖추었다. 또 다양한 공격 기술을 상황에 맞게 순간적으로 응용해낼 수 있는 임기응변도 뛰어나다. 즉 한 가지 공격 패턴에 의존하지 않으며, 언제건 다양한 공격 기술들과 회피 기술들을 연계하며 적을 압박하는 것에 능하다.

이러한 성격을 AI로 최대한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 팀 닌자가 적을 디자인하는 방식이자 철학이다. 그러나 얼마나 섬세하게 만들든 간 당연하게도 AI와 사람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결국 예측 가능한 패턴을 보일 수밖에 없다. NG는 이 근본적인 한계를 무수한 적들과 제한된 시야로 해결하려 했다. 즉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언제나 카메라의 안에 있는 것보다 그것의 바깥에 있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이것은 적들이 카메라 바깥에 있을 때 보이는 습성을 이해하고 예측하여 대처하도록 요구한다. 또 무지막지한 수의 적들은 끊임없이 폭탄 수리검을 던져대고 총을 쏴대며 플레이어가 단 0.5초도 가만히 있거나 공격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인왕은 이와 조금 다르다. 인왕 역시 뛰어난 다대일을 제공하지만, 한 난관에서 등장하는 적들의 수가 NG보다 훨씬 적고, 거기다 카메라의 제약도 사실상 없는 편이다. 또 설사 카메라 바깥에 적을 배치하게 되는 상황에서도 언제나 각 패턴에 대한 명확한 오디오 신호를 보낸다. 피안의 밀회라는 사이드 퀘스트에선 오다 노부나가와 설녀를 동시에 상대하게 된다. 여기서 플레이어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락온을 걸어놓아 설녀가 카메라에 잡히지 않더라도 설녀가 보내는 오디오 신호를 통해 그것이 어떤 공격 패턴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즉 NG와 달리 카메라 바깥의 적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익히고 예측할 필요는 별로 없는 것이다. 그저 들려오는 신호에 반응만 하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몇몇 적들은 오디오 신호를 보내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이들은 보통 매우 규칙적으로 특정 원거리 공격 하나만을 계속 반복한다. 즉 오디오 신호가 없더라도 플레이어가 그 패턴을 익히기만 한다면 예측 불가능한 공격을 하는 경우는 없다.

대신 인왕은 AI의 근본적 한계를 패턴의 다변화로 극복하고자 했다. 인왕에서 적들의 패턴은 플레이어와 자신들의 상대적 위치 관계와 플레이어의 피격 여부에 따라 다변화한다. 이것은 NG의 적들 역시 가지고 있었던 장점이지만, 인왕은 그것보다 더 진보해 있다.

단순히 플레이어의 위치에 따라 다른 패턴을 구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패턴이 여러 상황과 변수에 따라 또 다른 패턴으로 곧바로 연계됨을 말하는 것이다. 인왕의 보스들은 패턴들이 잘게 나뉘어 있다. A, B, C란 패턴이 있다면 한 번의 공격 콤보가 이 세 패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가령 A를 구사한 후 플레이어의 위치에 따라 B나 C로 연계되고, 거기서 또 플레이어의 위치나 상태에 따라 다른 패턴으로 연계된다. 즉 하나의 긴 패턴을 구사하여 플레이어로 하여금 언제나 똑같은 방식으로 회피하는 것이 아닌, 상황에 맞게 다양하고 비교적 예측 불허한 공격들의 연속을 구사해 플레이어가 매번 다른 방식으로 대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것은 플레이어의 공격 콤보와도 매우 비슷한 형식이다. 플레이어 역시 잘게 나뉜 공격 기술들을 잔심을 통해 이어 붙여 당장의 상황에 필요한 하나의 공격 콤보를 조합해낸다. 플레이어이건 적들이건 언제나 유동적으로 여러 공격을 섞어 쓰는 것이다.

설녀는 이러한 디자인의 절정을 보여준다. 느린 발판 공격, 빠른 발판 공격, 일곱 가지 종류의 원거리 공격, 평타 공격, 입김, 그리고 발도술 등의 독자적인 공격 패턴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패턴들이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되어 하나의 공격 콤보를 이룬다. 가령 먼저 평타 공격을 한 직후, 플레이어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면 발판 공격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면 원거리 공격이나 발도술로 연계한다. 7가지 종류의 원거리 공격 중 하나를 구사한 후 플레이어가 사정거리 안이라면 발도술이나 입김으로 연계한다.


그래서 설녀를 상대할 땐 공격 콤보를 마무리 짓는 역할을 하는 패턴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발도술과 입김, 발판 공격, 그리고 무기를 던지는 원거리 공격을 한 후엔 새로운 패턴으로 연계하지 않고 비는 시간이 있다. 이 틈이 바로 플레이어가 치고 들어갈 수 있는 순간이다. 그렇다고 그 외의 순간들엔 공격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인왕은 주어진 모든 시간을 공격에 할애하는 게임이고, 설녀 역시 패턴과 패턴 사이 찰나의 순간에 빈틈을 보인다. 이 빈틈을 끊임없이 파고드는 것이 중요하다. 심지어 설녀는 모션 캔슬까지 구사한다. 평타 공격 모션을 취하는 도중 플레이어가 평타의 사정거리 밖으로 벗어나면 모션을 중단한 후 곧바로 원거리 공격 패턴을 구사한다.


모션 캔슬


이러한 디자인적 특성은 3D 공간의 활용도가 매우 높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적의 어느 쪽에 플레이어가 위치해 있는가에 따라 구사되는 공격이 다르고, 매 순간마다 플레이어의 위치를 다시 체크하여 각 상황에 알맞은 공격 기술로 연계하기 때문이다. Z축을 통한 회피 기술을 이용해 피할 수 있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인왕의 모든 적은 만능에 가깝게 디자인되었으며, 최대한 예측 불능에 가깝게 패턴이 설계되었다.

5. 카메라의 저편


하지만 NG와 달리 인왕이 택한 이 방법은 결국 완벽하진 않다. 제 아무리 패턴이 다변화한다고 해도, 무지막지한 수의 적을 내보내는 게 아닌 한 결국 사람이 아닌 AI이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인왕은 절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제공하지 않는다. 플레이어의 잘못된 판단이나 실수를 배제한다면, 인왕의 모든 변수는 완벽히 통제될 수 있다.

이것은 적 디자인에서도 잘 드러난다. 물론 인왕의 적들이 DS나 BB보다 뛰어나고, 심지어 패턴의 다변화라는 부분에서만큼은 NG보다 더욱 진보해 있지만, 전체적으로 공방을 주고받는 방식은 아직도 NG가 더 뛰어나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맨 처음에 말한 인왕의 한계이다. DS의 스태미나 시스템은 분명 인왕에게 NG에는 없는 자원 관리라는 가치를 제공했지만, 동시에 인왕의 근본적인 한계 역시 DS 방식의 적 디자인에서 비롯한다.

그래서 그 한계가 도대체 뭐길래? 물론 사나다 유키무라나 설녀, 다테 시게자네와 다테 무네시게 등은 전부 우수한 보스이다. 하지만 이들과의 전투는 공방을 유기적이고 변칙적으로 주고받고, 서로가 서로의 공격에 반응하고 대처하는 형식이 아니라, 적들의 패턴 스케줄에 플레이어의 공격을 빼곡하게 채워 넣는 형식이다. 기본적으로 이들이 슈퍼 아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중간에 어떤 행동을 하든 적은 거기에 대한 반응은 일체 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들의 패턴 스케줄에 따라서만 공격하고 멈춘다. 유일하게 플레이어가 적들을 경직시킬 수 있는 순간은 그들의 기력을 전부 깎아내었을 때나, 약점을 부수었을 때뿐이다. 그러므로 이들과의 보스전은 사실 NG을 위시한 격투 게임에 모태를 둔 보스전이 아닌, 공격과 방어를 순서대로 돌아가며 주고받는 DS의 보스전에 더욱 가깝다.


다시 강조하지만, 속도만 더 빠를 뿐 전체적인 형식은 다크 소울과 똑같다.


인왕의 슈퍼 아머가 없는 인간형 보스들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더욱 확연하다. 다치바나 무네시게는 전형적인 실시간 격투 게임 스타일의 보스이다. 이 보스는 슈퍼 아머가 없어 플레이어의 공격에 쉽게 경직당하는 대신, 순간적인 회피와 방어로 플레이어의 공격을 끊어 내거나 피해낸 후 발도술이나 활쏘기, 상단 공격 등으로 빠르게 연계해 플레이어가 회피하거나 방어하도록 강제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보스와의 전투는 경직되어 있지 않다. 적이 플레이어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공격과 방어를 끊임없이 오가기 때문에, 플레이어 역시 그와 똑같이 플레이해야 한다. 즉 안정적인 공격 타이밍이 없어 플레이어가 적의 공격을 끊어먹고 스스로 공격 타이밍을 창출해야 하므로, 능동적인 플레이를 더욱 직접적으로 요한다.


서로가 서로의 턴에 끊임없이 개입하며 주도권을 계속 빼앗고 있다.


이러한 형식의 보스전은 명백히 DS 형식의 보스전보다 더 뛰어나다. 단순한 패턴과 대처법의 암기보다는, 적의 순간적인 회피/공격에 대처할 수 있는 반사신경과, 여러 기술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해 적을 몰아쳐서 패턴을 차단하고 기력을 깎을 수 있는 임기응변을 더욱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DS 형식의 보스전은 결국 공격하는 순간과 방어하는 순간이 매우 명확하게 나뉘어 있다. 극단적으로 과장하자면 서로 턴을 주고받으며 공격과 방어를 번갈아 하는 턴제 전투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과장일 뿐 DS를 턴제라고 볼 수는 전혀 없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치고받는 액션 게임의 장점을 완벽히 살리고 있다고도 보기 어렵다. 서로의 ‘턴’에 대한 개입이 거의 없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인왕엔 다치바나 무네시게와 같은 보스전이 별로 없다. 비단 보스전뿐 아니라 요괴형 적들 역시 거의 모두가 슈퍼 아머를 지니고 있다. 물론 이러한 스타일의 보스전만 있었다 하더라도 결국 사람이 아닌 AI이기 때문에 오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AI가 얼마나 잘 설계되든 간 결국 예측 가능해질 수밖에 없으며, 예측이 쉽게 가능하다는 것은 전투가 좀 더 정적임을 뜻한다. 전투가 정적이니 매 전투가 비슷비슷하게 전개되고, 리플레이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액션 게임을 평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이 리플레이성이다.

게임에서 정적인 것은 소모성이 높다. 스토리나 메시지, QTE나 QTE에 가까운 단조로운 버튼 연타 일변도의 게임 플레이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것들은 한 번 접하고 받아들인 이후론 그 가치를 크게 잃기 때문에, 굳이 반복해서 즐길 필요가 없다. 반면 깊이 있는 게임은 여러 변수가 매번 다른 상황을 형성하기 때문에 동적이다. 따라서 한 번 그것을 접하고, 난관을 타파한 이후에도 그 가치를 그다지 잃지 않기 때문에 반복 플레이의 가치 역시 높다. 게임을 포함한 모든 경기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플레이어의 능동성이다. 언제나 변화하는 상황에 다양하게 대처하는 것이, 언제나 똑같은 상황에 똑같은 방식으로 대처하는 것보다 더욱 능동성을 잘 드러내며, 따라서 동적인 것이 정적인 것보다 훨씬 가치 있다.

물론 장르마다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다. 가령 단 하나의 답을 찾아야 하는 퍼즐 같이 한 번 답을 알게 되면 리플레이성을 크게 잃게 되는 유의 난관들도 많다. 그러나 액션 게임은 플레이어의 실시간 입력과 적들의 실시간 움직임에 대한 대처와 예측이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문제 해결 수단이기 때문에 가장 동적일 수 있는 장르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측 가능하고, 완벽하게 통제되는 단조로운 상황'을 최대한 피하고, 깊이 있는 전투 시스템과 적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액션 게임 디자인의 목적이어야 한다. 즉, 깊이가 있다는 것은 '변수와 변수가 맞닿아 매번 새로운 상황과 난관을 형성한다'와 의미가 같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깊이가 없는 액션 게임은 한 가지 문제에 한 가지 답만이 존재한다. 이것은 액션 게임으로서 실격이나 다름없다. 액션 게임은 실시간 입력과 적들의 실시간 움직임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시시각각 변화하는 문제들에 대한 여러 가지 해답을 제공할 수 있어야 가치 있다.

즉 하나의 적만을 내세우면 AI는 사람이 아니라는 근본적인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변수가 거의 없는 단조로운 난관만을 제공한다. 이런 한계를 NG는 수많은 졸병들을 변수로써 추가하는 방식으로 극복했고, 인왕 역시 후반부에 들어선 다대일 보스전/일반 필드전을 제시하며 최대한 극복하고자 했다.

다대일 전투가 일대일 전투보다 더 뛰어난 건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사실 서로 턴을 주고받는 것을 강요하여 지나치게 정형화된 보스들조차 여럿이 함께 등장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당연하게도 게임은 적들이 많을수록 적들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이 더욱 힘들다. 즉 훨씬 동적이다. NG는 아예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까지 처하게 되는 경우가 잦다. 물론 인왕은 다대일에서조차 통제되지 않는 변수를 제시하는 일은 거의 없다. 통제하기 힘든 변수들은 또 그에 맞게 플레이어를 일격사 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다대일 전투는 인왕의 시스템이 정해놓은 한계에서 추구할 수 있는 극한의 난관을 제공하므로, 인왕에 대한 평가 역시 이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 인왕 말고도 모든 액션 게임은 잘 만든 다대일이 잘 만든 일대일보다 우월하다. 이것은 인왕의 근간인 DS나 NG, BB에서도 똑같다. 다대일은 먼저 일대일에서는 쉽게 이용해먹을 수 있는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먹기 훨씬 어렵게 만든다. 어떤 게임이건 허점이 없는 것은 없고, 이 허점을 착취한다면 게임의 시스템을 전혀 이해하지 않고서도 게임을 깰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서 예시로 든 게임들도 전부 그렇다. 애초에 스피드런은 바로 그 지점을 공략하는 행위이고, 스피드런이 없는 게임은 없다. 그러므로 이 시스템의 허점을 가리고 그 자리를 뛰어난 경기로 대체하는 난관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우수하다 할 수 있으며, 다대일이 바로 그렇다.

가령 인왕의 경우엔 몇몇 인간형 보스들을 상대로 무한 발도술을 쓸 수 있다. 적의 기력을 다 깎거나 역량을 통해 적을 눕힌 다음 발도술을 정확한 타이밍에 계속 사용하여 영원히 일어나지 못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보스 하나를 더 추가해버리면 무한 발도술을 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성공하더라도 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매우 뛰어난 경기를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생각해보라. 다른 보스의 공격 패턴을 피함과 동시에 무한 발도술을 쓰는 데 성공하는 것이 어떻게 뛰어난 플레이가 아닐 수 있겠는가?

즉 플레이어가 조율해야 할 변수를 하나 더 추가한다는 것은, 일대일 전투에서의 어쩔 수 없는 여러 허점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이용하기 매우 어렵게 만든다는 장점을 가져온다. 두 보스의 인공지능과 패턴의 조합이 일대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플레이어를 크게 압박해오기 때문이다. 여러 패턴의 조합이 하나의 패턴보다 더 다양한 대처를 요구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인왕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

적의 공격 패턴이 플레이어의 공간을 어떻게 차지하고 축소시키는가도 흥미롭다. 인왕은 적들의 패턴들이 유도 성능이 낮고, 적들의 공격 중 회전 속도가 낮다. 즉 적들이 공격 패턴을 구사하는 도중에는 적으로부터 완벽히 안전한 공간과, 그렇지 못 한 공간이 극단적으로 나뉜다. 일대일 전투에선 물론 적의 뒤는 안전한 공간이고, 적의 앞은 위험한 공간이다. 즉 적으로부터 멀어지는 것보다, 적에게 파고드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 더 안전하다.

하지만 다대일이라면? 공간의 분리가 훨씬 복잡해진다. 적의 뒤쪽이더라도 다른 적의 위치와 패턴에 따라 또 거기서 안전한 공간과 그렇지 못 한 공간이 나뉜다. 이런 공간들을 계산하고 파악하는 것이 다대일에서 훨씬 깊이 있고 어려워지는 것이다. 만약 인왕 적들의 공격 유도 성능이 <Dark Souls 3>의 적들만큼이나 높았더라면, 다대일의 가치가 훨씬 떨어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얼마나 정확한 타이밍에 회피하느냐가 공간 싸움보다 중요했을 것이기에. 만약 <Sekiro>만큼이나 유도 성능이 높고 적들의 공격성이 낮았더라면, 아예 다대일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적들이 차례대로 하나하나씩 접근해왔을 것이고, 히트박스가 무의미했을 것이기에. 그러나 인왕의 적들은 그렇지 않다. 공격성이 높으며, 패턴들의 유도 성능은 낮다. 팀 닌자는 액션 게임 명가답게 다대일을 정확히 어떻게 디자인해야 공정하고 흥미로운 난관을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었다.



가령 첫 번째 예시를 보자. 가운데의 해골 병사를 공격할 때 오른쪽의 적은 뒤를 돌아보고 있었고, 왼쪽의 적은 아직 플레이어로부터 충분히 가깝지 않아 아무런 패턴도 구사하지 않고 있었다. 즉 바로 그 순간에는 가운데 적을 중단 대시 공격 -> 강공격 콤보로 무찌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아주 적게나마 존재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예시를 보자. 두 번째 예시에서 나는 적의 뒤에 있었음에도, 또다른 적이 나를 향해 있었기에 공격이 아닌 회피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세 번째 예시에서 나는 두 명의 적 모두의 뒤를 잡는 데 성공했고, 덕분에 상단 공격을 할 시간이 충분했다. 이런 식으로 다대일에선 공간의 분화가 더 다양하고, 계산이 복잡해진다.


또 인왕의 거의 모든 적은 플레이어가 자신들로부터 얼마만큼 떨어져 있는가에 따라 근거리와 원거리 공격 패턴을 적절히 사용한다. 따라서 다대일이면서도 근거리 공격이 서로 겹쳐져서 플레이어가 공격할 틈을 낼 수조차 없는 일은 적어도 무간옥을 제외하면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원거리 패턴만 구사하던 적이 가끔씩 다가와 위협적인 근접 공격도 하기 때문에 방심할 순 없다. 애초에 인왕의 거의 모든 보스와 적은 다대일의 난관으로 활용할 목적으로 디자인된 것이라 볼 수 있다.








6. 변수의 차이




하지만 여전히, 이러한 다대일 전투에서조차 인왕은 절대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제시하지는 못 한다. 결국 인왕은 변수의 통제만을 요구할 뿐, 그 이상의 지점에 도전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점은 NG에 비해 확실히 열등한 부분이다. NG 역시 턴을 주고받는 형식의 보스전은 있다. 대형 보스들은 거의 대부분이 이러한 형식이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보스전조차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다수의 졸병들이 함께 등장하여 예측 불가한 것에 가까운 변수를 제시한다. 카메라 안쪽보다는 바깥의 적들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이 게임을 진정으로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변수들을 통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통제하지 못한 변수에 대처하는 것에도 똑같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폭탄 수리검이 부착되면 플레이어는 잡기나 멸각, 혹은 회피나 공격 기술의 무적 프레임을 이용해야 한다. 또 적의 기습 공격에 맞으면 플레이어는 막기나 패리로 적의 패턴에서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하며, 끊임없이 공격하면서 이동해야만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플레이어는 공격과 방어를 끊임없이 변칙적으로 오가야 하며, 바로 그것이 실시간 전투 게임이 지향할 수 있는 가장 수준 높은 가치이다.


결국 인왕과 NG의 수준 차이는 변수를 다루는 방식의 차이인 것이다. 이러한 차이점은 두 게임이 상위 난이도를 다루는 방식의 차이에서도 잘 드러난다. 인왕은 4회차만 되어도 플레이어가 보스의 거의 모든 공격에 일격사하지만 NG는 마스터 닌자에서도 인왕에 비해선 매우 널널한 히트 포인트를 제공한다. 즉 인왕은 기본적으로 게임 시스템을 제대로 익힌 플레이어라면 단 한 대도 맞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고, 플레이어가 적한테 단 한 대라도 피격 당한다면 그것을 곧 플레이어의 패배로 간주한다. 선딜레이가 짧아 피하기가 비교적 힘든 몇몇 공격은 애당초 피해량이 지극히 낮다. 반면 일격사의 공격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NG는 애초에 플레이어가 적에게 단 한 대도 맞지 않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을 전부 완벽하게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실제로는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다. 시스템의 취약점을 이용하거나 단순히 게임을 굉장히(굉장히!) 잘한다면 많은 구간들을 피해 없이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NG의 최종 컨텐츠인 Test of Valor 시리즈에선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NG가 변수를 다루는 방식이 인왕보다 더욱 우수하다.


물론 요즘의 소비자들에게 NG가 변수를 다루는 방식은 이해하기 힘든 것을 넘어 불합리하게 느껴질 것이다. 어쩌면 인왕은 팀 닌자가 내놓은 타협안이라고도 볼 수 있다. NG처럼 통제 불가한 변수를 제시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그만큼 플레이어가 다양한 공격 기술들을 써볼 수 있는 ‘빈 공간’이 많다. 적들이 슈퍼 아머를 가지고 있으므로 플레이어는 자신의 공격에 대한 적의 반응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적의 패턴 사이사이에 자신의 공격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밀어 넣는 데에 집중할 수 있다. 즉, 이것은 명백한 단점이자 한계이지만, 최소한 인왕은 그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 할지언정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의 난관을 제공하고자 했다. 적의 패턴을 끊임없이 피하면서 동시에 쉴 새 없이 공격하고 있노라면, 마치 정말로 공방을 유기적으로 주고받는 듯한 착각까지 든다. 결국 착각일 뿐이지만.


나 역시 그 착각에 오래 사로잡혀 있었다. 오랫동안 인왕을 DS가 아닌 NG의 계승작이란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했다. 다치바나 무네시게나 오카쓰 같이 정말로 공방을 끊임없이 변칙적으로 주고받는 보스전도 존재했기에 그랬던 것일 수도 있고, 인왕이 실제로 NG의 여러 부분을 물려받았다는 점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왕과 NG 양쪽 모두를 반복적으로 플레이해보며, 결국 그 관점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미 인왕 비평을 한 번 작성한 적이 있음에도 다시 새로이 글을 쓴 것 역시 관점에 그러한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말길. 인왕이 뛰어난 게임이 아니란 뜻은 아니다. 어쨌거나 DS의 전투 형식을 가져와 모든 방향에서 완벽하게 완성시킨 작품이다. 자원 관리의 장점을 극대화시켰고, 전투의 페이스를 끌어 올리면서도 위치 선정의 중요성은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부각시켰으며, 다양한 공방의 선택지들을 제공해 진정 ‘액션 게임’에 걸맞은 전투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인왕 이후로 나올 3D 액션 게임들은 꽤 긴 시간 동안 인왕과 계속 비교될 것이다. 그러나 결국, 팀 닌자가 액션 게임 제작 노하우와 집념으로 DS의 전투 형식을 완벽하게 완성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형식 자체의 한계가 이토록 극명하다는 것은, 개발자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이 슈퍼 아머로 대표되는 전투 형식을 기준으로 액션 게임을 제작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질문 말이다. DS 1이 발매된 지 8년이 흘렀고, 여전히 적지 않은 수의 DS 모방작들이 탄생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로 다크 소울의 형식을 뛰어난 액션 게임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옳은 방향인가? 적어도 인왕은 그렇지 않다고 답하고 있다.


★★★★
4/5
    -Lee Y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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