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비평은 너티독이 추가 난이도 업데이트나 DLC 등의 발매 계획이 없음을 공언했던 때에 작성되었습니다.
황무지나 퍼마 데스 모드에 대한 비평은 따라서 아직은 첨언되어 있지 않습니다.
근시일 내로 추가할 계획이니 양해 바랍니다.

발매일 2020.06.19
개발사 Naugthy Dog
감독 Neil Druckmann, Anthony Newman, Kurt Margenau
실기 Playstation 4 Pro


0. Prologue


  스토리는 게임의 가치와 무관하다. 게임은 플레이어와 규칙이 경쟁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경기이며 따라서 게임 비평은 게임의 구조, 즉 규칙에 가치를 매기는 작업이다. 그 작업에 스토리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게임의 규칙은 순수하다. 어떠한 도덕적 잣대로도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없고, 무언가에 대한 통찰을 함유하고 있지도 않다. 게임의 규칙은 통찰의 주체가 아니다. 다만 플레이어의 통찰 대상일 뿐이며 플레이어는 그 통찰을 바탕으로 승리라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무수한 선택들을 해나간다.

  이 선택들은 게임 외부의 사상이나 도덕적 신념에 복무하지 않고 복무해서도 안 된다. 당신이 경기에 임하는 명예로운 경기자라면 게임 외부의 사상적/개인적 동기로 말미암은 그 어떤 행동들도 해선 안 되며, 마땅히 승리만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즉 게임 내에서 이루어지는 통찰이란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지 다른 그 무엇에 대한 것도 아니다. 게임이 통찰의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스토리는 게임과 전혀 어울리지 않다.

  게임 개발자는 경기의 창작자일지언정 예술가는 아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최대한 숨겨야 하며 플레이어에게 어떤 메시지나 아이디어를 전달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질문만을 던져야 한다. 따라서 예술가가 게임을 도구로 예술의 무수한 고전들을 능가하는 스토리를 표현하거나 예술적 성취를 이루는 것은, 게임이기를 포기하거나 수준 낮은 게임임을 자처하는 게 아닌 한 불가능하다. 게임은 예술이 아닌 경기의 일종이며, 따라서 규칙 이외의 것은 모두 포장지에 불과하다. 그 포장지 아래의 경기라는 게임의 본질에, 예술에는 없는 게임만의 특별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불가능에 도전하는 게임들이 있다. 게임만의 방식으로 스토리를 표현하겠다는 작품들이 가끔 탄생한다. 그리고 그 중 극소수는 성공하기까지 한다. <Celeste(셀레스트)>는 한 명의 경기자가 게임을 깨나가는 과정을 스토리를 통해 산에 오르는 것에 비유하면서 난관을 극복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게임 플레이와 스토리 양쪽 모두에서 표현해내었다. <Getting Over It With Bennett Foddy(게팅 오버 잇)>은 게이머가 게임에서 느끼는 좌절의 한 종류를 게이머로 하여금 몸소 느끼게 한 후, 그것을 견뎌내고 오히려 연료 삼아 마침내 난관을 극복해내는 게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실수 한 번에 언제라도 게임의 시작점으로 떨어져버릴 수 있는 구조의 난관과 상황에 맞는 나레이션으로 전달했다.



게임 플레이와 스토리텔링이 완벽하게 융합한 작품, <Ultima IV>

  이것은 플레이어와 전혀 관련이 없고 게임 플레이와 분리되어 오직 컷신 상에서만 존재하는 스토리가 아니다. 게임 플레이를 통해 전달되고 바로 플레이어 자신이 주인공인 스토리이며 또 게임에 가장 어울리는 스토리텔링이다. 게임에 어울리는 스토리텔링이란 단순히 스토리 선택지를 몇 개 주는 것 따위의 얄팍한 방식의 무언가가 아니다. 그런 것쯤은 비단 게임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Black Mirror: Bandersnatch(블랙 미러: 밴더스내치)>가 대표적인 예이다. 게임에 어울리는 스토리텔링이란, 셀레스트와 게팅 오버 잇처럼 플레이어를 주인공으로 인정하고, 주인공으로 하여금 몸소 난관을 경험하고 극복하도록 하여, 그러한 극복 그 자체에 대한 통찰을 제시하거나, 그 극복에 어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The Last of Us(더 라스트 오브 어스 1, 이하 TLOU 1)> 또한 그 예에 속한다. 조엘과 엘리가 유대감을 쌓아나가는 과정을 15시간 이상의 플레이 타임 동안 차근차근히 컷신과 게임 플레이 양방향에서 제대로 표현하고, 플레이어로 하여금 직접 경험하게 한다. 가령 특정 난관들은 엘리도 함께 특정 지점까지 안전하게 데려가지 않는다면 게임이 진행되지 않고, 엘리를 이용한 퍼즐들이 얄팍하긴 하나 어쨌건 존재키는 하며, 무엇보다도 겨울 챕터에선 플레이어가 엘리를 플레이하여 조엘을 보호하게 시킨다.

  이러한 것은 조엘과 엘리의 관계가, 아버지인 조엘이 딸인 엘리를 보호하는 유사 부녀 관계 그 이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둘은 어떠한 혈육 관계가 아님에도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고 구원한다. 그 관계에 이르고 또 그것을 유지하는 과정을 게임의 전체 플레이 타임 동안 꾸준히, 성실하고 상세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조엘이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가면서까지 백신을 개발하느니 그냥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를 구한다는 선택을 하게 되더라도 플레이어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그것이 아무리 엘리의 선택이었다 할지라도, 누군가가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으려 한다면, 그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선택을 막으려 들 것이다. 당연한 것이다.


후속작이 존재해서도, 존재할 필요도 없는 엔딩.

  조엘이 명백히 옳은 선택을 했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조엘의 선택 또한,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를 희생하면서까지 백신을 개발하겠다는 마를린의 것만큼이나 충분히 합리적이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결국 조엘은 파이어플라이라는 테러리스트 집단으로부터 엘리를 구해내게 되며, 엘리는 조엘로 하여금 딸을 잃었던 뼈아픈 과거를 묻어두거나 무시하지 않고 당당하게 직면하여 극복해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이러한 과정을 충분히 경험하고 몸소 느끼도록 구조적으로 잘 짜여 있으며, 그로 인해 플레이어는 조엘의 선택에 보다 깊게 공감할 수 있다.

  후속작인 <The Last of Us Part II(이하 TLOU 2)는 그렇지 않다. 스토리가 게임 플레이를 통해 전달되는 구조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상당 부분 서로 충돌하기까지 한다. 우선 스토리 자체가 질이 굉장히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조엘, 엘리, 애비 등의 주요 등장인물들과 그 외 대부분의 인물들이, 자신들의 독자적인 캐릭터성에 따라서가 아니라, 단순히 특정 플롯을 진행시키기 위해 그 플롯이 요구하는 바대로 짜 맞추어져서 행동하는 경향이 강하여, 각각의 행동이 모두 뜬금없고 어처구니도 없으며 말도 전혀 되지 않는다. 디나와 오언 정도를 제외하면 작중 등장하는 인물들은 전부 그렇다. 또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은 무조건 처벌당한다는 유치한 스토리가 아니었던 TLOU 1의 캐릭터들을 어떤 도덕적 잣대로 평가하겠답시고 테러리스트 집단에 불과한 파이어플라이를 미화하고자 발악하는 각본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만 나올 정도다.



파이어플라이는 도대체 몇 명을 죽였던가?

  요컨대 스토리 자체에 크나큰 결함이 몇 군데씩이나 존재하고 그것들을 모조리 눈감아줄 정도로 이 스토리가 어떤 특별한 무언가에 대해 말하고 있지도 않다. 즉 평범하게 못쓴 스토리이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러나 가장 중대한 결함은 TLOU 2가 게임을 다루는 방식이다. 본 게임은 명백히 플레이어가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도록 강요한다. 대표적으로 노라를 죽이게 되는 파트가 그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만약 컷신에서 엘리가 노라를 잔혹하게 고문하는 것이었다면, 그것은 플레이어의 행동이 아니므로 플레이어는 죄책감을 느낄 이유가 적어도 게임의 구조적으로는 없다.

  하지만 이 순간에 게임은 플레이어가 네모 버튼을 눌러서 노라를 구타하도록 강요한다. 다른 수는 없다. 네모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면 게임 또한 진행되지 않는다. 즉 이것은 플레이어가 직접 죄책감을 느끼도록 강요하는 구조이며, 따라서 게임 플레이와 스토리가 서로를 보완하고 강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서로 완전히 충돌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본 작품의 스토리를 ‘반드시 플레이해야만 비판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게임과 스토리 양쪽 모두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가 극히 떨어지거나, 아니면 단순히 작품의 결함에 대한 비판들을 견디지 못 해 거짓말이라도 하려 드는 것이다. TLOU 2의 스토리는, 게임을 전혀 플레이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비판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게임을 하지 않고 유튜브로만 확인한다면 더욱 후한 평가를 내릴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의 게임 플레이와 스토리가 충돌한다는 사실은 모를 테니.



병맛 코미디 씬.

  그러나 TLOU 2의 스토리가 이렇게나 질이 떨어지는 것과 플레이어에게 죄책감을 강요하는 것에 대해 조소를 보낼 수는 있겠으나 게임의 단점으로 지적할 수는 없다. 결점으로 지적할 게 있다면 네모를 눌러야만 진행할 수 있는 게임 플레이가 매우 저급한 게임 디자인이라는 점이지 그것이 죄책감을 강요한다는 점이 아니다. 애당초 스토리나 컷신과 같은 것은 경기와는 전연 무관한 게임의 껍데기에 불과하다. 따라서 단점조차 될 수 없다. 본 비평은 그러한 껍데기들을 모두 벗겨낸 '게임'으로서 TLOU 2가 가지는 가치에 대해 논할 뿐이다. 그리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절대 유튜브 시청 따위로 대체할 수 없다. 스토리와 달리 반드시 플레이되어야만 의미 있으며 플레이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 바로 게임이다. 이러한 논쟁에 게임을 끝까지 플레이하지 않은 자가 끼어들 자리란 없다. 안타깝게도, TLOU 2의 게임 플레이는 심지어 생존자와 생존자+ 난이도에서조차 스토리보다도 더 심각하게 망가져 있지만 말이다.


1. Two Pillar


  TLOU 시리즈의 게임 플레이를 지탱하는 두 기둥이 있다. 하나는 적과의 정면 전투이고, 다른 하나는 스텔스이다. 플레이어는 어떤 방식으로 각각의 난관을 깨나갈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TLOU 1에서도 황무지 아래의 난이도에선 자원이 넘쳐나므로 그다지 의미 있는 고민이나 선택이 성립할 수 없다. 그러나 황무지에선 자원 제약이 극도로 심해 플레이어가 자신에게 남은 자원과 레벨에 배치된 자원들, 그리고 등장하는 적들의 위치나 수 등의 상태를 바탕으로 전투와 스텔스를 유동적으로 오가야 한다.

  이러한 자원의 압박은 개별적인 하나의 챕터에서 시작되어서 같은 챕터 내에서 끝나지 않는다. 무슨 의미냐면, 챕터를 하나 수행한 후 다음 챕터가 시작되더라도 자원을 충분히 보충해주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하나의 챕터를 깨나갈 때에도 바로 다음이나 어쩌면 그 다다음 챕터에서 필요할 자원을 남겨두는 것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탄약이 다 떨어지면 적들에게서 탄약이 드롭될 확률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그러나 어쨌거나 적들을 죽여야만 추가적인 탄약을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이므로 여전히 자원을 낭비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존재한다. 즉 자원 관리의 요소가 통시적으로 게임을 지배하고 있고, 덕분에 게임은 구조적으로 강력한 통일성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통일성은, 플레이어가 전투를 할지 스텔스를 할지 선택하는 것을 의미 있게 만든다. 가령 당신이 특정 NPC를 죽이더라도 거기에 아무런 페널티나 리스크가 없다면, 당신이 NPC를 죽이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적어도 게임 내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모든 선택은 리스크와 리워드가 모두 존재해야만 의미가 있고, TLOU 1의 황무지 난이도는 자원 압박이라는 큰 리스크와 리워드를 동시에 제공함으로써 스텔스와 전투 둘 모두를 유의미한 선택지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자원 관리 시스템에서만큼은 TLOU 1이 <Biohazard 4(바이오하자드 4, 이하 바이오하자드 4)>나 <The Evil Within(디 이블 위딘 1, 이하 TEW 1)>보다 우수하다. TLOU 1은 호의적으로 본다면 바이오하자드 4의 영향을 깊게 받았고, 비판적으로 본다면 바이오하자드 4의 하위호환이다. 그리고 TEW 1은 바이오하자드 4의 현대적 발전형이므로 TLOU 1과는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 바이오하자드 4는 프로페셔널 난이도에서조차 탄약이 넘쳐난다. 사실 바이오하자드 4는 자원 관리보단 인벤토리 관리를 요구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정당한 비교는 아니지만, 어쨌든 적어도 자원 관리의 요소가 희박하다.

  TEW 1은 바이오하자드 4보다는 자원 압박이 심하지만, 어쨌든 아쿠무 난이도에서조차 매 챕터의 시작마다 탄약을 충분히 제공하고, 또 탄약을 소모하지 않는 방식으로 적을 제압할 수단이 굉장히 다양하기 때문에, 자원 압박이 잘 느껴지지 않을 뿐더러 매 챕터마다 단절되어버린다. TLOU 1의 자원 관리는 그렇지 않다. 겨울 챕터를 제외한 게임 전체를 관통하기 때문에 더 가치 있다.




1-1. Melee Combat


  하지만 근본적인 전투 시스템과 난관에서 TLOU 1은 두 게임에 비해 가치가 떨어진다. 바이오하자드 4의 전투는 간략하게 요약하면 끊임없는 위치 선정의 연속이다. 무빙 샷이 존재치 않고 조준이라는 시스템 근간 하에서만 제한적으로 프리 룩을 지원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위치를 바꾸면서 동시에 적들을 여러 다양한 도구로 효율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TLOU 1과 TEW 1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동하며 에임을 하는 동안엔 에임이 크게 벌어지고 이동 속도도 매우 낮아 에임과 무빙 양방에 모두 큰 페널티를 부과한다. 따라서 사실상 무빙 샷이 없는 작품들이나 다름없으며 적을 공격하고 다시 위치를 선정하는 루틴이 중요하다.

  그러나 탱크 컨트롤을 채택하여 반턴을 적극 활용해야만 하는 바이오하자드 4와 달리 TEW 1과 TLOU 1은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는 것이 매우 자유롭다. 또 바이오하자드 4에서보다 훨씬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달리기가 추가되었는데, TEW 1은 스태미나를 통해 플레이어의 달리기에 큰 제약을 건다. 반면 TLOU 1은 스태미나가 존재하지 않다. 즉 가까이 당도한 적들의 위협으로부터 빠져나가 다른 좋은 위치를 선점하는 것에 아무런 리스크가 없다. 그래서 황무지 아래의 난이도에선 좀비들이 플레이어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단점을 TLOU 1의 황무지 난이도에선 탄약 등의 자원을 희소하게 만들어 어느 정도 상쇄하였다. 제아무리 적들의 위협으로부터 빠져나가는 것이 쉽다 할지라도 정작 적들을 쏴죽일 탄약이 없다면 소용이 없다. TLOU 1의 황무지 난이도에서 플레이어는 단 한 순간도 탄약이 풍족하지 않고, 몇몇 난관은 아예 아무런 탄약 없이 수행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순간들엔, 자원을 소모하지 않지만 리스크가 높은 근접 공격이라는 대안으로 적들을 상대하게 된다.



  TLOU 1의 근접 전투는 독자적으로 본다면 절대 우수하지 않다. 하지만 TLOU 1의 거대한 전투 시스템을 이루는 일부분으로서는 제 기능을 다한다. 우선 근접 공격은 데미지가 낮기 때문에 한참 동안이나 적에게 꼭 달라붙어 있어야 적들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다. 또 적들에게 마무리 공격을 넣은 직후엔 다른 좀비, 특히 클리커들의 공격으로부터 완전히 무방비하다. 따라서 근접 전투는 아무런 자원을 소모하지 않는다는 큰 리워드가 있는 대신 적들에게 꼭 달라붙어 있어야 한다는 큰 리스크 또한 존재해 탄약을 아끼고 싶거나 아껴야만 하는 순간에 플레이어에게 의미 있는 대안이 되어준다.

  때문에 이러한 근접 전투는 바이오하자드 4의 체술과는 그 결 자체가 다르다. 바이오하자드 4의 체술은 말하자면 총 쏘기, 즉 슈팅의 연계기의 개념이다. 플레이어는 적의 특정 부위를 공격한 후 체술 버튼을 눌러 어떤 부위를 쏘았느냐에 따라 다른 근접기를 사용하게 된다. 수플렉스라든가 발차기라든가 하는 체술들은 제각각 전투에서의 쓰임이 서로와 다르다.

  반면 TLOU 1의 근접 전투는 연계기가 아니라 원거리 전투의 대체제이다. 적을 먼저 총으로 한 방 쏘고 근접 공격으로 마무리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플레이어가 임의로 연계기처럼 사용할 순 있다. 그러나 그 연계기의 효과는 단순히 하나의 적을 마무리 짓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바이오하자드 4의 체술처럼, 특정 상황에서 매우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광역기나 탈출기처럼 쓰이진 않는다. 이 차이가 매우 크다.



  TLOU 1에도 체술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존재하긴 한다. 적에게 병을 던져 그로기 상태로 만든 후 플레이어는 그냥 네모 버튼을 눌러 일반적으로 적을 처리하느냐, 아니면 세모를 누른 후 네모를 연달아 눌러서 암살 공격의 개념으로 처리하느냐를 선택할 수 있다. 이 두 선택은 모두 의미 있다. 전자의 경우 손에 무기를 든 상태라면 클리커를 한 방에 처치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매우 빠르게 적을 처치하기 때문에 다른 위치로 이동하기까지 딜레이가 거의 없다. 문제는 손에 무기를 들고 있는 경우 무기의 내구도를 한 칸 소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반면 후자의 경우 적을 처치하기까지 딜레이가 길지만, 적어도 손에 들고 있는 무기의 내구도를 소모하진 않는다. 즉 두 선택 모두 리스크와 리워드가 적절하게 분배되어 있으며, 따라서 플레이어는 현재 자원 상태나 전황에 맞추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병을 던지는 것 자체가 자동 조준 보정을 받아서 아무런 조준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총으로 쏜 부위 별로 다른 체술을 선택할 수 있어 '모든 것이 조준과 슈팅에서 시작된다'라는 명제가 게임 전체를 관통하는 바이오하자드 4만큼 아름답지는 않다. 그럼에도 나름 잘 짜인 시스템이라 볼 수 있다.

  또 바이오하자드 4는 화염 수류탄이나 샷건, 수류탄 등의 무기들로 최대한 다수의 적들을 타격하기 위한 트릭들이 몇 개 존재했다. 가령 적들을 울타리 바깥쪽과 안쪽으로 몰고 온 후 플레이어는 수류탄을 바로 아래에다 던진 후 울타리 안쪽으로 넘어가며 생기는 I-frame을 이용해 수류탄의 데미지를 무효화하고 적들만 몰살시킨다든가, 아니면 적들 사이를 빠져나가며 한 쪽으로 끌고 온 후 반턴과 샷건을 연달아 사용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울타리를 넘어갈 때의 무적 시간을 활용.

  TEW 1은 바이오하자드 4의 이러한 부분을 잘 발전시켜 창발적 플레이를 적극 지원한다. 전기 화살/냉동 화살이나 특정 맵마다 존재하는 기름통과 성냥이나 횃불을 통해 불을 붙일 수 있는 짚단, 곰덫/줄덫/가시덫과 같은 여러 함정 등이 추가되었고, 또 섬광 화살을 적에게 쏘거나 적의 머리에다 병을 던진 후의 상호작용이나 전기 화살/곰덫과 성냥의 상호작용 등 각각의 도구들에 대한 추가적인 연계기들도 다양해졌다. 특히 성냥, 기름통, 줄덫과 같은 경우엔 플레이어의 실력에 따라 그 효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때문에 플레이어는 이러한 다양한 도구들의 활용에 대해 먼저 고민해보고, 그것을 어떤 순서와 방식으로 사용할지에 대한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그 계획대로 전투에 임할 수 있다. TEW 1은 그런 부분에서만큼은 바이오하자드 4보다 더 다양한 문제 풀이 방식을 제시하며 플레이어가 짠 계획이 실행으로 그대로 옮겨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



  TLOU 1 또한 이러한 부분이 존재키는 하다. 바이오하자드 4나 TEW 1의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적들을 어떤 비좁은 통로로 유인한다거나, 아니면 동료에게 유인하여 동료와 좀비가 싸우도록 유도한 후 다른 적들이 더 몰려오면 화염병이나 못 폭탄 같은 무기들로 일거에 처리할 수 있다. 또 화염병과 못 폭탄은 언뜻 보기엔 똑같은 광역기이지만 실제론 그 성격이 많이 다르다. 못 폭탄은 적에게 맞추면 마치 병처럼 적을 그로기 상태에 빠뜨릴 수 있다. 즉 한 명의 적에게 못 폭탄을 던져서 그 자리에 고정시켜 다른 적들이 못 폭탄의 사정거리 안으로 더 몰려오도록 시간을 어느 정도 벌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화염병은 그 효과가 즉각적이기 때문에, 바로 눈앞의 위협을 제거하는 데 유용하다. 또 불에 붙은 좀비들은 다른 좀비들에게 불을 옮겨 붙이기도 하기 때문에 위치 선정을 어찌 하느냐에 따라 못 폭탄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사용 가능하다.




  다만 이 역시 바이오하자드 4나 TEW 1의 수준에는 못 미친다. 또 제아무리 자원 제약이 심하다 하더라도 달리기 자체가 위치 선정을 지나치게 용이하게 만든다는 결점을 완벽하게 상쇄하진 못 한다. 바이오하자드 4와 TEW 1은 자원 상태와는 상관없이 언제나 위치 선정에 있어서도 심혈을 기울여야 했으나, TLOU 1은 자원이 좀 남아 있는 순간이라면 근접 전투를 수행할 이유가 없으므로 위치 선정이 너무나도 쉽다는 단점이 게임 디자인의 발목을 잡는다. 그럼에도 나름 바이오하자드 4와 어떤 차별화를 두려 했다는 점은 괜찮게 평가할 만하며, 적어도 바이오하자드 4의 하위호환 수준은 된다. 

  글을 계속 읽어왔다면 알겠지만, TLOU 1의 시스템들은 오롯이 황무지 난이도로 인해서만 가치 있다. 자원이 언제나 부족하기 때문에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근접 전투를 수행한다는 선택이 플레이어에게 의미 있게 다가오고, 또 무기의 내구도를 보존하기 위해 딜레이가 긴 암살 공격을 선택하는 순간이 언젠가는 올 수밖에 없다. 바꿔 말하면 자원의 압박이 느슨한 경우 이러한 선택들은 전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플레이어는 그저 멀리서 총이나 빵야빵야 쏘면 적들이 픽픽 쓰러져 나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TLOU 1의 게임 플레이가 비판받는 것은 대개 이러한 이유에서다. 전투 시스템 자체가 극심한 자원 압박을 받는 경우에만 의미가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황무지 아래의 난이도에선 아무런 가치가 없다. 황무지 난이도로 엔딩을 본 사람의 비율이 고작 1%에 지나지 않으므로, TLOU 1의 게임 플레이가 왜 다수에게 부당한 비판을 받는가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근본적인 체계가 TLOU 2에선 완전히 무너졌다. 먼저 TLOU 2엔 황무지 난이도가 없다. 생존자가 아직까지는 최고 난이도이며, 사실 황무지 난이도가 DLC로 추가된다고 하여 더 나아질 건 없어 보인다. 이 난이도에선 탄약 등의 자원이 잊을 만하면 튀어나온다. 또한 엘리이건 애비이건 자원을 소모하여 탄약을 직접 제작할 수 있다. 거기다 자원과 탄약의 전환 효율을 증가시켜주는 업그레이드 역시 존재한다. 즉 안 그래도 탄약과 자원이 넘쳐나는데 이렇게 자원으로 탄약을 제작하는 것도 가능하니 플레이어는 정말 아무런 자원 압박을 느낄 수 없다. 따라서 무슨 난관이든 간 총격전으로 수행하지 않을 타당한 이유가 없다.



  이러한 점을 너티독 역시 파악한 것인지 근접 전투에 변화를 줌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문제는 그 변화란 것이 정말 어처구니없는 수준으로 게임의 전투를 근본적으로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너티독이 게임에 추가한 것은 L1을 통해 사용 가능한 회피이다. 이 회피는 정말 플레이어를 근접공격으로부터 무적으로 만든다. 플레이어는 공격 모션의 어느 시점에서건 L1을 눌러서 공격 모션을 중단하고 회피를 쓸 수 있다. 거기다 이 회피는 I-frame 역시 지나치게 길면서도 아무런 딜레이가 없어 L1만 대충 연타해도 된다. 즉 아무런 리스크가 없으면서도 리워드가 지나치게 크다. TLOU 1의 근접 전투 역시 독자적으로만 본다면 별 가치가 없었지만, 이미 말했듯 이것은 전체적인 시스템의 일부분으로서는 그 역할을 충실히 한다. 하지만 TLOU 2는 자원의 압박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완전히 무의미해진 근접 전투를 조금이나마 흥미로운 선택으로 만들겠답시고 근접전에서의 플레이어를 완전히 무적으로 만들어버렸고, 덕분에 근접 전투는 전체적인 시스템의 일부분으로서도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을뿐더러 독자적으로도 TLOU 1보다 수준이 떨어진다.

  이 방식의 전투는 언차티드의 전투와 상당히 유사한데, 언차티드 역시 세모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적의 여러 공격으로부터 곧바로 빠져나올 수 있고, 동그라미 버튼 또한 너무나도 쉽게 사용 가능하면서도 강력한 회피기이다. 같은 게임사의 작품들이니 어느 정도 공통점이 존재하는 건 별 수 없겠으나, 이런 가치가 매우 떨어지는 부분이 마치 회사의 대단한 게임 디자인 전통이라도 되는 양 다른 게임 시리즈에도 추가한 것이 우습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전투 방식이 너무 쉬워서 문제인 게 아니라, 리스크와 리워드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사실 TLOU 1의 황무지 난이도나 바이오하자드 4의 프로페셔널, 그리고 TEW 1의 챕터 11 이전까지의 아쿠무 또한 난이도 자체는 생각보다 낮은 편이다. 그러나 각각의 시스템들이 리스크와 리워드의 분배가 적절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높은 난이도가 게임의 구조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난이도가 높지 않은 게임은 전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즉 TLOU 2는 난이도가 낮은 걸 떠나서 리스크와 리워드의 균형이 완전히 망가져버린 것이 문제이다. 같은 이유로 언차티드와 함께 TLOU 2의 근접 전투는 정말 보기 드물 정도로 수준이 낮다. 대충 평타 공격 버튼이나 연타하다가 적의, 너무나도 단조롭고 느려 터져서 거기에 반응하기 전까지 잠시 딴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지루한 공격의 시작 모션이 보이면 대충 L1이나 눌러주면 된다. 공격 모션은 어차피 L1으로 캔슬 가능하니 공격 후딜레이를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이런 전투가 보기에는 참 멋지다. 와! L1 눌러주니까 막 복싱 하듯 위빙하고 뒤로 빠지고 별의별 난리를 치면서 멋있게 피하네! 와! 네모를 대충 눌러주니까 알아서 적 복부에 칼을 쑤셔 박고 적이 들고 있던 무기를 빼앗아서 대갈통에다 냅다 꽂아버리네! 와!



와!


와!!

  이것이 보기엔 멋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게임은 ‘보는 것’이 아니다. ‘하는 것’이다. 그게 뭐 어떻게 보이든 간에 그러한 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해 필요한 조작과 판단이 단순히 버튼 하나 열심히 눌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것의 게임으로서의 가치는 아예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람이 조작할 필요조차 없다. 재봉틀을 네모 버튼에다 고정시켜 놓더라도 똑같은 결과 값을 도출해낼 수 있는데 도대체 거기에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당신이 재봉틀이라면 어떤 가치를 찾을 수 있긴 하겠다. 재봉틀조차 수행할 수 있는 전투니까, 재봉틀에 대한 배려가 아주 뛰어난 작품이라고 찬사를 보낼 수는 있으니.

  거기다 게임이 보스전이랍시고 내놓는 여러 명의 잡몹들은 다른 적들과 패턴을 똑같이 공유하는데도 불구하고 어쨌든 보스랍시고 튀어나온다. 엘리 파트에서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거대한 망치를 든 백인 남성 잡몹과 애비 파트의 백인 여성 잡몹, 말미에 등장하는 흑인 남성 잡몹, 그리고 엔딩 직전에 엘리로 상대하게 되는 애비라는 이름의 잡몹은 사실상 똑같은 적들이다. 이들의 패턴은 네 개다. 손으로 잡기, 망치 한 번 휘두르기, 두 번 휘두르기, 세 번 휘두르기.(애비는 망치가 아니라 맨주먹을 휘두르지만 망치건 주먹이건 히트박스 차이도 없고 공격 모션이나 피하는 타이밍 차이도 없으므로 의미 없는 구분이다.) 이 패턴들은 전부 피하는 타이밍이 다 똑같으므로 사실 각각 다른 패턴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이들을 상대하면서 하는 것이라곤 ㅁㅁㅁㅁL1L1ㅁㅁㅁㅁL1L1L1뿐이다.

  게임 내내 주구장창 이런 잡몹들과 되도 않는 보스전을 치러온 플레이어 앞에, 최종보스랍시고 등장하는 것조차 이런 잡몹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애비인 것은 거의 플레이어와 스토리 상의 애비란 캐릭터에 대한 모욕에 가깝다. 만약 애비를 정말로 최종보스에 어울리는 인물로 설정하고 싶었다면 최종보스에 어울리는 패턴과 AI를 애비에게 줘야 했다.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애비는 허구한 날 등장하던 다른 무수한 잡몹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흔하디흔한 잡몹에 불과하다. 여기서 이런 반론을 펼칠 수는 있겠다. 애비가 그 비정상적으로 두껍던 팔뚝이 좀 정상적인 수준으로 얇아질 정도로 너무나도 지치고 굶주린 상태라 전투 또한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앨리 또한 상처 입고 지친 상태이므로 애비만큼이나 전투 수행 능력이 떨어져 있어야 한다. 실제론 전혀 그렇지 않다. 게임 내내 사용했던 평타와 회피를 잘만 사용 가능하다. 따라서 이 작품의 최종보스전은 보스전이라 부를 수조차 없는 그저 잡몹 한 마리에 불과한 무언가와의 전투이며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


잡몹 한 마리.

  그나마 TLOU 2에 와선 총을 든 적들이 전작에 비해 훨씬 위협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원거리와 근거리 적이 함께 등장할 땐 이론적으로는 전작보다 더 상대하기 까다롭다. 특히 원거리 적의 AI는(생존자 난이도 기준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근거리에서의 명중률 또한 에임핵을 방불케 할 정도로 우수하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주변 지형지물들을 파악하고 영리하게 이용하여 적들을 상대해야 한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가 또 있다. TLOU 1에서 근거리와 원거리 적의 조합이 위협적이었던 이유는, 자원 관리가 워낙에 빡빡해서 근거리 적과 원거리 적을 모두 총으로 잡는 선택을 하기에 애로사항이 꽃폈고, 거기다 원거리 적들은 시야각을 잘 내주지 않고 무빙 샷이 사실상 없는 게임의 특성 상, 가까운 위치에서 플레이어를 위협해오는 근거리 적부터 먼저 근접 전투로 처리해야 하는데, 근접 전투를 수행하는 도중엔 원거리 적들로부터 무방비한 상태이기 때문에 지형지물을 더욱 영리하고 필사적으로 이용해야 했다. 다른 원거리 적들의 공격을 지형지물로 막아내며 근접 적들과는 근접전을 벌이는 방식으로 말이다. 반면 TLOU 2는 근거리건 원거리건 그냥 총으로 쏴죽이면 되며 근거리 적만 등장하는 경우엔 그냥 사기적인 L1 회피를 연타하며 근접 전투로 아무런 위협 없이 손쉽게 상대하면 된다.

  물론 적 종류 자체는 TLOU 1보다 2가 2~3종류 더 많다. 그러나 그러한 추가가 근접 공격만 수행하는 적들에 한정되어 있어 다대일에서도 적들이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 한다. TLOU 1은 사실 적의 종류가 거의 4종류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적었다. 하지만 여러 폐쇄적인 레벨과 최소 2마리 이상씩 등장하는 적들이 다대일을 강제했기 때문에 나름 다채롭고 난도 있는 난관을 제시했다. 반면 TLOU 2는 사방이 탁 트이고 널찍한 레벨들이 대부분이며, 또 추가된 근접 적들조차 플레이어의 L1 연타 앞에선 마치 황새 앞의 뱁새를 연상케 하면서 가랑이가 찢기어 죽어나간다.

  만약 TLOU 2가 1처럼 좀 더 제대로 디자인된 레벨들을 제시했다면 L1 회피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게임 플레이를 선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원거리 적들과 총격전을 벌이는 구간들은 대체로 나쁘지 않다. 적들이 끊임없이 사방으로 움직이면서 플레이어를 전방위적으로 조여 와 플레이어가 안전하게 있을 만한 장소가 별로 없어서 플레이어는 전투를 수행하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엄폐물들로 이동해주어야 한다. 이조차도 전투의 결점을 충분히 메워 주지는 않지만 말이다.

  사실 이미 제대로 설계된 난관의 예시가 TLOU 2에도 존재한다. 바로 이 작품의 처음이자 마지막, 즉 유일한 보스전인, 애비 파트의 거대한 구 모양의 좀비 보스전이다. 이 보스전이 펼쳐지는 장소는 상당히 비좁고, 안전 가옥들 또한 보스가 쉽게 파괴할 수 있어 안전한 장소가 없다. 또 보스의 패턴들은 좁은 장소에서 플레이어에게 매우 위협적이다. 특정 지역에 가스를 방사해 플레이어가 이동 가능한 범위를 제한하고, 단순히 L1 회피만으론 피할 수 없는 일격사 일직선 돌진기 패턴으로 압박해온다. 거기다 다대일 전투를 강요한다. 2페이즈에서 자그마한 스토커 같은 적을 낳음으로써 말이다. 이러한 다대일 전투는 AAA 게임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우수한 게임 디자인이다.

  이 보스전 역시 무슨 완벽하다거나 아주 뛰어나다!고 볼 순 없다. 가령 다대일을 강제하던 몹 한 마리는 대충 총알 몇 발 박아주면 갑자기 어디론가 꽁무니를 내뺀다. 또 그냥 무시하면서 보스한테만 총을 쏜다 하더라도 작은 몹의 공격은 전부 회피로 쉽게 피할 수 있기에 사실상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만약 이 보스가 끊임없이 또 다른 몹을 싸든가 낳든가 어쨌든 생산했다면 훨씬 우수한 보스전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한 마리만으로는 TLOU 2의 회피가 가진 결점을 상쇄할 수 없다. 그럼에도 TLOU 2의 난관 중에선 가장 우수하니, 본 게임에 제대로 된 난관이 얼마나 부족한지 대충 짐작 가능할 것이다.



잡몹 한 마리가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


1-2. Stealth


  스텔스는 자원이 없거나 적을 처치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오히려 더 용이한 경우에 난관에 대한 문제 해결의 도구로 쓰인다. TLOU 1의 스텔스는 대단한 점은 없었다. 스텔스를 위해 존재하는 도구가 활, 소음기, 그리고 벽돌과 병뿐이며, 이 역시 ‘적을 조용히 처치하는 무기’와 ‘적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는 도구’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어 사실 TLOU 1에 스텔스용 도구는 두 종류밖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거기다 스텔스 시스템의 설계 자체가 단순히 적의 시야를 피해 특정 지점에 도달한다는 스텔스의 기본 중의 기본만을 지킬 뿐이다. 레벨 디자인은 평면적이며 시야를 차단하는 바리케이드만 곳곳에 배치되어 있을 뿐 스텔스에 활용 가능한 색다른 지형지물이나 도구는 없다. 그렇다고 각각의 난관마다 다른 난관들과는 다른 어떤 독특한 목표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곳을 조용히 지나가라’가 대부분이다.



  유일하게 좀 다른 목표를 지닌 난관들은 데이빗과의 보스전과 조엘과 엘리가 엘리베이터를 밟고 지나가다 엘리베이터가 추락하는 바람에 지나가야 하는 구간뿐이다. 거기다 시야 외의 방식으로 플레이어를 압박해오는 적이 없어 스텔스 플레이가 초반부터 후반까지 거의 동일하게 단조롭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아무 가치가 없다고까진 볼 수 없다. 황무지 난이도에선 시야 바깥의 적들의 움직임을 예측해야 하고, 언제 달리고 언제 웅크린 채 지나갈지를 실시간으로 선택해야 하며 또 어떤 적을 암살하거나 암살하지 않고 지나가야 할지 고민해야하기 때문에 최소한 기본은 한다. 아주 우수하지도, 명백히 수준이 낮지도 않고 그냥 평범하게 괜찮다.

  또 TLOU 1은 한 난관을 깨나가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스텔스와 전투란 문제 해결 방식 사이를 실시간으로 오갈 수 있다. 가령 한 쪽에서 일부러 모습을 드러내면서 적을 처치하여 다른 적들의 이목을 그곳에 집중시킨 후, 적들 시야의 사각으로 이동해 뒤쪽으로 돌아 들어가 다른 적을 조용히 처치하는 식의 플레이가 가능하다. 즉 스텔스 독자적으로만 본다면 큰 가치는 없지만, 전투와 자원 관리와 함께 TLOU 1의 게임 플레이를 이루는 일부분으로서는 제 기능을 다한다. 게임의 각 부분들을 잘게 잘라내어 별개의 것들로 평가하는 것과 그러한 부분들이 함께 어떤 시너지를 내는지를 파악하고 그 시너지를 평가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방식의 평가이다. 게임에 대한 구조적 비평은 반드시 후자를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 기준으로 평가한 TLOU 1은 게임 플레이만으로도 상당히 괜찮다. 거기다 게임 플레이와 잘 융화되는 게임다운 스토리까지 함께 평가하면 AAA 게임들 중에선 보기 드물 정도로 좋은 작품이다.

  그런데 TLOU 2는 전투뿐만 아니라 이 스텔스에서조차 대단한 수준의 퇴보를 이룩하는 데 성공했다. 먼저 엘리 파트에선 칼이 기본 무기인 탓에 클리커들을 아무런 자원 소모 없이 처치할 수 있다. 사실 이 클리커들은 TLOU 1에서도 일반 좀비인 러너들보다 훨씬 덜 위협적인 적이었다. 러너들의 경우 시야에 플레이어가 들어오면 즉각 반응하지만 클리커들은 매우 천천하게 움직이며 플레이어가 내는 소리에 사실 잘 반응도 못 하기 때문에 걸어다니는 장님에 불과했다. 애초부터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 했던 적이, 칼이 기본 무기로 정착하면서 훨씬 덜 위협적이게 변모한 것이다. 참 대단한 발전이지 않은가? 쉠블러라는 신규 적 또한 그냥 걸어 다니는, 살짝 비만인 장님에 불과하다.


  또 새로 추가된 엎드리기와 맵마다 배치된 수풀 때문에 이제 대부분의 스텔스 난관들은 난관 면적의 최소 50% 최대 90%가 적에게 전혀 발각되지 않는 안전지대이다. 그저 수풀에 숨어 엎드려 있거나 심지어 앞으로 이동하는 중에도 적들은 플레이어를, 바로 눈앞에서 플레이어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게 아닌 한 전혀 발견하지 못 한다. TLOU 2는 플레이어에게 강력한 도구들을 쥐어주기만 했을 뿐 그 도구들을 무력화하거나 적어도 사용하는 데 대한 리스크를 높여주는 장애물은 거의 전혀 추가하지 않았다. 그 이유로 TLOU 2의 스텔스는 TLOU 1의 스텔스보다 훨씬 수준 낮다.

  유일하게 이 엎드리기와 수풀에 숨는 것을 쉽게 감지 가능한 적이 개이다. 이들은 플레이어의 냄새를 추적하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적들의 시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을 때에도 쉽게 플레이어의 자취를 뒤쫓아 올 수 있다. 또 개가 플레이어의 냄새를 맡았을 땐 개를 데리고 다니는 인간형 적이 개의 목줄을 풀어주기에 일부러 개가 냄새를 맡게 하여 개가 풀려난 사이에 개에게 발각되지 않은 채 인간형 적만 안전하게 처리하는 등의 지능적인 플레이도 가능하다. 이것은 분명 리스크가 크지만, 동시에 리워드도 큰 플레이이다.

  문제는 이 개들이 엘리 파트에선 단 세 번 등장하고 애비 파트에선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개가 플레이어의 엎드리기와 수풀에 숨는 것을 카운터하는 유일한 적이니 TLOU 2는 난관마다 적어도 네 마리의 개를 배치했어야 스텔스 플레이가 제대로 굴러갔을 것이다. 오히려 스텔스에서만큼은 TLOU 1보다 더 우수했을지 모른다. 앞서 말했듯 TLOU 1의 스텔스는 시야라는 스텔스의 기본 전제만을 이용한 난관들뿐이었으니, 시야 외의 방식으로 플레이어를 압박해오는 TLOU 2의 스텔스가 더 뛰어났을 것이다. 너티독은 전혀 그러지 않았으며, 따라서 TLOU 2의 스텔스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최종 스텔스 레벨은 레벨의 90%가 안전 지대이다.

  더 심각한 것은 좀비들을 상대론 사실상 스텔스 플레이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왜 그런지 아는가? 바로 회피 때문이다. 상술했듯 회피는 원거리 공격을 제외한 모든 공격으로부터 플레이어를 무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좀비가 없으니 사실상 좀비들은 플레이어를 단 한 번도 만져보지조차 못 한다. 대충 L1만 누르면 플레이어 대신 허공이나 더듬는 좀비들의 팔을 구경할 수 있다. 회피는 전투뿐만 아니라 스텔스조차 완벽하게 망가뜨리는 기상천외한 도구인 것이다.

  회피를 지금 상태 그대로 TLOU 2에 추가하자고 건의한 사람에게 경의를 표한다. 다른 모든 변경점도 TLOU 2의 게임 플레이를 퇴보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지만, 그것을 뒷간에다 파묻고 그 위에다 똥까지 싸질러 완벽히 재기불능한 상태로 만든 것은 그 사람이 추가한 회피라는 단 하나의 도구이다. 그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다. 너티독은 경쟁사에게 이 사람을 이직시키기만 하면 그 회사의 게임 역시 파멸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닌텐도에다 이직시키면 마리오 게임에서 관성과 점프를 삭제하고 대신 한 플랫폼에서 다른 플랫폼으로 순간이동할 수 있는 기상천외한 기술을 추가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게임은 훨씬 쉬워질 테니 판매량은 더 높아질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산보.

2. Conclusion


  그런데 사실, TLOU 2는 일반적인 AAA 게임들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냥 평범한 작품이다. 게임에 심각한 결함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다른 수많은 AAA 게임들도 사실 마찬가지라 TLOU 2가 딱히 특별히 더 나쁘다고 볼 순 없다. TLOU 2의 스토리에 대해 비판하는 컨슈머들조차 분명 대부분은 TLOU 2의 게임 플레이에서 아무런 문제점을 느끼지 못 할 것이다. 거기다 그래픽은 현존하는 게임들 중 가장 뛰어나고 볼거리도 풍족하니 컨슈머들이 시간을 때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상품’이다. 최근 들어 갑자기 'TLOU 2가 스토리는 별로지만 게임 플레이는 발전했다‘와 같은 근거를 알 수 없는 의견들이 속속들이 등장하는 것과, 본 작품이 발매 첫 한 주 동안 무려 400만장을 팔아치웠다는 사실이 그걸 증명한다. TLOU 1과 같이 게임플레이만으로도 우수한 AAA 게임은 사실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며, 올해 발매된 둠 이터널처럼 과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게이머들에게 플레이됨으로써 보전되어 오던 모든 고전 명작에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가치를 지닌 AAA 게임은 더더욱 드물다. 그러니 TLOU 2 정도면 그럭저럭 플레이해볼 만한 AAA 게임인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대중들이 TLOU 2를 거의 집단구타하다시피 단체로 혹평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 사실에서 기인한다. 하나는 TLOU 1이 대중들에겐 ‘게임 플레이는 그저 그렇고 스토리만 보는 유사 영화’라는 부당한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본 작품의 스토리가 전작의 스토리가 지녔던 모든 가치를 망가뜨렸기 때문에 대중들이 TLOU 1을 좋아하던 이유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만약 본 작품이 TLOU 1의 후속작이 아니었다거나, 후속작이더라도 전작의 등장인물들이 단 한 명도 등장하거나 언급조차 되지 않았더라면 대중의 평가 또한 게임 리뷰어들의 것과 같았을 것이다. 그 정도로, TLOU 2는 매년 두어 개씩 쏟아져 나오고 게임 리뷰어들이 의례적으로 읽기 부끄러울 정도로 허황된 찬사를 보내는 수많은 AAA 게임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저 비디오 게임의 평균에 아주 살짝 못 미치는 스토리를 가졌고 AAA 게임의 평균적인 수준에 지나지 않는 게임 플레이를 지녔을 뿐, 전혀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경기이다. 이 작품은, 불멸의 가치를 품은 고전 명작들을 제외한 절대 다수의 게임들이 으레 그렇듯이, 고작 몇 십 년만 지나도 누구한테도 플레이되지 않은 채 잊혀질 것이다. 그런 지극히 평범한 작품을 비난하느라 큰 힘을 들일 필요는 없다. 그저 한 번 가볍게 즐기고 치워버리면 된다. 그런 목적으로 쓰이라고 찍어내는 상품이니 말이다.


★☆
1.5/5




    -Lee Y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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